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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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민석과 함께 버스에 올랐다.

“인천 정밀 부자 인상적이었어. 특히 아버님이 재미있으셨고.”

백민석이 웃으며 말했다.

“나도 볼 때마다 느껴, 아버님이 참 독특하시다고. 그래도 매력적이지?”

“맞아, 매력이 넘치는 거 같아. 솔직히 엔지니어까지는 생각을 못 했어. 내가 프로그램만 만들어서 돌리면 된다고 생각했거든.”

“기계와 프로그램을 연결해야지.”

“역시, 김덕명은 탁월한 기획자야.”

“백민석은 대단한 개발자고!”

자화자찬하는 말에 서로 웃음을 터트렸다.

“이제 정말 하동으로 가는 건가?”

“이제야 하동으로 가네.”

농업 박람회를 마치고 인천 정밀과도 이야기를 끝냈다. 집으로 가는 일만 남았다.

하동에 도착하자마자 우린 사무실부터 찾았다.

“고생 많았어요.”

“고생은 무슨.”

동료들에게 선물 보따리를 풀었다.

농업 박람회에서 사 온 재미난 물건이며 소소한 액세서리까지 다양했다.

“그런데 이건 뭐야?”

한기탁이 선물 중 하나를 들고 물었다.

그의 손에 플라스틱 모형이 있었다.

플랜트팩토리에 받은 기념품, 수경재배 시스템을 모형으로 만든 물건이었다.

“앞으로 우리가 만들 시설이요.”

“우리가 만들 시설? 이것만 봐서는 도통 모르겠는데. 그래도 뭔가 대단해 보이긴 하네.”

한기탁의 말에 백민석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목장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었다. 사무실 사람들과 선물의 종류가 달랐다.

설민주는 미국에서 사 온 치즈에 관심을 보였고, 설강인은 송아지 인공호흡기를 유심히 관찰했다.

선물을 나눠주고, 난 집으로 향했다.

시차 때문인지 피로가 몰려왔다.

부모님은 양봉장에 계셨다.

벌통에 이불을 덮고 계셨다. 꿀벌들이 동면 중이었다. 따뜻하게 온도를 유지 시켜줘야 했다.

“언제 온 거야? 연락도 없이.”

어머니가 반가운 얼굴로 물었다.

“먼 길 다녀오느라고 고생했지?”

아버지가 허리를 펴고 말했다.

“저보다 어머니 아버지가 고생 많으시죠.”

“우리야 맨날 똑같지 뭐.”

“제가 어머니 아버지 드리려고 선물 하나 사 왔어요.”

“선물?”

아버지가 선물이란 말에 눈을 번쩍 떴다.

난 아버지에게 서류 한 장을 건넸다.

“이게 뭐냐?”

“제가 산 물건들이에요.”

“이거 원, 죄다 영어로 쓰여 있구나. 무슨 뜻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난.”

박람회장에서 산 물건들이었다. 양봉과 관련한 기구였다.

리틀 한스에게 자문을 해서 산 물건이었다.

“우리 양봉장을 첨단으로 바꿀 장비들이에요.”

“첨단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냐?”

“이건 벌통 온도와 습도를 조절할 수 있는 장치에요. 그리고 이건 벌들을 관찰할 수 있는 장치고요.”

“벌을 관찰한다고?”

“꿀벌용 CCTV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집에서 꿀벌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어요.”

“이런 장비가 있다니, 거 참 신기하구나.”

꿀을 딸 때를 제외하고 부모님이 꿀벌을 책임지고 있었다. 첨단 장비를 사용해 조금이라도 일을 덜어드리고 싶었다.

한국에서 서비스를 받을 곳이 없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인천 정밀이다. 수경재배 시스템보다 구조가 간단한 기계였다.

수리뿐만 아니라 기계를 응용해 한국 양봉 사정에 맞게 만들 계획도 있었다.

효과가 좋으면 기술을 응용해 벌을 키우는 농가에 보급할 생각이었다.

“기계 덕에 훨씬 편해지겠구나.”

아버지는 우렁찬 목소리를 뽐내며 말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쉬운 표정이 느껴졌다.

“물론 다른 선물도 있고요.”

난 캐리어에서 버번위스키를 꺼냈다.

버번위스키는 아버지에게 드릴 것까지 준비했다.

아버지는 표정이 이제야 정상으로 돌아왔다.

“이게 그 유명한 버번위스키구나. 옥수수를 증류한 후 숙성시켰다는... 켄터키에서 만든 게 가장 유명하다고 들었다.”

“아버지는 잘도 아시네요?”

“잘 알지. 맛을 모를 뿐이지만.”

아버지는 위스키 병을 요리조리 살피며 입맛을 다셨다.

“많이 마실 생각 마세요.”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경고하듯 말했다.

“아껴서 먹을 거라고.”

부모님의 대화를 들으니 정말 한국에 돌아온 느낌이 들었다.

“이제 들어가서 좀 쉬어, 피곤할 텐데.”

누우면 당장 쓰러질 지경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려는 순간 할 말이 생각났다.

“참, 며칠 뒤에 잠시 다녀올 때가 있어요.”

“오늘 미국에서 돌아온 사람이 어딜 또 간다는 거야?”

“가까운 곳이에요.”

“어딘데?”

“제주도요.”

“거긴 왜?”

“만날 사람이 있거든요.”

민요한을 만나야 했다.

수경재배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인물이었다.

제주도에서 만난 식물학자

김해 공항에서 제주도행 비행기를 탔다. 한 시간 만에 제주도에 도착했다.

제주 공항 근처에 있는 렌터카 업체에서 차를 빌리고 서귀포시로 향했다.

민요한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리틀 한스의 도움으로 연락처를 알아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리틀 한스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의 전화도 받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민요한 씨가 묶고 있는 게스트 하우스 이름을 들은 적 있습니다. 지금도 그곳에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난 고래 게스트 하우스를 찾았다. 민요한이 묵었다던 곳이었다.

서귀포시에 있는 게스트 하우스였다. 전화를 걸어 문의했지만 고객에 관한 정보는 말할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직접 가서 확인하는 수밖에 없었다.

주소를 확인하고 고래 게스트 하우스 도착했다. 게스트 하우스는 바다를 마주하고 있었다. 푸른 바다가 반기는 듯했다.

“방 있나요?”

우선 이곳에서 숙박하기로 하고 물었다.

“혹시, 여기 머무는 손님 중에 민요한 씨라고 계신가요?”

숙박료를 지불하고 주인에게 물었다.

“전화로 물어보신 분이군요.”

나와 통화를 했던 여주인이었다.

“전화로 말씀드린 것처럼, 투숙객에 관해서는 어떤 정보도 알려 드릴 수 없습니다.”

그녀는 전화로 했던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너무 단호하니 더 물을 수도 없었다.

방으로 들어가려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그 사람을 왜 찾는 건가요?”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입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 있을까요?”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농사일도 스카우트를 하나요?”

“네, 때에 따라서는.”

여주인은 잠시 고민하는 듯 보였다.

“말씀드린 대로 투숙객의 정보는 알려드릴 수 없어요. 제가 알려 드릴 수 있는 건 조식에 대한 정보 정도네요. 아침에 토스트와 음료 그리고 간단한 샐러드를 제공합니다.”

“네, 잘 알겠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조식 시간에는 여기 묶고 있는 사람들을 다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우리 게스트 하우스에는 장기 투숙객이 계십니다.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요.”

여주인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번졌다.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민요한이 이곳에 있는 게 분명했다. 에둘러 팁을 줬음이 분명했다. 아마도 내일 아침이면 그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짐을 풀고 잠시 밖으로 나갔다. 제주도에 온 김에 지역 양봉협회를 찾아볼 생각이었다.

제주도는 토종벌과 서양벌 협회가 하나로 합쳐 있었다. 협회 회장은 최규식이란 남자로 유쾌한 사람이었다.

제주 협회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서 궁금하기도 했다. 그를 만나 미국에서 배운 첨단 기술도 공유할 작정이었다.

양봉협회는 서귀포시와 제주시의 중간 지점에 있었다.

양봉장을 지나자 통나무집이 보였다.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정말 벌이 사라졌다니까요.”

“아니 그걸 왜 여기 와서 따져 묻는 겁니까?”

“여기서 벌을 분양받았으니까요.”

“답답한 소리 그만 하세요.”

제주 지역 협회장과 한 남자가 입씨름을 벌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회장님.”

협회장 최규식이 날 발견하곤 안절부절못했다.

“김덕명 씨 오셨군요. 어쩐 일이십니까, 연락도 없이?”

실랑이를 벌이던 남자도 나를 바라보았다.

난 협회장 최규식에게 물었다.

“실례합니다. 무슨 일이 있나요?”

“아니 이 남자분이 생떼를 쓰고 있어서.”

“아니... 무슨?”

“꿀벌이 사라졌다면서요.”

“꿀벌이 사라져요?”

대화 중에 남자가 끼어들었다.

“이곳에서 직접 분양받은 꿀벌입니다. 꿀벌이 몽땅 사라졌어요. 문제가 있지 않고서야...”

“문제라니요? 전 분명 이상 없는 꿀벌을 분양해 드렸습니다.”

난 최규식에서 사정을 물었다. 그는 남자에게 정상적으로 꿀벌을 분양했다고 말했다.

꿀벌이 사라진 건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고 강변했다.

“손님도 왔는데 이제 돌아가시죠.”

“해결은 해 주셔야죠.”

“제가 어떻게 해결을 합니까?”

최규식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제가 한번 봐 드려도 될까요?”

난 남자에게 말했다. 실랑이를 벌이던 남자가 날 쳐다보았다.

“봐주신다고요?”

“네, 제가 봐 드리죠.”

난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괜히 저 때문에 그러는 거면 안 그러셔도 됩니다.”

“아니요, 협회의 일이면 저도 거들어야죠.”

최규식이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곧 입을 열었다.

“그럼 저도 함께 가보겠습니다.”

남자는 그제야 표정이 밝아졌다.

우린 함께 남자의 양봉장으로 이동했다.

남자의 양봉장은 숲 한가운데 있었다. 벌통의 개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취미로 양봉을 하는 사람 같았다.

“보시다시피 벌들이 다 사라졌습니다.”

남자는 벌통의 뚜껑을 열어 보였다. 그의 말대로 벌들이 보이지 않았다.

남자가 분양받은 벌은 토종벌들이었다.

최규식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와 눈을 마주쳤다.

그는 도통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혹시 벌통을 이동했나요?”

난 남자에게 물었다.

“네, 비가 와서 벌통을 옮기긴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최규식이 반응했다.

“그것 때문일 수 있겠네요.”

최규식이 나를 보며 말했다.

“그럴 수도 있긴 하지요.”

토종벌은 서양벌과 달리 예민하다. 벌통을 옮길 때도 섬세한 관리가 필요하다. 아무리 그래도 벌들이 다 사라진 건 이상했다.

“꿀벌들은 회귀 본능이 있습니다. 벌통을 옮길 때는 각별히 주의하셔야 합니다.”

“추울까 봐 자리를 좀 옮기기는 했지만, 이동거리가 길지는 않았습니다.”

남자는 빈 벌통을 보며 말했다.

난 벌통 주변에 있는 죽은 꿀벌을 발견했다.

“혹시 벌통에 약을 치셨나요?”

“약을 준 지는 꽤 됐습니다.”

꿀벌에게 약을 주는 시기도 잘 조절해야 한다. 아무 때나 함부로 줘서는 안 된다. 약과 벌통의 이동, 이 두 가지가 꿀벌이 사라진 이유 같았다.

“전문가에게 문의도 했는데...”

남자가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

“전문가라니 누구를 말씀하시는 거죠?”

국내 양봉 전문가 중에 내가 모르는 이는 없었다.

“한국인은 아니고 독일 사람입니다. 국제적으로 유명한 양봉가죠.”

독일인이란 말에 떠오르는 이가 있었다.

“혹시, 한스라는 사람 아닌가요?”

“네, 맞아요. 리틀 한스라는 별명이 있어요. 아니... 그 사람 이름을 어떻게?”

“저와도 친분이 있는 분이라서요.”

“리틀 한스와 알고 있다니 이것 참 신기한 인연이네요.”

“혹시 민요한 씨 아닌가요?”

“아니 또 제 이름은 어떻게 아시나요?”

민요한은 놀란 얼굴로 날 쳐다보았다.

최규식 회장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뜻밖의 만남이었다. 상황 정리가 필요했다.

최규식에겐 나중에 다시 찾아뵙겠다는 말을 전했다. 그는 알겠다고 답하고 자리를 피했다. 민요한과 입씨름을 하고 싶지 않은 얼굴이었다.

나와 민요한 둘만이 남았다.

“고래 게스트 하우스에 계시죠?”

“제가 묶고 있는 숙소도 아시네요?”

민요한은 의심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잠시 앉아서 이야기 나눌 수 있을까요?”

숲 안에 테이블과 의자가 있었다.

“제 소개가 늦었군요, 전 김덕명이라고 합니다.”

“민요한이라고 합니다. 제 이름도 알고 계시고, 우리가 만난 적이 있나요?”

“아닙니다, 오늘 처음 뵙습니다. 민요한 씨에 대한 이야기는 전해리 씨에게 들었습니다.”

“전해리 씨요?”

그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처럼 물었다.

전해리는 민요한이 그만둔 뒤에 입사했다고 했다.

그가 전해리를 모를 만도 했다.

“전해리 씨는 플랜트팩토리에서 일하는 분이죠.”

“그럼 플랜트팩토리에서 나온 사람인가요?”

“아닙니다, 전 하동에서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플랜트팩토리는 농업 박람회에 참석했다가 알게 된 곳이죠.”

“그런데 여기 무슨 일로?”

“제주도에 온 까닭은 민요한 씨를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나를 만나기 위해서 제주도까지 왔다니 이유가 궁금하네요.”

“민요한 씨와 함께 일하고 싶어서입니다.”

“네에? 일이요?”

“수경재배 시스템을 준비 중입니다.”

난 민요한에게 계획하는 수경재배 시스템을 이야기했다.

그는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들었다.

“김덕명 씨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잘 알겠습니다.”

“민요한 씨 생각은 어떤가요?”

“당장 확답을 드리긴 어렵겠네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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