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2. 헌터 후보자 테스트
부웅~
힘차게 휘두른 배트가 시원하게 허공을 갈랐다.
“스트라이크 아웃”
빌어먹을. 모처럼 열린 반 대항 야구시합인데 첫 타석부터 삼진을 먹더니 결국 마지막 타석까지 이 모양이다.
“암튼 진우 저 자식은 공 가지고 하는 운동은 죽어도 안 돼. 아무리 동네 야구라지만 안타는 고사하고 어떻게 배트에 한 번을 맞추기가 저렇게 힘드냐.”
“몸도 저만하면 탄탄하고, 달리기도 곧잘 하는데, 방망이가 완전 고자네. 쩝.”
뒤에서 보던 같은 반 녀석들이 저희들끼리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젠장. 이러는 나도 답답하다. 진우는 속으로 짜증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투수가 던진 공이 눈에 빤히 보였다. 어느 정도의 빠르기로, 어디로 들어올지도 다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걸 방망이로 맞출 수가 없었다. 미칠 노릇이었다. 아이들은 자신을 보고 답답해했다. 하지만 정작 미치도록 자신의 몸이 저주스러운 것은 진우 자신이었다.
어쩌다 한 번씩 하는 시합마다 변함없이 이 꼴이었다. 야구를 해도, 축구를 해도 진우는 정해 놓은 구멍이었다. 경기 자체는 눈에 환히 보이는데도 몸이 따라가질 못했다. 동네 축구에서 못하는 아이들이 주로 맡는다는 골키퍼조차 할 수가 없었다. 공에 오는 걸 빤히 보면서도 허우적대기만 할 뿐 정작 막지를 못했다. 축구공보다 훨씬 빠르게 공이 오가는 야구 경기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근 석 달 만에 잡아보는 야구 배트였는데....
“뭐야. 강진우 기죽었냐? 괜찮아 임마. 공부 잘 하고 얼굴도 잘 생긴 자식이 운동까지 잘 하면 나 같은 놈은 억울해서 어떻게 사냐?”
정태 녀석이 어깨를 툭 치고 씩 웃고는 가방을 둘러메었다. 그걸 위로라고 자식이. 하긴 그런 위로라도 해 주는 녀석은 정태밖에 없었다.
시력은 좋은 편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시력이 아니라 인식능력이 좋았다. 투수가 공을 던지면 손에서 공을 채는 순간 손가락의 모양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아마 눈이 좋은 사람들은 진우가 아니더라도 다 그걸 볼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진우의 경우에는 장면들이 눈에 선명하게 보이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보인 것이 모두 머리 속에 정확하게 인식되었다.
공이 날아오는 속도, 방향 등도 마찬가지였다. 다 보였고, 다 알 수 있었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판단이 끝났다. 공이 홈 플레이트에 들어오기 훨씬 이전부터 어느 정도의 속도로 어떤 구석에 들어올지를 모두 알 수가 있었다. 방망이를 어떻게 휘둘러 어느 쪽으로 보내면 안타가 될지 명확하게 느껴졌다.
문제는 딱 거기까지 만이라는 거였다. 아무리 애를 써도 몸이 따라주지를 않았다. 원하는 곳에, 그리고 원하는 시간에 방망이가 도무지 휘둘러지지를 않았다. 마치 버퍼링 잔뜩 걸린 컴퓨터처럼 명령을 내려도 반응이 제때 일어나지를 않는다고나 할까. 상수도는 굵고 커서 물이 시원하게 쏟아져 들어오는데, 하수구가 꽉 막혀 물이 빠지질 않는 느낌이었다.
왜 그런지는 알 수가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줄곧 그랬으니까. 반응속도가 빠를 필요 없는 일상적인 움직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밥 먹고, 글씨 쓰고, 걷고 달리는 등의 일을 하는 데에는 지장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야구나 축구처럼 순간 반응 동작이 필요한 운동을 하면 고장 난 인형처럼 되기 일쑤였다. 차라리 안 보이면 모르면 낫지. 어떻게 하면 될지 뻔히 보이는데도 몸이 따라가질 않으니 고역도 그런 고역이 없었다. 생활은 정상, 운동신경은 제로.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도 모든 신체 기능이 정상으로 나왔다.
“튼튼하고 잘 생겼네. 몸은 아무 이상 없다.”
혹시 병일까 싶어 부모님을 졸라 받은 종합 검진 결과를 본 담당 의사가 진우의 등을 팡팡 치면서 내뱉은 소리였다. 그게 더 미칠 노릇이었다. 병이 아니니 고칠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이제는 다시 검사를 받아보자고 조를 부모도 없다.
빌어먹을. 우울한 생각의 끝은 언제나 더 우울한 생각이었다.
* * * * *
“내일 뭐 하는 날인지 다들 알지?”
“네에~~.”
종례 시간 담임이 던진 말에 아이들이 모두 합창을 하듯 꼬리를 끌며 대답했다.
“그래. 내일은 니들 모두 헌터 양성소로 테스트 받으러 가는 날이다. 혹시 아냐? 이 중에 운 좋게 뽑혀 헌터가 되는 사람이 있을지. 그러면 니들도 한 방에 인생 펴는 거야. 다들 기대 가득 채워서 오늘밤은 푹 자고 내일 아침 일찍 등교하도록. 외문연 헌터 양성소에서 8시 반까지 학교로 버스를 보내준다고 했으니 늦지 않도록 하고.”
“네에~~.”
“다른 곳도 아니고 대전에 있는 헌터 양성소에서 직접 테스트를 받는 거다. 우리 학교가 서울에 있는데도 굳이 대전까지 가서 테스트를 받게 하느라고 교장 선생님하고 학교에서 애쓴 것 잘 알지? 지각해서 학교 망신시키는 사람 없도록 해라.”
“네에~~.”
담임의 공치사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불평 한 마디 없이 대답했다. 헌터 후보자 테스트를 받는 장소는 전국에 여러 곳이 있었지만, 헌터 양성소에서 직접 치러지는 시험에서는 유난히 합격률이 높다는 소문이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근거 없는 소문에 불과했지만 학생들은 미신이라도 믿듯이 되도록 헌터 양성소에서 직접 테스트를 받기를 원했다.
종례가 끝나자마자 가방을 싸고 일어서려는데 정태 녀석이 잔뜩 들뜬 표정을 하고 다가왔다.
“야 드디어 내일이다. 가슴 떨리지 않냐? 내가 지난 6년 간 오직 이날만을 기다려왔다는 거 아니냐.”
“테스트 통과 자신 있는가 보네.”
“중학교 입학하자마자 헌터 후보자 테스트 합격하려고 교습소 다닌 게 벌써 4년째다. 코치가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했어.”
헌터가 청소년들 희망 직업 1위라더니. 이 녀석 부모님도 공을 많이 들였구나. 하긴 정태 녀석은 겉으로 보기에는 성격만 좋은 놈으로 보였지만 머리가 나쁘지 않았다. 더구나 운동신경은 물론이고 순간적인 판단 능력이 무엇보다 좋았다. 순간 판단 능력은 헌터 후보자 테스트 합격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였다. 친구로서 당연히 격려와 응원을 해 줘야 하는데 속이 쓰렸다. 진우는 내심 속 좁은 자신을 자책하며 혀를 찼다.
진우도 헌터 교습소를 다닌 적이 있었다. 그것도 초등학교 4학년 때에. 불과 한 달 남짓이었지만, 아버지를 졸라 일찌감치 시작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의 근육 반응 속도가 인식 속도와 지독하게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을 수 있었다.
“뭐, 재능이 좀 떨어져도 노력을 열심히 하면 되는 경우도 적지는 않는데, 아무래도 진우는 좀 힘들 것 같습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재능이 너무 없습니다. 일반 운동도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한 달 동안의 힘겹고 지루한 몸부림 끝에 코치가 몹시 미안해하며 부모님에게 한 말이었다. 그래도 한 달 만에 아웃 판정이라니. 보통 6개월은 훈련을 시켜본다는데... 오죽 했으면.
정태의 얼굴에는 기대와 자신감이 표정으로 드러나 있었다. 하긴 4년이나 공을 들인데다가 코치마저 가능성을 인정해 주었다니 오죽 내일이 기다려질까. 연신 싱글거리는 녀석을 보고 있자니 진우는 왠지 자신의 우울했던 초등학교 시절이 생각나 저도 모르게 얼굴에 쓴 웃음이 떠올랐다.
“헌터 되는 게 그렇게 좋으냐?”
“야 그걸 말이라고 하냐. 우주 곳곳에 널려 있는 미지의 행성을 탐사하며 외계 괴물들을 때려잡는다. 돈과 인기는 부록. 완전 싸나이의 로망이잖아.”
그리고 많이 죽기도 하지. 남자들만의 로망도 아니고. 하지만 그런 얘기를 테스트도 받기 전에 이미 헌터가 된 것처럼 잔뜩 들떠있는 녀석에게 굳이 할 필요는 없겠지. 그의 입장에서도 다른 녀석들보다는 정태가 테스트에 합격하는 게 속이 덜 쓰릴 것 같았다.
“헌터 후보자가 되면 바로 헌터학교로 전학 가잖아. 거긴 오전 수업만 한다더라. 지겨운 공부에서 반은 해방이란 얘기지. 죽이지 않냐?”
“헌터가 되고 싶은 거냐 아니면 그냥 공부가 하기 싫은 거냐? 거기 오전 수업이 상당히 빡세다던데. 그리고 오후에도 그냥 노는 게 아니잖아.”
“상관없어. 중요한 건 수업 시간이 반으로 준다는 사실이지.”
진우는 속으로 혀를 찼다.
“너무 김칫국부터 마시지 말고 일단 오늘은 가서 푹 자라. 그래야 내일 좋은 결과가 나오지.”
“걱정 마라. 코치가 나 정도면 틀림없다고 했다니까.”
“코치가 그렇게 얘기했으면 당연히 합격하겠네.”
“당연하지. 그 코치가 외계 행성 탐사 도중에 부상을 당해 지금은 교습소 코치를 하고 있지만 한때는 잘 나가는 헌터였다더라. 전직 헌터가 한 얘기니까 분명할....”
신나서 떠들던 녀석은 진우의 얼굴에 맺힌 씁쓸한 미소를 뒤늦게 발견하고는 아차 싶었는지 급히 말을 얼버무렸다.
“야. 테스트의 핵심은 가상현실로 치러지는 반응속도와 판단능력 측정이라니까 너도 잘 하면... ”
“됐어. 난 관심 없다. 기껏해야 한 학교에 한두 명 합격하는 테스트인데 무슨 쓸 데 없는 기대냐. 한 명도 합격 못하는 학교도 많다더라. 신경 쓰지 마라. 난 네가 꼭 합격했으면 좋겠다. 그럼 헌터 친구가 생기는 거잖아.”
진우는 씩 웃으며 정태 녀석의 어깨를 툭 쳐주고는 돌아섰다. 관심 없기는 빌어먹을.... 헌터에 관심 없는 고등학생이 어디 있겠냐.
* * * * *
외계 문명 연구소. 줄여서 외문연이라고 하는 그곳은 세계 각국이 외계인들로부터 받아들인 새로운 문명을 연구하는 핵심적인 기관이었다. 서기 2020년, 외계인들이 조우나 침략이 아닌 공식 방문의 형식으로 북경 천안문 광장에서 인류와 처음 접촉했다. 그 뒤로 2년 동안 주요 강대국을 포함한 거의 모든 국가들은 외계인들과 수많은 회의를 거듭했고, 마침내 그들과의 교류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기로 했다.
외계인들은 교류가 시작되면서 지구에 자신들의 문명을 전파되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그들이 전한 새로운 문명을 연구하기 위해 나라마다, 혹은 연합의 형태로 외계 문명 연구소를 비롯한 각종 기관들을 설립했다. 그런 흐름을 따라 한국에도 외문연, 즉 외계 문명 연구소가 세워졌다.
외문연의 설립으로 인한 효과는 커다란 사회적 효과를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학자나 정치가가 아닌 일반인들, 특히 진우 또래의 학생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은 정작 외문연이 아니라 그 부속 기관인 헌터 양성소였다. 외계인들은 지구에 자신들의 문명을 전하는 대신 각국의 정부에 지구인들을 대상으로 헌터를 양성할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는 요구를 했다. 그에 따라 헌터 양성기관인 헌터 학교가 설립되었는데, 헌터 양성소의 주요한 업무 가운데 하나가 바로 그 헌터 학교에 입학할 학생들을 선발하는 일이었다.
헌터는 말 그대로 사냥꾼이었다. 다만 외계인들이 양성하는 헌터는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의 동물들을 사냥하는 사람들이었다. 외계인들은 지구 곳곳에 포털을 열어 그곳을 통해 헌터들을 우주의 여러 행성으로 보냈다. 헌터들은 그곳에서 외계의 생물들을 사냥해서 그 사체를 가져올 수 있었는데, 일부 외계 생물들의 경우 사체의 부산물들 가운데 일부가 다양한 효용성을 지녔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매우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었다. 그 중에서도 소위 마수라고 불리는 마나를 머금은 포식자들의 몸에서는 마나 스톤이라는 희귀한 광물을 얻을 수 있었다. 마나 스톤이야말로 헌터들의 돈주머니였다.
마나 스톤을 거래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외계인들뿐이었다. 그들은 문명을 전해주고 헌터들을 양성시키는 대가로 마나 스톤에 대한 독점적인 거래 권한을 얻었다. 헌터들이 얻은 모든 마나 스톤은 모두 일단 외계인들에 의해 사들여졌고, 그들로부터 다시 그것을 필요로 하는 기업이나 개인에게로 판매되었다. 그런 독점적인 거래 권한 때문에 적지 않은 지구인들이 불만을 털어놓았지만, 외계인들이 그 과정에서 일체의 폭리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까지는 그 권한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마나 스톤 이외에 드물게 발견되는 결정이 따로 있었는데, 그것이야말로 진짜로 희귀할 뿐 아니라 값비싼 것이었다. 마나 크리스털이라고 불리는 그것은 외계 생물의 사체가 아니라 그들의 군락 부근에서 드물게 발견되는 특이한 결정체들이었다. 마나 스톤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한 마나를 함유한 그것들은 외계인들조차도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거래되지 않았다. 그나마 발견 자체가 일 년에 한 두 개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드문 일이었다.
행성마다 발견되는 결정체의 모양과 색깔 등은 저마다 달랐다. 크기나 밀도도 제각각이어서 가벼운 것은 물에 뜰 정도인 반면, 가장 무거운 것은 금보다 밀도가 높았다. 결정체가 산출되는 장소 역시 다양해서 노천과 지하는 물론 물속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마나 스톤과 마나 크리스털은 엄청난 에너지원으로 활용되었는데, 그것들을 각종 동력으로 전환하는 기술 역시 외계인들이 지구로 전해준 주요한 외계 문명 가운데 하나였다.
* * * * *
혼자 사는 집은 늘 어두웠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도 꽤 되었는데, 아직도 아무도 없는 캄캄한 집에 돌아와 불을 켜는 그 순간까지의 낯선 고요함은 잘 적응이 되지 않았다. 진우는 학교에서 돌아와 텅 빈 거실에 불을 켜면서 습관처럼 한숨을 쉬었다. 문득 종례 뒤에 정태와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녀석, 좋겠다...”
어머니는 진우를 낳고 얼마 되지 않아 병으로 돌아가셨다. 아버지마저 하필이면 자신의 중학교 졸업식 날 그 드물다는 무중력 자동차 간의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게 벌써 열 달 전이었다. 모든 고등학생들이 기대하는 헌터 후보자 테스트가 바로 내일인데, 자신에게는 기대해 줄 부모님조차 없었다. 남겨 주신 유산이 제법 되어서 사는 데는 문제가 없었지만, 혼자 살기에는 커다란 아파트가 오늘따라 유난히 썰렁하게 느껴졌다. 하긴 살아계셨다면 더 가슴 아파 하셨을 지도...
‘헌터 학교는 전원 기숙사 생활이라는데 차라리 그곳에 갔으면 좋겠다. 집보다는 불편하겠지만 그래도 외롭진 않을 거 아냐.’
그게 1퍼센트의 가능성도 없는 생각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기대하게 되는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져 더 싫었다.
‘내일 테스트에 떨어져 집에 오면 기분이 훨씬 더러울 텐데...’
방에 불을 끄고 잠자리에 누웠을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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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일이 없는 한 최소한 매일 한 편 이상은 꾸준히 연재하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