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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 헌터-8화 (8/235)

8화

측정실 전체에 테스트 종료 신호가 울리는 가운데 늘어서 있던 스무 대의 가상현실 측정 장치에 누워 있던 학생들로부터 헬멧이 벗겨져 올라갔다. 잠시 후 다소 몽롱한 표정이었던 학생들이 정신을 차리면서 하나 둘씩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장필호가 손뼉을 치며 학생들에게 소리쳤다.

“자자. 모두들 수고하셨어요. 오후 측정을 마친 학생들은 벽에 붙은 안내 화살표를 따라 제2 강당으로 이동해 주세요. 제2 강당으로 이동해서 모든 측정이 끝날 때까지 대기하시면 됩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학생들이 손을 들었다.

“저기 질문이 있는데요.”

자신들의 테스트가 어떻게 평가될지가 궁금한 학생들이었다.

“제2 강당에 가면 거기 담당하는 연구원이 있으니까 궁금한 게 있으면 거기서 질문하세요. 친절하게 답해 주실 거예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 학생들이 하나둘씩 측정실을 빠져나가 강당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진우도 다른 학생들에 섞여 측정실을 나가려는데 누군가가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우지연 과장이었다.

“강진우 학생이죠?”

“네. 그런데요?”

“강진우 학생은 잠시 얘기 좀 하다 갔으면 좋겠는데. 조금 기다려 주실래요?”

“무슨 일인데요?”

“설명해 드릴게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진우는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드는 정태에게 강당에 먼저 가 있으라고 손짓을 한 뒤 학생들이 모두 측정실을 나갈 때까지 기다렸다. 학생들이 모두 나간 것을 확인하자 우지연이 입을 열었다.

“강진우 학생은 B코스 첫 번째 상황에서 점수 판정이 보류가 떴어요. 학생이 취한 조치가 컴퓨터의 판정 기준을 벗어났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제가 학생에게 몇 가지를 물어보고 그 대답을 근거로 점수를 정하려고 해요.”

“아, 네.”

진우는 은근히 불안했다.

‘역시 탈선은 좀 무리였나...’

상황 진행 중에 컴퓨터의 반응이 느려졌던 것이 생각났다. 그때 우지연이 그로서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말을 꺼냈다.

“그리고 학생이 동의한다면 간단한 추가 측정을 하려고 하는데 괜찮겠어요?”

측정을 더 한다고? 진우는 더욱 더 불안해졌다. 하지만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우지연의 눈을 보니 말이 동의를 구하는 것이지 아무래도 거절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이곳은 또 다음 측정 대상자들이 써야 하니 일단 자리를 옮기도록 하지.”

그때 옆에서 계속 지켜보고 있던 소장이 제안을 했다.

“내 사무실로 갑시다. M-test용 장치도 어차피 본관에 있으니 그게 좋을 것 같군.”

우지연이 진우를 보고 말했다.

“본관은 여기서 가까워요. 그리로 가도 괜찮겠어요?”

“네. 저는 상관없습니다.”

*  * * * *

소장의 사무실은 생각보다 넓었다. 벽 전체가 유리로 되어 있는 한쪽 면을 등지고 커다란 책상이 놓여 있었고, 그 앞으로 길쭉한 다탁을 사이에 두고 양쪽에 소파가 자리하고 있었다. 소장이 자신의 책상으로 가서 서랍을 열어 무언가를 꺼내는 동안 우지연은 진우를 소파에 앉게 하고 자신도 맞은편에 앉았다. 그녀가 진우의 테스트에 대해 말을 꺼냈다.

“먼저 B 코스 첫 번째 측정에 대한 이야기부터 합시다. 학생은 화물 열차를 탈선시키기로 결정을 했어요. 그렇죠?”

“네.”

“어차피 화물열차를 탈선시킬 거라면 차라리 최고속도로 달리면서 뒤에서 오던 여객 열차와 추돌시킨 다음 브레이크를 걸어 두 열차를 모두 서서히 정지시킬 수도 있지 않았나요?”

우지연은 먼저 본래 프로그램 상에 설정되어 있던 정상적인 해결 방법에 대해 물어보았다. 진우가 그 점을 고려하고 있었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였다.

“그건 안 될 거 같았어요. 그렇게 하려면 어차피 화물열차 속도를 최고로 유지해야 하는데, 남은 구간이 짧아 잘못하다가는 두 열차 모두 탈선했을 거예요. 그러면 여객 열차의 차량들이 전복되면서 사람들이 많이 다칠 우려가 있었습니다.”

탈선의 위험은 실제로 존재했었다. 기관사와 긴밀하게 연락하면서 열차의 속도를 제대로 조절하지 못할 경우 두 열차가 모두 탈선하는 경우가 실제로 발생하고는 했으니까. 우지연은 진우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흠... 호수로 열차를 유도할 경우 기차 차량의 무게 때문에 얼음이 깨져 물속으로 가라앉을 수도 있지 않았나요? 그럴 경우 화물열차의 기관사들은 살기 힘들었을 텐데요?”

“확인해 본 결과 최근에 열흘 동안 최고 기온이 영하 3도를 넘지 않았더라고요. 최저 기온은 영하 20도 가까이 되었고요. 호수의 얼음 두께가 제법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확신할 수 있는 데이터는 없었지만 호수 안으로 너무 들어가지만 않는다면 최소한 열차가 멈출 때까지는 버텨 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화물 열차가 궤도를 벗어나자마자 바로 전복될 수도 있지 않았나요?”

“그래서 모든 차량이 벗어나기 전까지는 기관사들에게 브레이크를 잡지 못하게 했어요. 그동안 내린 눈으로 인해 주변이 온통 눈으로 덮여 있어 썰매를 타듯 미끄러질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고요.”

“흐음.....”

우지연이 잠시 말을 멈추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물었다.

“그 모든 생각을 불과 1분 남짓한 동안 다 했다는 거죠? 믿기 어렵지만 사실이 그러니...”

진우는 대답을 않고 우지연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게 보통 사람들로는 쉽지 않다는 걸 안다. 하지만 스스로 대단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늘 그랬으니까.

“면담이 대충 끝났으면 제가 시간을 뺏어도 될까요?”

그때 소장이 손에 무언가를 들고 우지연의 옆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아.. 네. 그렇게 하시지요.”

소장이 우지연과 진우를 향해 씩 웃더니 손에 든 것을 하나씩 다탁 위에 내려놓았다. 조그만 유리구슬 다섯 개가 다탁 위에 일렬로 놓였다.

“별 건 아니고 M-test 전에 제가 간단한 실험을 먼저 좀 했으면 해서요.”

진우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소장을 쳐다보자 그가 다시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여기 유리구슬 다섯 개 중에 학생이 보기에 조금 특별하다고 생각되는 게 있으면 두 개만 골라 보세요. 고르고 나서는 그걸 고른 이유를 저에게 말해 주면 됩니다.”

진우가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되물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시...”

하지만 진우가 채 말을 끝내기도 전에 소장이 재빨리 그의 말을 끊었다.

“이유는 묻지 마시고 그냥 가게에서 물건을 고른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뭐 이왕이면 조금 더 진지하게 골라 주면 좋지만요."

진우는 소장이 내려놓은 다섯 개의 구슬을 쳐다보았다. 구슬들은 모두 똑같아 보였다. 크기, 색깔 모두 차이가 없었다. 그는 내심 당황했다.

‘뭐지? 다 똑같아 보이잖아. 뭐가 다른 거야?’

그는 자신이 무언가 놓친 게 있는가 싶어 정신을 집중해서 다시 구슬을 쳐다보았다.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문득 왼쪽에서 두 번째 것과 네 번째 것 주위에 엷은 색깔이 씌워져 있는 것이 보였다. 두 번째 것 주위에는 푸르스름한 색이, 네 번째 것 주위에는 불그스름한 색이 덮여 있었다.

“이거 만져 봐도 되나요?”

“그렇게 하세요. 마음대로 만져 보고 고르세요.”

진우는 색깔이 덮여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두 개의 구슬을 양손으로 집어 들었다. 푸르스름한 구슬에서는 약간 시원한 느낌이, 그리고 불그스름한 구슬에서는 따뜻한 느낌이 전해졌다. 그는 두 개의 구슬을 내려놓고 이번에는 색깔이 없는 다른 구슬들을 집어 들어 보았다. 하지만 그 구슬들에서는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진우는 다른 구슬들을 도로 내려놓고 처음 집었던 두 개의 구슬을 소장 앞으로 밀어 놓았다.

“이 두 개가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진우의 선택을 본 소장이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어떤 점이 다른 것 같나요?”

“왼쪽 것은 조금 시원한 느낌이 들고, 오른쪽 것은 따뜻한 느낌이 듭니다.”

“그것뿐인가요? 처음에 그 구슬들을 집어들은 이유는 뭔지 말해줄 수 있나요?”

소장의 물음에 진우가 잠시 망설이더니 천천히 대답했다.

“저, 그게, 구슬들 색깔이 조금 달라보였어요. 따뜻한 것에는 붉은색이 있었고, 차가운 것에서는 푸른색이 보였거든요.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는데 자세히 보니까 다른 것들하고는 색깔이 달라보이던 데요.”

그의 대답을 들은 소장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소장은 구슬들을 모두 회수하더니 자기 호주머니에 넣고는 진우를 향해 물었다.

“번거롭겠지만 한 번만 더 해 봐도 될까요?”

“네.”

진우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소장이 호주머니 속에서 구슬을 잠시 만지작거리더니 다시 하나씩 꺼내 놓기 시작했다. 진우는 집중해서 구슬들이 놓이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번에는 집중을 해서 그런지 구슬들의 색깔이 처음부터 달라보였다. 진우는 구슬이 모두 다탁 위에 놓이자마자 곧바로 왼쪽에서 세 번째와 다섯 번째 구슬을 집어 들었다. 역시 하나는 따뜻하고 다른 하나는 시원했다.

“이 것 두 개가 좀 특별한 것 같아요.”

“이유는 처음과 동일합니까?”

“네. 하나는 붉고 따뜻한데 반해 다른 하나는 파랗고 시원한 느낌이 드네요.”

“구슬의 색깔이 확실히 다른 것과는 달라 보였습니까?”

“네. 이번에는 집중을 해서 보아서 그런지 처음부터 그렇게 보이던데요?”

소장은 진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구슬을 모두 집어넣더니 우지연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저도 다 끝났습니다. 그럼 2층으로 내려가서 M-test를 받도록 하지요. 우과장님이 학생을 좀 안내해 주시겠습니까?”

“소장님은 같이 내려가시지 않나요?”

“네. 저는 결과만 보고 받는 걸로 하지요.”

“알겠습니다.”

우지연이 진우를 데리고 소장실을 나서자마자 소장의 표정이 급격하게 딱딱하게 변했다. 그는 무심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처음부터 마나를 주입한 구슬만을 정확히 골라 집어 들었어. 색깔이 달라 보였다고? 정말 마나가 눈에 보인다는 걸까?”

그는 몸을 돌려 책상 너머로 보이는 헌터 양성소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본관 뒤편으로 짙은 숲이 펼쳐져 있었고 그 한 가운데에 제법 커다란 호수가 보였다. 호수 위로 초가을의 서늘한 바람이 불어 간간히 호수 위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고 있었다. 문득 그가 신음하듯 말했다.

“마나를 보는 자, 마나를 지배하리라. 우리에게도 드디어 희망이 보이는 건가.”

*  * * * *

진우의 M-test는 30분 만에 끝났다. 정식으로 하면 두 시간 가까이 걸리는 테스트였지만, 몸에 마나가 있는지의 여부를 판단하는 첫 번째 측정에서 진우의 몸에는 마나가 전혀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 때문에 이후의 과정 가운데 적지 않은 부분이 생략되었다. 다만 마나에 대한 감응 능력은 최상으로 나왔다. 진우의 M-test가 다 끝날 때까지 아직 오후 측정을 다 마치지 못한 학생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측정을 마친 학생들이 기다리는 제2 강당으로 돌아갔다.

똑똑

자리에 앉아 창문 밖을 바라보고 있던 소장이 노크 소리에 몸을 돌렸다.

“들어오세요.”

문이 열리고 우지연 과장이 덩치가 좋은 남자 한 명과 같이 들어왔다. 190cm에 달하는 커다란 키에 몸 전체가 잘 빠진 근육으로 덮였다고 할 만큼 체격이 좋은 사람이었다.

“아.. 최현 군. 어서 오게. 우과장도 와서 앉고.”

두 사람이 소파에 앉자 소장이 우지연에게 물었다.

“측정 결과도 잘 나왔겠지?”

우지연이 굳은 얼굴로 측정 기록지를 소장이 볼 수 있도록 펼치며 대답했다.

“보시면 알겠지만 마나 잔량이 전혀 없는 것에 비해서는 마나에 대한 모든 감각이 다 최상으로 나왔습니다. 마나 잔량이 없다는 것은 몸에 마나를 받아들인 적이 전혀 없다는 건데, 마나 수용의 경험이 전혀 없는 친구가 어떻게 감응 능력이 최상으로 나오는지 솔직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소장이 최현을 보며 물었다.

“자네 생각은 어떤가?

최현이라 불린 남자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소장님이 난데없이 학생 하나의 M-test를 주관하라고 하시기에 무슨 일인가 했는데, 이 친구 아주 괴물입니다. 이렇게 감응 능력이 뛰어난 친구는 처음 봅니다. 만약 수용력이 감응력 반만큼이라도 좋다면 1년이 안 돼 마나를 각성할 수 있을 겁니다.”

그 말을 들은 소장이 가볍게 웃었다.

“헌터가 마나만 있다고 해서 되는 건 아니지. 아무튼 오늘 이 친구 여러 사람에게 괴물 소리를 듣는 군. 그래서 말이야. 내가 자네에게 부탁을 할 게 있는데.”

“말씀하십시오. 무슨 일입니까?”

“자네가 올 겨울에 이 친구 데리고 케이튼에 가서 한 두어 달 머무를 수 있겠나?”

“행성 케이튼 말입니까?”

듣고 있던 우지연 과장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녀가 소장을 보고 말했다.

“소장님 아직 합격 여부도 결정되지 않은 학생에게 너무 특혜가 아닐까요?”

우지연의 말에 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특혜이기는 하지요. 하지만 그렇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어차피 오후 측정 결과만 놓고 봐도 합격이 확실한 친구가 아닙니까? 그리고 입학하면 육 개월 뒤에 가야 하는 곳이기도 하구요. 이 나이의 학생들은 성장기입니다. 동시에 모든 게 불안정하기도 하지요. 훈련 여부에 따라 마나에 대한 감각이나 수용력도 빠르게 변합니다. 저는 이 학생을 그대로 두는 것은 오히려 시간 낭비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당장이라고 훈련을 시키지 않으면 무척 후회가 될 것 같습니다.”

“그야... 흠. 알겠습니다.”

우지연 과장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본인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진우의 겨울방학을 위한 계획이 세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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