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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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각, 지리산 농부들의 사무실.

한기탁과 동료들이 퇴근을 앞두고 있었다.

“요즘은 좀 살 거 같아요. 설날 선물 때문에 정신이 없었어요.”

쇼핑몰 팀의 천희석이 한기탁을 보며 말했다.

“언제는 바쁜 게 좋다며?”

“적당하게 바쁜 게 좋지요.”

천희석은 박태호에게 눈짓을 했다. 박태호도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한 팀장님, 지역 매장에서 연락이 왔었어요. 버블티 세트도 같이 받고 싶다고요.”

박태호가 방금 연락 온 내용을 전달했다.

유치원생의 아이디어로 시작한 버블티 세트가 반응이 좋았다.

유제품을 공급받는 매장도 버블티를 요청했다.

“그거 잘됐네.”

“참기름하고 호두 기름도 요청이 꾸준히 들어오고 있어요.”

“현식 씨에게 바로바로 전달하고 있는 거지?”

“네, 실시간으로 전달하고 있어요.”

“아주 좋아.”

방현식은 홈쇼핑 이후에 지리산 농부들의 쇼핑몰을 통해 참기름과 호두 기름을 판매하고 있었다.

홈쇼핑에서 완판의 기록을 남긴 게 판매에 큰 도움이 됐다.

“대표님하고 팀장님은 잘 계시겠죠?”

박태호가 한기탁에게 물었다.

“아주 잘 있지, 어제 통화도 했어. 일이 잘 풀리고 있다는 말까지 들었고.”

한기탁이 과장된 손짓을 하며 말했다.

“이번 박람회는 뭔가 특별한 게 있는 거죠? 백팀장님까지 함께 함께 가고.”

박태호는 한 손으로 턱을 괴며 물었다. 곶감과 설날 선물로 사무실 사람들은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대표와 백민석이 박람회에 참석하는 것도 당일이 돼서야 알았다.

농업 박람회라는 말을 듣고 선진 농업을 배우러 간다고 여겼다. 자세한 내용은 알지 못했다.

“두 사람이 박람회에서 돌아오면 각오해야 할 거야.”

“각오요?”

박태호와 천희석이 동시에 물었다.

“우리도 작물을 재배할 테니까.”

작물을 재배할지 모른다는 말에 두 남자는 놀란 눈으로 한기탁을 쳐다보았다.

“정말이요?”

“표정이 다들 왜 그래 별로야?”

“아니요, 좋아서요. 이제야 좀 농부다워질 거 같은 느낌이랄까.”

박태호의 말에 한기탁이 껄껄거리며 웃었다.

그도 작물 재배를 기대하고 있었다.

김덕명은 목장에서 나온 유제품과 시너지를 낼 작물을 재배하고 싶다고 말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지리산 농부들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으리라고 여겼다.

* * *

백민석과 함께 호텔 로비로 나왔다.

“에어펌프를 만들다니 그런 재주는 어디서 배운 거야?”

“어릴 때 과학 상자를 가지고 놀던 실력이지.”

“아무튼 대단했어, 덕분에 견학도 하게 됐고. 장난감이 아닌 진짜 수경재배 시설은 어떻게 생겼을지 궁금해.”

그때 전해리로부터 연락이 왔다.

우린 그녀와 함께 플랜트팩토리로 향했다.

“대표님이 직접 안내를 해주겠다고 말씀하셨어요.”

“마크 레스터 대표님이 직접 안내를 한다고요?”

백민석이 흥분한 얼굴로 물었다.

“네, 김덕명 씨와 하고 싶은 이야기도 있다고 하네요.”

마크 레스터가 내게 관심을 보였다. 이유가 궁금했다.

플랜트팩토리는 도시 외곽에 자리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규모가 크진 않았다.

지금은 가능성을 인정받은 상태였다. 아직 성장 중인 회사였다.

“이 건물에서 작물을 재배하는 건가요?”

“네, 이 건물에서 작물도 재배하고 있어요.”

전해리와 함께 회사 내부로 들어갔다.

깔끔한 오피스 환경이 눈에 들어왔다. 직원들은 모두 편안한 차림으로 일했다.

마크 레스터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모자가 달린 일체형의 작업복을 입고 있었다.

먼지나 병균을 방지하는 장치였다. 우리도 옷을 갈아입었다.

마크 레스터와 함께 작물을 재배하는 곳으로 이동했다.

창고처럼 보이는 곳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눈을 의심했다.

거대한 식물공장이 등장했다.

“이게 바로 상용화될 모델이죠. 작물이 자랄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제공합니다. 빛, 온도, 습도, 이산화탄소를 제어하죠.”

거대한 선반 위에서 촘촘하게 구멍이 나 있었다. 구멍마다 푸른 채소를 심었다.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

가까이 다가가 채소를 관찰했다.

케일과 시금치가 주를 이뤘다. 수경재배에 용이한 잎채소였다.

채소를 키우는 선반 아래 물과 영양액을 공급하는 튜브가 연결돼 있었다. 에어펌프로 보이는 장치도 보였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채소 위에 달린 조명이었다.

처음 들어왔을 때도 엄청난 수의 조명에 놀랐다.

작물은 물과 영양액만으로 재배할 순 없다. 빛이 필요하다. 인공 빛이 채소를 키우고 있는 것이다.

“대단해,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

백민석은 프로그래머답게 영양액을 주는 시스템에 관심을 보였다.

물과 영양액을 주는 시스템이 자동화 돼 있었다. 작업자는 화면을 통해 물과 영양액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린 수경재배 시설에 정신이 팔린 상태였다.

“작물들은 완전히 균형 잡힌 양분을 공급받습니다. 토양에서 오는 해충이나 병충해의 염려도 없죠. 균형 잡힌 양분을 받기 때문에 더 건강하고 영양가도 높습니다.”

“마치 미래에 와 있는 기분이네요.”

“김덕명 씨 말고도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죠.”

마크 레스터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박람회에선 수경재배의 장점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수경재배는 장점만 있는 건 아닙니다. 사실 단점도 있습니다. 단점이면서 치명적인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바로 시설을 구축하는 비용입니다.”

그의 말대로 비용은 최대의 단점이었다.

플랜트팩토리처럼 첨단 시설을 구축하려면 천문학적인 돈이 있어야 했다.

플랜트팩토리는 투자유치로 지금의 시설을 구축했다.

“전해리 씨를 통해 들었습니다. 김덕명 씨가 수경재배에 대해서 관심이 많다고요.”

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전 문제 해결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좋아합니다. 김덕명 씨처럼 말이죠.”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 저의가 궁금했다.

“김덕명 씨가 다른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무슨 뜻이죠?”

“저에게 풀지 못한 숙제가 하나 있습니다.”

“혹시 수경재배 시스템과 관련한 일인가요?”

“맞습니다.”

그때 문득 플랜트팩토리와 관련한 기사가 하나 떠올랐다.

플랜트팩토리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고생했던 내용이었다.

그가 풀지 못한 숙제를 알 것 같았다.

행운의 곶감

우린 수경재배 시설에서 나왔다.

휴게실에서 마크 레스터는 말을 꺼냈다.

“풀지 못한 숙제는 수경재배지를 높이 올리는 겁니다.”

그가 나와 눈을 마주쳤다. 눈빛이 살아 있었다. 그의 간절한 꿈이 느껴졌다.

“물론 지금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많죠.”

그것이 플랜트팩토리가 안고 있는 문제였다.

수경재배지를 하늘 높이 올리는 방안이었다.

일명 수직재배라고도 불리는 일이다.

수경재배지를 아파트처럼 층층이 쌓는 시스템.

“여기 전해리 씨를 포함해 모든 직원에게 낸 숙제기도 합니다.”

마크 레스터는 전해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의 표정에 미세한 변화가 있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플랜트팩토리는 혁신적인 농업 기업이었다.

수경재배를 통해 미래 농업을 주도할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창업자인 마크 레스터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신봉하는 인물이었다.

실제로 수경재배에 관한 발상을 한 인물은 농부도 과학자도 아니었다.

평범한 대학생의 논문이 시발점이었다.

그가 한국에서 온 농부에게도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 까닭이다.

마크 레스터가 나에게 물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수경재배를 할 생각이겠죠?”

“네, 수경재배를 한국에도 도입해 볼 생각입니다.”

“예상대로군요, 미스터 김에게 제안을 하나 해도 될까요?”

“무슨 제안이죠?”

“플랜트팩토리가 풀지 못한 문제를 해결한다면 기술제휴를 맺을 생각도 있습니다.”

“기술제휴요?”

“수직재배의 해법을 준다면 뭐든 할 수 있다는 뜻이죠.”

그의 말대로 수경재배지를 층층이 쌓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수직으로 연결된 수경재배지는 하나의 거대한 식물이기도 했다.

혈관이 장기와 연결된 것처럼 영양액과 물을 주는 관은 하나로 연결돼 있었다.

하중을 견디는 일부터 순환 시스템까지 넘어야 할 산들이 많았다.

“전 한국 사람들의 저력을 높이 평가합니다. 짧은 시간 안에 엄청난 성장을 이루어냈죠. 가전과 반도체는 미국을 능가할 정도고요. 지금은 미비하지만, 첨단 농업도 언젠가 주목할 만한 성장을 이룰 거라 생각합니다.”

마크 레스터는 휴게실 선반에 있는 플라스틱 모형을 들어 올렸다.

수경재배지가 층층이 쌓인 모습이었다.

“솔직히 이건 미스터 김에게만 하는 제안은 아닙니다. 얼마 전 네덜란드에서 온 청년하고도 같은 이야기를 했으니까요. 그 남자도 미스터 김처럼 문제 해결 능력이 뛰어났죠. 플랜트팩토리는 누구에게나 열려있습니다. 물론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 * *

플랜트펙토리에서의 일정을 끝내고 차에 탔다.

운전대를 잡은 전해리가 물었다.

“커피 한잔 마실까요?”

도로 한복판에 애플파이 집이 보였다.

그녀는 그곳에 차를 세웠다.

한산한 카페였다. 커플로 보이는 남녀가 애플파이와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여기 애플파이가 맛있어요.”

“제가 사겠습니다.”

“아니요, 제가 사야죠.”

전해리는 애플파이와 커피를 주문했다.

곧 애플파이와 커피가 나왔다.

“마크가 좀 독특하죠?”

전해리가 커피를 마시며 물었다.

“아니요, 재미있었습니다.”

내 말에 백민석도 고개를 끄덕였다.

“마크가 말한 대로 수직재배는 직원들에게 낸 숙제이기도 해요.”

“수직재배가 그렇게 어렵나요?”

“네, 아주 까다롭습니다. 현재 기술로는 3층까지 올릴 수 있어요.”

전해리는 손가락 세 개를 펴 보이며 말했다.

“그 이상으로 올리면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해서요.”

“그럼 몇 층까지 올릴 계획인가요?”

“최소 30층은 올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30층이요?”

애플파이를 먹던 백민석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30층이면 아파트보다 더 높겠어요.”

“최소 30층이라고 했어요. 마크는 아마도 100층은 생각하고 있을 게예요.”

“100층이요오? 어마어마하네요!”

백민석은 입을 떡하고 벌렸다.

플랜트팩토리는 실제로 50층 높이의 식물 공장을 구축했다. 물론 10년 뒤의 일이다.

“덕명 씨는 정말 수경재배에 도전할 생각인가요?”

전해리가 나와 눈을 마주쳤다.

“네, 도전해 볼 생각입니다.”

“마크의 말대로 초기 자본이 많이 드는 일이기도 해요. 플랜트팩토리도 투자를 받지 못했다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으니까요”

“처음부터 무모하게 일을 벌일 생각은 없습니다.”

“저도 덕명 씨가 잘 되길 빌어요. 솔직히 수경재배는 미국보다 한국에 더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니까요.”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나요?”

“한국 경제에서 농업은 가장 취약한 부분이니까요.”

교포의 입을 통해 이런 말을 듣는 게 아이러니했다. 하지만 새겨들을 말이기도 했다.

“제가 작은 팁을 하나 드릴까요? 수경재배에 관해서요.”

“좋습니다.”

“수경재배는 돈만 있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해요. 식물학에 능통하고 수경재배 시스템에 이해도가 있는 전문가요.”

“그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찾는 게 문제지만...”

“제가 전문가를 하나 알고 있어요.”

“전문가라니 누구죠?”

“플랜트팩토리에서 근무했던 사람이에요. 지금은 퇴사한 상태고요. 민요한이란 남자죠.”

“한국 사람인가요?”

“맞아요, 한국 사람이에요.”

민요한은 플랜트팩토리의 초장기 멤버였다. 식물학자이자 수경재배에 관해 전문 지식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 사람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

“지금은 한국에 있다고 들었어요.”

“어느 지역에 있는지 알고 있나요?”

“제주도에 있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곳에서 벌을 키운다는 소문이 있었고요.”

“혹시 연락처라도 알 수 있을까요?”

전해리가 아는 것은 거기까지였다. 연락처와 메일 주소는 알지 못했다.

민요한은 플랜트팩토리를 퇴사한 후에 한국으로 떠났다.

“퇴사한 이유도 정확히는 몰라요. 제가 입사하기 전에 퇴사한 사람이니까요. 확실한 건 민요한이 플랜트팩토리의 핵심멤버였다는 사실이에요.”

“만약 그 사람과 함께 수경재배를 시작할 수 있다면 일이 쉽게 풀릴 수도 있겠네요.”

“네, 우리도 초기에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어요. 그사람과 함께 시작한다면 시행착오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겁니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제가 더 감사하죠. 곶감에 선물까지 주셨잖아요. 그만 일어날까요?”

전해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배려가 고마웠다. 하지만 이름만으로 사람을 찾는 건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물론 제주도에서 벌을 키우고 있다는 정보가 요긴하게 쓰일 수도 있었다.

* * *

내일이면 캘리포니아에서의 모든 일정이 끝난다.

이곳에서의 마지막 저녁 식사를 했다.

난 백민석에게 물었다.

“네 생각은 어때?”

“민요한 씨에 관해서 묻는 거지?”

백민석이 스테이크를 썰며 물었다.

“우리에게 꼭 필요한 사람인 거 같아. 그런데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어.”

“뭔데?”

“플랜트팩토리를 퇴사한 이유가 마음에 걸려.”

그가 플랜트팩토리를 퇴사한 이유는 그녀도 모른다고 했다.

나도 신경이 쓰였다.

“별거 아닐 수도 있지. 그저 한국이 그리웠을 수도 있고.”

백민석이 웃으며 말했다. 그의 말대로 별 이유는 아닐 수도 있었다.

한국에 돌아가자마자 민요한부터 만나볼 생각이었다. 물론 찾는 게 일이긴 했다.

지역 양봉협회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해볼 작정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려는 순간이었다.

전화기에 진동이 느껴졌다.

“누구야?”

전화기를 들자 백민석이 물었다.

“리틀 한스.”

리틀 한스에게서 온 전화였다. 그와 박람회장에서 우연히 얼굴을 마주쳤다.

각자 목적지가 달라서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없었다.

그때 연락처를 교환했다. 떠나기 전에 시간이 되면 보자는 말을 남겼다.

“한스가 한번 보자고 하는데 어때?”

난 백민석에게 물었다. 문제없다는 사인을 보냈다.

우린 리틀 한스와 만날 약속을 잡았다.

그가 묶고 있는 호텔이 멀지 않았다.

우린 택시를 타고 그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리틀 한스를 포함해 몇몇 일행이 보였다.

“박람회장에서만 보고 비행기를 탔으면 서운할 뻔했습니다.”

리틀 한스가 악수를 하며 말했다.

“네, 정말 서운할 뻔했네요.”

우린 함께 테이블에 앉았다.

“가볍게 음료수 한잔하셔야죠.”

“좋습니다.”

그가 주문한 가벼운 음료는 독일 맥주였다.

“독일 사람들은 맥주를 음료수처럼 마시죠.”

리틀 한스의 말에 일행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미국에서의 마지막 밤이었다.

기분 좋게 맥주잔을 들었다. 박람회 관련 이야기를 하던 중 한스가 물었다.

“로봇 착유기는 이상이 없나요?”

“네, 아무 이상 없이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

“다행이군요. 독일에서도 많은 사람이 양봉 말고도 다양한 일을 병행하죠. 양봉은 일 년에 두 번 밖에 돈을 못 버니까요.”

리틀 한스는 두 번이란 단어에 힘을 줘서 말했다.

꿀을 두 번밖에 따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그도 양봉뿐만 아니라 치즈도 만들며 다양한 일을 겸하고 있었다.

“돈을 떠나서 꿀벌을 키우는 일은 중요한 일이죠. 꿀벌이 없으면 열매를 맺지 못하니까요.”

리틀 한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수경재배 시설이 발달한다고 해도 모든 작물을 수경재배로만 키울 수 없었다.

나무와 같은 커다란 식물들은 쉽지 않았다. 사과와 배 등의 과일나무는 꿀벌의 수분이 있어야 열매를 맺을 수 있었다.

“꿀벌이 없으면 농업의 미래도 없겠죠.”

“전 좀 다르게 생각해요.”

리틀 한스가 날 보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도 그가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한 듯 보였다.

“김덕명 씨가 없으면 농업의 미래가 없다고요.”

그의 말에 폭소를 터트렸다. 그렇게 분위기가 무르익어 갔다.

리틀 한스가 의외의 말을 꺼냈다.

“김덕명 씨 말고도 저에게 꿀벌을 문의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남자도 한국 사람이죠.”

“한국 사람이요?”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기억합니다. 김덕명 씨와 달리 벌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랐죠. 농부의 입장이 아니라 학자의 관점이었죠. 벌의 생태와 생식 등을 물었죠. 꿀은 관심이 없어 보였어요.”

나 말고 그에게 문의한 한국인 있다는 게 호기심을 끌었다.

“그 사람은 양봉이 직업이 아니었나 보죠?”

“알고 보니 식물학자더군요.”

“식물학자요?”

“캘리포니아에서 식물을 재배했다고 말했어요.”

“이곳에서요?”

“지금은 한국에 있는 것 같았고요.”

“그 남자 지금 제주도에 있지 않나요?”

“맞아요, 제주도에 있다고 했어요.”

전해리에게 들었던 식물 전문가 민요한과 이상하리만치 오버랩됐다.

“이름을 알 수 있을까요?”

“요한이란 이름을 가진 남자죠.”

“민요한인가요?”

“맞아요, 민요한. 그런데 덕명 씨도 그 남자를 알고 있나요?”

“네, 찾고 있던 사람입니다.”

리틀 한스는 민요한의 연락처와 메일 주소를 알고 있었다.

지역 양봉협회를 통해 그의 정보를 알아내려고 했다. 그렇다고 백 퍼센트 찾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리틀 한스가 나에게 행운을 가져다 주었다. 난 민요한의 연락처를 받아 적었다.

“재미있는 인연이네요, 좋은 결과가 있길 바랍니다.”

리틀 한스와 작별 인사를 나눴다.

우린 다시 만날 것을 기약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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