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5. (175/205)

강민수는 일머리가 있는 사람이었다.

며칠 되지 않아 공고가 떴다. 청년 농부 지원 사업 공고였다.

약속대로 14명의 지원자를 모집했다.

지원자를 모집할 동안 우리도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미리 샐러드 컨테이너를 제작하는 일이었다.

지원자를 모집하고 난 뒤에 제작하기엔 시간이 빠듯했다.

강민수도 동의했다. 예산이 집행됐고 우린 컨테이너를 제작할 수 있었다.

난 이장우에게 말했다.

“총 14개를 더 제작해야 해.”

“그렇게 많이?”

이장우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번 일은 아버지와 둘이 하기 버거울 거야. 엔지니어를 더 써야 할 거야.”

“기술자는 문제없어. 주변에 널린 게 기술자들이니까. 아버지가 아는 분들도 많고.”

“좋아, 그리고 컨테이너 중 하나는 설비가 조금 다를 거야. 그 부분은 민요한 씨에게 말해 둘 거고.”

“이번에도 민요한 씨가 동행하는 건가?”

“왜, 싫어?”

“그런 뜻은 아니고, 아버지가 좋아하실 거 같아서.”

이장우가 웃으며 말했다.

아버님이 민요한의 잔소리 때문에 힘들었다는 말이 떠올랐다.

이장우가 먼저 인천으로 출발했다.

제작할 컨테이너를 구하는 데도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당장 민요한과 함께 갈 이유는 없었다.

* * *

난 샐러드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갔다.

민요한이 채소를 돌보고 있었다.

민요한에게도 청년 농부 지원 사업에 대해서 말했다.

그는 지원 사업의 내용을 듣고 무척 좋아했다.

플랜트팩토리와 반대로 간다며 반색했다.

그의 말대로 샐러드 컨테이너가 농부들의 희망이 되길 바랐다.

난 민요한에게 말했다.

“이장우 씨는 샐러드 컨테이너 제작을 위해 인천으로 갔습니다.”

“제가 같이 가야 하지 않나요?”

“물론 민요한 씨도 인천으로 가셔야죠. 그 전에 한 가지 부탁할 게 있습니다.”

“뭔가요?”

그에게 모종을 위한 컨테이너를 이야기했다.

민요한은 금방 이해했다.

“하나의 컨테이너에선 모종만 한다는 말이군요.”

“네, 그래야 재배가 빠르니까요.”

“빠른 재배를 위해서 모종 컨테이너를 만든다, 좋네요!”

다음날 민요한도 인천으로 떠났다.

* * *

청년 농부 지원 사업은 대대적으로 홍보가 이뤄졌다.

하동군 사람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였다.

높은 관심 속에서 많은 지원자가 몰렸다.

하동군에서 하는 지원 사업인 만큼 지원자는 하동에 거주하는 사람으로 제한했다. 청년 농부의 나이 제한은 39살이었다.

지원자 중 한 명은 잘 아는 이였다.

지리산 농부들의 김상철이다.

그는 공고가 뜨자마자 지원했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됐다. 그사이 난 샐러드 컨테이너의 모든 기능을 숙지했다. 샐러드를 재배하는 일에도 재미가 붙었다.

내가 직접 재배한 샐러드를 수확하는 날이었다.

주머니 속에 있던 전화기가 요동치고 있었다.

백민석에게 전화가 왔다.

통화 버튼을 누르자 수화기 너머로 흥분한 목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개발이 끝났어.”

샐러드 컨테이너를 원격으로 관리할 프로그램이었다. 그는 개발이 늦어져 미안하다고 말했다.

매일 밤새워 작업하는 걸 알고 있었다.

드디어 프로그램 개발까지 끝났다.

“내가 지금 달려갈게. 어떻게 작동하는지 시범을 보일 테니.”

요거트 샐러드와 의외의 신청자

백민석이 샐러드 컨테이너의 문을 두드렸다.

얼굴만 봐도 그가 얼마나 기쁜지 알 수 있었다.

“이거 좀 봐.”

백민석이 스마트폰 화면을 내밀었다. 샐러드 컨테이너 관리자 화면이었다.

샐러드 컨테이너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빛 8,500lux]

[온도 18도]

[상대습도 범위 65%]

[이산화탄소 농도 400ppm]

[물의 흐름 정상]

[영양액 정상]

“드디어 해냈구나! 그동안 수고 많았어!”

“수고는 무슨.”

“혹시 제어도 가능한가?”

온도와 빛의 세기 등을 프로그램만으로 조절이 가능한지 궁금했다.

“제어하는 기능은 시간이 필요해.”

“이것만으로도 대단해.”

샐러드 컨테이너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가장 큰 문제가 개선됐기 때문이다. 샐러드 컨테이너의 장점은 1년 내내 작물을 재배하는 시스템이다.

단점도 있었다. 1년 내내 동일한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프로그램이 필수였다.

재배환경을 수시로 확인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만 구축하면 어디서든 샐러드 컨테이너의 상태를 볼 수 있었다.

샐러드 컨테이너의 환경까지 조절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이 완벽해진다.

“샐러드 컨테이너의 내부도 볼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

“내부를 본다고?”

“응, 웹캠을 내부에 설치하면 되지 않을까?”

“가능할 거야, 그런데 내부까지 볼 필요가 있나?”

“채소를 키우는 농부의 입장에서 생각해 봐. 작물이 잘 자라고 있는지 궁금할 수 있잖아?”

“아~ 무슨 뜻인지 이해했어. 플랜트팩토리도 카메라가 있었지?”

백민석이 웃으며 말했다. 플랜트팩토리의 기억이 떠올랐다는 얼굴이다.

플랜트팩토리는 재배환경 자체를 보는 것뿐만 아니라 카메라로 작물의 상태를 확인했다.

“샐러드가 정말 잘 자라네.”

백민석이 샐러드 컨테이너의 채소를 보며 말했다.

그는 프로그램 개발일로 작물이 자라는 모습을 자세히 보지는 못했다.

오늘에서야 여유롭게 샐러드를 보고 있다.

“한번 먹어봐.”

“그냥 먹으라고? 그냥 먹어도 탈이 나거나 그러지 않아?”

백민석이 카이피라 잎을 조심스럽게 입에 넣었다.

“부드럽네, 맛도 괜찮고.”

* * *

그 시각 지리산 농부들의 목장.

설민주는 앞치마를 두르고 열심히 뭔가를 만들고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인 주명희 여사가 다가왔다.

설민주는 어머니가 온 줄도 모르고 일에 열중했다.

“뭘 그렇게 만드는 거야?”

“어머나, 깜짝이야.”

“놀랐니?”

주명희는 설민주가 만들고 있는 것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샐러드네, 컨테이너에서 재배한 거야?”

설민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샐러드 컨테이너에서 재배한 버터헤드와 카이피라로 믹스 샐러드를 만들고 있었다.

샐러드 안에 방울토마토도 들어있었다.

“방울토마토는 어디서 난 거야?”

“이거 상철 씨가 키운 거예요.”

“상철이가 방울토마토도 키워?”

“블루베리 하우스 안에서 이것저것 다 키워요.”

“재주 좋네, 어디 한번 맛 좀 볼까?”

주명희는 접시에 담긴 샐러드 들었다. 포크를 들고 먹으려는 순간이었다.

“잠깐만요.”

“왜 먹으면 안 되니?”

“드레싱을 뿌려야죠.”

“드레싱?”

설민주는 요거트로 드레싱을 만들기 시작했다.

목장에서 만든 요거트에 다진 양파와 설탕, 식초를 넣고 잘 저었다.

“요거트 드레싱 완성이요.”

설민주는 샐러드 접시에 요거트 드레싱을 보기 좋게 올렸다.

“잘 섞어서 드세요.”

주명희는 요거트 드레싱을 잘 섞어 샐러드 맛을 보았다.

“어머나, 이 맛은?”

주명희는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왜요? 맛이 이상해요?”

설민주는 당황한 표정으로 버터헤드 입을 한입 베어 물었다.

아삭아삭 씹히는 소리마저도 맛있게 들렸다.

“엄청 맛있다, 팔아도 되겠어!”

주명희가 웃으며 말했다.

“엄마도 참.”

설민주는 요거트 샐러드를 넉넉하게 만들어 목장 식구들에게 나눠주었다.

* * *

백민석과 함께 사무실로 돌아왔다.

사무실 안이 썰렁했다.

“다들 어디에 있는 거지?”

백민석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때 회의실 문이 열리고 한기탁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침 잘 왔네, 들어와.”

회의실 안에 사무실 동료뿐만 아니라 서우영과 이영호도 함께 있었다.

다들 뭔가를 먹고 있었다.

“앉아, 네 것도 준비해 놨으니까.”

요거트 샐러드였다. 모두 요거트 샐러드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백민석과 나에게도 샐러드 접시를 줬다.

“목장에서 보내왔어, 자기들만 먹기 미안하다고.”

샐러드에 요거트 드레싱이 잘 어울렸다.

“방울토마토는 상철이 솜씨고.”

한기탁이 방울토마토를 한입에 넣었다.

다들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지원 사업이 진행되기 전에 샐러드 컨테이너의 기능을 완벽하게 익힐 작정이었다.

재배한 샐러드는 주변 사람들과 나눴다. 목장에도 나눈 게 이런 모습으로 돌아왔다.

요거트 드레싱을 만든 건 설민주라고 짐작됐다. 김상철의 방울토마토도 샐러드와 잘 어울렸다.

샐러드 시식회가 끝나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한기탁과 난 회의실에 남았다. 청년 농부 지원 사업과 관련해서 상의할 게 있었다.

“청년 농부는 하동군에서 선정한다고 들었어.”

“네, 그쪽에서 선발할 거예요.”

“경쟁률이 치열하던데, 상철이 떨어지는 거 아니야?”

한기탁이 웃으며 물었다.

“아마 그럴 일은 없을 거예요.”

“그렇게 확신하다니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거야?”

“상철 씨 각오가 보통이 아닌 것 같다는 뜻이에요.”

“상철이 눈빛이 다르긴 했어. 그건 그렇고 상의할 거 뭐야?”

“샐러드 판로 개척이요.”

“아직 청년 농부 선발도 안 했는데 판로 개척을 걱정해야 하나?”

“지금부터 고민해 놔야 해요. 청년 농부를 선발하면 바로 재배에 들어갈 거니까요.”

“하긴, 샐러드 컨테이너는 바로 재배가 가능하지? 다른 작물처럼 오래 기다릴 것도 없고.”

“네, 재배가 시작되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샐러드가 나올 거예요.”

한기탁도 샐러드 컨테이너가 로테이션으로 돌아간다는 걸 알고 있었다.

14개의 샐러드 컨테이너가 하루씩 시차를 두고 샐러드를 재배하게 된다.

매일 매일 하나의 컨테이너에서 샐러드를 수확할 수 있었다.

“강민수 비서실장은 뭐라고 해? 그쪽에서는 판로 개척에 대해서 별말 없었어?”

“말을 아끼는 것 같았어요. 조심스러운가 봐요.”

아무리 하동군에서 지원하는 사업이라고 해도 판매는 민감한 부분이었다.

이 청년지원사업이 안정화되고 성과를 낸다면, 지자체 차원에서 판로 연결에 도움을 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단계에선 무조건 우리 물건을 사줄 수는 없는 것이다.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었다.

강민수는 첨단 농업을 선도하는 것에 의의를 두는 듯했다.

“첨단 농업에 지원은 아끼지 않겠지만, 파는 건 우리 몫이란 뜻이네.”

“맞아요, 판매는 우리 몫이에요.”

한기탁이 포인트를 정확하게 집었다.

“우리가 발로 뛰어야겠네.”

기대하던 반응이었다. 그도 적극적으로 나서주길 바랐다.

내가 생각하지 못한 곳도 뚫을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이번 일은 나도 함께 뛸 거예요.”

“지원 사업을 관리해야 하지 않겠어?”

“그 일도 하면서 병행하려고요.”

“우리 대표님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하겠네.”

“선배와 함께하면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되도록이면 매일 샐러드가 필요한 곳에 납품하고 싶었다.

이미 생각하고 있는 곳이 있었다.

거래처는 많을수록 좋았다. 내가 그곳을 확정지을 동안 한기탁도 함께 뛰길 바랐다.

* * *

지원 사업에 참여할 청년 농부 선발이 끝났다.

한기탁의 말대로 경쟁률이 치열했다.

하동에 거주하는 농부들로 제한을 했지만, 지원자가 100명이 넘었다.

하동 군수 김창대도 면접관으로 참여했다. 그가 이번 지원 사업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나를 포함한 지리산 농부들은 청년 농부 선발에 참여하지 않았다.

지리산 농부들의 일원도 이번 사업에 지원했기 때문이다.

14명의 청년 농부 중에 내가 아는 인물이 두 명이나 있었다.

김상철은 가볍게 합격했다. 가장 열정적으로 면접에 임했다고 전해 들었다.

또 한 명의 인물은 의외의 인물이었다. 그는 합격자 발표가 나자 모습을 드러냈다.

“형, 저 지원 사업에 선발됐어요.”

방현식이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그가 이번 지원 사업에 신청할 줄은 몰랐다.

그는 매일 참기름과 호두 기름을 짜고 있었다. 지원 사업까지 병행하기는 힘들 거라고 여겼다.

그가 선발됐다는 기쁨보다 궁금증이 앞섰다.

“바쁘지 않아? 요즘 일이 많다고 들었는데.”

“매일 주문이 들어오고 있죠. 지금도 일하다가 왔어요.”

“그렇게 바쁜데 이 일을 할 수 있겠어? 설마 어머니에게 일을 다 맡기려는 건 아니지?”

“아니요, 어머니 혼자서는 절대 못 하시죠.”

“어떻게 할 생각이야?”

“아르바이트생을 구했어요.”

“아르바이트생?”

“나은이 누나요.”

방현식이 웃으며 말했다. 예나은은 그와 함께 곶감 교육을 받은 인물이었다.

예나은이 일을 돕기로 한 것이다. 그녀는 곶감 농사도 끝나고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이번 지원 사업에 꼭 참여하고 싶었어요. 저도 첨단 농업에 관심이 있어요.”

김상철과는 다르지만, 그 역시 의욕이 불타고 있었다.

“관심을 가진 이유가 뭐지?”

“지원 사업 설명회에서 들었어요. 지금은 샐러드밖에 재배가 안 되지만 나중엔 다양한 작물로 품목을 늘려갈 거라고 하더라고요.”

설명회에서 마이크를 잡은 건 민요한이었다. 이번 지원 사업 일정에서 유일하게 지리산 농부들의 구성원이 참여한 일이었다.

하동군에서도 전문가가 없었기에 우리에게 부탁했다.

그때 민요한이 한 말 같았다.

“맞아, 지금은 샐러드만 재배하지만 다른 작물로 늘려갈 계획이 있어.”

“참깨와 들깨도 재배가 가능하겠죠?”

“물론이지.”

방현식이 이번 지원 사업에 지원한 까닭이었다.

그는 직접 재배한 참깨와 들깨로 기름을 짜고 싶어 했다.

좋은 발상이었다.

“아마 호두는 어려울 거야.”

“아무래도 나무는 어렵겠죠.”

청년 농부 지원 사업은 하동 군청이 지정한 장소에서 시작됐다.

장소는 농업지원 센터와 가까운 곳으로, 이전에 센터에서 실습장으로 활용하던 공간이었다.

전기와 물이 필수였기에 최소한의 시설이 있는 곳이 필요했다.

하동군에 요청한 사항이기도 했다.

청년 농부 선발이 끝났고 샐러드 컨테이너의 제작도 막바지에 들어갔다.

판로 개척을 위해 밑밥을 깔아두어야 할 순간이 다가왔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