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행성 헌터-14화 (14/235)

14화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샤워를 마치고 식사를 한 진우는 전초 기지 앞마당에 놓여 있는 트럭 형태의 무중력 자동차를 보고 깜짝 놀랐다.

“저희 이거 타고 가는 거예요? 그냥 걸어가는 게 아니었어요?”

그러자 최현이 어이없다는 듯이 혀를 차며 웃었다.

“이 녀석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여기서 대수림까지 거리가 얼만데 걸어서 가? 네가 보기에는 이 초원이 그렇게 좁아 보이냐. 지평선 끝까지 숲이라고는 보이지도 않는 걸 보면 얼마나 먼지 짐작이 안 가냐? 걸어가면 최소한 보름은 걸려야 할 거다.”

“그래도 저는 훈련을 겸해서 행군하는 걸로 알았거든요.”

“훈련 기간 한 달 밖에 안 돼, 이 녀석아. 너는 숲에는 가보지도 못하고 그 언저리까지 그냥 내처 걷다가 돌아올래? 헛소리 하지 말고 배낭 트럭 뒤에 싣고 어서 타. 아참. 총하고 검은 가지고 타야 한다.”

“넵.”

그렇잖아도 만만찮은 배낭 무게에 고생깨나 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웬 떡이냐 싶었다. 진우는 후다닥 뛰어가서 트럭 뒤에 배낭을 실었다.

짐칸의 절반가량은 덮개가 있는 1m 높이의 밀폐형 화물칸이었고, 그 위로 짐을 더 실을 수 있게 사방에 버팀대가 둘러쳐져 있었다. 진우가 밀폐형 화물칸 위에 짐을 던져 놓고 조수석에 올라타자 가볍게 우웅~ 하는 소리와 함께 무중력 트럭이 부양했다. 조세연 박사와 남경호 주방장을 비롯한 기지 식구들이 모두 나와 잘 다녀오라며 손을 흔드는 가운데 트럭은 방향을 틀어 초원 남쪽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진우의 첫 외계 행성 탐험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  * * * *

행성 케이튼을 비추는 태양이 중천에 이를 때까지 두 사람을 태운 트럭은 일직선으로 남쪽을 향해 계속 움직였다. 사방이 모두 초원이라 반나절 가량 똑같은 풍경이 이어지고 있었다. 변함없이 이어지는 초원의 풍경이 조금 질린다는 느낌이 들 때쯤 해서 전면에 제법 커다란 호수가 보였다. 최현이 진우를 힐끔 보더니 입을 열었다.

“점심은 저 호숫가에서 먹고 가자.”

“네.”

“근데 너 왜 계속 말이 없냐. 뭐 궁금한 것도 없냐?”

“특별히 궁금한 건 없어요.”

그러자 최현이 ‘헌터는 궁금한 게 많아야 하는데’라고 중얼거리며 호숫가에 차를 세웠다. 자신의 총과 대도를 가지고 차에서 내린 최현이 진우에게 물었다.

“배고프냐?”

“아뇨. 아직은 괜찮아요.”

“그럼 훈련을 겸해서 필드에서 먹는 첫 점심은 크롱을 한 마리 잡아서 먹자. 어떠냐?”

진우의 얼굴에 슬그머니 웃음기가 떠올랐다.

“이야. 좋지요. 근데 크롱은 어디서 잡나요?”

그러자 최현이 대답했다.

“당연히 여기서 잡지.”

“아, 이 부근에 크롱이 있나 보죠?”

“크롱은 초원 곳곳에 무리를 지어 살고 있어. 딱히 한 곳에 오래 머무르지는 않아. 하지만 녀석도 생물이기 때문에 물을 마셔야 하거든. 마침 점심때가 다 되었으니 조금 있으면 크롱 떼가 물을 마시러 이리로 올 거다.”

“크롱이 무리를 지어 다닌다고요? 그럼 자칫 떼를 지어 습격할 수도 있지 않나요?”

진우의 말에 최현이 고개를 저었다.

“크롱은 천적이 없어. 대수림에 들어가면 크롱 정도는 단숨에 물어 죽일 수 있는 마수들이 있지만 그 녀석들은 웬만해서는 대수림을 벗어나지 않아. 마수들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서식지를 많이 가리는 편이거든. 게다가 전에 말했듯이 그런 놈들은 좀처럼 자연적으로 형성된 마나 크리스털 주변을 떠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해. 그래서 대수림 어딘가에 마나 크리스털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도 있어.”

“케이튼은 전초 기지가 생긴 지 그래도 조금 오래 된 곳인데 아직까지도 마나 크리스털의 위치가 파악되지 않았어요? 헌터들이 많이 왔을 텐데요?”

최현이 그 말을 듣고 웃으며 말했다.

“케이튼처럼 대기 중의 마나 농도가 짙은 곳에서 만들어지는 마나 크리스털은 다른 행성보다 밀도나 크기가 높은 편이야. 당연히 그 주위에 서식하는 마수들도 강하고. 마나를 각성한 헌터가 아니면 사냥하기가 어려워. 게다가 이곳의 마수들은 대수림 안쪽으로 절반 정도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데, 개체 수가 적어서 사냥감을 만나기도 쉽지 않지만, 자칫 위험에 처할 경우 돌아서 나오기가 몹시 힘들다. 별로 매력적인 사냥터라고 할 수는 없지.”

“그럼 이곳에 전초 기지를 세운 건 주로 헌터 학교 학생들의 훈련을 위한 건가요?”

“아냐. 그밖에도 정기적으로 이곳을 방문하는 전문 헌터들이나 그들을 따라오는 보조 헌터들도 적지 않아.”

“어? 왜요?”

“크롱 때문이지.”

“아하~”

“너 지구에서 크롱 고기 먹어 봤냐?”

“아뇨. 지구에서는 너무 비싸요. 한우보다 열 배는 비싸더라고요.”

“그래. 하지만 비싼 값을 하는 고기지.”

“네 그건 그래요. 이곳에 와서 처음 먹어 봤는데 맛이 죽여주더라고요.”

“그 크롱 고기를 지구에 조달하는 곳이 바로 이곳 케이튼이다. 마수들이 대수림 안쪽에서 나오지를 않기 때문에 크롱들은 초원에서는 거의 천적이 없지. 그러다보니 싸움이나 도주에 적합한 능력이 거의 발달하지 않은 채로 진화했어. 들소처럼 날카로운 뿔이 있는 것도 아니고, 노루나 얼룩말처럼 빠르지도 않지. 초보 헌터들에게는 아주 만만한 사냥감인 셈이야.”

“그럼 총만 있으면 일반인들도 쉽게 잡을 수 있지 않나요?”

“그렇긴 하지. 하지만 케이튼 행성은 헌터 학교에서 직접 관리하는 곳이라 그곳 졸업생이 아니면 웬만해서는 출입 허가를 내주지 않아. 너처럼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아무나 올 수 있는 곳이 아니야. 크롱이 유명하기는 하지만 일단은 학생들 훈련을 위한 더 우선이기도 하고. 일종의 졸업생들을 위한 특혜라고도 할 수 있지.”

“크롱 고기가 비싸니까 사냥 허가만 받으면 꽤 돈을 벌겠네요?”

“글쎄? 포털 사용비로 왕복 이억 원 가량이 들고, 이것저것 추가 비용이 적지 않게 들지만, 크롱을 많이 잡으면 꽤 돈이 된다고도 할 수 있지. 포털이 열려 있는 동안 얼마나 빨리 많은 고기를 통과시키느냐가 중요하겠지. 그래서 미리 도축을 다 해 놓은 상태에서 운반하는 걸로 알고 있다. 포털 통과시키는 것만 해도 힘이 없으면 쉽지 않을 거야. 뭐 헌터 한 팀당 한 달에 한 번밖에는 출입 허가가 나지 않지만 말이다. 게다가 헌터 학교 학생들이 기지를 이용하는 방학 기간 동안은 또 출입이 금지되고.”

한참 최현의 설명을 듣고 있는데 그가 손을 들어 호수 건너편을 가리켰다. 마침 크롱 떼가 어슬렁거리며 물을 마시기 위해 호숫가로 접근하고 있었다. 최현이 한쪽 눈을 찡긋하더니 총을 들고 무릎쏴 자세를 취했다. 헌터들은 대인 전투와 같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주변의 마수들을 동요시키지 않기 위해 언제나 총에 소음기를 달게 되어 있었다. 주변에 마수가 없다고 스스로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최현의 총에는 소음기가 장착되어 있었다.

최현의 총구가 마침 고개를 앞으로 숙이고 물을 마시던 크롱 한 마리로 향하더니 ‘프쉿’하는 소리와 함께 목표물이 된 크롱이 물을 마시던 자세 그대로 앞으로 넘어졌다. 크롱의 머리가 호수에 빠지면서 인근의 호수물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놀란 주변의 크롱들이 후다닥 소리를 내며 도망가는 모습이 보였다.

“타라.”

최현이 어느새 총을 거두고 트럭에 올라타고 있었다.

*  * * * *

사냥을 한 크롱은 군데군데 칼집을 내어 피가 빠지게 한 다음 가죽을 벗기고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낸 뒤 장소를 옮겨 통째로 물속에 넣고 안팎을 씻었다. 그리고는 뒷다리를 트럭 뒷 칸 위에 걸쳐 올려놓고 묶었다. 그렇게 하자 소보다 두 배는 큰 크롱의 벗은 몸이 마치 물구나무를 서듯 트럭 뒤에 기대고 선 모습이 되었다. 여분의 피가 자연스럽게 빠져 호수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 모든 작업을 하면서 크롱의 큰 몸을 번쩍번쩍 들어 옮기는 최현의 모습을 보면서 진우는 역시 마나를 각성한 헌터답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은 아직 그 반 토막도 혼자 힘으로는 옮기기 힘들 것 같았다.

크롱을 처리하느라 점심이 다소 늦었다. 크롱의 앞다리 허벅지살, 한우로 치면 사태에 해당하는 고기를 잘라 느긋하게 구워 먹다 보니 어느새 해가 서쪽 지평선 쪽으로 반쯤 넘어가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최현이 자신의 대도를 꺼내 순식간에 크롱의 몸을 여덟 토막으로 잘라 트럭 뒤 칸의 밀폐형 적재함 속에 밀어 넣었다. 냉동 시설까지 되어 있는 장치이기 때문에 당분간 보관에는 문제가 없을 거라는 게 최현의 설명이었다.

모든 일을 마친 두 사람이 다시 트럭을 몰고 남쪽으로 직진하다 차를 멈춘 곳은 사방이 평탄한 초원으로 둘러싸인 곳이었다. 그곳에서 배낭에 있던 텐트를 꺼내 설치하고 간단한 식사를 마친 진우는 처음으로 검술 훈련을 받았다.

텐트 옆에 피운 모닥불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서서 자신의 대도를 꺼내 든 최현이 진우에게 물었다.

“검, 혹은 도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예상치 못한 고풍스러운 질문에 잠시 당황한 진우가 망설이다가 우물쭈물 대답했다.

“그게 그러니까, 검은 팔의 연장이고...”

그러자 최현이 피식 웃으면서 말을 끊었다.

“그딴 헛소리는 최소한 네가 마나를 각성한 다음에나 지껄여라. 검이 팔의 연장이라는 말은 검과 팔 자체가 함께 움직이는 정도가 아니라 마나가 그 둘 모두를 하나로 묶어서 움직일 수 있을 때나 할 수 있는 소리다. 그렇지 않으면 검과 팔이 하나로 엮어지는 진정한 일체감을 느낄 수 없다. 이야기에 나오는 고대의 무술인들이 정말로 그들이 말하는 기(氣)를 체화한 다음에 그런 소리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현대의 마나 헌터들 가운데에는 실제로 그런 말을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정도의 경지에 오른 이들이 있기는 하지. 하지만 너는 아직 그런 이야기를 하기에는 천 년은 일러. 먼저 내가 움직이는 것을 잘 봐라.”

말을 마친 최현은 돌연 들고 있던 대도를 땅에다 꽂더니 맨 손으로 몸을 움직이면서 진우가 그동안 익히 배워왔던 격투기의 기본적인 권술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맨 손으로 펼치는데도 그의 몸 주위로 움직임을 따라 거센 바람이 휘몰아쳤다.

권술을 마친 그는 이번에는 땅에 꽂아두었던 대도를 들어 한 손에 쥐고는 똑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그리고는 다시 같은 동작을 한 번 더 펼쳤는데, 집중해서 바라보고 있던 진우의 눈에 최현의 몸으로부터 뻗어 나온 푸르스름한 기운이 팔을 거쳐 대도의 끝에까지 이르는 것이 보였다. 칼이 휘둘러짐에 따라 바람이 날카롭게 베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시전을 끝낸 그는 집중해서 바라보고 있던 진우를 향해 물었다.

“맨손일 때와 칼을 쥐고 있을 때의 차이가 느껴지더냐?”

“네. 손목과 팔, 어깨를 거쳐 다리에 이르는 몸 전체 근육의 움직임이 조금씩 다른 것 같았어요.”

“세 번째 시범에서는 뭐가 달라 보이더냐?”

“선생님 몸에서 뻗어 나온 기운이 칼끝까지 뻗어나갔다가 다시 몸으로 돌아오는 게 보였어요. 흐름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고요. 근육의 움직임은 오히려 좀 줄어든 것 같았는데, 제가 잘 본 건가요?”

최현의 얼굴에 대견함 반, 허탈함 반이 섞인 웃음이 머물렀다. 그는 ‘역시 괴물은 괴물이군’이라며 작게 중얼거리더니 다시 얼굴을 굳히고 진우에게 말했다.

“앞으로 매일 저녁마다 똑같은 시범을 세 번씩 보여줄 거다. 처음에는 분명하게 보이지 않던 것들이라도 계속 보다보면 차츰 눈에 들어올 거야. 잔 근육 하나하나의 움직임까지 모두 이해할 때까지 집중해서 새겨 둬라.”

“네.”

“무술을 배우는 사람들이 무슨 형이니 초식이니 하는 말을 하는데, 그건 몸을 자연스럽게 움직이기 위한 동작들을 익히는 과정일 뿐이다. 실제 싸움에서 어설프게 그런 초식들을 곧이곧대로 흉내 내다가는 길거리 싸움꾼들한테도 얻어터지기 십상이다. 절묘한 속임수 동작이라도 한두 번 쓸 수 있는 호신술일 뿐이지, 전투를 반복해야 하는 헌터들이 의지할 수 있는 게 아니야. 모양을 보지 말고 동작의 원리와 이유를 이해해야 한다.”

“네.”

“네가 보는 눈은 있어도 아직 몸이 완전하지 않아 익히기까지는 또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거다. 너는 실제로 몸을 움직이는 게 남들보다 둔하니 더 오래 걸릴지도 모르지. 하지만 마나가 체내에 축적될수록 점점 나아질 거다. 답답하더라도 계속 노력하면 권술이나 검술이 아니라 말 그대로 권법과 검법을 익힐 날이 올 거야.”

“알겠습니다.”

최현이 시범을 마치고 모닥불 곁에 앉아 커피를 끓여 마시는 동안 진우는 잠이 들기 직전까지 계속해서 격투기와 검술을 연습해야 했다. 온몸이 파김치가 될 때까지 수련을 하던 진우가 거의 지쳐 쓰러질 지경이 되어서야 최현이 그의 연습을 중지시켰다.

“이제는 마나 치료를 해 줄 조박사도 없으니 적당히 하고 끝내자. 내일은 또 일찍 일어나서 출발해야 하니까.”

그 말을 듣고 진우는 맥이 탁 풀렸다.

‘이게 적당히 한 거라고?’

그날따라 잠자리에서 배 위에 얹어 놓은 마나 스톤에서 전해지는 느낌이 조금 더 강해졌다. 진우는 몸이 조금 편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잠이 들었다.

*  * * * *

진우는 첫날의 일정을 바탕으로 당분간 낮 동안은 이동을 하고 저녁에만 훈련을 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하지만 다음날 일어나 간단한 식사를 마치자마자 그런 속 좋은 예상은 무참하게 깨어졌다. 최현이 트럭에 올라타려는 그에게 오전 내내 차를 따라오며 구보를 하라고 명령했던 것이다. 보름 가까이 기지에서 훈련했던 터라 몸이 상당히 적응되기는 했다. 그래도 설마 차를 타고 가면서도 구보를 하라고 할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진우는 얼굴이 구겨졌다. 그런 거의 표정을 보더니 최현이 따끔하게 잔소리를 했다.

“몸에 마나를 쌓는 게 무슨 명상이나 호흡 같은 걸 통해서 될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아직 수준에 맞지 않는 생각이다. 너는 지금 마음이 아니라 몸에 마나를 받아들이는 거다. 몸을 움직여야 마나가 쉽게 쌓인다. 너 하나를 이곳에서 특별 훈련시키기 위해 이동하는데 사용된 마나 스톤 값만 해도 무려 왕복 2억이다. 대가없는 혜택을 받는 주제에 꾀부릴 생각하지 마라.”

할 말이 없어진 진우는 그저 혀가 빠지도록 뛸 수밖에 없었다.

점심을 먹고 난 뒤에는 더 황당한 요구가 기다리고 있었다.

“저녁까지 뒤 칸 적재함 위를 물구나무서서 계속 왕복해라. 무중력 차라서 진동이 없으니 할 만 할게다.”

전혀 할 만하지 않았다. 최현의 말처럼 진동은 없었지만 달리는 자동차로 인해 맞바람이 계속 불어 균형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다. 기지에서의 짧은 훈련을 통해서 근력이 많이 붙었다고 생각했는데, 왕복하느라 방향을 바꿀 때마다 때로는 뒤에서, 혹은 정면에서 불어 닥치는 바람으로 인해 진우는 수도 없이 적재함 위를 나뒹굴 수밖에 없었다. 중력이 지구보다 1.2배 세서 그런지 피가 쉽게 머리로 몰려 자꾸 어질어질해지는 것도 고역이었다.

진우가 기지에서보다 더 고된 훈련에 녹초가 된 몸을 간신히 쉴 수 있었던 것은 건너편으로 대수림의 끝자락이 보이는 큰 강가에 이르러서였다. 해가 지려면 아직 시간이 제법 남은 것 같은데도 최현은 그날 이동을 마무리하고 강가에 텐트를 치기로 했다.

“여기서 크롱 한 마리만 더 잡고 가자. 해질녘에는 아마 물을 마시러 오는 크롱 떼가 있을 거야.”

두 사람이 텐트를 치고 불을 피운 다음 차를 한 잔씩 끓여 마시고 있는데, 최현의 말처럼 해가 지평선 끝으로 서서히 다가갈 즈음해서 한 무리의 크롱 떼가 강가로 접근했다. 최현은 앉은 자세 그대로 차에 기대 놓았던 자신의 총을 집어 들더니 물을 마시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있던 크롱의 옆머리를 쏘아서 관통시켰다. 총을 맞은 녀석이 나자빠지며 피를 흘리자 다른 크롱들이 허둥지둥 흩어져 도망치는 모습이 보였다. 진우도 크롱을 해체하는 걸 돕기 위해 전날 최현이 건네주었던 도축용 칼을 들고 일어서려는데 갑자기 최현이 그의 어깨를 붙잡아 주저앉혔다. 어깨를 쥔 최현의 손에서 팽팽한 긴장이 느껴졌다.

“선생님, 왜?...”

“쉿.”

진우가 돌아보며 물으려는데 최현이 급히 손가락 하나를 입술 위에 세워 조용히 하라는 표시를 했다. 그는 빠른 동작으로 차를 끓이고 남은 물을 모닥불 위에 부어 꺼버렸다. 팽팽하게 긴장된 모습을 보이는 최현의 움직임에 진우는 더 이상 묻지 못하고 그를 따라 몸을 낮추었다. 진우가 최현의 시선을 따라 죽은 크롱을 쳐다보고 있는데 문득 강 쪽에서 가볍게 물살을 헤치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 살펴보니 강물 위로 짙은 갈색의 물체가 죽은 크롱을 향해 헤엄쳐 오는 게 보였다.

============================ 작품 후기 ============================

자.. 이제 모험의 시작입니다. 뭐 시작은 가볍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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