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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 헌터-16화 (16/235)

16화

다음날 오전 내내 최현은 진우를 차 옆에 달고 구보시키면서 서쪽을 향해 천천히 정찰하며 나아갔다. 첫날은 마수의 흔적을 전혀 발견할 수가 없었다. 진우가 적재함 위에서 물구나무서기를 마친 뒤에도 해가 지평선에 반쯤 걸칠 때까지 주변을 꼼꼼히 살펴봤지만 그날 하루 동안은 아무런 이상한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저녁 식사 후 격투와 검법 훈련이 끝난 뒤, 최현은 내일 하루 더 서쪽으로 계속 정찰을 진행하겠다고 했다. 거기서도 마수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으면 처음의 출발점으로 돌아와 동쪽으로 이틀 간 같은 거리를 정찰하겠다는 것이 그의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튿날 오후, 생각보다 이르게 마수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우려가 사실이 된 것이다.

“이것도 케로스의 흔적인가요?”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 자국으로 난자된 크롱의 사체를 보며 진우가 최현에게 물었다. 시체에 몸을 숙이고 자세히 살펴보던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케로스는 이빨과 턱이 강해서 보통 상대의 목을 일격에 물어뜯거나 단단한 뿔로 들이받아 죽이는 것을 선호하지. 그런데 이 사체에는 뿔에 받힌 상처가 없고, 목에도 발톱자국밖에 보이질 않아. 몸 전체에 나 있는 발톱자국과 이빨 자국도 케로스보다는 작고 말ㅇ리야. 아마도 몬티라는 놈의 소행인 듯하다.”

“몬티요?”

“그래. 생긴 건 얼핏 나무늘보 비슷하게 생겨 느려 보이지만 사실은 나무도 잘 타고 무척 빠른 놈이다. 뭐 제법 사나운 편이기는 하지만 마수는 아니야. 그냥 맹수라고 할 수 있지. 보아하니 서너 마리가 힘을 합쳐 크롱을 사냥한 것 같다. 그렇더라도 이 놈 역시 여간해서는 대수림을 벗어나지 않는데, 여기에서 그놈의 흔적이 발견되었네. 역시 대수림 안에서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

크롱의 사체를 검사하며 말을 하는 최현의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

“내일부터 동쪽으로 이틀 동안 더 가보고 나서 대수림 안쪽으로 들어가도록 하자. 아무래도 조금 더 둘러보는 게 낫겠다. 최소한 기지를 중심으로 좌우의 일정 반경은 확인을 해야지 안심이 될 것 같다.”

“네.”

두 사람은 해가 완전히 질 때까지 서쪽으로 더 정찰을 해 보았지만 더 이상 다른 마수나 육식동물의 흔적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저녁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검법 훈련을 생략하고 곧바로 최대 속력으로 동쪽을 향해 트럭을 몰았다. 이틀 동안 정찰을 하며 이동했지만, 구보를 비롯한 훈련 일정을 소화하느라 그리 먼 거리를 이동한 것은 아니었다. 최대 속력으로 트럭을 달리자 행성 케이튼의 시각으로 자정 가까운 시간이 되었을 때는 처음 케로스를 상대했던 장소까지 돌아올 수 있었다. 최현과 진우는 그곳에서 서둘러 텐트를 치고 잠자리에 들었다.

동쪽으로 향한 지 이틀 째 되던 날 최현이 그토록 우려하던 일이 벌어졌다. 저녁 무렵에 숲 인근의 강가에서 또 다른 케로스의 흔적이 발견된 것이다. 이번에 발견된 크롱의 시체는 단번에 목이 물려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몸뚱이는 거의 다 뜯어 먹혔지만 목에 날카로운 이빨에 물렸던 자국이 아주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이건 뭐 더 살필 것도 없이 케로스의 짓이군.”

최현이 씹어 뱉듯 말을 던지고는 바로 트럭에 올라타 차를 이동시켰다. 두 사람은 또 다른 케로스의 흔적이 발견된 곳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강가로 이동해서 바로 텐트를 쳤다. 두 사람 사이에 불안한 기운이 침묵으로 맴돌고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탈진할 때까지 격투와 검법 훈련을 마친 진우는 마나스톤을 배 위에 올려 둔 채로 불안한 마음을 달래며 잠을 청했다. 훈련과 실전을 겸한 필드 탐사라고 했지만 특별히 위험한 일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나선 길이었다. 헌데 목전의 상황이 훈련보다는 실전에 가깝게 변해 버렸다.

최현은 걷지 않고 트럭에 탄 채로 나무들 위를 날아 대수림으로 진입하기로 결정했다. 본래의 훈련 계획은 트럭을 초원 끝에 세워 두고 걸어서 숲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도보로 대수림을 탐색하면서 진우에게 경험을 쌓게 해 주려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케로스의 흔적으로 인해 상황이 변했다.

무중력 항공기가 아닌 트럭이라서 지상 100m 이상을 비행하기는 어려웠다. 게다가 무중력 트럭의 경우 높이 올라갈수록 속도가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래도 대수림의 광활한 면적과 진우의 안전을 고려해서 최현은 그렇게 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무엇보다 헌팅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마수들의 분포 상황을 확인하는 데에 주 목적이 있었으므로 굳이 괴수들을 직접 상대할 이유가 없기도 했었다.

“대수림에는 마수들이 아주 많나요?”

진우의 질문에 최현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

“너는 아프리카 대초원에 사자들이 얼마나 많을 거라고 생각하느냐?”

“글쎄요? 많지는 않을 거 같아요.”

“사자들은 호랑이와는 달리 보통 10~20마리가 무리를 지어 사냥한다. 한 무리의 사자 가족이 자리를 잡으면 그 일대에는 다른 사자들이 있을 수가 없지. 서로 마주치면 한쪽이 죽든가 완전히 딴 곳으로 멀리 도망을 갈 때까지 결판을 내니까. 대수림도 마찬가지야. 워낙 넓은 곳이니 전체적으로는 마수의 수가 제법 되겠지만, 아마 한 장소에서 두 마리 이상의 마수를 동시에 보기는 힘들 거다. 물론 몬티 같은 맹수들은 간혹 보일 거다. 뭐 헌터들에게는 오히려 그런 놈들이 더 성가실 때도 많기는 하지만.”

묻고 대답하는 사이에 트럭은 어느새 대수림 안으로 완전히 진입했다. 최현이 표정을 굳히며 진우에게 엄하게 당부했다.

“지금부터는 집중해서 정찰을 해야 한다. 눈 닿는 곳까지 잘 살펴 보거라. 특히 너는 마나를 볼 수 있으니까 마나의 기운이 내비치는 곳이 있으면 즉시 말해라.”

“네.”

대수림에서 만나는 위험은 케로스 한 마리를 상대하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험악한 것이 될 가능성이 많았다. 헌팅이 아니라 단순 정찰이라고는 하지만 진우는 아직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15살의 소년이었다. 마나에 대한 감각이 뛰어나 짧은 시간 동안 신체적인 힘은 엄청나게 늘었을지 몰라도 정신적인 강인함이란 세월과 경험이라는 양분 없이는 쉽게 성장하기 힘들기 마련이었다.

최현은 문득 아무리 징조가 심상치 않다고는 해도 자신이 어린 아이를 데리고 너무 무모한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불안했다. 눈을 힐끗 돌려 보니 전방을 주시하고 있는 앳된 표정에서 단단함이 느껴졌다. 강한 녀석이었다. 그리고 대견했다. 하지만 아직 너무 어렸다. 그는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눈 닿는 데까지 끝없이 펼쳐진 암녹색의 대수림이 입을 크게 벌리고 자신들을 유혹하는 심해어의 커다란 아가리로 보였다.

*  * * * *

대수림의 동물 분포는 확실히 최현이 이전에 알고 있던 것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케이튼은 마나가 풍부한 행성이었고, 풍부한 마나에는 생물들의 번식과 성장을 촉진시키는 힘이 있었다. 본래 대수림 안에도 크고 작은 초식 동물들이 흔하게 눈에 띌 정도로 많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숫자나 출몰 빈도가 최현이 기억하고 있던 것에 비해 적지 않게 줄어들어 있었다. 대신 원래 육식 동물 정도나 간간이 보이던 지역에서, 드물지만 전에는 보지 못하던 마수들이 돌아다니는 게 눈에 띄었다.

화산 일대나 수림 깊숙한 곳에 변고가 생긴 것이 틀림없었다. 아마 그 때문에 마수들 가운데 일부가 대수림 바깥쪽으로 이동했고, 그에 따라 하급 마수나 맹수들이 다시 밀려서 활동 지역을 옮긴 것 같았다. 결국 늘어난 마수와 줄어드는 초식 동물들로 인해 먹이를 구하지 못하는 놈들이 생겼을 것이고, 견디다 못한 놈들 가운데 초원 지역까지 진출하는 녀석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으로 보였다.

아무리 굶주림에 시달린다고 하더라도 마수들이 대수림을 완전히 떠날 가능성은 극히 드물었다. 짐작처럼 대수림 깊은 곳에 마나 크리스털이 있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나 약한 맹수들 가운데에는 과감히 초원으로 거처를 옮기는 놈들이 생길 수도 있었다. 그 경우 초원의 생태계가 변하는 것은 물론, 총기에 의존해서 크롱을 사냥하던 이들 중에 습격을 받는 사람들이 나올 가능성이 있었다. 정찰이 계속 될수록 최현은 돌아가서 이 문제를 공론화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정찰을 위해 시속 20Km 정도의 느린 속도로 대수림 위를 크게 지그재그를 그리며 움직이던 트럭도 밤이 되면 지상으로 내려와야 했다. 숙영을 위한 텐트를 치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최현이 진우의 훈련을 거를 수 없다고 선언했기 때문이었다. 해가 떠 있는 동안은 정찰을 해야 했으므로 구보나 근력 훈련을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최현은 해가 질 무렵이면 트럭을 착륙시켜 진우에게 격투 훈련과 검법 훈련이나마 시키려고 애를 썼다.

진우가 이미 체내에 마나를 쌓고 있는 게 틀림없으니 지속적으로 훈련시키기만 한다면 그의 둔한 운동신경을 고칠 수 있을 것이라고 최현은 굳게 믿었다. 어차피 체내에 쌓인 마나를 제대로 운용하는 방법을 배우는 데에 그보다 나은 방법이 없기도 했다.

대수림에 들어온 지 닷새 째 되었을 때 최현은 올가미를 이용해 몬티 한 마리를 사로잡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약간 길쭉한 나무늘보처럼 생긴 녀석은 사실은 민첩한 사냥꾼이었다. 평소에는 나무와 나무 사이를 빠른 속도로 이동하다가, 먹이가 될 만한 동물을 발견하면 기척도 없이 떨어져 내리면서 날카로운 발톱으로 순식간에 상대의 목숨을 끊어 버리는 놈이었다.

최현이 몬티를 사로잡아 끌고 오자 진우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몬티는 왜 잡으신 거예요?”

“이 녀석이 오늘 네 대련 상대다.”

“네?”

“그렇게 매일 훈련을 시키는데도 솜씨가 크게 늘지 않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네 녀석이 실전의 긴장감을 모르기 때문인 것 같아서 그런 것 같아. 헌터는 자고로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경험을 통해서 성장하는 거야.”

실전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운동신경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었다. 최현도 그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선을 넘나드는 살벌한 경험을 한 헌터들 가운데에는 그로 인해 마나를 운용하는 능력이 급격히 상승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마나의 운용이 능숙해지면 신체가 강건해지고 재생력이 크게 증가했다. 최현은 그것이 혹시 진우의 둔한 운동신경을 변화시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가 만약의 경우에는 즉각 개입해 진우를 구해낼 것이다. 최현은 그럴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다소 극약처방이라고도 할 수 있는 방법을 택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당하는 진우의 입장에서는 죽을 맛이었다.

대수림 속에 드문드문 존재하는 조그만 공터에서 저녁 식사를 마치자 최현은 진우와 몬티의 허리를 밧줄로 단단하게 연결했다.

“이게 보기에는 이래도 굉장히 질긴 밧줄이다. 몬티의 이빨이나 발톱 정도로는 쉽게 끊어내지 못할 거야.”

“저기, 밧줄은 몰라도 제 몸은 쉽게 끊을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데요.”

“뭐, 처음부터 네가 이기기는 힘들지도 모르지. 하지만 저 녀석도 너를 달고 나무 사이를 뛰어다닐 수는 없을 테니 나름 제약이 있는 거야. 약한 소리 하지 말고 가르친 데로 최선을 다해 이겨 봐라.”

“첫 상대로는 너무 힘든 거 아닌가요.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는데...”

“힘든 훈련을 통해 불가능에 도전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른다. 자고로 그거야 말로 훈련의 본 뜻이지. 그 동안은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너를 너무 무르게 훈련시켰던 것 같아. 몬티라고 해 봤자 사자나 호랑이 정도밖에 안 돼. 내 나태함을 깊이 반성하고 있다.”

“사자나 호랑이가 ‘그런 정도’라고 말할 수 있는 상대이기는 한 겁니까? 저 아직 15살 밖에 안 됐는데요?”

“그래. 벌써 15살씩이나 됐지.”

농담인지 진담인지 분간하기 다소 애매한 말을 끝으로 최현이 몬티의 손과 발을 구속하고 있던 다른 밧줄을 풀기 시작했다. 진심이었다. 설마 죽게 내버려 두기야 하겠냐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잘못해서 목 같은 곳을 물려 버리면 손 쓸 새도 없이 목숨이 날아갈 수도 있었다. 진우는 긴장감에 자신도 모르게 오른손에 든 검을 꾹 움켜쥐었다.

몬티는 처음 손발이 밧줄에서 풀리자 다짜고짜 공터를 벗어나 근처의 나무 위로 올라가려고 발버둥 쳤다. 녀석이 자신에게 덤벼들 거라고만 생각하고 있던 진우는 몬티의 억센 힘 때문에 하마터면 질질 끌려갈 뻔 했다. 그가 다리에 힘을 주고 버티고 서자 몇 차례 더 소득 없는 발버둥을 치던 녀석은 한 차례 뒤로 나동그라지더니 결국 도망가는 것을 포기했다. 몬티가 진우를 향해 뒤로 돌아서더니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다.

그르르르르

진우는 순간적으로 녀석의 눈에서 자신의 몸통을 관통하고 지나가는 듯한 살기를 느꼈다. 몬티의 모습이 갑자기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오른손에 쥐고 있던 검을 들어 위로 휘둘렀다. 그 궤적에 눈 깜짝할 사이에 그를 향해 도약해서 발톱을 내려치던 놈의 앞발이 걸렸다. 챙 하는 소리와 함께 몬티의 발톱 두어 개가 칼날에 잘려나갔다. 진우가 순간적으로 고개를 옆으로 틀자 녀석의 다른 발이 귓가를 날카롭게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을 지켜보던 최현의 눈이 가늘어졌다.

‘저 녀석 몬티가 도약하기도 전에 이미 칼을 휘두르고 있었어. 마나의 움직임을 느끼고 미리 대비하는 건가?’

한 손에 대도를 움켜 쥐고 언제든지 튀어나갈 준비를 하고 있던 최현은 생각 외로 빠른 진우의 대응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근육이 긴장하는 단계에서 이미 움직임을 예측했다는 뜻이군. 괴물은 괴물이야.’

최현의 감탄과는 무관하게 진우는 갈수록 궁지에 몰리고 있었다. 몬티의 공격이 어디로 향할지는 알겠는데 그에 대한 반응을 위해 몸이 따라가는 게 조금씩 늦었다. 행성 케이튼에 온 지 벌써 4주 째였다. 그간 근육의 반응속도가 전에 비해 훨씬 좋아졌다는 것은 스스로도 느끼고 있었지만 여전히 자신의 인식 속도를 따라가기에는 한참 부족했다.

몬티는 진우를 가운데에 두고 밧줄의 길이가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전후좌우로 빠르게 이동하면서 그를 혼란시키려고 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겨우 잔상만 보일 정도로 눈부신 몸놀림이었다. 하지만 진우는 그런 몬티의 움직임을 근육 하나하나까지 선명하게 보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몬티가 이동하면서 간간이 발톱을 휘두르거나 주둥이를 내밀어도 그것이 어디를 노리는지 미리예측할 수 있었다.

문제는 알면서도 반응속도가 따르지 못해 얕게나마 공격을 허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었다. 온몸을 감싸고 있는 질긴 방호복이 아니었으면 벌써 선혈이 낭자할 뻔 했다. 몬티의 움직임을 따라 녀석의 동선 안에 검을 내밀어도 번번이 허공을 찌르기만 하였다. 보고 있던 최현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몸만 보고 예측하지 말고 마음을 보고 예측을 해!”

순간 진우의 머릿속에 무언가 차가운 섬광같은 것이 번쩍하고 스쳐 지나갔다.

눈이 밝은 사람은 그늘을 두려워한다. 귀가 좋은 사람에게는 침묵이 낯설다. 진정한 화가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줄 알아야 하고, 좋은 음악가는 침묵의 아름다움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진우는 자신이 너무 보이는 것만 쫓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어차피 몬티의 공격 루트야 도약을 준비하는 순간부터 예측한다고 해도, 그의 더딘 반응속도로는 적절한 타이밍에 공격을 성공시키기 어려웠다. 그것을 깨닫자 진우의 움직임이 변했다. 그는 무의미한 공격을 자제하고 최대한 방어에 집중하면서 몬티의 순간적인 움직임이 아니라 녀석의 공격 패턴을 읽으려고 노력했다. 몬티의 움직임 자체가 아닌 몬티의 습성과 생각을 알아내려는 것이었다.

그렇게 10여분이 지났다. 진우에게 몬티의 패턴과 생각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두려워하고 있어.’

처음에는 자신을 보는 녀석의 눈빛에서 살기만이 느껴졌다. 하지만 계속되는 공격 패턴이 차츰 눈에 익숙해지면서, 상대의 공격 방식이 뭔가 자연스러운 흐름을 타지 못하고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나마도 일정한 형식을 유지하지 못하고 순간순간 파탄을 드러내는 경우가 있었다. 맹수치고는 먹이를 사냥하는 사냥꾼으로서의 주도면밀함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제야 녀석이 나를 죽이는 것보다는 이 상황을 벗어나려는 생각에 압도되어 있다는 게 느껴졌다. 광폭한 살기가 몬티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었지만, 그 살기의 한 구석에 당황스러움과 두려움, 다급함 등이 함께 섞여 있는 것이 보였다. 이 녀석은 지금 최상의 상태가 아니다. 본능에 지배되어 싸우면서도 본능조차 온전히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 생각이 들자 해결의 실마리가 보였다.

‘상대의 약점을 증폭시키고, 나의 강점을 살린다.’

진우는 검을 꽉 움켜쥐고 있던 손아귀의 힘을 자연스럽게 풀었다. 그리고는 미친 듯이 자신의 주위를 뛰고 있는 몬티를 향해 주문을 외듯 나지막이 속삭였다.

“너는, 약하다. 그리고 나는 강하다.”

또다시 도약을 위해 몬티의 근육이 긴장하는 것이 보였다. 순간 진우는 몬티의 움직임을 자르고 자신도 앞을 향해 뛰어 오르면서 위쪽으로 비스듬히 검을 찔러 넣었다. 그의 예상치 못한 움직임에 이미 도약해서 공중을 가로지르고 있던 몬티가 당황하며 급히 발톱을 휘둘렀다. 하지만 엉겁결에 휘두른 발톱에 잘려나가는 바람소리가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약했다.

찌익

진우의 등 뒤 방호복 위로 몬티의 발톱이 거슬리는 소리를 내며 긁고 지나갔다. 그와 동시에 짧은 마찰음과 함께 그의 검이 몬티의 뱃가죽을 뚫고 들어갔다.

“까륵.”

거친 신음 소리를 내며 뱃속에 장검이 박힌 몬티가 땅 위에 털썩 쓰러졌다. 녀석은 잠시 몸을 부르르 떨더니 힘없이 고개를 떨어트렸다.

“헉헉헉헉....”

쓰러진 몬티의 뱃속 깊숙이 박힌 장검을 꺼낼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진우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몸보다는 마음이 더 지쳤다. 맹수의 잔인한 살기를 마주하여 목숨을 걸고 싸운다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인지 몰랐다. 멀리서 총을 쏘아 크롱을 죽이는 것을 보았지만 그렇게 남의 죽음을 옆에서 구경하는 것하고는 느낌이 전혀 달랐다. 나를 죽이겠다는 상대의 메마른 의지와 맞서는 것은 그저 잘해 보겠다는 결심하고는 비슷하다고 말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달랐다.

“고생했다.”

자신도 손에 땀을 쥐고 긴장하여 보고 있었던 주제에 최현이 별거 아니라는 듯이 가벼운 목소리로 진우를 칭찬했다. 그가 다가와 주저앉은 진우의 어깨를 툭툭 쳤다.

“어땠나요?”

진우가 간신히 몸을 일으키며 최현에게 물었다.

“케로스의 눈빛과 마주했을 때 말이에요.”

“아, 그거?”

“떨리지 않으셨어요?”

“글쎄. 몬티의 눈빛이 고양이라면 케로스야말로 호랑이 정도라고나 할까? 뭐 다른 행성에 가면 케로스가 귀엽게 느껴질 정도의 괴물들도 많으니까. 하하하하.”

괴물들을 상대로 싸우는 진짜 괴물들의 세계. 진우는 그제야 전문 헌터, 그 가운데에서도 마나를 각성한 헌터가 된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에 대해 조금 실감이 드는 것 같았다.

============================ 작품 후기 ============================

드디어 진우의 첫 번째 실전이네요. 하지만 아직은 좀 약하죠. 더 고생을 해야 할 듯. 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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