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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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게스트 하우스 주인이 깜짝 놀란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민요한과 함께 숙소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난 게스트 하우스 여주인에게 미소로 답례했다.

민요한은 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나에게 말했다.

“이따 저녁 식사 함께 하실까요? 이 근처에 제가 좋아하는 식당이 있습니다.”

“좋습니다, 저녁에 뵙죠.”

저녁까지 시간이 있었다.

머리도 식힐 겸 산책을 했다. 해변을 따라가는 중에 전화벨이 울렸다.

백민석이었다.

“민요한 씨 만났어?”

그가 대뜸 물었다.

“만나긴 했어.”

“그거 다행이다, 연락이 안 된다는 말을 듣고 걱정했는데. 혹시 이야기도 해 봤어? 우리와 함께 일할지에 대해서.”

“말은 했어.”

“너답지 않게 목소리에 힘이 없네. 반응이 안 좋아?”

“잘 말하긴 했는데 아직 모르겠어.”

“뭐 당장 말하긴 어렵겠지. 그나저나 민요한 씨는 왜 회사를 나왔을까?”

“사정이 있었겠지.”

백민석은 퇴사 이유가 마음에 걸리는 것 같았다.

나 역시 궁금했다. 수소문해본다고 알 수 있는 정보가 아니었다.

플랜트팩토리의 창업자인 마크 레스터와 의견 충돌이 있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사정이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민요한 씨랑은 저녁에 다시 이야기하기로 했어.”

“그래, 이야기 잘 하고. 그리고 너 없는 동안 사람들에게 수경재배에 대해서 말할 생각이야. 괜찮겠지?”

“아주 좋아, 동료들도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한기탁 선배에게는 이미 말했어. 어마어마한 관심을 보였고. 예전에 자기도 작물을 재배해 봤다면서.”

한기탁의 집에서 봤던 작물들이 생각났다. 모두 죽어가고 있었다.

“반가운 소식이네, 기탁 선배가 관심을 보였다니.”

“다른 동료들에게도 말할게. 제주도 일 잘 마치고 돌아와.”

“너도 수고해.”

통화를 마시고 해변을 거닐었다.

시원한 풍광을 보고 있으니 가슴이 펑 뚫리는 느낌이 들었다. 한참을 걷다 게스트 하우스로 돌아갔다.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하늘이 노을로 아름답게 물들었다.

게스트 하우스 앞에 한 남자가 보였다.

민요한이었다. 날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산책을 길게 다녀오셨네요.”

“제가 기다리게 했나요?”

“아니요, 정확한 시간을 정하지 않은 건 제 탓이죠.”

그의 말대로 저녁 약속을 잡으면서 시간을 정하지 않았다.

“제 차를 타시죠?”

민요한의 표정이 밝아 보였다. 태도도 상냥하게 변해 있었다.

“지금 가는 곳은 어우렁이란 식당입니다. 옥돔구이가 일품이죠.”

“저도 옥돔구이 참 좋아합니다.”

“그거 잘됐네요.”

민요한이 보기 좋게 웃었다.

어우렁은 서귀포 시장 인근에 있는 작은 식당이었다. 관광객보다 동네 사람들이 찾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이모, 여기 옥돔 정식 둘이요.”

“맨날 혼자 오더니, 오늘은 손님이 있네.”

어우렁의 주인으로 보이는 여자가 말했다.

“손님도 왔으니까 반찬도 신경 써 주세요.”

“챙겨줄 테니까 남기지나 말고 드셔.”

“네, 이모.”

민요한은 제법 귀여운 구석이 있었다.

친해지면 허물없이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의 말대로 옥돔구이가 끝내줬다.

“맛있네요.”

“제 말이 맞죠?”

“그런데 그거 아세요?”

“뭐요?”

“처음 볼 때랑은 완전 다른 사람처럼 보여서요.”

“사실 김덕명 씨를 처음 봤을 때 의심했습니다.”

“의심이요?”

“플랜트팩토리 사람에게 제 이야기를 들었다는 말 때문이죠.”

그에게 사연이 있는 것 같았다.

“어쨌든 제가 괜한 의심을 한 거로 결론이 났고요.”

“뭔지 모르지만 다행이네요.”

“리틀 한스와도 통화를 했어요. 최근에 전화기가 고장이 나서 애를 먹었거든요. 리틀 한스를 통해 알게 됐습니다. 김덕명 씨가 어떤 사람인지.”

“제가 어떤 사람이라고 하던가요?”

“한마디로 정리가 된다고 하더군요.”

“한마디요?”

“숲 같은 농부라고.”

“숲 같은 농부요?”

“네, 더불어 숲이 되는 농부요.”

“과찬이네요.”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이어졌다.

식사 중 민요한은 전화기를 원망했다. 먹통만 되지 않았어도 의심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절 의심한 이유가 뭐죠?”

“식사도 끝났는데 밖으로 나가실까요?”

민요한은 차를 몰고 해안가로 향했다.

우린 작은 커피숍 안으로 들어갔다.

“제가 플랜트팩토리를 나오게 된 이유부터 말씀드려야겠네요.”

민요한은 잠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할 말이 많은 듯한 얼굴이었다.

핵심 멤버의 결합

민요한은 플랜트팩토리의 초기 멤버였다. 식물학자로서 작물을 재배할 최적의 환경을 연구했다.

회사의 초기부터 성장해 가는 무렵까지 함께 했다. 그는 대규모 투자를 받는 과정에서 회사를 나왔다.

민요한이 나에게 물었다.

“혹시 플랜트팩토리의 창업자를 만난 적 있나요?”

“네, 지난번 박람회에서 마크 레스터와 만나봤습니다.”

“느낌이 어땠나요?”

“도전적인 사람이라고 느꼈습니다. 아이디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고요.”

“맞아요, 마크는 아이디어맨이죠.”

마크 레스터가 나에게 한 말이 떠올랐다. 그는 수직재배와 관련해서 해법을 제시할 수 있다면 기술제휴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처음엔 나도 마크의 도전 의식이 마음에 들었죠.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저와 맞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죠.”

“어떤 점이 맞지 않았나요?”

“마크가 꿈꾸는 세상은 제가 원하는 게 아니었어요.”

민요한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파도가 철썩이며 바위를 때리고 있었다.

“마크는 모든 시설을 기계화하길 원했어요. 심지어 작물을 관리하는 일조차도.”

“그럼 인간은 뭘 하는 거죠?”

“작물을 키우는 최소한 인력만 두는 거죠. 최소한의 엔지니어들이 작물을 키우길 원했죠. 마크는 그조차도 없었으면 하고 바랐죠. 모든 걸 자동화하는 게 그의 꿈이었으니까.”

“인간이 먹는 작물을 기르는데 인간이 없다?”

“맞아요, 모든 걸 기계가 감당하니까요. 완벽한 자동화죠.”

“그게 회사를 나온 이유인가요?”

“결정적인 이유는 아닙니다만.”

“결정적인 이유는 뭐였을까요?”

“마크의 교만함 때문이었죠. 빛나는 아이디어가 있는 소수의 사람만이 가치가 있다고 여겼어요. 그밖의 사람들은 무가치하고 여겼죠.”

“그렇게 보이진 않았었는데...”

“저를 포함한 핵심 멤버들만 알고 있는 사실이죠. 마크 레스터가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은 사람은 몇 명 되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왜 저를 의심하셨죠?”

플랜트팩토리에서 민요한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을 때 그는 나를 경계했다.

“퇴사 후에도 마크는 절 회유했어요. 몇 번 하다 그만둘지 알았는데 강도가 세지더라고요. 아무래도 내가 회사의 기밀을 알고 있던 게 마음에 걸렸던 것 같아요. 결국 한국까지 오게 되는 계기도 됐고요.”

“그 정도로 못살게 했군요.”

“김덕명 씨가 수경재배라는 말을 꺼냈을 때 다른 방식으로 회유하려고 한다고 생각했어요.”

민요한이 날 의심했던 이유였다.

놀라운 건 마크 레스터의 감춰진 모습이었다.

창의적인 발상과 기술력을 가진 이들이 세상을 지배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니.

내가 꿈꾸는 세상과도 거리가 멀었다.

“김덕명 씨는 어떤 꿈을 꾸고 있나요?”

민요한이 나를 보고 물었다.

“벼는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아니요, 처음 들어 봤습니다.”

“여러 가지 뜻이 함축된 말이죠. 농사를 짓는 농부는 작물과 교감한다는 뜻입니다. 농부의 고단함이 작물을 성장시킨다는 뜻도 담겼고요. 제가 수경재배를 하고 싶은 이유는 농부의 고단함을 덜어내고 작물과 교감을 충분히 하길 원해서입니다.”

“농부의 고단함을 덜어내고 교감을 충분히 한다, 멋진 표현이네요.”

“투박하게 표현하면 노인만 남게 되는 농촌의 미래가 두렵다는 뜻입니다. 제가 수경재배를 하고 싶은 이유는, 노동 강도를 줄이고 싶어서입니다. 노인이건 청년이건 혹독한 노동은 독이니까요. 마크의 꿈처럼 전 모든 건 기계에 맡기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인간이 할 몫은 남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채소의 상태를 가장 잘 보는 건 기계가 아니라 할머니들이죠.”

“리틀 한스의 말대로네요. 김덕명 씨는 숲과 같은 농부군요.”

“그 말은 좀 과장된 것 같습니다.”

“겸손하시네요, 실은 리틀 한스에게 들은 것 말고 따로 알아본 것도 있습니다. 김덕명 씨는 사람들에게 무상으로 벌을 분양하고 협동조합도 만들었다고 들었습니다. 심지어 명인의 농업 기술도 사람들과 나눴다고.”

“농사는 혼자 하는 일이 아니니까요.”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혼자 독차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민요한은 생각에 잠긴 듯 잠시 말을 멈췄다.

난 그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입을 열었다.

“김덕명 씨와 일을 함께 할 마음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실은 키우던 꿀벌도 다 도망가서 뭘 해야 할지 막막하던 참이기도 했고요.”

“꿀벌이 도망간 게 저에겐 행운이었네요.”

“그래서 말씀인데 함께 일하는 조건으로 양봉 기술을 배우고 싶습니다. 예전부터 꿀벌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그런 조건이라면 언제든 환영입니다.”

“게스트 하우스에 묶었던 것도 언제든지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게 하동이 될지 몰랐지만.”

“함께 일하게 되면 하동에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저에게 정리할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이삼일 정도면 충분할 거 같네요.”

“좋습니다.”

* * *

민요한이 정리를 하는 동안, 지역 양봉협회의 최규식을 만났다.

최규식은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때 제가 민망한 꼴을 보였습니다.”

“아니요, 덕분에 좋은 인연이 됐습니다.”

“그 남자랑 좋은 일이 있었나 보죠?”

“네, 함께 꿀벌을 키우게 됐습니다.”

최규식에게 수경재배 등을 이야기할 필요는 없었다. 함께 꿀벌을 키운다는 말에 최규식은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이제 우리 협회에 찾아올 일은 없겠네요.”

“아무래도 그럴 일은 없을 거 같네요.”

최규식이 웃음을 터트렸다.

곧 화제를 바꿔 첨단 양봉과 관련한 이야기를 전했다. 그는 이야기를 들으며 감탄을 연발했다.

“벌통의 온도와 습도를 제어한다니 놀랍네요. 그 장비는 언제 들어옵니까?”

“아마도 한 달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꽃피는 봄이 오기 전에는 들어오겠죠?”

“네, 그전에는 들어올 겁니다.”

“제가 한 번 하동을 찾아가도 되겠습니까? 장비를 보고 참고하고 싶네요.”

“실은 그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 왔습니다. 다른 지역에도 보급하고 싶습니다. 오실 때 다른 지역의 회장님들과 함께 오셔도 좋고요.”

“그런 뜻이라면 제가 연락책을 맡죠.”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제주도 양봉협회는 다른 지역과 달리 토종벌과 서양벌을 협회가 하나로 통합해 운영하고 있었다.

그가 연락책을 맡는다면 한 번에 전달이 될 것이다.

“그때도 독일에서 약을 구해주셔서 피해가 없었습니다. 이번엔 첨단 양봉으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시는군요.”

최규식이 웃으며 말했다.

“도움이라기보다 함께 살아가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시 김덕명 씨는 그릇이 크네요.”

최규식과 이야기를 끝내고 나가는 순간이었다.

민요한에게 전화가 왔다. 양봉장에서 만나자고 했다. 처음 그를 만났던 장소였다.

숲속에 있는 양봉장으로 이동했다.

민요한은 벌통을 바라보고 있었다.

“양봉장을 임대해서 쓰고 있었어요. 오늘 주인하고 만나서 이야기를 끝냈고요. 그런데 이것들을 좀 정리해야 할 거 같아서요.”

그가 날 부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양봉장에 벌통과 장비들이 있었다.

“벌통과 장비들은 협회에 팔면 어떨까요?”

“그때 한바탕했는데 받아 줄까요?”

“제가 회장님께 잘 말씀드려보죠.”

“그래 주시면 고맙고요.”

민요한은 한시름 놓은 듯 양봉 도구와 벌통을 정리했다.

함께 주변을 정리하던 중에 그가 나에게 물었다.

“어제도 물었지만, 꿀벌이 사라진 이유가 뭘까요?”

“벌통의 이동과 약을 준 시기가 원인일 수 있습니다.”

“역시 제 실수군요.”

“가능성일 뿐입니다. 전혀 다른 이유일 수도 있죠.”

“다른 이유는 뭔가요?”

“전염병이 돌았거나 벌집에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꿀벌은 벌집을 지키려는 습성이 강하죠. 심지어 죽을 때도 벌집을 보호하기 위해 먼 곳으로 이동한 뒤에 죽으니까요.”

“그런 습성이 있는 줄 몰랐어요.”

리틀 한스도 꿀벌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서 두려워했다. 원인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꿀벌에 좋지 못한 일이 벌어지는 건 사실이었다.

최규식은 벌통과 양봉 도구를 순순히 받아주었다.

민요한도 최규식에게 화해의 악수를 청했다.

두 남자는 기분 좋게 웃어넘겼다.

“덕분에 정리가 빨리 끝났네요, 내일이면 하동으로 출발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는 게스트 하우스에 투숙하고 있었다. 짐도 별로 없었다.

가방만 챙겨서 이동하면 끝이었다.

“혹시 미국에 갈 일은 없나요?”

“가족 때문에 묻는 거죠?”

“네.”

그에 가족에 관한 질문은 하지 않았다.

“미국에 갈 일은 없어요, 아프리카면 몰라도.”

“아프리카요?”

“부모님은 코트디부아르란 나라에 계세요.”

“아... 멀리 계시는군요. 코트디부아르에서 뭘 하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의료 봉사를 하고 계세요.”

“부모님께서 의사이시군요.”

“네, 아들과 달리 대단한 분들이시죠.”

민요한과 마크 레스터가 한 팀이 되지 못했던 게 이해됐다.

민요한의 몸에서도 따뜻한 피가 흐르고 있었다.

혼자서 모든 걸 독식하려는 욕심쟁이와는 한 팀이 될 수 없던 거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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