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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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곶감 교육을 받은 이들과 약속이 잡혀 있었다.

중간 점검을 겸해서 곶감 판매에 따른 내용을 공유하기로 했다.

한기탁에게 곶감 판매에 따른 문서를 전달받았다.

곶감 교육생과 만나기로 한 장소는 화개장터 매장이었다.

난 문서를 챙겨서 매장으로 이동했다.

2층 회의실로 올라가자 방현식이 보였다.

그가 가장 먼저 도착해 있었다.

잠을 못 잤는지 다크서클이 턱 밑까지 내려와 있었다.

“어젯밤에 호두 기름을 다시 만들어 봤어요. 아침에 연구소도 다녀왔고요.”

“연구소에도 다녀온 거야? 결과는 어땠는데?”

“결과는...”

그때 문이 열리고 예나은이 등장했다. 우리는 놀란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놀란 표정을 지어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수상하네요.”

예나은이 방현식에게 시선을 옮겼다.

“뭐야?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거야? 살짝 말해봐.”

“아무것도 아니에요.”

“역시 수상해.”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람들이 회의실 안으로 우르르 들어왔다. 곶감 교육을 받았던 이들이었다.

호두 기름 관련 이야기는 회의를 마치고 해야 했다.

난 그들에게 문서를 나눠주었다. 문서엔 곶감 판매에 따른 과정이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그들은 완성한 곶감을 지리산 농부들에게 전달해야 했다.

설명을 마쳤을 때였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숨긴 일이 하나 있습니다.”

난 사람들에게 말했다. 모두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날 쳐다보았다.

그들에게는 방현식의 일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방현식이 부탁한 일이었다.

그는 사태가 해결되고 난 뒤에 말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제 참기름을 일도 어느 정도 윤곽을 잡은 상태였다.

지금이 바로 그때였다.

그들의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기도 했다.

“현식 씨에게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고요.”

방현식의 이야기를 마치자 예나은이 벌떡 일어났다.

“뭐든 돕겠어요.”

다른 이들도 돌아가며 한마디씩 했다.

“작은 일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돕겠습니다.”

“저도 돕겠습니다.”

방현식이 곶감을 농사를 지을 때 누구보다 열심히 한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 현식 씨는 참기름을 만들고 있습니다. 현식 씨 혼자서는 소화하기 힘든 양입니다. 기름을 짜는 일부터 병에 담고 포장하는 일까지 일손이 필요합니다.”

“그런 일이라면 얼마든지 돕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방현식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자고 했을 때, 방현식은 혼자서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참기름을 5,000개나 만들어야 했다. 호두 기름을 만드는 일도 있었다. 혼자 힘으로 불가능했다. 현실적인 문제를 꺼내자 그도 내 말에 따랐다.

사람들과 약속을 잡았다.

참기름과 호두 기름을 만들 준비가 되면 다시 모이기로 한 것이다.

말이 나온 김에 호두 기름에 대해서도 물었다.

호두 기름에 대해서 아는 이가 없었다.

예나은은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서 알아봐 주겠다며 적극적으로 나섰다.

* * *

사람들이 모두 돌아가고 방현식과 나만이 남았다.

“형 말대로 하길 잘 한 거 같아요.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기도 했고요.”

“다행이다. 그나저나 연구소에 갔던 건 어떻게 됐어?”

방현식은 어젯밤 짠 호두 기름을 꺼냈다.

한두 병이 아니었다. 열병이 넘었다.

“호두를 찌는 시간을 달리해서 만들어 봤어요. 여러 번 반복해서 찌기도 해 봤고요.”

“그래서 결과는 어땠어?”

“미량이지만 독성이 남아 있었어요.”

“그랬구나.”

결과가 아쉬웠다.

노해미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쟁반에 빵과 음료가 있었다.

“이거 드시고 하세요?”

“고마워요.”

“밖에 우연히 들었어요, 무슨 문제가 있나요?”

난 그녀에게도 호두 기름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어쩌면 할머니가 알고 있을지도 몰라요.”

“할머니라면...?”

“네, 꽃님 할머니요. 예전에 기름도 만들어 본 적이 있다고 하셨어요.”

“김꽃님 할머니 지금 매장에 계시죠?”

“네.”

우린 함께 1층으로 내려갔다.

김꽃님 할머니는 약과를 만들고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혹시 호두 기름 만들어 보신 적 있으세요?”

“예전에 만들어 본 적이 있지요.”

“정말이요?”

“그럼 호두의 독성을 제거하는 방법도 아시겠네요.”

“당연히 알고 있죠.”

나눔의 미덕

김꽃님 할머니와 함께 방현식의 집으로 향했다. 그녀는 호두 기름 만드는 방법을 직접 보여주겠다고 했다.

집에 도착하자 그녀는 쌀부터 찾았다.

“쌀이요? 호두 기름을 만드는 데 쌀이 필요하나요?”

“독성을 제거하기 위해서 쌀이 꼭 필요해.”

방현식의 어머니 김혜숙은 쌀을 가져왔다. 김혜숙도 호두 기름을 만드는 법을 알아야 했다.

김꽃님의 앞에 호두와 쌀이 놓였다.

“쌀과 호두를 함께 찔 거예요.”

“그럼 밥을 하는 건가요?”

“맞아요, 밥이 되지요.”

“호두를 쌀과 함께 넣나요?”

“호두는 면포에 넣어서 찌는 거랍니다. 쌀과 엉겨 붙지 않게요.”

김꽃님은 깨끗한 호두를 면포에 넣고 실로 묶었다.

“이렇게 호두를 넣고 밥을 지으면 호두의 독성이 사라진답니다.”

“쌀이 호두의 독성을 빨아 먹는 거군요.”

“맞아요, 호두의 독성을 중화시키는 과정이죠.”

김꽃님은 면포에 싼 호두와 쌀을 넣고 밥을 했다.

가마솥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밥이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일반적인 밥과 달리 호두의 독특한 향이 느껴졌다.

“이쯤이면 밥이 되겠군요.”

김꽃님은 뚜껑을 열고 안을 살폈다. 밥에 호두 물이 배어 갈색으로 변해 있었다.

“밥이 아주 잘 됐네요. 이렇게 두 번을 더 해야 해요.”

“세 번이나 밥을 하는 거네요?”

“맞아요, 3회 법제한다고 말하기도 하죠. 3번을 해야 호두의 독성이 완전히 없어진답니다.”

방현식은 김꽃님의 말을 놓치지 않고 노트에 적었다.

김혜숙도 호두의 상태를 관찰하며 김꽃님의 말을 놓치지 않았다.

세 번째 호두 밥을 하고 한 김 식힌 다음 김꽃님은 밥솥에서 호두를 꺼냈다.

그녀는 실로 묶어 두었던 면포를 풀었다.

호두의 색이 변해 있었다.

“호두 색깔이 까맣게 변했네요.”

“이 상태가 돼야 해요. 밥하고 같이 쪄서 색이 까맣게 변해야 호두의 독성이 사라진답니다.”

쌀과 호두를 함께 3번 찌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상당이 걸렸다. 보통은 호두를 식히고 잘 말려서 기름을 짜야 하지만, 오늘은 준비 과정을 보여주는 것에 의미를 두자고 하셨다.

압착기 안에 온도를 설정해 저온으로 볶으면서 수분을 증발시키기로 했다.

호두가 식을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 동안, 호두 기름을 만들게 된 사연을 물었다.

호두 기름은 시아버지의 약이었다고 답했다.

그녀는 폐렴을 앓던 시아버지를 위해 호두 기름을 만들었다.

비법을 알려준 이는 시아버지의 친구라고 했다. 그는 당시 유명한 한의사였다.

매일 수시로 복용해야 한다며 호두 기름을 만드는 방법을 알려줬다고 한다.

한참을 이야기하던 김꽃님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기름을 짜는 기구는 어디에 있지요?”

그녀와 함께 기계가 있는 장소로 이동했다.

“내가 기름을 짤 때는 무거운 돌로 눌러서 만들었지요.”

김꽃님은 기계를 보며 말했다.

“기름을 짜는 건 제가 하겠습니다.”

방현식은 잘 식어 수분을 날린 호두를 받았다. 온도를 설정하고 시작 버튼을 눌렀다. 나선형 스크루가 돌아가며 호두 기름을 짜냈다.

“이렇게 빨리 기름이 나오다니 놀랍네요.”

김꽃님은 기계에서 나오는 기름을 보며 말했다.

방현식은 호두 기름을 투명한 병에 담았다. 기름의 빛깔이 전과 달리 진했다.

“호두 기름이 아주 잘 나왔어요. 기계가 좋아서 아주 편리하네요.”

김꽃님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아주 잘 배웠습니다.”

방현식은 김꽃님에게 꾸벅 인사했다.

“인사는 무슨, 그저 아는 걸 알려줬을 뿐인걸요.”

김꽃님 할머니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말은 그리했지만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작은 노하우조차 공유하지 않으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밥을 세 번이나 찌고 식히고 하는 과정에 만만찮은 시간이 들었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정성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호두 기름이 귀하다는 것을 직접 체험한 순간이기도 했다.

“식사하시고 가세요, 제가 바로 준비할게요.”

김혜숙이 말했다. 날이 훌쩍 저물어가고 있었다.

그녀도 어떻게든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 했다.

“아니에요, 어쩌다 보니 오늘 하루 통째로 비워버렸네~ 가봐야 해요. 해미 씨가 혼자 고생했겠어.”

나까지 나서서 김꽃님 할머니께 식사를 같이 하시자 말씀드렸다. 할머니도 방현식 모자의 마음을 잘 알겠다 하시며 허락했다.

방현식과 나는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뚝딱하고 먹어 치웠다. 얼른 연구소에 가져가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김꽃님 할머니를 모셔다드리고 우린 곧장 연구소로 향했다.

“호두 기름의 독성을 쌀로 빼낼 줄은 몰랐어요.”

“연구소에서도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네.”

“호두가 검게 변한 걸 보고 느낌이 왔어요. 독성이 확실히 사라진 거 같다고.”

서우영에게 완성한 호두 기름을 건넸다.

“벌써 완성한 건가요?”

“호두 기름 전문가에게 도움을 받았습니다.”

“꼼꼼하게 확인해 보겠습니다.”

서우영과 이영호가 연구실로 들어갔다.

방현식이 기대에 찬 얼굴로 말했다.

“결과가 좋으면 당장 기름을 짤 생각이에요. 사람들도 돕겠다고 했으니 일이 순조롭게 진행될 거 같아요.”

“함께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어렵지 않을 거야.”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이제부터 이후의 일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서우영과 이영호가 검사를 끝내고 나왔다.

지난번과는 달리 표정이 밝았다.

“미량의 독성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방현식이 두 팔을 벌리고 환호성을 질렀다. 어지간히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개인적인 호기심인데 어떻게 독성을 제거한 건가요?”

“호두와 함께 밥을 지었습니다.”

“밥이요?”

“네, 쌀과 함께 쪄서 독성을 제거한 거죠.”

“쌀알이 밥이 되면서 호두의 독성을 흡수한 거군요. 생각도 못한 방법이네요.”

드디어 호두 기름의 문제를 해결했다.

이제 호두 기름을 만드는 것도 문제없었다.

방현식과 함께 일을 할 사람들도 있었다.

준비가 끝나고 물건을 만드는 일만 남았다.

* * *

한기탁에게 지금까지의 상황을 전했다.

“이제 물건을 만들고 판매하는 일만 남았네.”

“네, 그 일만 남았어요.”

“우리 곶감은 예약이 꽉 찼어.”

“벌써요?”

“그때 네가 알려준 마케팅 기법을 활용했어. 효과는 아주 좋았고.”

“어떤 마케팅 기법이요?”

“대량 메일 발송 시스템.”

“곶감에도 그걸 사용했어요?”

“네가 워낙 바빠서 말할 시간이 없었지.”

한기탁은 노트북을 켰다. 녹차 농가의 사람들을 소개했던 것과 비슷한 화면이 나왔다.

주인공이 바뀌어 있었다. 황유신 선생님과 나 그리고 곶감 교육생들이었다.

사진과 함께 글이 배치돼 있었다.

명인과 함께 곶감을 만드는 사람들이란 타이틀이 눈에 띄었다.

“이번에도 장지수 작가에게 부탁했지. 황유신 선생님과 교육생 인터뷰도 받았고.”

“언제 이런 일을 다 한 거예요?”

“나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지.”

“고생하셨어요.”

“버블티 세트도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고.”

그가 화면을 넘기며 말했다. 버블티 세트와 아이들의 사진이 나왔다.

아이들이 버블티를 만드는 사진이었다.

버블티와 관련해서도 웹진의 형태로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있었다.

“아이를 둔 가정집에서 주문이 몰리고 있어. 버블티 덕에 아이들이 우유를 잘 먹게 됐다고.”

버블티 세트는 매장에서 버블티 체험을 했던 아이가 낸 아이디어였다.

노해미와 김꽃님 할머니가 아이들과 함께 버블티를 만든 게 계기가 됐다.

지리산 농부들의 노력이 아이들의 참신한 아이디어와 만난 결과였다.

“참 미국행 티켓도 준비해 놨어.”

캘리포니아 농업 박람회 건이었다.

“올해도 그랬지만 내년에도 좋은 일만 생길 거 같아.”

한기탁이 웃으며 말했다. 그의 말대로 내년에도 좋은 일만 생기길 바랐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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