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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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마치고 저녁 식탁에 앉았다.

음식이 나오기 전에 조리장이 등장했다.

칠레 조리장은 카를로스라는 남자다.

그가 접시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오늘은 덕명 씨와 장우 씨를 위해 남미 일상 요리를 준비했습니다.”

접시 안에 만두 모양의 음식이 있었다.

튀긴 것 같았다.

“이게 뭔가요?”

“엠파나다입니다.”

“엠파나다요?”

“엠파나다는 속을 채워 넣은 빵이란 뜻이죠.”

“한번 드셔 보시죠. 한국 기지의 조리장만큼은 아니겠지만 카를로스도 요리 실력이 좋습니다.”

벤자민 대장이 엠파나다를 한 손에 들고 말했다.

난 엠파나다를 한입 베어 물었다.

만두처럼 생긴 빵 안에 해산물과 닭고기 그리고 치즈가 들어 있었다.

카를로스는 부담스런 눈빛으로 내 얼굴을 살폈다.

“맛이 어떤가요?”

그는 기대감에 부푼 얼굴로 물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난 일부러 미소까지 보이며 말했다.

“아주 맛있어요.”

“역시, 입맛도 탁월하시네요.”

카를로스의 얼굴에 보조개가 잡혔다. 대단히 만족스러운 표정이다.

“한국에도 엠파나다와 비슷한 모양의 음식이 있습니다.”

“한국에도 엠파나다 같은 음식이 있다고요?

“모양이 비슷합니다.”

“이름이 뭔가요?”

“만두라고 부르는 음식이죠. 엠파나다보다는 좀 작은 편이지만 모양이 정말 비슷해요.”

새해 첫날 대한 기지의 대원들이 만두를 빚었다.

나와 이장우를 위한 음식이기도 했다.

엠파나다를 먹는 순간 그때가 떠올랐다.

“새싹 채소를 수확하면 엠파나다에 넣어도 좋을 것 같아요.”

“적극 찬성해요!”

디에나가 목소리 높여 말했다.

목소리가 얼마나 큰지 이장우가 깜짝 놀라 엠파나다는 놓칠 정도였다.

그녀가 웃으며 동료들에게 말했다.

“카를로스가 만드는 엠파나다는 좀 느끼하거든요. 새싹 채소를 넣으면 느끼함이 좀 사라질 거 같아요.”

그녀의 말에 동료들이 배꼽을 잡고 웃었다.

카를로스가 디에나를 갈퀴눈으로 째려봤다

* * *

칠레 기지에서의 일은 신속하게 진행됐다.

우리는 일주일 만에 수경 재배 시설이 완성됐다.

새싹 채소에 잎이 돋아나고 있었다.

부족한 장비로 최선의 설비를 만들었다.

모든 과정은 비디오카메라로 기록해 두었다.

“이 정도면 충분할 거 같아.”

“남은 일주일은 관찰만 하면 되겠지.”

“그러면 될 거 같아. 이제 좀 쉬면서 해.”

난 이장우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가 아니었으면 만들 수 없는 기계 장치였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갈 때였다.

벤자민 대장이 조용히 불렀다.

“무슨 일이시죠?”

“모하마드에게 연락했습니다. 수경 재배와 덕명 씨에 대한 이야기도 전했죠.”

모하마드 살라는 벤자민이 소개해 주기로 한 인물이다.

두바이 왕자로 그와는 유엔 환경 계획 기구에서 인연이 있었다.

“모하마드가 덕명 씨에게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기분 좋은 소식이다.

난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놀랄만한 소식도 들었습니다.”

“어떤 소식인가요?”

“모하마드가 남극에 있습니다.”

“남극에 있다고요?”

귀가 쫑긋했다.

“어디에 있나요?”

무슨 일보다 어디가 중요했다.

남극은 작은 곳이 아니다.

“지금 미국 기지에 있습니다.”

미국 기지는 남극에서 가장 큰 기지를 자랑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조만간 미국 기지에 갈 일이 있습니다.”

벤자민의 눈에서 이채가 돌았다.

눈빛만 봐도 그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곧 모하마드와 만나게 해 주겠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빙하 아이스크림

벤자민 대장은 약속을 지켰다. 기회가 이렇게 빨리 올 줄은 그도 몰랐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두바이 왕자 모하마드 살라가 남극에 있었다.

그는 유엔 환경 계획 기구에서 몸담았던 사람이다.

지금은 막대한 부를 기반으로 성공적인 사업가로 변신해 있었다.

남극을 찾은 이유는 환경단체 ‘어스’를 방문하기 위해서이다.

‘어스’는 남극을 지키는 환경 단체로 모하마드가 오래전부터 후원하는 단체였다.

난 이장우에게 소식을 전했다.

“잠시 외출 좀 다녀와야 할 거 같아.”

“여기서 갈 데가 어디 있다고?”

이장우는 당황한 얼굴이다. 남극에서 외출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미국 기지가 있는 남극 대륙에 다녀올 거야.”

“남극 대륙?”

정확하게 우리가 있는 곳은 남극 대륙이 아니다.

킹조지섬은 남극 대륙 옆에 붙은 작은 섬이었다.

미국 기지는 남극 대륙 안에 있었다.

난 이장우에게 모하마드 살라를 만날 기회가 생겼다고 말했다.

“역시 부자는 다르구나. 남극도 아무렇지도 않게 다니고.”

“그러게 말이야.”

“이 기회 잘 잡았으면 좋겠다.”

이장우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마침 벤자민 대장이 미국 기지에 다녀올 일이 있다고 했어. 함께 다녀오려고.”

“그런 일이라면 얼마든지 다녀와도 좋아.”

“수경 재배 시설을 혼자 봐야 할 거야.”

“내가 잘 보고 있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

* * *

다음 날 아침, 벤자민 대장 일행과 칠레 공군 기지로 향했다.

벤자민 대장이 미국 기지로 가는 이유는 남극 조약 협약 당사국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남극 안에 기지를 둔 29개국 대표들이 회의에 참석했다.

남극 생물 자원 탐사 및 특별 보호 구역 등 여러 의제들이 논의될 예정이다.

29개국 중 한국도 포함된다.

벤자민 대장 말고도 동행자가 하나 더 있었다.

펭귄 선생님 디에나다.

그녀가 내 옆자리에 앉았다.

“제가 덕명 씨 안내자예요.”

그녀가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말했다.

벤자맨 대장의 배려기도 했다. 그가 회의에 참석하는 사이 나와 함께 있을 사람을 붙여 준 것이다.

모하마드 살라를 만나기 전 남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이다.

기다리는 동안 디에나가 말벗이 될 것이다.

칠레 기지에서 미국 기지까지 4시간 넘게 걸렸다. 짧은 거리는 아니었다.

미국 기지는 남극 관측 기지 중에서 규모가 가장 컸다.

미국 기지에 도착하자 벤자민은 나부터 챙겼다.

“회의가 끝난 뒤에 연락 드리겠습니다. 모하마드와는 저녁때야 만날 수 있을 겁니다. 디에나가 이곳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남은 시간 잘 보내길 바랍니다.”

벤자민 대장과 난 공항에서 헤어졌다.

벤자민이 사라지자 디에나가 두 팔을 벌렸다.

“솔직히 미국 기지에 온다는 말을 듣고 좀 설렜었어요.”

“이곳에 뭐 특별한 거라도 있나요?”

“아주 특별한 게 있죠.”

디에나가 내 눈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개구쟁이 같은 눈빛이다.

“그게 뭐죠?”

“따라와 보시면 알아요.”

난 그녀를 쫓아 미국 기지 안으로 들어갔다.

이런 곳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남극 USA 기지는 작은 도시였다. 대한 기지와 칠레 기지는 연구를 위한 시설밖에 없었지만, 미국 기지는 달랐다.

유명 프랜차이즈 커피숍까지 있었다.

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여긴 기지가 아니라 마을 같네요.”

“이곳에 있는 건물만 해도 100개가 넘을 거예요. 소도시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죠.”

디에나는 작은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간판엔 남극 대륙 모양이 그려져 있었다.

매장 안에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난 사람들이 먹고 있는 음식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혹시, 사람들이 먹고 있는 게 아이스크림 아닌가요?”

디에나는 대꾸 없이 날 카운터로 끌고 갔다.

백인 남자가 카운터를 지키고 있었다.

그가 내 얼굴을 보고는 대뜸 말했다.

“또 오셨네요.”

“네?”

난생처음 오는 곳이다.

그는 나를 어제 온 손님처럼 대했다.

가슴에 명찰이 붙어 있었다.

이름이 마이클이다.

“마이클은 원래 저래요.”

디에나가 귓속말로 말했다.

“무슨 맛으로 드릴까요?”

메뉴는 단 한 가지였다.

빙하 아이스크림뿐이다.

맛 따윈 고를 수 없었다.

마이클이란 남자는 완전 괴짜였다.

“빙하 아이스크림 두 개요.”

디에나가 빙고를 외치듯 말했다.

“여기 빙하 아이스크림 두 개 나왔습니다.”

마이클이 양처럼 눈을 깜빡이며 아이스크림을 건넸다.

빙하 아이스크림은 하얀색 종이컵에 들어 있었다.

종이컵에도 남극 대륙의 모양이 상징처럼 박혀 있다.

아이스크림은 눈처럼 새하얀 빛깔이다.

생김새로만 봐서는 지리산 목장의 연유 아이스크림과 비슷한 모양이다.

디에나와 함께 아이스크림을 들고 자리를 잡았다.

“남극 빙하로 만든 아이스크림이에요. 맛이 아주 특별해요. 드셔 보세요.”

그녀가 아이스크림을 떠먹으며 말했다. 행복한 표정이다. 마치 빙하 아이스크림 먹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다.

나도 빙하 아이스크림 맛을 보았다.

아이스크림이 입에서 눈처럼 녹아내렸다.

맛이 특별하다기보다 느낌이 묘했다.

남극이 한입에 들어온 기분이다.

“맛있죠?”

“네. 아주 맛있어요. 뭐랄까, 남극 맛이에요.”

그녀는 아이스크림을 먹다 말고 한참을 웃었다.

디에나는 아이스크림을 말끔히 비우고 말했다.

“이제 다음 코스로 이동할 차례에요. 제가 두 번째로 좋아하는 곳이에요.”

남극 USA 기지는 보면 볼수록 신기한 곳이다. 기지가 아니라 관광지 같기도 했다.

실제로 미국 기지 안에는 민간인들이 살고 있었다.

아이스크림을 팔고 있는 마이클도 이곳에 사는 민간인이다.

디에나가 멈춘 곳은 남극 여관 앞이다.

“덕명 씨도 아시겠지만, 오늘 당장 칠레 기지로 떠날 수는 없어요. 우리에겐 숙소가 필요해요.”

벤자민 대장에게서 미국 기지에서 하룻밤을 잔다고 들었다. 당연히 기지 안에 있는 숙소라고 생각했다.

남극 여관이라니 예상을 뛰어넘었다.

그녀와 함께 여관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에 훈훈한 열기가 느껴졌다.

카운터로 가는 길에 커다란 개 한 마리가 나에게 달려들었다.

위협하는 행동이 아니다. 반갑다는 인사다.

난 머리와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처음엔 시베리아 허스키처럼 보였는데 자세히 보니 알래스칸 말라뮤트다.

개의 목에 로키라고 쓴 이름표가 보였다.

“보통 사람들은 무서워하는데 덕명 씨는 다르네요.”

디에나는 개의 목을 만지며 말했다.

“어릴 때 개들이랑 많이 놀아서요.”

로키는 내 방 앞까지 쫓아왔다. 놀고 싶어 안달이 난 모양이다.

* * *

난 침대 위에 벌렁 누웠다.

남극에 온 뒤에 처음으로 혼자 있는 시간이다.

2인 1실이 아닌 혼자만의 방에 들어온 것도 오랜만이다.

디에나도 잠시 쉬고 싶다고 말했다.

목이 말라 물을 한 잔 마시려고 할 때다.

테이블 옆 위 컴퓨터가 있었다. 모니터 위에 웹캠도 달려 있었다.

오랜만에 인터넷을 마음 놓고 쓸 기회였다.

전원을 켜려고 했을 때 안내문이 보였다.

[컴퓨터 전원을 켜기 전에 반드시 로비에 연락하세요]

안내대로 로비에 전화를 걸었다.

“친절하게 모시겠습니다. 남극 여관입니다.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인터넷을 좀 사용하려고요. 사용 전에 연락하라는 문구를 봤습니다.”

“인터넷 요금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사용 요금은 1분당 10달러입니다.”

“1분당 10달러요?”

재차 확인했지만 같은 답이 돌아왔다.

한국 돈으로 분당 만 원이 넘는다. 분명 거품이 많은 가격이다.

요금이 비싼 이유는 한 철 장사기 때문이다. 남극 여관은 여름에만 여는 곳이다.

극야가 찾아오는 겨울엔 문을 닫는다고 한다.

엄청난 요금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전화를 끊고 컴퓨터를 켰다.

난 한기탁에게 메일을 보냈다. 화상 통화를 하자는 내용이다.

바로 답장이 날아왔다.

웹캠을 켜자 한기탁이 화면에 등장했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나 이제 막 잠들라고 했다고.”

그는 졸린 눈을 비비며 말했다.

정오인 남극과 달리 한국은 자정이다.

“미안해요. 방해할 생각은 없었어요.”

“이미 방해해 놓고서.”

한기탁이 웃으며 말했다.

“그나저나 거긴 어디야? 기지는 아닌 것 같은데?”

“남극 여관이에요.”

“남극에 여관이 있어?”

그는 잠이 깬 얼굴로 물었다.

난 남극 여관에 온 사연을 그에게 말했다. 모하마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그는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두바이 왕자를 만날 예정이라고? 그게 사실이야?”

“지리산 농부들이 세계로 뻗어 나갈 기회죠.”

“지리산 농부들은 한국에도 잘나가고 있어.”

“나 없는 사이에 무슨 일 있었어요?”

“그게 말이지.”

한기탁이 그간의 성과를 말했다.

목장과 지리산 농부들의 쇼핑몰은 시간이 지날수록 성장하고 있었다.

샐러드 컨테이너 사업도 빠르게 성장했다.

샐러드 컨테이너를 문의하는 농부들이 쇄도하고 있다고 했다.

방송에서 새싹인삼 재배 편이 나가고 난 뒤에 벌어진 일이었다.

한기탁은 농부들을 위해 보조금을 받을 방법을 찾았다.

농촌 진흥청에 지원 사업을 요청한 것이다. 긍정적인 답변을 얻었다고 했다. 남극 프로젝트의 영향이 컸다.

일이 잘 풀리면 하동군에서 청년 농부 지원 사업을 했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성과를 낼 수 있었다.

“수경 재배에 관련해서는 부서를 따로 둬야 할 거 같아. 일이 너무 많아.”

“일 너무 크게 벌이진 말고요.”

“대표가 없는 사이에 성과 좀 낼 생각이야.”

한기탁은 자신만만한 얼굴로 말했다.

한국에 돌아가면 할 일이 많았다.

남극 프로젝트와 그간의 성과를 기반으로 펀딩을 모을 예정이다.

펀딩에 성공하면 대규모 수경 재배 시설을 만들 것이다.

거기에 모하마드의 일까지 겹친다면 몸이 두 개라도 남아나지 않을 것 같았다.

“일 잘 끝내고 돌아갈게요. 선배도 몸 관리 잘하고요.”

“나 요즘 매일 운동하고 있어. 사무실까지 자전거 타고 다닌다니까.”

컴퓨터를 끄자 전화가 왔다. 로비에서 온 전화다.

“요금 계산은 어떻게 할까요?”

인터넷을 쓰는 동안 감시라도 하고 있던 모양이다.

인터넷 요금만 300달러가 나왔다. 칠레 기지 사람들에 요금을 물게 할 수 없었다.

계산을 끝내고 나오는 길에 디에나와 마주쳤다.

“카운터는 무슨 일로?”

“계산할 게 있어서요.”

인터넷 요금이 어마어마하게 나왔다고 하자 그녀가 피식 웃었다.

* * *

벤자민 대장에게 연락이 왔다.

모하마드와 저녁 약속을 잡았다고 했다.

약속 시간까지 디에나와 함께 미국 기지에 있는 연구소를 찾았다.

이곳에서 가장 보고 싶던 시설이기도 했다.

작물을 재배하는 시설이다.

디에나는 미국 기지의 연구원을 알고 있었다. 그녀 덕에 기지 내에 있는 재배 시설을 관람할 수 있었다.

“규모가 제법 크네요.”

남극 최대 규모의 관측기지인 만큼 수경 재배 시설도 컸다. 수경 재배 시설을 보며 마음 한편으로는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가 만든 수경 재배 시설과 견줄 만했기 때문이다.

관람을 마치고 디에나가 물었다.

“이제 모하마드를 만나러 갈까요?”

기지 안에는 생선구이로 유명한 레스토랑이 있었다.

메인 메뉴는 남극 심해에 사는 생선을 요리한 것이다.

나도 알고 있는 생선이었다. 일식집에서 나오는 메로다.

그곳에서 모하마드를 만나기로 했다.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디에나가 간판을 보고 말했다.

“레스토랑 이름도 생선 이름에서 땄어요.”

“메로 말인가요?”

“네, 한국 사람들이 메로라고 부는 생선이요.”

그녀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스페인어로 메를루사 네그라(Merluza Negra)예요.”

레스토랑에 우리가 먼저 도착했다. 남극에 이런 고급 레스토랑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디에나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곳에서도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을 줘요.”

“마이클의 빙하 아이스크림이죠?”

“덕명 씨가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마이클 가게에 레스토랑 마크가 붙어 있었어요.”

“눈썰미 좋으시네요.”

그때 우리 테이블로 사람들이 오는 게 보였다.

벤자민 대장과 삼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다.

아랍 사람답게 턱수염을 멋지게 길렀다.

그가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모하마드 살라입니다.”

“김덕명입니다.”

먼지로 금을 만드는 남자

모하마드 살라는 예의 바른 남자였다.

그는 두바이 왕족 출신으로 가족 재산이 무려 20조 원이 넘었다.

금 손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치고는 거만한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소박한 느낌마저 들었다.

메인 메뉴가 나오기 전까지 주로 가벼운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까지 대화를 주도한 건 디에나였다.

그녀는 펭귄 마을에서 벌어진 재미난 일들을 말했다.

모하마드 살라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메인 요리인 메로구이가 나오자, 벤자민 대장은 운을 뗐다.

벤자민 대장은 모하마드를 바라보며 말했다.

“덕명 씨 덕에 칠레 기지에도 수경 재배 시설이 생겼죠.”

모하마드가 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드디어 그가 입을 열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솔직히 말씀드려도 될까요?”

“말씀하시죠.”

“벤자민 대장님의 말을 듣고 믿기지 않았습니다. 장비도 없이 칠레 기지에 수경 재배 시설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말입니다.”

그는 내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그걸 확인하러 온 사람 같다.

“한국 속담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아이디어와 열정만 있으면 불가능한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멋지시네요.”

모하마드는 날 호감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 뒤로 수경 재배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수경 재배와 관련한 다양한 경험과 노하우가 쌓여 있는 나에게는 막힘없는 대화 시간이었다.

벤자민 대장과 디에나는 끼어들 틈이 없었다.

재미있는 건, 모하마드도 수경 재배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저 관심이 있는 수준을 넘었다.

대화 중 모하마드가 말했다.

“지금이라도 사과를 드려야겠네요.”

“사과요?”

“덕명 씨를 의심했던 일이요. 말만 들어도 실력을 알 것 같습니다. 칠레 기지에 수경 재배 시설을 만든 일도 과장이 아니라 게 느껴지네요.”

“그래도 말은 말일 뿐이죠. 거짓을 그럴싸하게 말하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

모하마드는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눈빛이다.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확인이요? 지금 보여 주시기라도 하겠다는 말인가요?”

“네, 지금 확인시켜 드리죠.”

모하마드, 벤자민, 디에나까지 모두 날 쳐다봤다. 다들 토끼처럼 놀란 표정이다.

난 가방에서 비디오카메라를 꺼냈다. 남극에 했던 모든 일들이 그 안에 담겨 있었다.

최민성 피디가 나에게 준 물건이다. 이렇게 요긴하게 쓰게 될 줄은 몰랐다.

“직접 눈으로 확인하시죠.”

카메라를 재생 모드로 바꿨다. 작은 화면이지만 영상이 선명하게 보였다.

콩나물 재배기와 샐러드 컨테이너를 만드는 과정이 먼저 나왔다.

칠레 기지에서 수경 재배 시설을 만드는 장면이 마지막 화면이다.

모하마드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역시, 말보다 눈이네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실력이 더 대단합니다.”

그는 화면을 다시 돌려 보았다.

칠레 기지에서 시설을 만드는 장면을 보고 감탄을 연발하기도 했다.

“이렇게 실력까지 증명해 주셨으니, 저도 목적을 말씀드리죠.”

모하마드는 비디오카메라를 건네며 말했다.

“전 두바이에 수경 재배 시설을 설치할 계획이 있습니다. 미국 기업인 플랜트 팩토리와도 접촉한 일도 있고요.”

“마크 레스터와 만나셨겠네요?”

“덕명 씨도 마크를 알고 있군요.”

“캘리포니아 농업 박람회 때 만났습니다.”

“세상은 참 좁네요.”

“그럼 마크와 함께 일하기로 한 건가요?”

“아니요. 플랜트 팩토리는 제가 원하는 기술을 아직 보유하고 있지 않습니다.”

“어떤 기술을 원하시죠?”

“하늘 높이 재배 시설을 올리는 기술이죠.”

마크 레스터도 원하던 기술이다.

일명 수직 재배다.

거대한 수경 재배 시설을 아파트 높이로 쌓는 일이다.

내가 만들고 싶어 하는 시설이기도 했다.

“저도 수직 재배 시설을 만들 계획이 있습니다.”

“그럼 덕명 씨는 해법을 찾은 건가요?”

모하마드는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눈빛이다. 사업가의 눈이다.

이 기회를 최대한 살리고 싶었다.

“이 자리에서 자세한 말씀을 드리긴 어렵지만, 거의 완성 단계입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헤어질 무렵이다.

숙소로 돌아가기 전에 모하마드가 물었다.

“내일 기지로 떠난다고 들었습니다. 떠나기 전에 잠시 볼 수 있을까요?”

“좋습니다.”

* * *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로비에 전화를 걸었다.

“친절하게 모시겠습니다, 남극 여관입니다.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인터넷을 사용할 예정입니다.”

“인터넷 요금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사용요금은 1분당 10달러입니다.”

직원이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했다.

당장 컴퓨터를 켰다.

화상 통화로 만날 사람이 있었다.

화면에 한기탁이 등장했다.

“선배, 요한 씨 좀 바꿔 줄래요?”

“잠깐만 기다려.”

남극 저녁이지만 한국은 낮이다. 지리산 농부들이 일하는 시간이다.

곧 화면에 민요한이 등장했다.

민요한이 웃으며 인사를 먼저 건넸다.

“잘 지내시죠?”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요한 씨에게 묻고 싶은 게 있어서 이렇게 통화를 요청했습니다.”

“뭐든 말씀하세요.”

“연구는 잘 진행되고 있나요?”

연구라는 말을 하자 그의 표정이 굳었다. 그에게 수직 재배 연구를 맡겼다.

일이 생각보다 잘 안 풀리는 얼굴이다.

“그럼 이걸 한번 봐 주세요.”

난 비디오카메라를 켰다. 칠레 기지에서 만든 수경 재배 시설이 영상이 나왔다.

민요한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샐러드 컨테이너가 아니네요. 저건 뭐죠?”

“새로 만든 수경 재배 설비에요.”

난 비디오카메라에 모든 내용을 다 담지 않았다. 주요한 기술은 노출할 수 없었다.

민요한에게 물을 순환시키는 방법에 대해서 말했다.

“재미있는 발상이네요. 물을 수직으로 순환시키는 구조네요. 어쩌면 좋은 방법이 될 수도 있을 거 같아요.”

민요한의 눈에서 이채가 돌았다.

“여긴 장비가 마땅치 않아서 실험이 불가능해요. 자세한 내용은 메일을 통해 다시 보낼게요. 요한 씨가 검증해 주세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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