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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 헌터-13화 (13/235)

13화

훈련이 나흘 가량 더 진행이 되었을 때 진우는 자신의 몸이 열흘 남짓한 기간 동안 몰라볼 정도로 튼튼해졌다는 걸 스스로도 느낄 수 있었다. 워낙 강도 높은 훈련이기도 했지만, 일과를 마친 뒤에 조박사에게서 받는 잠깐 동안의 안마가 큰 도움을 주었다. 조박사의 안마는 체력을 놀라울 정도로 완벽하게 회복시켜 주어 훈련 성과를 높이는데 크게 기여했다.

물론 저녁 식사 후의 전투 훈련에서는 여전히 진전이 별로 없었고, 검술 훈련은 채 시작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후의 체력 훈련에 대해서는 최현이 ‘슬슬 강도를 좀 더 높여야 하겠는 걸’이라는 기겁할 소리를 중얼거릴 정도였다. 진우는 그 얘기를 듣고 체력 훈련 도중 일부러 슬그머니 힘을 뺐다가 눈앞에 별이 번쩍일 정도로 뒤통수를 후려 맞았다. 당장 그날부터 체력 훈련에 사용하는 장비의 무게가 늘고 횟수가 증가했다. 사서 매를 번 셈이었다.

훈련을 시작한 지 이주일 째 되는 날 아침, 최현은 구보를 하면서 진우에게 오늘 저녁 훈련이 끝나면 짐을 꾸리라고 얘기했다.

“내일부터는 이곳을 떠나 남쪽 초원 지대를 가로질러 대수림까지 이동할 거다. 앞으로 한 달 간은 대수림에서 야영하면서 훈련과 함께 가벼운 실전을 병행할 거야. 물론 실전에서 너는 주로 참관하는 형태가 되겠지만.”

“왜 벌써 이동하는 거예요? 아직 이곳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잖아요?”

진우가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의문을 표하자 최현이 설명을 했다.

“이틀 후 이곳으로 헌터 학교 1학년들이 겨울방학 훈련을 온다. 말했듯이 너의 이번 훈련은 소장님과 우지연 과장을 비롯해서 이곳에 있는 직원들을 제외하고는 아직 비밀이야. 직원들이야 조세연 박사를 통해 미리 당부해 놨으니 입을 다물고 있겠지만, 헌터 학교 학생들에게 훈련 모습을 들키면 곤란해. 네 녀석 체력도 기본적인 수준까지는 올라선 것 같으니 슬슬 헌터 본연의 야생 세계로 들어가야지. 야영 훈련은 지금보다 더 고달플 테니 기대해라.”

그게 기대해야 할 일이라기보다는 각오해야 할 일에 가까울 게 틀림없었지만, 공연히 입을 잘못 놀렸다가는 또 다시 무슨 화를 불어들일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  * * * *

진우가 구보를 마치고 샤워를 한 뒤 한 손에 마나스톤을 쥐고 식당으로 내려가는데 복도에서 조세연 박사와 마주쳤다. 그는 요즘 잠자거나 샤워를 할 때에도 늘 마나스톤을 몸에서 떼 놓지 않았다. 훈련을 받을 때에도 호주머니에 마나스톤을 넣고 다녔다. 그의 손에 들린 마나 스톤을 발견한 조박사는 깜짝 놀란 눈으로 쳐다보더니 물었다.

“그거 최현이 가지고 있던 마나 스톤 아니니?”

“네. 며칠 전에 제가 가지고 있으라고 주셨어요. 과한 선물인 듯해서 망설이기는 했는데 왠지 거절하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냥 받았어요.”

그녀는 묘한 눈으로 진우의 손에 있는 마나스톤을 바라보더니 ‘역시 현이 답군’하며 픽 웃었다.

“그거 비싼 거다. 잘 가지고 있어라.”

그 말에 진우의 표정이 다시 어색해졌다.

“비싼 것인 줄은 알고 있어요. 그래서 사양하려 했는데, 많이 비싼 건가요?”

그러자 이번에는 조박사가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얼마나 하는 건지 정확히는 몰랐던 거냐?”

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나 스톤이 비싸다는 것이야 알고 있었지만, 그게 일반인들이 마트 가서 사는 물건이 아니었으니 정확한 가격은 알지 못했다.

“너 이곳에 올 때 혹시 메추리알만한 마나스톤을 사용하는 거 봤니?”

“네. 소장님이 사용하시는 걸 봤어요.”

“그게 대략 1억쯤 한다.”

“그렇게 비싸요? 그럼 이거는요?”

“그 정도 크기면 십억 정도는 할 거다. 요즘 전기가 죄다 마나 스톤을 이용해서 발전되는 바람에 엄청 싸졌지만, 그걸 발전용으로 쓰면 웬만한 도시 전력 소모량을 하루 정도는 충분히 버텨 줄 거다. 비싸기도 비싸지만 현이에게는 사연이 담긴 물건이니까 행여 잃어버리지 않도록 간 간직해라.”

그 말에 진우는 침을 꿀꺽 삼켰다. 십 억 씩이나 되는 물건인지도 몰랐지만 최현 헌터에게 사연이 있는 물건이라는 얘기를 듣고는 더욱 마음에 부담이 됐다.

“네. 잘 가지고 있을 게요.”

“그래. 어차피 네가 잘 쓰기를 바라고 준 걸 테니 가지고 다니면서 열심히 노력해 봐.”

조박사도 치료 쪽으로 특화되기는 했지만 명색이 중급 헌터라서 그런지 마나스톤의 쓰임새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눈치였다. 그녀는 그 말과 함께 진우의 등을 한 번 툭 치고는 지나갔다. 손에 든 마나 스톤이 갑자기 무거워지는 느낌이었다.

*  * * * *

저녁의 전투 훈련은 평소보다 조금 이른 시각에 끝났다. 다음날 출발하는 야영 훈련을 위해 미리 배낭을 꾸리고 준비를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최현은 진우에게 높이가 1m를 넘는 길쭉한 삼단 배낭과 함께 준비해야 할 물품이 적힌 목록을 건네주었다.

“실탄과 텐트 같은 장비들은 내가 알아서 챙기마. 너는 주방과 의무실에 들러 거기 적힌 물품들을 수령해서 배낭에 넣어 둬라. 옷가지는 속옷 몇 개와 전투복 한 벌 정도만 챙겨. 신발 하나 여벌로 넣어두는 것도 잊지 말고. 그럼 30분 내로 물품 전부 수령해서 다시 내 방으로 와라. 내 방에서 배낭 꾸리는 거 끝내고 훈련 일정에 대해서도 간단히 설명하마.”

식당에서 넘겨받은 부식의 양은 생각보다 많았다. 쌀과 간단한 양념을 제외하고는 거의가 육포나 압축 건조야채 같은 휴대용 식량이었는데도 워낙 양이 많다보니 그 무게가 만만치 않았다. 식당에서 받은 물품들을 메고 들른 의무실에서는 조박사가 직접 구급 의료 키트를 건네주었다. 진우가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돌아서는데 조박사가 그를 불러 세웠다.

“얘기를 할까 말까 하다가, 그래도 그걸 선물로 받았다니까 너도 알아두는 게 좋을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그 마나 스톤은 정말 잘 간직해야 돼.”

조박사의 목소리에 약간 망설임이 서려 있었다. 그녀의 말에 진우가 몸을 돌렸다.

“저도 궁금해서 사실은 묻고 싶었는데요, 이 마나 스톤이 어떤 거예요? 그냥 비싼 거라서 감사히 받는 걸로 끝내서는 안 되는 거 같아서요.”

그러자 그녀가 의무실 구석의 의자를 가리키며 잠시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그가 부식 꾸러미를 내려놓고 자리에 앉자 조박사가 입을 열었다.

“최현과 나는 헌터 학교 동기였다. 둘 다 비슷한 시기에 마나를 각성한 터라 꽤 친하게 지냈지. 하지만 나도 이야기의 전말을 알게 된 건 일이 일어난 뒤로도 꽤나 지난 후였어.”

“네.”

“에브린 행성이란 곳이 있다. 지금은 전초 기지도 건설되었을 만큼 어느 정도 탐사가 진행된 곳이지만, 십년 전만 해도 아직 개척지에 불과한 행성이었지. 그곳에 최현이 포함된 5인조 탐사대가 탐사 겸 헌팅을 나갔었다. 아직 녀석이 중급 헌터로 올라서지 못했을 때였지.”

진우는 말없이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최현의 탐사대는 그곳에서 탐사 도중 조류형 마수와 마주쳤어. 흔히 괴조라고도 부르지. 괴조는 비행 능력이 있기 때문에 원래 여간해서는 헌팅이 어려운 마수야. 그런데 당시 마주쳤던 괴조는 이상하게도 하늘을 날지 않고 지상에서만 탐사대를 공격한 거야. 그것도 아주 필사적이었지. 처음에는 날개나 몸 어딘가에 부상이 있을 거라고 짐작했어. 어쨌든 드물게 괴조를 사냥할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에 탐사대도 끝까지 전력을 다해 공격을 했었지. 괴조의 크기로 보아 꽤 값진 마나스톤을 얻을 수 있을 거 같았거든.”

그 대목에서 조박사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하지만 괴조는 생각보다 강했어. 결국 사냥에 성공하기는 했지만 함께 했던 동료 가운데 두 명이나 목숨을 잃고 말았지. 겪어보면 알겠지만 현이 그 녀석 의외로 정이 많아. 동료를 잃은 슬픔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마나스톤을 찾기 위해 괴조의 배를 가르던 현이는 그 뱃속에서 거의 다 자란 새끼를 발견한 거야. 괴조는 지구의 새와는 달리 알을 낳는 난생이 아니라 뱃속에서 새끼를 키우는 태생이었거든.”

이야기를 계속하던 조세연 박사의 목소리에도 조금씩 물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그제야 왜 괴조가 하늘을 날지도 못하고 그렇게 필사적으로 싸웠는지 이해할 수가 있었어. 탐사대도 동료를 잃었지만 어미 괴조 역시 자기 새끼를 지키려고 목숨을 걸었던 거지. 최현은 적지 않게 충격을 받았어. 상대가 짐승이지만 못할 짓을 했다는 자책감이 들었던 거지. 그런데 엎친 데 덮친다고 지구로 귀환한 뒤 녀석은 다시 한 번 불행한 소식을 접하게 되었어.

조박사는 그 대목에서 잠시 말을 멈췄다. 그녀는 잠시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히는 듯하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현이가 사귀던 여자 친구가 자궁 외 임신으로 그만 아이를 유산하고 만 거야. 최현이 허겁지겁 병원으로 찾아갔을 때에는 이미 수술이 다 끝나고 여자 친구는 다시는 임신을 할 수 없는 몸이 되어 있었지. 최현은 꼬박 보름 동안이나 병실을 지켰지만, 어느 날 그 여자는 채 회복되지도 않은 몸을 이끌고 말도 없이 사라져 버렸어. 최현은 나중에 그게 마치 새끼를 밴 어미 괴조를 죽인 죗값을 치루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고백하더라. 어리석은 이야기지만 탓할 수도 없더라고.”

이야기를 대충 마친 조세연이 눈물이 촉촉한 눈으로 진우를 바라보았다.

“그 마나 스톤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최현이 한시도 몸에서 떼지 않고 가지고 다니던 거였다. 그렇게 소중하게 여기던 것을 왜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는 너에게 선뜻 주었는지는 나도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가벼운 마음으로 선물한 것은 아닐 거다. 나는 네가 그걸 소중히 간직해 주었으면 좋겠다.”

진우는 가슴이 먹먹해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만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대답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자신을 낳느라 얻은 병의 후유증으로 일찍 돌아가셨다. 진우는 어머니의 얼굴을 사진으로밖에 기억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평생 그 점을 안타깝게 생각하셨다. 그런데 최현은 자신이 사랑하던 여자가 임신한 아이를 그 얼굴도 보지 못하고 잃고 말았다. 게다가 그 여자는 다시는 임신을 할 수도 없는 몸이 되었다. 조박사의 말에 의하면 그는 아직까지 그 모든 것을 자신의 탓이라고 여기며 살고 있었다. 이제까지 따뜻하게만 느끼고 있었던 마나 스톤이 갑자기 가슴 한 쪽을 짓누르는 무거움으로 다가왔다.

*  * * * *

조세연 박사에게서 받은 구급 의료키트를 식당에서 수령한 부식들과 함께 최현의 방으로 가지고 간 진우는 그곳에서 그의 지시에 따라 배낭을 꾸렸다. 배낭을 모두 꾸리는 동안 한 마디도 말을 하지 않는 진우가 평소와는 다르게 느껴졌는지 최현이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너 왜 그래? 내일 야영 나간다니까 너무 긴장이 되어서 그러냐?”

“아, 아뇨. 괜찮아요.”

“녀석 근데 왜 갑자기 무게를 잡아?”

최현은 몇 마디 더 구시렁대더니 소총 한 자루를 실탄이 들어있는 탄창 두 개와 함께 진우에게 건넸다.

“네가 그 동안 기지에서 빌려 쓰던 CR-14와 실탄이다. 전문 헌터가 되면 나처럼 개인 화기를 구입할 수 있겠지만, 너는 아직 기지에서 빌려주는 소총을 쓸 수밖에 없어. 실탄은 일단 그것만 가지고 다녀라. 나머지는 내가 보관하고 있다가 필요하면 주마. 미리 당부하지만 필드에서는 내가 쏘라고 명령하기 전에는 절대로 발포해서는 안 된다. 알았지?”

“네.”

“그리고 검은 네가 헌터 양성소에서 가지고 온 걸 그냥 쓰자. 그 동안 검술 훈련은 못했지만 이번에 필드에 나가면 사격 훈련 말고 검술 훈련을 주로 하게 될 거다.”

“알았습니다.”

진우가 계속 굳은 표정으로 대답만 꼬박꼬박 하자 최현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입맛을 다셨다.

“피곤한 것 같으니 그만 돌아가서 쉬어라. 내일은 아침을 먹는 대로 바로 출발할 테니 딴 생각 하지 말고 일찍 자라.”

최현에게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하고 돌아와 자리에 누운 진우는 그의 당부와는 달리 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평소처럼 배 위에 올려놓은 마나 스톤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조용히 말을 걸었다.

‘미안하다. 그런 일이 있는 줄 몰랐어. 네가 알지는 모르겠다만 너와 네 새끼를 죽인 사람도 얼굴도 보지 못한 자식을 잃는 슬픔을 겪었대. 나도 사진으로밖에는 기억하지 못하는 어머니를 잃었고. 우린 어떤 의미에서는 서로 비슷한 아픔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그러니 그만 슬퍼하고 친하게 지내자. 내가 좋은 친구가 되어 줄게.’

배 위에 올려놓은 마나 스톤이 뭔가 대답이라도 하듯 꿈틀대는 느낌이 들었다.

============================ 작품 후기 ============================

이 소설은 "고도로 발달한 과학은 마법과 구분할 수 없다"고 했던 아서 클라크의 말에서 힌트를 얻어서 설정을 잡고 시놉스를 만들었습니다. 뭐 그렇다면 처음부터 과학과 마법이 그냥 함께 하는 것으로 하는 설정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래서 소설 중에 무중력 자동차도 나오고, 마나 스톤도 나오고 그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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