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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 헌터-6화 (6/235)

6화

“아... 이런 미친 새끼.”

연구원 장필호는 저도 모르게 욕을 내뱉었다.

“왜 그래요 선배? 또 무슨 일 생겼어요?”

막 교대해서 장필호의 옆자리에 낮아 있던 이하나가 들여다보고 있던 모니터에서 고개를 들고 물었다.

“강진우라는 놈 말이야. 이 자식 이거 기차를 그냥 탈선시켜 버렸네.”

“뭔데요? 무슨 상황인데요?”

“B코스 첫 상황인데 B-12 상황 걸렸다.”

“그 열차 3중 충돌 상황 말이에요?”

“그래. 평범하게 대처하면 기차 3대가 서로 들이받거나 추돌 사고 나게 되어 있는 그거 말이야.”

“근데 왜요? 기차를 탈선시키다니 그게 무슨 소리에요?”

“이 자식이 기차 하나를 일부러 탈선시켜서 호수에다 박아버렸어.”

“헐~~ 그럼 어떡해요? 사람 다 죽은 거예요?”

“아니. 근데 한 명도 안 죽었어.”

“엥? 그게 어떻게 가능해요? 판정 점수 얼마 나왔는데요?”

“그게... 쩝. 보류 떴다.”

“보류? 보류는 또 뭐에요?”

“컴퓨터가 가지고 있는 판정 기준에는 없는 전개가 됐다는 거지. 사람이 많이 죽었으면 그냥 빵점 처리 됐을 텐데, 사람이 하나도 죽지 않았으니 판단을 할 수 없어 보류 처리한 거 같아.”

“판정이 안 되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예요? 상황 진행을 중지시킬까요?”

장필호가 자리 옆에 있던 전화기를 들면서 소리쳤다.

“농담하냐? 사람 하나 안 죽이고 상황을 해결한 거잖아. 테스트는 일단 계속 진행시켜. 나는 우과장님에게 연락해서 이리로 내려오시라고 할 테니까.”

“과장님이 직접 판단하게 하시려고요?”

“내 마음 같아서는 만점을 주고 싶은데, 권한이 없잖아, 권한이. 이건 과장님이 결정을 해야지. 그 양반 성격에 좋다고 달려오실 걸?”

신호가 몇 번 가더니 우지연 과장이 전화를 받았다. 장필호는 간략하게 진우가 처리했던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설명을 들은 우지연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화물열차를 고의로 탈선시켰다고? 그렇게 해서 사람을 다 살렸어? 재미있는 녀석이네.”

“네. 컴퓨터 판정이 보류로 떴습니다. 아무래도 과장님이 직접 보시고 점수를 주셔야 할 거 같아서요.”

“알았어. 일단 테스트는 계속 진행시키고 있어. 내가 지금 내려갈 게.”

수화기를 내려 놓은 지 1분도 지나지 않아 우지연이 측정실로 들어왔다. 장필호는 진우가 처리했던 B코스 첫 번째 상황이 녹화된 영상을 재생시켜 그녀에게 보여줬다. 고속으로 플레이되는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던 그녀가 열차가 탈선하는 장면에 이르러 작게 감탄의 소리를 냈다.

“골 때리는 녀석일세. 이거 원래 잘 해도 최소한 열차 두 대는 서로 부딪힐 수밖에 없도록 설계한 거 아닌가?”

“네. 원래는 그렇습니다.”

“근데 열차 하나를 일부러 탈선시켜 전부 살렸다고?”

“인공지능이 상황에 부여한 자유도가 워낙 높아 일단 지시한대로 상황이 처리되긴 했는데, 웬만한 프로그램이라면 무조건 빵점 처리 했을 겁니다.”

우지연이 장필호를 보고 씩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사람이 컴퓨터보다 나은 거지. 이 상황에 대한 점수는 일단 끝까지 보류 시키고 테스트 계속 진행해. 이 학생은 끝나고 나서 면담을 해 보고 점수를 줘야 할 것 같네.”

“면담을 하신다고요?”

“그래. 결과가 좋으니 점수를 주긴 줘야 할 것 같은데, 어디까지 생각하고 그런 판단을 한 건지 알아봐야겠어. 어찌 보면 창의적이고, 어찌 보면 너무 과격해. 면담을 통해서 생각을 들어보고 결정하는 게 좋을 거야. 가상현실이니까 사람 몇 죽어도 된다는 생각에 모 아니면 도라는 식으로 판단한 거면 탈락시켜야지. 똑똑하지만 무모한 놈은 절대 헌터로 키우면 안 되니까.”

“알겠습니다.”

우지연과 장필호가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 동안, 진우는 이미 두 번째 상황에서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얻고 세 번째 상황마저 마무리하고 있었다.

*  * * * *

첫 번째 상황을 끝내고 하얀 공간으로 돌아왔던 진우는 다음 상황에 대한 브리핑을 기다리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열차가 아닌 인명 피해를 줄이라고 한 거니까 화물 열차 하나를 박살내더라도 사람을 모두 살린 게 맞겠지? 은근히 불안하네. 근데 이거 처음부터 너무 어려운 거 아냐. 그냥 노선 조정만 해서 상황을 처리하려고 했으면 아무리 생각해도 최소한 두 대는 충돌을 했을 거 같은데... 3분 안에 생각할 수 있는 묘책이 따로 있는 건가?’

그 ‘아무리 생각해도’가 사실은 본래의 정답에 가까운 것이라고는 진우도 미처 짐작하지 못했다. 최선을 얻을 수 없는 상황에서는 차선이나 심지어 차악까지도 감수해야 하는 게 헌터라는 생각에서 만든 상황이었다. 보통은 B 코스의 가장 마지막에 주어지는 상황이 이번 테스트에서는 첫 번째 상황으로 주어졌다. 테스트 난이도가 최상급인 탓이었다.

두 번째는 늪지를 배경으로 한 상황이 주어졌다. 허리까지 잠기는 늪지를 4명의 팀원과 함께 탐색하다 악어를 닮은 외계 생물 이십 마리에 둘러싸이기 직전이라는 설정이었다. 주어진 장비를 최대한 이용하여 인명피해 없이 늪지를 빠져나오라는 것이 요구였다.

진우는 대원들이 가지고 있던 크레모어를 전부 모아 늪지 속에서 터트림으로써 상황의 전기를 마련했다. 크레모어가 강력한 무기이기는 했지만 대원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고작 3대였다. 그것으로 피부가 두꺼운 외계 생물을 모두 죽이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그는 직접 살상을 노리기보다는 그들이 지구의 파충류와는 달리 이중 눈꺼풀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을 이용했다.

크레모어는 직사각형의 강철판에 붙어 있는 수많은 쇠구슬들을 비산시켜 살상을 노리는 폭발물이었다. 진우는 크레모어를 30도 정도의 각도로 늪 속에 비스듬히 잠기게 한 뒤에 폭발시켰다. 크레모어에 의해 비산된 진흙 덩어리들이 얼굴 위로 쏟아져 내리자 외계 생물들 가운데 상당수가 시야를 잃고 허둥대기 시작했다. 그동안 대원들은 제한된 실탄으로 침착하게 녀석들을 한 마리씩 저격하면서 후퇴했다.

가상현실이어서 그런지 오전 측정에서는 형편없는 정확도를 기록한 진우도 이상하게 빼어난 사격 솜씨를 보여주었다. 결국 십여 마리가 넘는 외계 생물을 사살하고, 나머지는 허둥대며 도망치게 만듦으로써 상황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덕분에 그 자신은 몰랐지만 만점에 가까운 점수가 나왔다.

*  * * * *

진우는 제한된 장비와 주변에서 얻을 수 있는 재료를 바탕으로 무인도를 탈출할 방법을 마련해야 하는 세 번째 상황을 마치고, 화염에 휩싸인 건물 속에서 생존자를 찾아 구출하는 마지막 상황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가 상황을 해결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측정실 사람들 입에서 감탄의 탄성이 새어나왔다.

“B 코스가 각 상황마다 50점 만점이지?”

모니터를 지켜보던 우지연 과장이 혼잣말처럼 물었다. 옆에 있던 장필호가 얼른 대답했다.

“네. 상황 4개 합계 200점 만점입니다.”

“저 학생 저대로 가면 첫 번째 상황을 0점으로 처리해도 B 코스 합계가 140점은 될 것 같지 않아?”

“그 정도 될 것 같습니다.”

“B 코스 전체 합계 점수 140점이면 그것만 해도 높은 점수 아냐?”

“상위 1%에 들어가는 점수입니다. 대단한 녀석입니다.”

“흐음~.”

잠시 고개를 숙이고 뭔가를 생각하던 우지연이 이하나 연구원을 불렀다.

“이하나. 저 친구 오전 측정 기록 여기 있지?”

“네. 드릴까요?”

“줘 봐.”

이하나가 진우의 오전 측정기록을 찾아서 건네주자 우지연은 그 기록들을 하나씩 넘겨보기 시작했다.

“이거 뭐야. 순발력하고 정확성 측정 기록이 왜 이렇게 안 좋아?”

“저도 봤지만, 그것 때문에 오전 측정 기록만 보면 불합격 확정이더라구요.”

“그래도 지구력은 좋네. 1,500m 기록은 제일 좋은데?”

“그렇기는 해도 순발력과 정확성이 너무 떨어져요. 오전 측정 기록대로라면 이따가 C코스 측정 결과도 나쁠 것 같아요.”

“하지만 아까 보니까 사격 솜씨도 괜찮은 것 같던데?”

“그건 가상현실이라서 그런 거 아닐까요?”

아무리 가상현실이라도 실제 운동 능력이 반영되기 마련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한참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던 우지연이 장필호에게 물었다.

“이번 테스트 C코스에 예정된 상황이 뭐지?”

“C-7하고 C-4입니다.”

“저 학생만 C-2하고 C-1으로 바꿔 봐.”

“네? 아 그게... C-1에서 C-3까지는 본래 헌터 학교 3학년 이상에게만 허용하는 거여서요. 명색이 전문 헌터용 테스트잖아요. 후보자 테스트를 받는 학생들에게는 무리가 아닐까요? 게다가 저 학생만 다른 상황으로 테스트하면 객관적인 판정에 문제가 생길 수도...”

“어차피 상황마다 판정 기준이 정해져 있잖아. 거기에 따라 점수를 주면 되잖아.”

“저기, 그렇기는 하지만 그래도 너무 어렵지 않을까요? 아직 한 번도 후보자 테스트를 받는 학생들을 대상으로는 C-1 상황을 준 적이 없는데요.”

“그럼 지금까지 B코스에서 저 정도 점수를 얻은 놈들은 있었냐? 헌터 후보자 테스트가 공무원 뽑는 시험이야? 무슨 객관성을 따지고 그래? 잠재력을 확인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거 몰라? 나도 생각이 있어서 그러는 거니까 일단 시키는 대로 해. 정 문제 생길 거 같으면 정원 외로 뽑으면 돼. 소장님한테는 내가 연락할게.”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변경하겠습니다.”

장필호가 불안한 표정으로 기기를 조작하는 동안 우지연은 전화를 들어 이곳 전체를 책임지는 헌터 양성소장에게 통화를 시도했다.

“아 소장님. 저 TVR의 우지연 과장입니다. 지금 바쁘세요?”

측정실의 직원들이 놀란 표정으로 우지연을 쳐다보았다. 소장님이라고?

“네. 이번에 테스트에 응한 학생 가운데 조금 괴상한 친구가 하나 있어서요. 성급한 판단일지는 모르겠지만 추가로 M-test를 해 봤으면 해서요. 잠시 후에 C코스에 들어갈 예정인데 지금 오시면 두 번째 상황은 지켜보실 수 있을 거 같아요. 시간 되시면 직접 오셔서 보고 판단하시는 게 어떨까 싶어서요. 네. 네. 그럼 기다리겠습니다.”

우지연이 전화를 끊자 여자 연구원인 이하나가 고개를 쏙 내밀며 물었다.

“헌터 소장님 이리로 오신대요?”

“응. 왜?”

“우와. 그 잘 생긴 꽃미남 소장님? 저 소장님 완전 팬이잖아요.”

“야야. 겉으로 보기에는 꽃미남이라도 우리로 치면 소장님 벌써 노중년이야. 게다가 외계인하고 결혼할래? 결혼해도 애도 못 낳는 거 몰라?”

“에이 연애에 나이가 무슨 상관이에요. 게다가 겉으로는 우리랑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데 노중년이면 어때요. 그리고 누가 소장님하고 결혼한대요?”

*  * * * *

측정실이 어울리지 않는 말다툼으로 소란스러운 동안 진우는 드디어 마지막 코스인 C코스에 들어서고 있었다. 다른 학생들이 C-7 상황으로 진입하고 있을 때 진우는 혼자 C-2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었다.

“C 코스에서는 상황 인식과 판단 능력, 그리고 반사신경과 운동 능력을 측정하기 위한 테스트가 진행됩니다. 피험자는 잠시 후 스쿼시 경기장으로 이동합니다. 다만 이 스쿼시 경기장은 모양이 정팔각형입니다. 각 벽면은 거울로 되어 있고, 한 면마다 한 명의 선수들 있습니다. 피험자는 경기장 중앙에서 각 면마다 1명씩, 모두 8명의 선수가 치는 공을 맞받아 쳐야 합니다.”

진우는 설명을 듣다가 그만 어이가 없었다. 8명을 상대하라고? 하지만 그가 황당해하는 사이에도 무미건조한 여성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나갔다.

“처음에는 1명의 선수가 공을 치다가 30초가 지날 때마다 추가로 한 명의 선수가 더 경기에 참가합니다. 경기 시작 후 3분 30초가 지나면 8명의 선수가 모두 공을 치게 되며, 이 상황을 1분 30초 동안 더 견디면 상황이 종료됩니다. 단 피험자가 다섯 개의 공을 놓치는 순간 상황은 그대로 종료됩니다. 그럼 경기장으로 이동합니다.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하얀 공간에 다시 10초를 알리는 시계가 나타났다 사라졌다. 상황이 시작되자 진우는 자신이 사방이 거울로 둘러싸인 정팔각형의 스쿼시 경기장 한 가운데에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손에는 스쿼시용 라켓이 쥐어져 있었다. 각 면마다 벽을 보고 서 있는 선수들이 보였다. 문제는 사방이 거울이라 계속되는 반사 영상으로 인해 벽과 거울의 개수가 끝도 없이 많아 보인다는 점이었다.

‘공 가지고 하는 운동은 완전 젬병인데. 빌어먹을 여기서 망치는 건가.’

야구공이 어디로 들어올지 뻔히 알면서도 헛스윙을 일삼던 자신이었다. 진우가 내심 한숨을 쉬고 있는데 순간 왼쪽에서 ‘탕’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의 왼쪽에 서 있던 선수가 먼저 벽면에 공을 치기 시작한 것이었다. 진우가 얼른 왼쪽으로 돌아서자 마침 그를 향해 날아오는 스쿼시 공이 보였다.

프로야구 선수들이라고 해도 투수의 구속이 140Km가 넘으면 이론적으로 공이 오는 것을 보고서 방망이를 휘둘러서는 맞추기가 어려웠다. 아무리 뛰어난 타자라도 어느 정도는 공의 코스를 예측하고 그에 맞게 미리 준비를 해야 안타를 때릴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데 남자 프로 테니스 선수들의 경우 어깨가 좋은 이들은 시속 200Km에 가까운 서브를 날렸다. 야구 배트가 아니라 라켓으로 때리는 것이기는 해도 그 속도에 몸이 반응해서 정확히 공을 맞혀 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진우는 동네 야구에서도 헛스윙을 일삼는 몸치였다.

날아오는 공을 향해 라켓을 휘두르면서도 진우는 자기가 그 공을 맞힐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의외의 일이 발생했다.

그를 향해 날아오던 공이 라켓의 중심에 정확히 맞더니 다시 마주보는 벽면을 향해 날아갔다.

‘어라? 운이 좋네.’

처음 공을 맞받아 쳤을 때만 하더라도 그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 번, 두 번, 리시브가 계속되면서 진우는 몸과 손이 자기가 생각했던 그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순간 머릿속에 전등이 켜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 이게 가상현실이라서 그렇구나. 직접 몸을 움직이는 게 아니었네. 몸이 움직여야 하는 곳을 정확히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상의 육체가 거기에 맞게 움직이는 거군.’

그렇다면 할 만 했다. 진우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날아오는 공을 주시했다. 30초가 지나면서 다른 쪽 벽면에 있던 선수 하나가 추가로 공을 쳐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명 한 명씩 공을 치는 선수가 늘어나면서 3분 30초가 되었을 때는 사방이 온통 공으로 뒤덮인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선수는 8 명뿐이지만 사방이 거울로 둘러싸여 있다 보니 서로가 서로를 비추면서 공의 개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보였던 것이다.

정상인이라면 시야가 어지러워 토할 지경의 상황이었다. 하지만 진우는 어려움을 느끼기 보다는 오히려 마음먹은 대로 몸이 움직이는데서 오는 즐거움 속에 빠져 있었다. 처음에 선수가 하나씩 늘어날 때에는 그 역시 실제의 공과 거울에 비친 공의 영상이 뒤섞여 약간 당황했었다. 하지만 귀로 공의 타격음을 듣고 그것을 따라 눈으로 공을 확인하는 데에 익숙해지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공을 쳐내는 것에 익숙해졌다.

물론 공의 개수가 늘어나면서 날아오는 공에 반응해 그것을 쳐 내는 속도가 점점 빨라져야 했다. 하지만 가상현실 속의 몸의 운동 속도 역시 점점 자신의 머릿속에서 이루어지는 사고의 속도에 근접하면서 진우는 난생 처음 몸이 생각하는 대로 움직이는데서 오는 짜릿한 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사고와 신체의 일치. 그것은 진우에게는 신세계였다.

*  * * * *

“쟤 도대체 왜 저래. 저 자식 뭐야?”

지켜보고 있던 장필호는 어이가 없었다. 오전 체력 측정에서는 순발력과 정확성 모두 최저에 가까운 점수를 받은 녀석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가상현실이라지만 갑자기 움직임이 전혀 달라졌다.

“뭔가 기형적일 정도로 특이한 녀석이군.”

“그렇죠? 체력 측정 결과와 가상현실 측정 결과가 저렇게 어긋나는 녀석은 제가 연구원이 된 이후로 처음 봅니다.”

장필호가 혀를 내두르자 우지연이 찌릿한 눈초리로 그를 쳐다봤다.

“너 연구원 된 지 얼마나 됐지?”

우지연의 눈초리에 찔끔 놀란 장필호가 머뭇머뭇 대답했다.

“이제 3년차인데요.”

“고작 3년차면 앞으로도 당분간 처음 보는 장면이 많을 텐데 건방 떨기는 자식이...”

이하나에 이어 장필호의 입도 삐죽 나왔다.

“그럼 과장님은 저런 자식 전에도 본 적이 있으세요?”

그러자 우지연이 눈을 가늘게 뜨고 진우의 테스트 상황이 플레이되고 있는 모니터를 노려봤다.

“아니. 나도 이런 건 처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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