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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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병원에 다녀왔다. 큰아버지가 급성 맹장염으로 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잘 됐나요?”

“수술은 잘 됐다고 하더구나.”

아버지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자칫 잘못하면 큰일이 날 뻔했기 때문이다. 목수였던 큰아버지는 기계를 만지는 일이 많았다.

복통을 일으킨 건 일을 마치고 난 뒤였다. 기계를 만지던 중에 증상이 나타났다면 큰일을 당할 수도 있었다.

다행히도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수술도 잘 돼서 안정을 취하는 중이었다.

“저도 내일 병문안 다녀올게요.”

“바쁠 텐데, 괜찮겠냐?”

“당연히 가봐야죠.”

“네가 가면 큰아버지도 기뻐하실 거다.”

아버지의 말대로 큰아버지와 난 사이가 좋았다. 어릴 때 큰아버지가 선물을 주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다.

“이게 병원 주소다.”

아버지는 종이에 병원 주소와 전화번호를 적어 주었다.

지역에 있는 유일한 대학병원이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부지런히 움직였다.

큰아버지 병문안을 하기 위해서였다.

병원에 가기 전에 목장에 잠시 들렀다.

설민주에게 특별히 부탁한 음식이 있었다.

“제가 포장을 한다고 했는데.”

설민주가 커다란 종이봉투를 건네며 말했다.

난 그녀에게 요거트 샐러드를 부탁했다.

“병원에 가신다고요?”

“네, 큰아버지가 수술을 받으셔서요.”

“우유랑 이것저것 좀 챙겼어요."

종이봉투가 묵직한 이유였다.

“고마워요.”

“병문안 잘하고 오세요.”

그녀가 준 음식을 챙겨서 병원으로 향했다.

병문안의 목적은 단순한 안부 인사만이 아니었다.

병원에 샐러드를 공급할 계획이 있었다.

판로를 고민하다 떠오른 사건이 있었다.

큰아버지가 입원해 있던 병원이라서 쉽게 기억났다.

곧 병원이 발칵 뒤집어지는 사건이 생긴다.

나에겐 기회가 될 일이다.

병원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병원의 내부고발자

큰아버지는 사람들과 함께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내가 병실 안에 들어온 것도 모를 정도였다. 어깨를 두드리자 그제야 내 고개를 돌렸다.

“덕명이 왔구나.”

“몸은 좀 어떠세요?”

“보다시피 몸은 괜찮... 흐억”

아직 통증이 있는 것 같았다.

“갑자기 맹장이 터지다니 별일이 다 있구나.”

“제가 먹을 걸 좀 싸왔어요.”

“그냥 와도 되는데.”

종이봉투 안에서 샐러드 박스를 꺼냈다. 버터헤드와 카이피라 그리고 김상철이 기른 방울토마토가 보기 좋게 담겨 있었다.

“제가 직접 키운 샐러드에요.”

“네가 샐러드도 키운다고?”

“드레싱이랑 함께 드시면 맛있을 거예요.”

설민주는 드레싱 소스를 따로 담아주었다. 뚜껑을 열자 입맛을 자극하는 향이 돌았다.

같은 병실에 있는 사람들도 요거트 샐러드에 관심을 보였다.

“이거 몇 개나 가지고 왔냐?”

설민주에게 샐러드 박스 일곱 개를 요청했다. 올 때 세어보니 세 개가 더 있었다.

“충분히 가져왔어요.”

“사람들과 좀 나눠 먹었으면 좋겠구나.”

이미 예상했던 일이다. 우리 식구들의 특성이기도 했다. 음식은 항상 주변 사람들과 나눠 먹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 여겼다.

“제가 나눠 드릴게요.”

난 병실에 있는 사람들에게 샐러드 박스를 건넸다. 샐러드 박스를 받은 사람들은 고맙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6인실 병실에 보호자들도 있어 9명이 있었다.

샐러드 박스는 하나가 남았다.

“우리 조카가 키운 샐러드요. 한번 맛 좀 보셔요.”

큰아버지의 말이 떨어지자 사람들이 샐러드를 먹기 시작했다.

“맛이 아주 좋구나, 병원에서 나오는 샐러드랑 차원이 달라.”

큰아버지의 말에 다른 환자들도 이구동성으로 맛있다고 한마디씩 했다.

“병원에서 나오는 건 맛이 별로야. 먹기만 하면 화장실부터 간다니까.”

맞은편 침대에 있던 중년 남자가 말했다.

“이 샐러드는 아주 신선하네요, 드레싱도 아주 일품이고.”

“맛이 아주 좋아요.”

샐러드 박스를 든 환자들이 한마디씩 했다. 큰아버지는 기분이 아주 좋아 보였다.

“병원에서도 샐러드가 나오나 보죠?”

“응, 매일 샐러드가 나오긴 하는데...”

“마음에 안 드나 보네요.”

큰아버지가 입원한 병원은 지역의 유일한 대학 병원이었다.

지역에서 규모가 가장 컸다. 병원의 자랑거리는 규모만이 아니었다. 환자들을 위한 식단도 홍보 수단이었다.

환자들에게 제공되는 식재료는 모두 국내산이었다. 수입품은 단 하나도 없었다.

특히 샐러드는 유기농으로 재배한 것을 사용했다.

병원만의 특별한 전략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환자들의 만족도가 높은 건 아닌 것 같다.

큰아버지를 포함한 환자들은 병원에서 제공하는 식단이 마음에 들지 않는 얼굴이었다.

“바쁠 텐데 이제 들어가 봐라.”

큰아버지와 함께 제법 시간을 보냈다.

“그럼 다음에 또 올게요.”

“조만간 퇴원할 거다, 다음엔 집에서 보자.”

종이봉투 안에는 샐러드뿐만 아니라 우유와 유제품들이 들어 있었다.

샐러드 박스 하나를 빼고 전부 냉장고에 넣었다.

“샐러드 하나는 네가 먹을 거냐?”

큰아버지는 웃으며 물었다.

“이건 줄 사람이 있어서요.”

“약속이 있었구나, 말을 하지 그랬냐.”

“아직 약속 시간 전이에요.”

“어서 가봐라.”

난 병실을 나와 원무과로 향했다. 원무과장과 약속이 돼 있었다.

전화를 걸어 병원에 도착했음을 알렸다.

원무과장과 병원 카페에서 만났다.

“원무과장 박은지입니다.”

“김덕명입니다.”

“강민수 실장님에게 말씀 들었어요. 이번에 군과 함께 사업을 하신다고요.”

“네, 하동군과 함께 청년 농부 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나자고 한 용건이 뭘까요?”

비서실장 강민수를 통해 박은지를 소개받았다.

강민수는 처음에 소개를 꺼렸다. 당연하게도 내가 영업을 할 것이라고 여긴 것이다.

영업이 아니라 확인하고 싶은 게 있다고 하자 그녀와 연결시켜주었다.

“이번 지원 사업을 통해 청년 농부들과 함께 샐러드를 재배할 계획입니다.”

“그게 저와 무슨 상관이죠?”

박은지는 경계하는 말투로 물었다. 날 영업 사원 정도로 여기는 태도다.

그녀는 처음부터 건조하게 말했다. 영업과 관련한 내용은 원천봉쇄하겠다는 태도가 느껴졌다.

이해 못 할 것도 없었다.

“병원에서 받는 샐러드는 유기농 인증을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네, 저희 병원만의 특색이죠.”

“저희가 재배하는 샐러드도 친환경으로 재배합니다.”

“무슨 말씀인지는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이미 샐러드를 공급받는 곳이 있습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병원에 샐러드를 공급하는 업체가 따로 있다는 사실을요.”

“그런데 저에게 이런 말을 하는 이유가 뭐죠?”

박은지는 그제야 긴장을 풀고 물었다.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어서입니다.”

“그게 뭐죠?”

난 병원에서 식자재를 납품하는 과정을 물었다. 그녀는 모든 과정이 투명한 과정을 거쳐서 진행된다고 말했다.

현재 병원에 식자재를 공급하는 모든 업체는 공개 입찰을 통해 들어왔다.

그녀가 말하는 동안 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미세한 떨림이나 말투의 변화는 없었다.

병원에 물건이 들어오는 과정을 몰라서 물은 건 아니었다.

그녀가 병원에서 발생한 사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었다.

큰아버지가 퇴원한 지 일주일 만에 병원에서 사건이 하나 터졌다.

병원이 자랑하는 유기농 샐러드가 문제가 된 사건이다.

모든 농부들이 전부 양심을 지키는 것은 아니다. 현재 병원에 샐러드를 납품하는 농업 법인은 양심을 지키지 않는 곳이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유기농 인증을 받았다고 속였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들은 중국산 샐러드를 유기농으로 둔갑시키는 일까지 벌였다.

이 사건으로 샐러드를 공급하던 농업 법인은 고발당하고 결국 폐업에 이르게 된다.

지역 병원에서 일어난 작은 사건이었지만, 큰아버지의 일 때문에 기억하고 있었다.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게 된 것은 원무과장 박은지의 내부 고발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그녀가, 이 사건을 수면 위로 띄운 장본인인 것이다.

그녀가 아니었으면 드러나지도 않을 일이었다.

원무과장 박은지가 공개입찰을 관리했다.

뒤에서 장난을 친 건 병원의 모든 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행정실장이었다.

“이 정도 설명이면 됐나요?”

원무과장 박은지가 말을 마치고 물었다.

“네, 충분합니다. 그리고 이건 제가 키우는 샐러드입니다.”

박은지에게 핸드폰 안에 있는 사진을 보여주었다. 샐러드 컨테이너의 내부를 찍은 사진이었다.

“실내에서 샐러드를 재배하시네요.”

그녀는 놀란 눈으로 사진을 바라보았다.

“이게 그 결실이고요.”

박은지에게 종이봉투를 건넸다. 그녀는 종이봉투에서 샐러드 박스를 꺼냈다.

“이게 정말 저 안에서 나온 건가요?”

“네, 제가 직접 키운 샐러드입니다. 선물로 하나 드리고 싶습니다.”

“이런 건 받으면 곤란한데.”

“그냥 드리는 겁니다, 조건은 없습니다.”

사건이 터지고 행정실장은 처벌을 받았다. 내부고발자 박은지도 자유로울 순 없었다.

직장 동료를 고발하고 편안하게 병원을 다닐 수 없던 것이다.

결국 그녀는 병원을 그만뒀다. 그녀가 아니었으면 밝혀지지 않을 사건이었다.

오늘 만남은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 될 것이다.

작은 선물을 준비한 까닭이다.

그녀 덕에 우리도 공개입찰을 노려볼 기회가 생길 테니까.

* * *

하동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버지에게 전화가 왔다.

선물이 도착했다고 했다.

캘리포니아 농업 박람회에서 샀던 첨단 양봉기구였다.

병원에서 곧장 샐러드 컨테이너로 갈 예정이었다.

목적지를 양봉장으로 변경했다.

양봉장으로 이동하기 전 백민석이 만든 애플리케이션을 작동시켰다.

샐러드 컨테이너 관리자였다.

[빛 8,500lux]

[온도 17도]

[상대습도 범위 63%]

[이산화탄소 농도 400ppm]

[물의 흐름 정상]

[영양액 정상]

샐러드 컨테이너는 이상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카메라로 내부의 상태를 보고 싶었지만 아직은 개발 중이었다.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것만으로 만족스러웠다.

백민석은 편리한 기능을 몇 가지 더 추가했다.

수시로 알림을 주는 기능이었다. 잊고 있을 때도 시간마다 확인할 수 있어 편리했다.

문제가 생기면 알림을 주는 기능도 있었다. 내부 환경을 조절할 수는 없었지만, 이것만으로도 훌륭했다.

샐러드 컨테이너 확인을 마치고 양봉장으로 이동했다.

양봉장에 도착하자 아버지와 어머니는 신기한 듯 벌통을 바라보고 계셨다.

“이게 대체 어떻게 쓰는 물건이냐?”

리틀 한스도 함께 구입한 벌통이었다. 온도와 습도를 조절할 수 있고, 내부에 카메라가 달려 벌의 상태도 관찰할 수 있었다.

리틀 한스에게 사용법을 자세히 들었다.

부모님에게도 사용법을 알려 드렸다.

“그땐 말로만 들어서 몰랐는데 직접 보니 정말 신기하구나. 기계로 이런 걸 다 조절할 수 있다니.”

“그러게 말이에요, 벌의 상태가 궁금할 때가 있었는데 좋네요.”

아버지와 어머니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샐러드 컨테이너처럼 양봉을 하는 기구도 첨단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벌이 활동할 때에 맞춰서 와줬구나.”

아버지의 말대로 꽃 피는 봄이었다.

하얀 목련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벌들도 활동을 시작할 때였다.

곧 있으면 청년 농부 지원 사업도 시작된다.

* * *

청년 농부 지원 사업에 착수하기 전에 민요한과 이야기를 나눴다.

민요한은 백민석이 개발한 애플리케이션에 놀라워했다.

“민석 씨 실력이 좋네요, 이 정도면 실리콘밸리에서 일해도 되겠어요.”

“아직 온도 등 내부 상태를 조절하는 기능은 없습니다.”

“지금 개발 중이지 않나요?”

“네, 개발 중이죠.”

“그것도 얼마 안 걸릴 거 같네요.”

민요한은 스마트폰 화면을 보며 말했다. 실력을 의심하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내일부터 청년 농부들이 모일 겁니다.”

“한국에선 시간이 빠르게 가는 것 같아요. 이제부터 할 일이 뭔가요?”

“요한 씨와 제가 교육을 맡을 겁니다.”

청년 농부들에게 수경재배와 샐러드 컨테이너 사용법에 대해서 교육해야 했다.

그와 내가 함께 교육을 맡을 생각이었다.

“그런 일이라면 문제없죠.”

“좋습니다, 그리고 민요한 씨가 모종 컨테이너를 맡아 줬으면 합니다.”

“모종 컨테이너요.”

“교육이 끝나면 돌아가면서 맡길 생각인데 그전에는 민요한 씨가 담당해 주면 좋을 거 같네요.”

청년 농부 14명에 컨테이너는 총 15개였다. 그중 하나는 모종을 위한 시설이었다.

모종 컨테이너를 따로 둬서 재배를 빠르게 할 계획이었다.

“모종 컨테이너를 따로 만든다고 했을 때부터 생각은 하고 있어요.”

“그럼, 부탁드려도 될까요?”

“어쩔 수 없이 제가 해야겠죠.”

민요한이 웃으며 답했다.

* * *

다음날 하동 군청에서 뽑은 청년 농부들이 강당에 모였다.

지원 사업에 앞서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이 있었다.

하동 군수 김창대의 축사가 끝나고 내가 연단에 섰다.

“지원 사업에 참여하시게 된 걸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강의실에 14명의 청년 농부들이 앉아 있었다.

김상철과 방현식이 가장 앞줄에 앉았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청년 농부들이라고 하지만 농사에 초보자들은 아니었다. 지원자도 많았고 경쟁률도 높았다.

그중 나름 농사 경험이 있고, 의욕이 높은 이들이 선발됐다.

난 그들에게 농업의 미래에 대해서 말했다.

모두 진지한 눈으로 경청했다.

마지막으로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꺼냈다.

“여름이 오기 전에 수익을 낼 예정입니다.”

내 말에 다들 놀란 듯 보였다.

첨단 농업을 습득하는 것만으로 기대에 차 있었다.

수익까지는 아직 생각도 못 하고 있는 것이다.

그때 김상철이 손을 들고 물었다.

“그럼 샐러드 수확을 시작하자마자 수익이 난다는 말씀인가요?”

“네, 수확이 시작되면 수익이 나게 될 겁니다.”

“도매로 넘기는 건가요?”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하는 만큼 제 가격을 받아야겠죠.”

“그게 사실이면 정말 일할 맛 나겠네요.”

김상철의 말에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그의 말대로 일할 맛이 나게 될 것이다.

14명의 농부

청년 농부 지원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장소는 하동농업지원센터 부근이다. 센터에서 실습용 부지로 쓰던 곳이라 물과 전기를 사용하는데 문제가 없었다.

샐러드 컨테이너를 작동시키려면 물과 전기가 필수였다.

목장에 있던 샐러드 컨테이너도 이곳으로 옮겼다.

총 15개의 컨테이너가 부지에 들어섰다.

14개의 컨테이너에서는 샐러드를 재배했다. 남은 하나는 모종만을 재배하는 컨테이너였다.

모종 컨테이너를 따로 둬서 재배를 빠르게 할 계획이다.

모종을 거쳐 샐러드 컨테이너에서 기른 작물은 2주 만에 수확이 가능했다.

지원 사업으로 선발된 14명의 농부가 샐러드 컨테이너 앞에 모였다.

컨테이너엔 각자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하동군에서 지원해서 컨테이너를 제작했지만, 그들도 제작비의 일부를 지불했다.

지원 사업이 종료되면 소유가 가능했다.

“샐러드 컨테이너는 여러분들의 개인 농장입니다.”

자신의 것이 된다는 말에 눈이 반짝였다.

예외가 하나 있었다. 김상철은 지리산 농부들이 제작한 컨테이너를 사용하게 된다. 컨테이너를 김상철이 따로 소유할 수 없었다.

“지원 사업을 신청할 때도 들었겠지만, 태도가 불량하거나 자신이 맡은 일을 소홀하게 하는 경우 페널티가 있습니다.”

세금을 들여 청년 농부를 지원하는 일이다. 불성실한 이들에겐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있었다.

“다들 농사 경험이 있으시죠, 맞나요?”

“네, 농사 경험이 있습니다.”

김상철이 우렁찬 목소리로 답했다.

“지금부터 습득할 농사 기술은 기존의 농사와 완전히 다릅니다.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합니다.”

처음부터 다시란 말에 모두 긴장한 표정이었다.

“그렇다고 너무 긴장하실 건 없습니다, 농사가 게임처럼 재밌어질 테니까요.”

“농사가 게임처럼 재미있을 수 있나요?”

방현식이 놀랍다는 얼굴로 물었다.

“네, 그렇습니다. 꼭 게임하는 느낌이 들 겁니다.”

난 14명의 농부에게 스마트폰 화면을 보여줬다.

샐러드 컨테이너의 환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온도, 습도, 광량, 이산화탄소의 농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신기하네요, 이런 게 가능하다니.”

방현식은 스마트폰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지원 사업을 시작할 때 모두에게 스마트폰을 준비할 것을 요청했다.

지원자들도 백민석이 만든 애플리케이션을 모두 설치했다.

15개의 컨테이너의 내부 환경을 동시에 볼 수 있었다.

지원자들도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했다.

난 민요한에게 바통을 넘겼다.

민요한은 샐러드 컨테이너에서 작물을 재배하는 과정을 그들에게 전수했다.

* * *

‘인천 정밀’의 이장우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아니었으면 샐러드 컨테이너를 시간 안에 제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이번 프로젝트의 주요한 인물이었다. 지원 사업이 마무리될 때까지 하동에 머물며 엔지니어 역할을 맡기로 했다.

지리산 농부들의 매장 2층에 그의 자리도 마련했다. 그를 만나기 위해 매장으로 향했다.

이장우는 노해미와 김꽃님 할머니를 도와 유제품 상자를 나르고 있었다.

나도 그들을 도왔다. 일이 끝나자 노해미가 시원한 버블티를 가져왔다.

“이거 드세요, 빵도 있어요.”

노해미가 만든 모카 빵이었다. 그녀가 나가고 이장우와 둘만이 남았다.

“아버지가 나보고 인천에 올라오지 말라고 하더라.”

이장우가 버블티를 마시며 말했다. 그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펴져 있었다. 아버님이 장난으로 한 말인 듯싶었다.

“왜 오지 말라고 하시는데?”

“내가 여기에 있어야 일거리가 많아진다고 하시면서~.”

그 말에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네 덕에 인천 정밀이 살아난 건 사실이야.”

새롭게 제작한 컨테이너는 무척 만족스러웠다. 처음 샐러드 컨테이너를 제작할 때보다 완성도가 높았다.

“아버님 말씀처럼 인천에 올라가지 못할 수도 있어.”

“뭐라고? 뭘 더 하려는 거야?”

“작은 컨테이너가 아니고 더 대형 시설을 구축할 날이 올 테니까.”

“대형 시설?”

“물론 샐러드 컨테이너부터 안착시킨 뒤의 일이겠지만.”

“그래, 뭐든 한 번에 하면 탈 나는 법이야. 천천히 좀 하자. 나도 좀 쉬게.”

이장우가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말했다.

버블티에 모카빵을 먹으며 여유 있는 시간을 보냈다. 컨테이너 제작 중에 벌어진 에피소드를 말하는 순간이었다.

전화가 왔다.

제주 양봉 협회의 최규식이었다.

미국에서 주문한 첨단 기기기 들어왔음을 그에게도 알렸다.

약속한 대로 그는 다른 지역에도 소식을 전했다. 사람들과 함께 방문하겠다고 의사도 밝혔었다.

오늘이 그날이었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장우를 만난 건 그와 함께 양봉장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좀 더 빨리 움직여야 했다.

난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나랑 같이 어디 좀 가자.”

“어딜 가려고?”

“양봉장.”

“나도 거기에 간다고? 내가 거기서 할 일이 있나?”

“가보면 알아, 아버님이 좋아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고.”

이장우는 웃으며 날 따라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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