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군청에 문서를 보낸 일주일 지났다. 아직 군청에서는 어떤 소식도 없었다.
한기탁은 매일 나에게 물었다.
“오늘도 소식 없었어?”
“네, 아직 소식이 없네요.”
“전화라도 해 볼까?”
“연락이 곧 올 겁니다.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동 군수 김창대가 이 아이디어에 관심이 많을 거라 믿고 있었다.
지금은 2008년 초반이다. 아직 지방자치단체에서 첨단 농업을 육성한 예는 없었다.
지자체장이라면 탐낼만한 사업이다.
당장 연락이 없는 건 작은 기싸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수경재배 시설을 구축 중인 상태였다. 시설이 완성되면 그때 연락을 해도 늦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 * *
사무실과 목장을 오가며 바쁜 날을 보냈다.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온 기분이 들었다.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려는 순간이었다.
전화벨이 울렸다.
기다리던 전화였다.
“내일이면 하동으로 출발할 수 있을 거 같아.”
이장우가 유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뒤이어 목소리가 들렸다.
이동춘이었다.
“아주 잘 됐습니다. 민요한 씨 검수 작업도 끝났고요.”
내일이면 샐러드 컨테이너가 도착한다.
첨단 농업의 시작
샐러드 컨테이너가 목장에 도착했다.
이장우가 컨테이너를 어디에 놓을지 물었다. 샐러드 컨테이너를 놓을 장소는 이미 확보해 두었다.
목장 운영을 맡고 있는 설강인과도 협의가 된 곳이었다. 목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블루베리 농장이 있었는데, 그 블루베리 농장 옆에 놓을 생각이었다.
블루베리 농장엔 전기와 수도 시설이 있기 때문이다.
수경재배에 전기와 물은 필수였다. 처음엔 목장 옆에 둘까도 생각했지만, 목장 사람들과 일하는 동선이 겹쳤다.
블루베리 농장은 겨울인 지금은 계절의 영향으로 한가했다. 샐러드 컨테이너를 놓기 안성맞춤이었다.
블루베리 농장을 맡고 있는 김상철은 샐러드 컨테이너를 보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게 그 수경재배 시설인가요?”
그 역시 수경재배를 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막상 눈으로 보자 믿기지 않는 것 같았다.
외형은 평범한 컨테이너였기 때문이다.
40피트 컨테이너로, 길이 12미터에 높이가 2.6미터였다.
컨테이너를 계획했던 자리에 놓고 전원을 연결했다.
민요한이 컨테이너의 문을 열었다.
“샐러드 컨테이너를 공개하겠습니다.”
차가운 느낌의 외형과 달리 내부는 따뜻했다. 채소를 키우는 조명에 불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가운데 사람이 다닐 통로가 있고, 좌우로 샐러드 재배할 선반이 있었다.
“3단 선반으로 만들었어.”
옆에 있던 이장우가 선반을 보며 말했다.
“3단으로 구성한 건 이장우 씨 의견이었어요. 전 원래 2단 정도로 구성할 계획이었거든요.”
“작물을 좀 더 많이 재배할 수 있을 거 같아서. 덕명이 네가 부탁한 것도 있고.”
민요한의 말에 이장우가 답했다.
이장우의 말대로 내가 부탁한 사항이었다. 난 샐러드 컨테이너를 알뜰하게 사용하길 원했다.
시설을 제작 중일 때도 그에게 당부했다.
난 컨테이너 좌우에 있는 선반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30cm 간격으로 구멍이 뚫려 있었다.
“이 구멍에 작물을 심는 거군요.”
“네, 배지를 넣을 구멍이죠.”
배지는 작물을 고정하는 고체 형태의 물체다. 수경재배는 흙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작물을 고정할 장치가 필요하다.
작물을 고정할 용도로 고체 형태의 배지를 사용한다.
일반적으로 암면을 사용한다. 갈색의 스펀지처럼 보이지만, 실은 암석을 1600도 이상의 고온으로 녹인 뒤 솜사탕 제조 방식으로 뽑아낸 물질이다.
배지로 고정한 채소 잎을 구멍에 끼우면 수경재배가 시작된다.
“샐러드를 심는 구멍은 모두 몇 개죠?”
“좌측과 우측을 다 합쳐서 400개입니다.”
“생각보다 많은 양이네요.”
난 이장우를 보며 말했다. 그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시선이 선반 위를 향했다.
선반 위쪽에 led 전등이 달려 있었다.
“빛은 8,500lux에 맞춰 있어요, 적어도 하루에 77,000lux는 빛을 받아야 하니까요.”
민요한이 조명을 가리키며 말했다.
빛은 채소를 키우기 위한 필수 요소다.
민요한의 말대로 하루로 77,000lux의 빛이 필요했다.
선반 아래는 영양액과 물이 지나가는 파이프가 연결돼 있었다.
“물은 순환식으로 돌아가게 설계했어, 에어펌프도 함께도 작동하고.”
이장우는 파이프를 보며 말했다.
영양액과 물을 주는 곳은 컨테이너 밖에 있었다.
순환식으로 돌아가지만, 물과 양액을 갈아줘야 할 때가 있었다.
“온도와 습도는 어떻게 조절하는 거지?”
“컨테이너에 달린 냉동 시스템이 맞지 않아서 에어컨을 설치했어. 민요한 씨의 요청도 있었고.”
온도와 습도를 제어하는 것 말고도 공기의 흐름도 중요했다.
광합성을 위해 이산화탄소가 충분히 확보돼야 하기 때문이다.
샐러드 컨테이너는 온도, 습도, 광량, 이산화탄소의 농도까지 제어가 가능했다.
완벽한 설비의 수경재배 시설이었다.
확인을 마치고 컨테이너 밖으로 나왔다.
“대단하네요, 생각했던 것 이상이에요.”
“저는 잔소리밖에 하지 않았어요, 수경재배 시설을 제작한 건 이장우 씨와 아버님이죠.”
민요한은 이장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장우는 웃으며 답했다.
“민요한 씨 말이 맞긴 해. 아버지도 민요한 씨 잔소리에 질려버렸으니까.”
이장우의 말에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바로 샐러드를 심어도 될까요?”
민요한에게 물었다.
“물론이죠, 영양액만 준비됐다면 문제없습니다.”
“영양액은 이미 준비해 놨습니다.
서우영과 이영호가 만든 영양액이었다. 목장 창고에 영양액을 준비해 두었다.
“그럼 바로 재배에 들어갈 수 있겠네요.”
민요한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럼 난 어떻게 할까?”
이장우가 물었다.
“이 주쯤 이곳에 머물 수 있을까?”
“좋아, 그 정도는 생각하고 있었어.”
* * *
그날 저녁 목장에서 작은 환영회가 있었다.
민요한과 이장우가 주인공이었다.
목장, 사무실, 연구소 동료를 포함해서 양초를 만드는 인원까지 전부 모였다.
목장에서 유제품 체험을 하는 대형 천막 안이 환영회 장소였다.
테이블에 불판이 놓였다. 불판 옆에 목살과 삼겹살이 있었다.
할머니들이 가져온 묵은지가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오늘은 무슨 좋은 일이 있는 거야?”
매장 일을 마치고 온 김꽃님 할머니가 물었다. 매장 식구들에겐 소식이 늦게 전달된 모양이다.
“네, 좋은 일이 있어요. 오늘부터 지리산 농부들이 채소를 키우게 됐거든요. 새 식구도 들어왔고요.”
“채소를 키운다고? 설마 밭일을 해야 하는 건 아니지?”
김꽃님 할머니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왜요? 밭일이 싫으세요?”
“아이고, 난 허리가 안 좋아서.”
김꽃님 할머니 주변에 있던 할머니들도 맞장구를 쳤다.
모두 허리가 안 좋다며 한소리씩 거들었다.
채소를 키운다고 하니 밭일을 할 게 걱정된 것이다.
“밭일은 많이 힘드시죠?”
“힘들지. 하루 종일 허리를 구부려야 하니까.”
어릴 때부터 밭일을 하며 자란 세대였다. 그 일이 얼마나 고단한지 몸으로 알고 있었다.
“힘든 농사일은 절대로 시키지 않을 테니 염려 마세요.”
내 말에 다들 안심이 된 모양이다. 할머니들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오래간만에 모두 한자리에 모였네요. 오늘은 지리산 농부들의 새로운 식구를 소개할까 합니다. 민요한 씨 앞으로 나와 주세요.”
민요한은 동료들 앞에서 자신을 소개했다. 그의 마지막이 말에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이제 고기 싸 먹을 채소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다 키울 테니까요.”
민요한이 소개를 마치고 나갔다. 반응이 뜨거웠다. 난 이장우도 불렀다.
이장우는 회식 전에 부탁했다. 지리산 농부들의 일원이 아니라 소개까지는 부담스럽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앞으로 나왔다.
“이 친구 소개는 제가 대신하죠.”
이장우가 눈을 껌뻑이며 날 쳐다보았다.
“인천 정밀의 이장우란 친구입니다. 샐러드 컨테이너를 만든 엔지니어입니다. 기술이 대단한 사람이죠. 앞으로 지리산 농부들과 함께 일할 겁니다. 박수 부탁드립니다.”
박수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차린 건 없지만 식사 맛있게 하세요.”
불판에 고기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내 옆에 있던 이장우가 그제야 입을 열었다.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 한 거야? 내가 여기 계속 있을 것처럼.”
“왜 같이 일하기 싫어?”
“그건 아니지만 컨테이너 일 끝나면 끝났다고 생각해서...”
“앞으로 할 일이 많을 거야.”
“할 일이 많다면야 나야 좋지, 아버지도 좋아할 거고.”
이장우가 웃으며 말했다.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였다.
설강인이 나에게 다가와 막걸리 잔을 건넸다.
“나도 샐러드 컨테이너를 봤네, 정말 대단하더군.”
그는 즐거운 얼굴로 막걸리를 한잔 마셨다.
“목장 옆에 샐러드 농장이 생기다니, 궁합이 좋아.”
설강인이 목청을 높여 말했다.
“저도 좋아요, 요거트 샐러드를 만들 수 있으니까요.”
어느 틈에 나타난 설민주였다.
“그렇구나, 요거트 샐러드도 맛볼 수 있겠구나.”
부녀의 호흡이 잘 맞았다.
“거기에 블루베리도 추가요.”
맞은편에 있던 김상철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좋은 생각이라며 한마디씩 했다.
“샐러드 컨테이너는 조만간 이사 갈 수도 있습니다.”
내 말에 모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김상철은 놀란 토끼처럼 날 바라보았다.
“이사라니?”
설강인이 물었다.
“네, 하동군과 함께 사업을 진행하게 되면 이사 갈 수도 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자세하게 말해 보게나.”
김상철이 가까이 다가와 귀를 기울였다. 그는 채소를 재배한다는 말에 무척이나 좋아했다.
블루베리를 키우고 있지만, 지금은 수확의 계절이 아니었다. 그 사이 채소를 재배할 것을 기대한 것 같았다.
난 하동군과 함께 벌일 일을 자세하게 이야기했다.
만약 하동군과 함께 사업을 진행하게 된다면 목장에서는 샐러드를 키울 수 없었다.
하동군이 지정하는 장소에서 사업을 진행할 가능성이 높았다.
“무슨 말인지 이해했네. 좀 아쉽긴 하지만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하네.”
“너무 아쉬워할 거 없습니다. 목장 주변에도 대규모 농장을 세울 계획이니까요.”
“그것도 컨테이너로 하는 건가?”
“아니요, 컨테이너가 아니라 대형 건물이 있어야겠죠. 작물을 키울 대규모 시설이요.”
“처음 컨테이너를 말할 때도 그랬지만 머릿속으로 상상이 가지 않네. 내 머리로는 첨단 농업을 따라가기 힘든 것 같네.”
“못 따라가긴요, 목장에서 로봇 착유기를 가장 잘 다루시잖아요.”
“하긴, 내가 그건 내가 잘 다루지.”
설강인이 기분 좋게 웃었다.
그때였다. 김상철이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아껴둔 말을 꺼냈다.
“혹시, 저도 지원할 수 있을까요?”
“그게 무슨 말이죠?”
김상철은 하동군과 함께 하는 사업에 자신도 지원할 수 있는지 물었다.
난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내가 당장 대답을 하지 않자, 김상철은 먼저 꼬리를 내렸다.
“블루베리며 목장 일도 있는데 제가 너무 욕심을 부렸나 보네요.”
그는 힘없이 돌아섰다.
“왜 벌써 돌아서요, 대답도 하지 않았는데.”
김상철이 고개를 돌렸다.
기대하고 있는 눈빛이었다.
“아직 지원 사업이 확정된 건 아니에요. 될지 안 될지 모른다는 뜻이죠. 만약 지원 사업이 확정되면 지원하세요.”
“정말요?”
“하동에 있는 청년 농부 대상이니까, 상철 씨도 지원 대상에 들어가요. 대신 상철 씨가 맡고 있는 일을 충실히 한다는 조건이에요.”
“당연하죠, 잠자는 시간을 줄여서라도 할 일은 해야죠.”
“너무 무리하진 말고요.”
“감사합니다, 열심히 해볼게요.”
“그런데 그 일을 하고 싶은 이유가 뭐죠?”
그가 작물 재배에 관심이 있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해서요.”
“대단한 일이요?”
“만약 샐러드 컨테이너가 가능하다면 세상을 구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세상을 구한다니 그의 생각이 더 궁금해졌다.
“컨테이너만 있으면 작물을 키울 수 있잖아요. 날씨와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요.”
김상철은 샐러드 컨테이너를 보고 느낀 점을 이야기했다.
술은 입에도 대지 않은 것 같았다. 오늘따라 눈이 총명해 보였다.
그는 샐러드 컨테이너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담소를 나누던 사람들도 김상철의 말에 주목했다.
웃고 떠들고 있던 민요한도 말을 멈추고 경청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많은 농부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멋진 생각이다. 나도 그의 생각에 동의했다.
* * *
김창대에게 연락이 온 건 그로부터 이 주 뒤였다.
처음엔 비서실장 강민수가 전화를 했다. 지원 사업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난 최대한 빠른 검토를 원한다고 전했다.
강민수는 샐러드 컨테이너를 확인한 뒤에 결정할 문제라고 했다.
확인이 가능하다는 말에 그는 깜짝 놀란 것 같았다. 곧이어 군수 김창대에게 전화가 왔다.
“확인이 가능하다니 그게 무슨 뜻인가?”
“말 그대로입니다. 샐러드 컨테이너가 작동하는지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직접 오셔서 확인하시면 됩니다.”
“지금 당장 확인할 수 있다는 뜻인가?”
김창대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거듭 확인했다.
“네, 지금 오셔도 문제없습니다.”
전화를 끊고 목장으로 출발했다. 김덕명은 분명 샐러드 컨테이너가 작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창대는 컨테이너 안에서 작물이 자라는 모습이 무척 궁금했다.
14명이어야 하는 까닭
김창대는 비서실장 강민수와 함께 목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김덕명이 말한 샐러드 컨테이너를 보기 위해서였다.
“내가 알아보라고 한 건 조사해 봤나?”
“네, 조사를 마쳤습니다.”
김창대는 강민수에게 물었다.
지방자치단체들의 올해 지원 사업 계획들이었다.
김창대는 다른 지역의 청년 지원 사업이 궁금했다.
“청년 농부에게 첨단 농업을 지원하는 지역이 있던가?”
“없었습니다, 이번 일이 진행하게 된다면 전국 최초가 되겠습니다.”
김창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임기는 올해가 마지막이었다.
지금까지 진행했던 청년 농부 지원 사업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 컸다.
이번 지원 사업으로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었다.
“이번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끝날 수 있다면 재선도 문제없을 겁니다.”
비서실장 강민수가 넌지시 말했다.
“재선이라...”
선거 욕심으로 이번 일을 추진하는 건 아니었다.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이 더 컸다.
고령화되고 있는 지역 사회가 걱정이었다. 지금의 흐름이라면 언젠가 지역이 소멸할 거라고 여겼다.
* * *
난 민요한과 함께 샐러드 컨테이너에서 살피고 있었다.
샐러드 컨테이너 안은 식물원을 방불케 했다.
좌우의 선반에 초록의 샐러드가 활짝 피어나 있었다.
오른쪽 선반엔 버터헤드가 탐스러운 둥근 잎을 자랑하고 있었고, 왼쪽 선반에는 카이피라가 물결치는 이파리를 뽐내고 있었다.
“한 번 드셔보세요.”
민요한이 나에게 카이피라 잎을 건넸다.
“그냥 먹어도 되나요?”
“그냥 먹어도 돼요.”
민요한이 미소 지으며 물었다.
“씻지 않아도 되나요?”
“네, 샐러드 컨테이너는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으니까요.”
이론상으로 그의 말이 맞았다. 샐러드 컨테이너는 외부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먼지와 벌레 등이 작물에 영향을 줄 일이 없었다. 화학비료도 주지 않기에 바로 먹을 수 있었다.
카이피라 잎을 한입에 넣었다.
잎이 부드럽고 아삭거리는 식감이 좋았다. 씹을 때마다 단맛이 느껴졌다.
“맛있죠?”
“신선하고 맛이 좋네요.”
처음으로 컨테이너에서 재배한 샐러드를 맛보았다.
맛이 생각보다 좋았다.
“이것도 한번 먹어 봐야겠네요.”
버터헤드의 잎사귀를 하나 뜯었다. 버터헤드는 둥근 잎이 특징인 샐러드 채소다.
잎이 둥글둥글해 외형이 귀엽다. 귀여운 외형만큼이나 인기가 좋은 샐러드 채소다. 믹스용 샐러드와 햄버거용으로도 많이 쓰인다.
버터헤드도 씹을수록 단맛이 느껴졌다.
“맛있다는 표정이네요.”
민요한은 내 얼굴을 보고 말했다.
샐러드 맛도 맛이지만 기분이 좋았다. 짧은 시간 안에 이룩한 성과였다.
캘리포니아 농업 박람회에서 돌아와 몇 달 만에 샐러드 컨테이너를 완성했다.
물론 민요한이 없었다면 지금의 성과는 기대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하동군청 비서실장 강민수의 전화였다.
“도착했습니다.”
민요한과 같이 밖으로 나갔다. 김창대와 강민수가 이미 도착해 있었다.
“오셨군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난 그들에게 민요한을 소개했다. 민요한에게도 중요한 손님이 올 거라고 말해 두었다.
민요한은 방금 전 장난스러웠던 얼굴을 지웠다. 격식을 차려 김창대와 강민수를 맞았다.
“이게 그 컨테이너군.”
김창대는 샐러드 컨테이너를 유심히 살폈다.
“겉으로 봐서는 잘 모르겠군, 저 안에서 식물이 자라고 있다는 게.”
“네, 겉으로 봐서는 알 수 없습니다. 안으로 들어가 보시죠.”
난 그들을 컨테이너 안으로 안내했다.
김창대보다 강민수가 더 놀란 것 같았다. 이 정도 수준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이게 정말 여기서 자란 게 맞나?”
김창대는 버터헤드의 잎사귀를 유심히 들여다보며 물었다.
빛도 흙도 없는 곳에서 작물이 자라고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 것 같았다.
난 버터헤드의 잎사귀를 하나 뜯었다.
“드셔보시죠?”
“이걸 바로 먹어도 되나?”
“수경재배에선 농약을 줄 필요가 없습니다. 안심하고 드셔도 됩니다.”
김창대는 버터헤드의 잎사귀를 입에 넣고 조심스럽게 씹었다.
“맛이 좋군.”
강민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비서실장님도 하나 드셔보시죠.”
강민수의 입에도 버터헤드의 잎사귀가 들어갔다. 아삭아삭 씹히는 소리가 들렸다.
김창대와 강민수는 샐러드를 씹으며 날 쫓았다.
난 샐러드 컨테이너의 시설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했다.
“컨테이너는 일정한 광량을 작물에 제공합니다. 하루에 77,000lux의 빛을 공급하죠.”
난 선반마다 달린 조명등을 가리키며 말했다.
“인공 광으로 인해 컨테이너가 뜨거워집니다. 작물이 감당하기 힘든 열기죠. 그 열기는 에어컨을 통해 조절합니다. 샐러드가 자라기 최적의 온도로 말이죠.”
온도계는 18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항상 15~20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상대습도 범위는 50~80%에 맞춰져 있고요. 이산화탄소의 농도는 350ppm보다 낮은 경우, 외부의 공기를 유입시켜 이산화탄소 농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김창대는 이야기를 다 듣고 입을 열었다.
“미래에 와 있는 기분이군.”
강민수도 김창대의 말에 동의하는 표정이었다.
“시설은 충분히 봤네, 나가서 이야기하지.”
난 김창대의 차에 탔다. 민요한에게 함께 갈 것을 권했지만 사양했다. 아무래도 부담스러운 모양이었다.
* * *
하동 군청에 도착했다. 강민수는 군청 안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김창대는 그의 말에 동의했다.
군수실에 들어가자 김창대는 아껴둔 말을 꺼냈다.
“기대 이상이네, 샐러드 채소는 얼마 만에 키운 건가?”
“4주가 걸렸습니다.”
“한 달도 안 걸려서 재배했군.”
“2주로 단축할 계획도 있습니다.”
“2주 만에 재배가 가능하단 말인가?”
“모종을 만드는데 2주가 걸리죠. 그리고 성숙한 샐러드로 만드는 시간이 2주 필요합니다.”
“모종을 미리 만들어 놓겠다는 말이군.”
그가 정답을 말했다. 모종을 미리 만들어 두면 빠른 성장이 가능했다.
모종을 위한 컨테이너를 따로 두면 2주 만에 재배가 가능한 것이다.
“약속대로 지원 사업을 함께 추진하겠네.”
예상대로 지원 사업이 진행되는 순간이다.
샐러드 컨테이너를 본 이상 더 미룰 이유가 없었다.
“우리도 지원 사업의 규모나 세부적인 내용을 미리 따져봤네. 그런데 작은 문제가 하나 있네.”
“어떤 문제인가요?”
“자네가 요구한 대로 청년 농부를 다 받을 수는 없을 것 같네.”
이미 각오하고 있던 내용이었다. 지원 사업은 예산과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자네는 20명의 청년 농부를 받자고 제안했지만, 조정이 필요할 것 같네.”
김창대는 비서실장을 불렀다. 강민수는 준비한 서류를 김창대에게 넘겼다.
김창대는 서류를 보며 말했다.
“13명 정도는 가능하네. 자네 생각은 어떤가?”
“14명이면 좋을 거 같습니다.”
“한 명을 더 추가하는 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인가?”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유가 뭔가?”
“2주 수확을 맞추기 위해서입니다.”
“2주 수확이라...”
김창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계산기를 두드려 보는 듯했다.
“샐러드 컨테이너가 로테이션으로 돌아간다는 뜻이군.”
김창대는 이해가 빨랐다. 샐러드 컨테이너는 하루씩 차이를 두고 샐러드를 재배할 생각이었다.
하루에 한 컨테이너에서 작물을 출하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만, 최소 15개가 필요했다. 이주면 14일이다. 간격을 두고 작물을 재배할 컨테이너 14개와 모종을 위한 컨테이너 하나가 필요했다.
“강 실장, 자네 생각은 어떤가?”
“예산은 이미 정해져 있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
“어떤 방법인가?”
“자부담 비율을 조금 높이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런 방법이 있었군.”
청년 농부 지원 사업은 무상으로 지원하는 사업은 아니었다.
참여하는 청년 농부도 비용을 함께 부담해야 했다.
내가 책정한 자부담금은 전체 비용의 20%였다.
자부담금을 조금 높이는 방안은 좋은 아이디어였다.
“조금씩 양보해서 한 명을 더 받는 것으로 하지. 그 정도면 해 볼 만 한가?”
“좋습니다.”
청년 농부들에게 자부담금은 큰 부담이 되지 않을 거라고 여겼다. 군의 보증으로 저리의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판매만 원활하게 돌아간다면 대출금도 금방 상환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매일 샐러드를 출하한다는 내용은 문서에서 보지 못했네.”
“작물을 직접 재배하며 떠오른 아이디어입니다.”
“샐러드 컨테이너는 1년 내내 생산이 가능한가?”
“1년 내내 날씨와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고 재배가 가능합니다.”
“그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생산이 가능하겠군.”
“가능합니다.”
“난 여기까지 하지. 세부적인 내용은 강 실장하고 이야기하게.”
“저희 사업을 채택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난 군수실을 나오기 전에 김창대에서 말했다.
그는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강민수 실장과 함께 군수실을 나왔다.
잠시 그의 사무실에 들렀다.
“앞으로 저와 긴밀하게 소통해야 할 겁니다. 이 사업은 우리 군에서 벌이는 일 중에서 가장 큰 일이 될 거니까요.”
“네, 문제없이 진행하겠습니다.”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길 기대합니다.”
하동 군청에서 이야기를 마치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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