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한기탁에게 손익계산서를 받았다.
“목장에서 난 매출과 영업이익만 나온 거 맞죠?”
“네가 원한 대로 목장 것만 넣었어, 그런데 이건 어디에 쓰려는 거야?”
“만날 사람이 있어서요.”
“그게 누군데?”
“땅 주인이요.”
목장을 운영한 지 벌써 일 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땅 주인 나병수를 만날 시간이었다.
방송 출연으로 바빠지기 전에 해결해야 했다.
손익계산서를 들고 나병수의 집으로 향했다.
정확하게 일 년 만의 방문이었다.
저택 안으로 들어가자 집사가 날 반겼다.
“오셨군요, 김덕명 씨.”
그의 건조한 말투 일 년 전과 같았지만, 집안의 느낌은 일 년 전과 사뭇 달랐다.
집안에 무거운 공기가 흐르고 있었다.
“어르신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의 안내를 받아 나병수의 서재로 이동했다.
전동 휠체어에 앉은 나병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벌써 일 년이나 지났군.”
나병수의 얼굴이 달라져 있었다. 전에 만났을 때보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병색이 역력했다. 얼굴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자네와의 약속은 기억하고 있네.”
나병수가 태연하게 말을 꺼냈다.
난 그에게 목장의 손익계산서를 건넸다. 나병수는 문서를 보고 껄껄 웃었다.
“성과가 놀랍군, 이 정도일 줄은 생각도 못 했지.”
그에게 매출 20억을 약속했다. 목장의 매출은 35억이 넘었다.
“목장뿐만 아니라 다른 일로도 돈을 벌고 있다고 들었네. 자네는 농부가 아니라 사업가로군.”
“농부들은 모두 다재다능한 사업자가 돼야 하죠. 생산부터 판매까지 다 할 줄 알아야 하니까요.”
“그렇긴 하군, 요즘은 농사만 지어선 안 되니까.”
나병수는 집사에게 손짓했다.
집사는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이제 그 땅을 살 생각인가?”
나병수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은 살 생각이 없습니다.”
“이상하군, 자네는 그 땅을 가지고 싶어 하지 않았나? 지금은 땅을 살 돈도 있을 텐데...?”
마음만 먹는다면 땅을 살 수도 있었다. 지금은 함부로 돈을 쓸 때가 아니었다.
“계약서에 명시된 대로 이제부터 임대료를 지불하겠습니다.”
땅을 사지 않더라도 임대를 지속할 수 있다는 조항을 넣었다. 물론 약속을 지켰을 때의 일이다.
그와의 약속을 지켰고, 땅을 임대하는 건 문제 될 게 없었다.
전동 휠체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병수가 나에게 다가와 물었다.
“돈을 벌어서 어디다 쓰려는 건가?”
내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난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독소조항까지 감수하고 그에게 땅을 임대했던 이유가 있었다.
그는 평범한 땅 부자가 아니었다. 죽으면서 자신이 소유한 땅과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인물이다.
수전노로 알려진 인물이었기에 사람들은 이상하게 여겼다. 나 역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래서 더 기억하고 있던 일이기도 했다.
그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마도 유언장을 작성한 변호사조차도 의문을 품었을 것이다.
나병수는 별난 사람이긴 했지만, 악인은 아니었다. 그가 어떤 인물인지 알았기에 땅을 임대했다.
나병수는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하고 싶은 일?”
“대규모 농장을 건설할 계획입니다.”
나병수는 처음 땅을 임대할 때와 달리 관심을 보였다. 내가 말하는 농장에 대해서 집요하게 물었다.
난 미래 계획에 대해 간단하게 말해 주었다.
나병수는 이야기를 듣더니 다시 물었다.
“자네 말대로만 된다면 나보다 더 큰 부자가 되겠군, 그렇게 돈을 많이 벌어서 어쩔 생각인가?”
“어르신의 말씀처럼 많은 돈을 벌 생각입니다. 하지만 돈만 보고 달려가진 않습니다.”
“그럼 자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뭔가?”
“농부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원합니다.”
“자네가 성공하면 그렇게 되는 건가?”
“혼자 성공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 꿈은 많은 사람과 함께 이룰 거니까요.”
“난 자네처럼 생각해 본 적이 없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농부가 될 생각은 하지 않았으니까. 성공하기 위해서는 농사가 아닌 다른 일을 해야 했지.”
그의 말대로 예나 지금이나 농부를 꿈꾸는 사람이 많지 않은 건 사실이다.
그걸 바꾸고 싶은 게 나의 꿈이다. 그 꿈을 위해서 한발 한발 나갈 뿐이다.
“자네가 나중에 어떻게 될지 궁금하군, 혹시 땅 문제로 의논할 게 있다면 다시 찾아와도 좋네.”
나병수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말했다.
“말씀만으로 감사합니다.”
그는 전동 휠체어를 움직여 자리로 돌아갔다. 책상에 놓인 벨을 눌러 집사를 불렀다.
나병수는 임대와 관련한 내용을 집사에게 전달했다.
방을 나가기 전 그가 나에게 말했다.
“행운을 빌겠네.”
가볍게 하는 말이었지만 마음이 느껴졌다.
저택에서 나오기 전 집사와 서류작업을 마쳤다.
집사는 나병수의 말대로 문서를 수정해 주었다.
* * *
고애주 작가와 약속한 날이 다가왔다.
우리가 만날 농부는 충청북도 옥천 깊은 산골에 살고 있었다. 대중교통으로는 갈 수 없는 곳이었다.
고애주는 차가 없다면서 나와 함께 갈 것을 부탁했다.
그녀와 대전역에서 만났다.
“고마워요, 이렇게 차도 태워주시고.”
고애주가 미소를 지으며 차에 탔다. 이동 중에 그녀가 봉투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게 뭔가요?”
“행운의 과자에요, 대전역 앞에서 사 왔어요.”
일명 포춘 쿠키라고 불리는 과자다. 과자 속에 점괘가 들어 있는 게 특징이다.
“하나 드릴까요?”
말로만 들었지 한 번도 행운의 과자를 먹어본 적은 없었다.
난 그녀에게서 행운의 과자를 받았다. 초승달 모양이 귀엽게 생겼다.
나도 모르게 과자를 한입에 넣으려는 순간이었다.
“조심하세요, 안에 점괘가 쓰인 종이가 있어요. 쪼개 드셔야 해요.”
행운의 과자를 반으로 쪼갰다. 안에서 종이가 나왔다.
“뭐라고 적혀 있어요?”
점괘를 펼쳤다.
“조만간 마음에 맞는 사람과 만나게 될 운세라네요.”
“오늘 만날 분하고 궁합이 맞나 보네요. 그럼 제 운세도 한번 볼게요.”
고애주도 손에 든 행운의 과자를 반으로 갈랐다.
“고 작가님은 뭐라고 적혀 있나요?”
고애주는 점괘의 내용을 읽고 대답을 망설였다.
“왜요? 안 좋은 내용이라도 적혀 있나요?”
“안 좋은 내용은 아닌데, 좀 민망하네요.”
“뭔데요?”
“듣고 웃지 마세요.”
“네, 그러죠.”
“지금 옆자리에 있는 사람 때문에 덕 볼 운세라네요.”
고애주는 말과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누가 웃지 말라고 했던 거 같은데...”
고애주는 생각보다 활달한 사람 같았다. 그녀와 함께 가는 길이 즐거웠다.
고소한 향이 감도는 행운의 과자 맛도 좋았다.
“김덕명 씨에게 개인적으로 궁금한 게 있는데요...”
“편하게 물어보세요.”
“덕명 씨는 농부가 안 됐으면 뭘 했을 거 같아요?”
당장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처음 듣는 질문이기도 했다.
회귀 전 광고대행사에 다닌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회귀라는 행운을 얻은 뒤로는 농부를 천직으로 알고 지냈다.
“글쎄요, 농부 말고는 다른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네요.”
“역시, 덕명 씨는 농부가 천직이네요.”
“고 작가님은 작가가 안 됐으면 뭘 했을 거 같아요?”
“저도 작가 말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네요.”
고애주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그녀는 곧 프로그램과 관련한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이번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된 건 어려운 농부를 돕는 것만은 아니에요.”
“뭐가 더 있나요?”
“사람들에게 농사로 성공하는 법을 알려주고 싶어요. 덕명 씨가 그랬던 것처럼.”
고애주는 확신에 차 있었다.
“제가 농사 전문가는 아니지만, 작가의 느낌은 있어요. 전 덕명 씨가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부담스럽네요.”
“일부러 부담을 좀 드린 거예요.”
“그런데 오늘 만난 분은 작가님도 초면인가요?”
“당연히 만나 뵀었죠, 작가의 기본은 취재니까요.”
나도 그랬을 거라고 생각했다.
“덕명 씨가 따로 만나고 싶어 할 거라고는 생각 못 했지만.”
“불편하게 했다면 죄송합니다.”
“아니요, 덕명 씨 말대로 따로 만나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카메라가 있으면 아무래도 불편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오늘 만날 분은 어떤 분인가요? 글을 써 보낸 걸로 봐서는 굉장히 섬세한 분 같던데요.”
“덕명 씨 말이 맞아요, 굉장히 섬세한 분이세요.”
“상황은 꽤나 심각하겠죠?”
“네, 아주 심각해요.”
고애주의 표정이 처음으로 어두워졌다.
“오늘 만나 뵐 분은 뉴스에도 출연한 적이 있으세요.”
“뉴스요?”
벌통을 전부 태우는 장면이었다. 꿀벌에게 집단으로 질병이 발생해서 벌통을 전부 태워야 했다.
그 안타까운 장면은 뉴스를 통해서도 보도됐다.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겁니다, 제가 그랬던 것처럼.”
“덕명 씨도 실패한 적이 있었나요?”
“실패하지 않는 사람도 있나요?”
“하긴 그렇죠, 누구나 한번은 실패하니까.”
사람은 누구나 실패할 수 있다. 다시 일어나기 위해 작은 행운이 필요할 뿐이다.
산골 마을에 진입했다.
목적지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인적이 드문 곳에 집터가 보였다.
한 남자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법고시생과 시인
밀짚모자를 쓴 남자가 웃으며 우릴 반겼다. 눈매가 선해 보이는 남자였다.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먼 길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황규대라고 합니다.”
“김덕명입니다.”
고애주 작가와 황규대는 구면이었다. 가볍게 인사를 하고 고애주는 날 소개했다.
“전화로도 말씀드렸지만, 김덕명 씨가 도움을 주실 분이세요. 양봉 전문가이시고요.”
“잘 부탁드립니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먼저, 양봉장을 볼 수 있을까요?”
“지금은 터만 남아 있습니다.”
황규대를 따라 꿀벌을 키우던 곳으로 갔다. 그의 말대로 터만 남아 있었다.
한쪽 구석에 잿더미로 변한 벌통도 보였다.
“꿀벌이 전부 병에 걸렸죠, 꿀벌과 벌통을 모두 소각했습니다.”
황규대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낭충봉아부패병’이다. 애벌레뿐만 아니라 성체가 된 꿀벌도 감염되는 바이러스다. 꿀벌의 소화기관을 통해 침투한다. 감염된 애벌레의 경우 번데기가 되지 못하고 말라 죽는다. 성체가 된 꿀벌은 몸이 부풀어 오르다가 죽고 만다.
바이러스가 발견되는 순간 때는 이미 늦었다.
벌통을 전부 소각해야 한다. 이 병으로 많은 꿀벌 농가가 힘들어했다. 내가 독일에서 약을 구해왔던 까닭이다.
양봉협회를 통해 약을 보급했지만, 손길이 닿지 않는 농가도 있던 것 같다.
“많이 힘드셨겠네요.”
“속이 타들어 가는 심정이었죠.”
그때가 생각났는지 황규대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이제 걱정하지 마세요. 김덕명 씨가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도움을 주실 거예요.”
고애주가 힘을 주어 말했다.
“네, 다시 시작해야죠. 가족을 위해서라도.”
황규대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
“시장하시죠? 식사하러 가시죠.”
우리는 그를 따라 집으로 갔다. 양봉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그의 집이 있었다.
오래된 농가 주택이었다.
마당에서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인사해야지.”
황규대의 말에 아이들이 공손하게 인사했다. 대여섯 살 정도로 보이는 남자와 여자아이였다.
“쌍둥이입니다.”
이란성 쌍둥이였다. 해맑은 모습이 귀여웠다.
앞치마를 두른 여자가 부엌에서 나왔다.
황규대의 아내 같았다.
“누추한 곳까지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곧 밥상을 차릴 테니 안으로 들어가 계세요.”
“손님들 왔으니까 신경 좀 써줘요.”
황규대는 아내에게 넌지시 말했다.
“제가 좀 도울까요?”
고애주가 팔을 걷어붙이고 말했다.
“아니에요, 들어가 계세요.”
황규대는 우리를 방안으로 안내했다. 부부간에 사이가 좋아 보였다. 아이들의 천진한 표정에서도 화목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오래된 집이지만 안은 깨끗했다. 가족사진이 한쪽 벽에 빼곡하게 걸려 있었다.
젊었을 적 황규대의 사진도 보였다. 책을 쌓아놓고 공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작가님에게는 이미 말씀드렸지만, 간단하게 제 소개를 드리겠습니다.”
밥상이 나오기 전에 황규대가 말했다.
“전 오랜 시간 사법고시를 준비했습니다. 아내는 시인으로 활동했고요.”
황규대는 나를 바라보며 자신의 과거에 대해 말했다.
오랫동안 사법고시에 매달렸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고시를 포기하고 직장에 다니며 지금의 아내 박은희를 만났다.
아내와 함께 가정을 꾸리고 살다가 이곳으로 귀농했다.
귀농을 한 까닭은 아이들 때문이었다.
쌍둥이는 기관지가 약했다. 천식에 비염까지 심해서 약을 달고 살았다.
환경이 좋은 곳에서 살면 증상이 나아질 수 있다는 생각에 귀농을 선택한 것이다.
시인이었던 아내도 남편의 결정에 힘을 보탰다. 부부는 무작정 시골로 내려온 것은 아니었다.
황규대는 귀농 전에 도시에서 양봉을 배웠다. 늦은 나이에 사회생활을 시작했기에 여윳돈이 많지 않았다.
양봉은 비교적 적은 돈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 착실하게 배운 양봉으로 귀농에 성공했지만, 꿀벌들이 병에 걸리고 만 것이다.
시인 아내 박은희가 밥상을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차린 게 너무 없어 죄송하네요.”
“무슨 말씀이세요, 진수성찬이에요.”
난 웃으며 말했다.
“고기 없어요?”
황규대가 아내에게 물었다.
박은희는 난처한 얼굴로 황규대를 바라보았다.
그때 고애주가 다시 나섰다.
“요즘 누가 고기를 먹어요? 이런 건강식을 더 선호하죠.”
고애주의 말대로 정말 건강한 밥상이다.
봄 내음이 물씬 풍기는 두릅, 상추, 깻잎에 달래 된장찌개가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아이들은 같이 안 먹나요?”
황규대에게 물었다.
“불편하실 것 같아서, 아이들은 나중에 먹어도...”
“아이들도 같이 먹죠.”
황규대는 아내 박은희와 눈으로 말했다. 텔레파시가 통했는지 박은희는 밖으로 나가 아이들을 데려왔다.
쌍둥이까지 앉자 방이 가득 찼다. 아이들은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었다.
황규대와 박은희가 아이들에게 반찬을 올려주는 모습이 다정해 보였다.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황규대는 다시 일어서야 했다.
식사를 마쳤을 때였다.
박은희가 부엌에서 유리병을 하나 가져왔다. 유리병 안에 진한 갈색의 액체가 담겨 있었다.
박은희는 유리병 뚜껑을 따고 쌍둥이에게 한 숟가락씩 먹였다.
아이들은 맛있게 먹었다.
“아이들이 먹는 게 뭔가요?”
“제가 만든 도라지 조청입니다.”
“도라지 조청이요.”
쌍둥이는 천식과 비염 때문에 약을 달고 살았다. 시골로 내려와 상태가 좋아졌다고는 하나 증상은 남아 있었다.
황규대가 꿀벌을 키우는 동안 박은희는 도라지를 키웠다.
쌍둥이에게 줄 도라지였다. 박은희는 처음엔 꿀과 도라지를 갈아서 아이들에게 먹였다고 한다. 그러다 꿀이 다 떨어지는 순간이 찾아왔다.
그때부터 박은희는 조청을 만들기 시작했다. 꿀 대용으로 조청을 먹이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들도 좋아했다. 지금은 매일 먹어야 하는 음식이 됐다.
박은희의 이야기를 듣자 고애주가 물었다.
“저도 먹어봐도 될까요?”
“당연하죠.”
박은희는 새 수저와 유리병을 건넸다.
도라지 조청을 맛본 고애주는 감탄한 듯 말했다.
“맛이 좋아요, 덕명 씨도 맛 한번 보세요.”
“전 괜찮은데...”
“한번 드셔보세요.”
아이들이 먹는 모습을 보고 맛이 궁금하긴 했다.
고애주의 성화에 나도 한 숟가락 맛을 보았다.
“정말 맛이 좋아요! 어떤 면에서는 꿀보다 낫네요.”
“필요하시면 말씀하세요, 가실 때 챙겨드릴게요.”
박은희는 기분 좋은 얼굴로 말했다.
“아니에요,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여보, 좀 챙겨드려요.”
황규대도 거들었다.
박은희는 바로 우리에게 줄 도라지 조청을 챙겼다.
부부는 따뜻한 사람이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의 것을 나누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결국 도라지 조청이 손에 들어오고 말았다.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제가 더 감사하죠.”
떠나기 전,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었다.
난 황규대에게 물었다.
“혹시 트럭이 있나요?”
“네, 1톤 트럭이 있습니다.”
황규대는 트럭이 있는 곳으로 우릴 안내했다. 낡은 트럭은 가족의 유일한 이동 수단이었다.
물건을 사거나 꿀을 팔 때도 이용하는 귀한 물건이기도 했다.
“앞으로 이동식 양봉으로 바꿔 보는 게 어떨까요?”
“이동식 양봉이요?”
이동식 양봉은 밀원이 풍부한 곳으로 이동해 다니며 꿀을 채취하는 양봉 방식이다.
황규대가 사는 지역은 밀원이 풍부하지 않았다. 밀원이 풍부하지 않은 지역에서 꿀벌을 키우다 큰 변까지 당했다.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이동식 양봉은 해본 적이 없는데, 경험이 없어도 가능할까요?”
“지금까지 했던 방식과는 조금 다를 겁니다. 그래도 벌을 키운 경험이 있으시니까 어렵지 않을 겁니다.”
“도와주시는데 뭐든 해야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