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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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탁과 백민석에게 소식을 알렸다.

민요한이 우리와 함께 일하게 됐다고 말하자 백민석이 무척 기뻐했다.

그가 어떤 역할을 할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배가 숙소 좀 알아봐 주세요.”

“내일 당장은 쉽지 않을 거야, 우선 목장에 있는 임시 거처를 마련해 놓을 게.”

“네, 수고 좀 해주세요.”

이제 민요한과 함께 하동으로 가는 일만이 남았다.

민요한과 함께 저녁을 같이 먹었다.

제주도의 마지막 만찬은 갈치조림으로 장식했다.

1인분은 시킬 수 없어서 먹을 수 없던 음식이었다고 했다.

민요한은 갈치를 깔끔하게 발라 먹었다.

저녁을 먹다 자연스럽게 일 이야기가 나왔다.

“혹시 수경재배에 대해 구상해 놓은 게 있나요?”

“우선 컨테이너로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플랜트팩토리에서 얻은 정보인가요?”

“그게 무슨 말이죠?”

“플랜트팩토릭도 수경재배 초기에 컨테이너를 이용했어요. 알고 계신 거 아니었나요?”

“아니요, 전혀 몰랐습니다.”

“아무튼 시작이 아주 좋네요. 컨테이너라.”

컨테이너로 시작하는 이유는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였다.

처음부터 무리하게 일을 벌이고 싶지 않았다.

“컨테이너에 완벽한 수경재배 시설을 구축하고 싶습니다.”

민요한의 눈을 보며 말했다.

“컨테이너 설비 작업은 저도 함께했습니다. 작업했던 파일도 가지고 있죠. 참고가 될 겁니다. 그러고 보니 엔지니어도 있나요? 기계를 만질 줄 아는 사람이 있어야 할 텐데요.”

“네, 저희와 함께 일하는 엔지니어 팀이 있습니다.”

“준비를 잘해 놓고 계셨네요. 참고로 컨테이너는 냉동 컨테이너가 좋습니다.”

“냉동 컨테이너도 사용하는 이유가 뭐죠?”

“온도 때문입니다. 인공 광 때문에 컨테이너가 뜨겁게 달아오르거든요.”

작물을 비추는 빛이 문제였다. 인공 광으로 뜨거워진 실내 온도를 낮춰야 한다.

“컨테이너는 새것을 사실 필요 없습니다. 냉동 시설만 작동하는 중고가 좋습니다. 어차피 내부는 새로 만들어야 하니까요.”

“네, 잘 참고하겠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이동했다.

제주도에서의 일정도 끝나가고 있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수경재배 시설을 구축할 일만 남았다.

수첩을 꺼내 일정을 정리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인천 정밀’의 이장우였다.

“너에게 보고할 게 하나 있어서.”

“보고라니?”

“컨테이너 알아왔어, 냉동 컨테이너를 살까 해.”

“냉동 컨테이너라고?”

안 그래도 수첩에 그 내용을 적고 있었다. 이장우가 귀신같이 내 마음을 꿰뚫어 봤다.

“왜 이상해? 네가 온도를 조절해야 한다고 했잖아.”

“맞아, 아주 좋아.”

“새것은 과하게 비싸서 중고로 사려고. 어차피 내부는 설비를 새롭게 해야 하니까.”

민요한이 한 말을 앵무새처럼 따라 하는 것 같았다.

“아직 결제는 하지 않았어. 아버지도 너에게 먼저 물어보라고 했고.”

“그건 바로 결제하면 될 거 같아. 그리고 한 가지 부탁이 있어.”

“뭔데?”

“너 내일 하동으로 내려와라.”

“하동으로?”

“왜 바빠?”

“아무리 바빠도 갑이 오라면 을이 가야지.”

“갑과 을이 아니라 한 팀이지.”

“한 팀 좋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팀장님.”

드디어 수경재배를 위한 특별팀이 전부 모일 수 있게 됐다.

성장이 빠른 샐러드 채소

제주도 일정을 마무리 짓고 하동으로 이동했다.

갈 때는 혼자였지만 돌아올 때는 둘이 됐다. 옆자리에 민요한과 함께였다.

“일하러 가는 게 아니라, 여행 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드네요.”

민요한은 창밖 풍경을 보며 말했다.

“하동은 어떤 곳인가요?”

“아름다운 곳입니다. 대봉감과 녹차로 유명하고요.”

“궁금하네요, 어떤 모습일지. 그런데 어떤 작물을 재배할지는 생각해 보셨나요?”

냉동 컨테이너를 활용해 수경재배를 할 것이라고 이야기가 된 상태였다.

재배할 작물에 대해선 아직 자세하게 논의하진 않았다.

“처음엔 우리 밀을 생각했습니다.”

“밀이라...”

민요한은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밀은 잠시 미루는 게 어떨까요?”

“어떤 이유에서죠?”

“플랜트팩토리에 있을 때 여러 가지 작물을 실험했습니다. 밀도 그중 하나였죠. 밀뿐 아니라 다른 곡물도 시도해봤습니다. 쉽지 않았어요. 재배 기간이 길고 수확을 하기에 용이하지 않습니다.”

아무 작물이나 재배하고 싶지는 않았다.

목장의 유제품과 시너지를 얻을 작물을 재배하고 싶었다.

“샐러드용 채소가 어떨까요?”

“샐러드용 채소요?”

“버터헤드나 카이피라를 추천하고 싶네요. 성장이 빠르고 수경재배로 키우기 수월하고요.”

버터헤드와 카이피라는 서양 상추품종으로 샐러드와 햄버거에 널리 이용되는 채소다.

“재배하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나요?”

“2주간의 모종을 거쳐서 4주면 수확이 가능하죠.”

“빠르군요.”

“수경재배 시설을 고도화하면 시간을 좀 더 단축시킬 수도 있고요.”

수경재배 시설을 이용해 재배 기간을 짧게 할 수도 있었다.

더 짧은 시간에 채소 재배가 가능한 것이다.

“아시다시피 수경재배는 농약을 줄 필요가 없어요. 작물에 필요한 영양액과 물로 키우는 방법이죠. 신선한 채소가 적합해요.”

일 년 내내 신선한 채소를 재배할 수 있다면, 목장의 유제품과도 궁합이 잘 맞을 것이다.

“처음에 밀을 생각한 건 우리 밀을 보급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한국의 '앉은뱅이 밀'이죠.”

“저도 알고 있어요. 미국의 농학자 노먼 볼로그가 앉은뱅이 밀을 이용해서 노벨 평화상까지 받았죠.”

노먼 볼로그는 앉은뱅이 밀의 품종을 개량했다.

높은 생산력과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앉은뱅이 밀을 가져다 척박한 땅에서 잘 자랄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그가 개량한 밀 덕에 기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종주국인 한국에서는 앉은뱅이 밀의 명맥이 끊겼다.

“밀은 샐러드 채소가 성공한 뒤에 하면 어떨까요? 시설을 만드는 데 까다로운 부분도 있으니까요.”

“좋습니다, 우선 샐러드 채소를 성공시켜 보죠.”

수경재배의 시작은 샐러드 채소로 결정했다.

민요한의 말대로 편리한 점이 많았다. 다른 작물에 비해 성장이 빠르고, 목장의 유제품과도 궁합이 맞았다.

준비만 잘 해 놓는다면 좋은 시작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올해와 내년 사이에 채소 파동이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그때를 노린다면 급성장할 가능성도 있었다.

* * *

민요한과 함께 하동에 도착했다.

그는 지리산 농부들의 양봉장을 궁금해했다. 마침 부모님이 양봉장에서 계셨다.

부모님께 민요한을 소개하고 양봉장을 한 바퀴 돌았다.

“대단하네요, 생각했던 것보다 규모가 엄청 커요.”

민요한은 감탄한 표정으로 말했다.

“수경재배하면서 틈틈이 벌을 봐도 될까요?”

“제주도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양봉장을 돌아보고 목장으로 향했다. 목장에 민요한의 임시 거처를 마련했다.

그가 짐을 푸는 사이 축사를 찾았다. 설강인이 동료들과 함께 젖소를 돌보고 있었다.

“자네 왔는가?”

설강인의 표정이 밝았다. 그의 얼굴만 봐도 목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것 같았다.

설강인이 일손을 놓고 나에게 다가왔다.

“미국 출장에서 돌아오자마자 다시 출장을 갔다고 들었네. 자네는 항상 바쁘구먼.”

“저보다 설 팀장님이 더 바쁘시죠. 유제품 생산이 두 배는 더 늘었으니까요.”

멸균우유를 만들고 난 뒤에 유제품 생산이 더 늘었다.

버블티의 판매량이 늘어난 것도 한몫했다.

“팀장이란 말이 아직 낯설구먼. 아무튼 자네 말대로 유제품 생산이 더 늘었네. 그래도 이 정도는 문제없지. 로봇 착유기가 일손을 많이 덜어줬으니까.”

난 젖소들이 로봇 착유기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목장에서 가장 힘든 일을 로봇이 대신해 주고 있었다. 고된 목장 일이 한결 수월해졌다.

“작물을 키울 거라고 들었네.”

설강인이 내게 말했다. 백민석이 목장 사람들에게 소식을 전파했던 모양이다.

“네, 목장 유제품과 어울릴 작물을 키울 생각입니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군.”

설강인은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

“예상이라니요?”

“자네가 막연하게 아무 작물이나 키울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네. 분명 합당한 목적이 있으리라고 여겼지. 목장 유제품과 어울릴 작물이라고 생각했네.”

“그럼 설 팀장님은 어떤 작물을 생각하셨나요?”

“샐러드를 생각했네.”

“정확하시네요!”

“정말인가?”

“네, 샐러드 채소를 재배할 생각입니다. 목장 부지에 남는 땅을 이용해서요.”

“채소를 심기에 적합하지 않을 텐데?”

“노지재배가 아니라 상관없습니다.”

“아니, 채소를 땅에서 키우지 않는다는 말인가?”

설강인은 수경재배까지는 알지 못한 것 같았다.

“네, 컨테이너를 이용해서 샐러드를 재배할 계획이죠.”

“컨테이너라... 상상이 안 가는군.”

그때 민요한이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난 설강인에게 민요한을 소개했다.

“이분이 샐러드 전문가입니다.”

* * *

수경재배를 위한 특별팀이 한자리에 모였다.

특별팀을 위한 공간은 화개장터 매장을 사용했다.

매장 2층에 있는 회의실이 우리를 위한 공간이었다.

한기탁의 제안이었다. 농업 지원센터는 쇼핑몰 등의 일로 바빴기 때문이다.

매장 2층 회의실은 곶감 교육 때 사용했다. 특별팀의 전용 공간으로 사용하기 안성맞춤이었다.

난 민요한과 함께 회의실로 들어갔다. ‘인천 정밀’의 이장우와 백민석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우리와 함께할 민요한 씨입니다.”

소개가 끝났을 무렵 회의실로 노해미가 들어왔다. 접시에 버블티와 모카빵이 있었다.

그녀가 나가고 본격적인 회의가 진행됐다.

“이장우 씨가 엔지니어를 맡고, 백민석 씨가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거네요.”

민요한이 노트에 정리를 하며 말했다. 일이 시작되자 민요한의 눈빛이 달라졌다.

꼼꼼하게 챙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수경재배 시스템에게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했다.

“수경재배는, 말로만 듣는 것과 직접 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민요한은 노트북 화면을 켰다.

“제가 수경재배를 연구하며 기록한 것들입니다. 무수한 시행착오가 있었죠.”

화면 속에 치열했던 연구의 기록들이 있었다. 전문지식이 없이는 알 수 없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이걸 공개하는 이유는 제가 지리산 농부들의 일원이 되기로 결심했기 때문입니다.”

민요한은 나와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시행착오를 반복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을 최대한 단축하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나요?”

그의 시선은 나를 향했다. 어떤 결정을 내릴지가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저도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시간을 단축하는 방법이 있을까요?”

“제가 이장우 씨와 함께 인천으로 가겠습니다.”

“인천으로요?”

“제 노트북에 수경재배 설계도가 있습니다. 설계도만 있다고 설비를 쉽게 만들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엔지니어들과 교감이 필요한 일입니다.”

“나도 민요한 씨 말에 동의해.”

이장우가 날 보며 말했다.

나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그가 엔지니어들과 손발을 맞춘다면, 일이 훨씬 수월하고 시간도 단축할 수 있을 것이다.

“하동으로 오자마자 인천으로 가시게 됐네요.”

“최대한 빨리 올 생각입니다.”

민요한이 웃으며 말했다.

이장우는 노트북에 있는 컨테이너 도면을 보고 있었다.

머릿속에 도면을 넣고 있는 것 같았다.

“혹시 프로그램에 관련한 내용도 있나요? 미리 작업을 하고 싶은데.”

백민석이 민요한에게 물었다.

“네, 메일 주소를 알려주시면 관련한 내용을 드리겠습니다. 프로그램을 인터넷과 연결하면 좋을 것 같은데 가능할까요?”

민요한이 스마트폰을 꺼냈다.

“애플리케이션과 연동하는 거라면 가능합니다. 스마트폰이 생기자마자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어 봤으니까요.”

백민석은 박람회 기간에도 노트북으로 뭔가를 만들곤 했다.

내가 물었을 때, 그는 새로 나온 개발 프로그램을 테스트해 본다고 말했다.

스마트폰과 연동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혼자서 애플리케이션을 준비하고 있었다.

“말씀대로 정예 팀이네요.”

민요한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참, 영약액은 어떻게 하실 생각인가요?”

수경재배 시스템에서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는 작물에 영양액을 공급하는 일이다.

민요한이 수경재배와 관련한 시스템을 구축할 수는 있지만 영양액을 만들 수는 없었다.

민요한에게 말했다.

“그 부분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인천에서 돌아올 때 즈음이면 해결돼 있을 겁니다.”

“그럼 준비가 끝났네요.”

민요한은 노트북 화면을 덮었다.

“전 이장우 씨와 함께 인천으로 가보겠습니다.”

“만나자마자 이별이네요.”

백민석이 민요한에게 말했다.

“엔지니어가 인천에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네요. 덕분에 인천 구경도 할 수 있으니 좋은 기회라 생각하렵니다.”

“긍정적이시네요.”

“하하, 주변에서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듣는 편이죠.”

민요한에게 법인카드를 건넸다.

“공식적인 출장이니 이걸 사용하세요.”

“감사합니다, 그러고 보니 대표님이 가장 바쁘겠네요.”

민요한은 카드를 지갑에 넣으며 말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난 수경재배에 따른 비즈니스 모델을 찾아야 했다.

마크 레스터는 투자유치로 대규모 시설을 만들었다.

그는 내게 어떤 사업 모델을 만들지 묻는 것이다.

“어떤 사업 모델을 만들어낼지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기대하겠습니다.”

민요한이 이장우의 차에 탔다.

“너무 급하게 할 거 없어.”

난 운전석에 앉은 이장우에게 말했다.

“난 절대 급하게 할 마음 없어, 아버지가 문제지.”

이장우의 말을 듣자 이동춘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동춘과 민요한이 함께 일하는 모습을 상상하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우리 아버지 생각해서 웃는 거지? 하동으로 내려올 수 있다는 말 때문에.”

“아니야, 운전 조심히 하고. 민요한 씨도 잘 부탁하고.”

“잘 할 테니까 걱정 말고.”

민요한과 이장우가 인천으로 떠났다.

나와 백민석도 사무실로 향했다.

사무실로 가는 중에 백민석이 말했다.

“민요한 씨 아주 화끈하네. 곧장 인천으로 갈 줄은 몰랐어.”

“하동에 있어 봤자 할 것도 없잖아. 당장 시작할 것도 아니라면.”

“하긴, 네 말이 맞네. 지금은 아무것도 없지.”

사무실에 가까워질 무렵이었다.

조용히 앉아 있던 백민석이 말을 꺼냈다.

“혹시 물어봤어? 민요한 씨가 플랜트팩토리에서 퇴사한 이유?”

민감한 질문이었다. 그가 고민하다 물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물론 숨길 것도 없었다.

“플랜트팩토리와 이상이 맞지 않았던 것 같아. 정확하게는 마크 레스터와 생각이 갈린 거지만.”

“마크 레스터와 생각이 갈렸다고?”

백민석에서 민요한과 마크 레스터가 충돌한 이유를 말했다.

마크 레스터가 인간이 없는 재배시설을 원했다고 하자 백민석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농부가 없는 농업이네.”

“맞아, 모든 게 자동화된 시스템을 원했대.”

“민요한 씨가 떠난 이유를 알겠네. 너는 그럴 생각 없는 거지?”

“당연하지, 난 사람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역시 김덕명이네, 물론 계획이 있겠지?”

“무슨 계획?”

“수경재배 시설을 만들고 사람도 모을 생각 아니야?”

난 잠자코 있었다.

“아무 말도 안 하는 거 보니까, 확실하네.”

백민석의 말대로였다. 수경재배 시스템을 구축하는 동안 미리 준비할 일이 있었다.

그의 말대로 사람을 모으는 일이다.

샐러드 컨테이너

지리산 농부들의 연구원들과 점심을 함께 했다.

두 연구원에게 수경재배에 필요한 영양액을 맡길 생각이었다.

서우영과 이영호는 이미 유기 비료를 만든 경험이 있었다.

물론 수경재배를 위한 비료는 그때와는 달랐다.

유기 비료가 아닌 영양액의 형태였다.

“이제 본격적으로 작물을 재배할 생각입니다.”

서우영이 관심을 보였다. 그는 지리산 농부의 일원이 되기 전부터 작물 재배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어떤 작물인가요?”

“샐러드용 채소를 키울 계획입니다.”

“잎채소군요.”

“수경재배로 키울 생각입니다.”

“수경재배요?”

이번엔 이영호가 호기심을 드러냈다.

“물과 영양액으로 작물을 키우는 방식 말씀이군요.”

그들에겐 긴 설명이 필요 없었다. 연구원답게 수경재배에 관한 지식이 있었다.

“말씀대로입니다. 작물을 키우기 위해서 영양액이 필요합니다.”

“물에 녹은 이온의 형태를 말씀하시는 거군요.”

“네, 정확합니다. 이미 잘 알고 계시군요. 이온화된 비료 맞습니다.”

흙에 심은 작물은 유기질과 무기질 비료를 사용한다. 반면 수경재배에선 처음부터 물에 양분을 녹인 상태로 공급한다. 이온화된 상태다.

이온 음료는 물보다 흡수가 빠르다.

“서우영 박사와 함께 다양한 종류의 비료를 실험 중이었습니다. 그중에 이온화된 형태의 비료도 있었죠.”

이영호가 살짝 흥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수경재배라는 말을 꺼냈을 때, 관심을 보인 이유였다.

“이영호 씨 말대로 이온화된 형태의 비료도 연구 중이었죠. 식물에 필수적인 영양소를 물에 녹여 주는 방식입니다.”

서우영이 덧붙여 말했다.

식물은 뿌리로 필수 영양소를 흡수한다. 다량으로 필요한 질소를 포함해 12개의 필수 원소가 있다. 이 필수 영양소들을 물에 녹여 주는 게 영양액의 원리다.

“유기 비료를 만들었던 것처럼 영양액을 만드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겁니다.”

서우영은 자신 있는 얼굴로 말했다.

민요한이 영양액 이야기를 꺼냈을 때 문제없을 것이라고 여겼다.

연구소에서 충분히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미리 준비하고 있을지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처음부터 수경재배를 생각하고 연구했던 건 아닙니다. 여러 가지 비료를 실험했던 게 도움이 됐습니다. 솔직히 수경재배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서우영은 겸손한 태도로 말했다.

“현식 씨가 연구소에 왔던 거 기억하세요?”

“당연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홈쇼핑까지 출연했으니까요.”

서우영이 이영호와 눈을 마주치며 미소 지었다.

“곶감이 전부 망가진 걸 보고 결심을 했습니다.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는 친환경 농업에 대해서요.”

“어떤 마음으로 이 일을 준비하는지 알 것 같군요. 저도 대표님의 뜻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게 있습니다.”

서우영이 말끝을 흐렸다. 아쉬운 점이 있다는 말이 신경 쓰였다.

“어떤 점이 아쉬운지 여쭤봐도 될까요?”

“토종 종자도 재배하면 좋을 거 같아서요.”

“저도 서박사님이 무슨 뜻으로 하는 말씀인지 알겠네요.”

서우영은 토종 종자의 보존과 보급에 관심이 있었다.

샐러드 등의 채소들은 모두 서양종이었다.

“샐러드 채소를 시작하는 까닭은 재배가 쉽고 수확이 빠르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번 프로젝트가 성공한다면 토종 종자도 당연히 도전해 볼 생각입니다. 우리 밀도 그중 하나죠.”

“그게 정말인가요?”

서우영의 표정이 몰라보게 밝아졌다.

“물론 수경재배로 밀을 재배하는 건 쉽지 않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만큼 프로젝트가 중요합니다.”

“샐러드 채소의 영양액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영호 씨와 함께 최상의 영양액을 만들겠습니다.”

두 연구원과 일정을 조율했다.

이미 기본 연구가 되어 있던 터라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을 것 같았다.

수경재배 시설을 구축할 동안 영양액을 만드는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 * *

연구소에서 나와 사무실로 향했다.

영양액과 관련한 이야기까지 마쳤으니, 이제 수경재배에 따른 비즈니스 모델을 찾아야 했다.

백민석은 프로그램과 씨름을 하고 있었다. 집중하고 있어서 내가 사무실에 들어온 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경영지원팀장님, 잠깐 회의 좀 할까요?”

한기탁과 함께 회의실로 들어갔다.

“작물은 샐러드 채소로 결정했다고 들었어.”

“네, 샐러드 채소를 재배할 생각이에요.”

“설마 그 이야기를 하려고 부른 건 아닐 테고...?”

한기탁이 내 눈을 살폈다. 감춰 놓은 보따리를 풀라는 눈빛이었다.

“아직 수경재배 시설이 나오진 않았지만, 조만간 실체가 드러날 거예요.”

“민요한 씨에 대해서 들었어. 수경재배 설비를 같이 만들려고 인천으로 갔다고.”

“수경재배 시설을 구축하는 사이에 선배랑 저랑 할 일이 있어요.”

“할 일이 있다고? 어떤 일인데?”

한기탁은 귀를 쫑긋 세웠다.

“하동군과 협력하는 일이에요.”

“하동군과 협력한다고?”

“그때 하동 군수 김창대가 했던 말 기억나요? 청년 농부 지원사업을 계획 중이라고 했던 거.”

“기억하지~. 언제든지 아이디어가 있으면 말하라고 했던 것도 생각나네?”

“수경재배 프로젝트를 그 일과 연결해 보려고요.”

“어떻게 연결하려는 거지?”

“컨테이너 군단을 만드는 거예요.”

“컨테이너 군단?”

“네, 샐러드로 무장한 컨테이너 군단이요.”

샐러드 컨테이너가 성공한다고 해도 달랑 하나면 할 수 있는 일이 제한됐다.

고작 마을 마트에 샐러드를 납품하는 수준이 될 게 뻔하다. 하지만 샐러드 컨테이너가 수십 개라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판매처를 다양하게 확보하기만 한다면, 함께 하는 이들에게 수익도 보장할 수 있을 것이다.

한기탁에게 생각을 전했다. 이 말을 지금 꺼내는 이유에 대해서도 말했다.

관공서의 일 처리 속도 때문이었다. 그들과 사전에 교감해야 했다.

한기탁은 내 말을 다 듣고 생각에 잠겼다.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는 얼굴이었다.

“하동군과 함께 청년 농부를 모집한다는 것까지는 이해했어. 그럼 샐러드 컨테이너 제작은 어떻게 할 생각이지.”

“그 부분을 하동군과 함께 조율해 보려고요.”

“우리가 샐러드 컨테이너를 제작하고 청년 농부들에게 보급한다, 물론 컨테이너 제작에 따른 비용은 하동군에서 지원받고 말이야, 맞나?”

“맞아요, 하동군의 지원을 받아 샐러드 컨테이너를 제작할 생각이에요.”

“설마 기술력까지 공유할 생각은 아니겠지.”

“네, 그건 관공서와 공유할 내용이 아니니까요.”

“무슨 말인지 충분히 알아들었어. 청년 농부 지원사업과 우리 프로젝트를 어떻게 결합하고 싶은지...”

한기탁은 말을 멈추고 날 쳐다보았다.

“큰 그림이 뭐야?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진짜로 얻고 싶은 거.”

한기탁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사소한 이득에 관심이 없는 듯 보였다.

나의 최종목표가 궁금한 눈빛이다.

“세 가지가 있어요. 우선 시장성과 경쟁력이죠. 수경재배로 생산한 채소의 시장성과 경쟁력을 확인해 보고 싶어요. 그리고는 대형화 가능성을 타진해 보고 싶어요.”

“대형화 가능성?”

“미국에서 플랜트팩토리라는 회사를 견학했어요. 엄청난 규모의 실내농장을 구축하고 있는 곳이에요.”

“시작은 컨테이너지만 마지막은 대단위 실내 농장이구나?”

“정확하게 봤어요, 프로젝트에 참가한 청년 농부들과 협동조합을 만들 계획도 있고요.”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일이 커지겠네.”

“지리산 농부들의 도약이 되겠죠.”

그날 이후로 우린 문서작업에 돌입했다.

아직 샐러드 컨테이너는 실체가 없는 상황이었다.

우선은 민요한에게 수경재배 시설도면을 받았다. 그에게 내용을 전부 공개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문서에 도면을 넣었지만, 핵심 내용은 비공개로 처리했다.

지리산 농부들의 연구소에서 개발 중인 영양액과 향후 계획을 담아 문서 작업을 마쳤다.

한기탁과 꼬박 일주일을 작업한 결과였다.

* * *

하동 군수 김창대는 비서실장으로부터 서류 봉투를 하나 전달받았다.

봉투에 지리산 농부 김덕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봉투가 제법 묵직했다.

봉투를 열자 청년 농부 지원사업에 대한 문서가 나왔다.

“수경재배 시설을 이용한 청년 농부 육성 방안이라...”

김창대는 김덕명이 작성한 문서를 꼼꼼하게 살폈다.

그가 문서를 읽을 동안 비서실장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김창대는 비서실장 강민수에게 문서를 넘겼다.

“자네도 한번 읽어보면 좋겠네.”

강민수가 문서를 다 읽자, 김창대가 물었다.

“어떤가, 시도해 볼 만한 가치가 있겠나?”

“흥미로운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부분이 흥미로웠나?”

“컨테이너에서 채소를 재배한다는 발상이 호기심을 자극하네요. 청년 농부들에게 샐러드 컨테이너를 보급하겠다는 내용도 꽤 괜찮은 것 같습니다.”

“나도 자네와 생각이 같네. 첨단 농업을 청년들에게 보급한다는 내용이 마음에 들었어. 협동조합으로 만들어 판로를 개척한다는 부분도 좋았고.”

“저도 그 점은 마음에 들었습니다. 녹차 농가도 협동조합을 만들어서 이득을 봤으니까요.”

“이 사업을 우리 군이 추진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나?”

“취지와 내용상으로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자세히 짚어 볼 부분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점인가?”

강민수는 문서에 비공개 처리된 도면을 가리켰다.

“문제는 이 부분입니다.”

“하긴, 아직 물건이 나오지 않았지.”

문제는 샐러드 컨테이너였다. 지리산 농부들은 첨단 농업을 제안했다.

첨단 농업의 불모지인 한국에서 새로운 도전이었다.

청년 농부들이 혹할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하지만 아직 실체가 없는 상태였다.

“나도 사실 그 부분이 좀 걸리네. 컨테이너 시설로 채소를 재배할 수 있을지 아직 확인된 게 없으니.”

“네, 저도 그 부분이 우려스럽습니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나?”

“일단 아이디어는 채택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일단 아이디어를 받는다?”

“네, 만약 성공한다면 하동은 첨단 농업의 대표주자가 될 수 있으니까요. 다른 지역의 청년 농부까지 흡수할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이 뭔가?”

“샐러드 컨테이너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일입니다. 그때 사업 지원을 확정해도 늦지 않을 겁니다.”

김창대는 말없이 문서를 바라보았다.

머릿속으로 김덕명을 떠올리고 있었다. 지역에 흔치 않은 청년 농부였다.

그는 지역의 농가들과 협력해서 공동체를 살리고 있었다. 심지어 화개장터에 방치된 갤러리를 살리기까지 했다.

그가 낸 아이디어도 훌륭했다. 하동을 첨단 농업의 메카로 만들 계획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무작정 지원할 수도 없는 일이다. 비서실장의 말대로 확인이 필요했다.

“자네 말대로 컨테이너가 작동하는지 확인하고 결정하지.”

김창대는 결심한 듯 말했다.

“네, 그럼 김덕명 씨에게 당장 연락하겠습니다.”

“연락은 좀 있다 하지.”

“네, 알겠습니다.”

“그럼, 일 보게.”

강민수는 나간 뒤에 김창대는 문서를 다시 훑어보았다.

문서의 마지막 문장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그 부분을 다시 읽었다.

‘하동뿐만 아니라 한국 농업을 살릴 길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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