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5. (165/205)

그 시간 지리산 농부의 매장.

노해미와 김꽃님 할머니는 매장을 정리하고 있었다.

“오늘 저녁은 제가 대접해 드리고 싶은데 괜찮으시죠?”

“해미가 저녁을 대접한다고?”

김꽃님은 앞치마를 벗으며 말했다. 그녀는 노해미와 함께 일하며 웃는 일이 많았다.

싹싹하고 밝은 노해미와 궁합이 잘 맞았다. 자신이 만든 약과로 사람들의 입을 즐겁게 하는 일도 좋았다.

“그럼 오늘은 해미랑 저녁 같이 먹을까?”

“잠시만요.”

허락이 떨어지자 노해미는 가게 문부터 닫았다.

김꽃님은 그 모습을 보며 물었다.

“식당에 가서 먹는 거 아니었어?”

“오늘은 제가 특별히 준비한 게 있거든요.”

노해미는 그때부터 정신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뭘 하려고?”

“빵을 구우려고요.”

김꽃님은 웃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노해미를 보는 것만으로 즐거운 일이었다.

갓 피어난 꽃처럼 아름다운 청춘이었다.

김꽃님은 노해미를 볼 때마다 자신의 젊은 날을 회상했다.

노해미는 오븐 안에서 갓 구운 빵을 꺼냈다.

“짜잔, 마늘빵이 나왔습니다.”

노해미는 갓 구운 마늘빵을 테이블에 놓았다.

“여기 들어간 마늘은 제가 직접 갈아서 만든 거예요.”

“마늘을 갈아서 넣었다고? 어디 한번 맛 좀 볼까?”

김꽃님은 빵을 한 조각 떼어서 입에 넣었다. 그녀는 빵을 오물오물 씹으며 맛을 음미했다.

“맛이 어떠세요?”

김꽃님은 말없이 노해미를 바라보았다.

“왜요? 맛이 없으세요?”

노해미는 걱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김꽃님을 바라보았다.

김꽃님은 그 모습을 보고 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만든 약과보다 백배는 더 맛있어.”

“정말이요?”

“진심이야, 내가 만든 것보다 훨씬 나아.”

“아니에요, 말씀이 너무 과하셨어요. 약과가 얼마나 맛있는데요.”

노해미는 목장에서 오늘 나온 우유를 가져왔다.

“이것도 같이 드세요.”

김꽃님은 목장 우유와 마늘빵을 함께 먹었다. 입이 즐거운 저녁 시간이었다.

“그런데 약과 만드는 법은 어디서 배우셨어요?”

노해미가 빵을 먹으며 물었다.

“나도 해미처럼 어디 학원 같은 데서 배웠을까봐?”

“아니요, 그때는 학원도 없었겠죠. 그래서 더 궁금했어요. 약과 말고도 유과와 한과도 만드시잖아요. 그 많은 걸 다 어디서 배우신 거예요?”

“전부 어른들에게 배웠지.”

김꽃님은 과거를 떠올렸다.

그녀도 소녀일 때가 있었다. 약과가 먹고 싶어서 애를 태우던 소녀였다. 나중에 어른이 되면 약과와 유과를 쌓아놓고 먹겠다고 다짐했던 시절이 있었다.

김꽃님은 자신의 옛날 이야기를 노해미에게 들려주었다.

노해미는 이야기를 듣던 중 깔깔거리며 웃었다.

“어릴 때 말괄량이 소녀였다는 게 믿기지 않아요.”

“나도 믿기지 않아, 내가 이렇게 늙었다는 게.”

“늙다니요, 아직도 팔팔하세요.”

“늙은이 놀리면 못써.”

“맹세컨대 진심이에요. 제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에 음식을 가장 잘하세요. 못하는 음식도 없으시고요. 척척박사세요.”

“척척박사라니 그런 말은 처음 들어보네.”

“혹시 기름도 짜보셨어요?”

노해미가 물었다. 문득 김덕명이 참기름을 만들고 있다는 게 떠올랐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은 것이다.

“예전에 기름도 집에서 짰지.”

“아 정말요? 기름도 만드실 줄 아세요? 정말 대단하세요.”

노해미는 목이 탔는지 우유를 한잔 들이켰다. 그녀의 입에 우유 수염이 나 있었다.

김꽃님은 휴지로 그녀의 입을 닦아주었다.

* * *

때마침 ‘인천 정밀’의 이장호에게 연락이 왔다.

“오래 기다렸지?”

“기계는 다 된 거야?”

“마무리 작업하고 있어. 오늘 중이면 다 될 거 같아. 와서 한 번 봐야지.”

“오늘 당장 갈게.”

“좋아, 기다릴게.”

방현식과 함께 인천으로 향했다. 방현식은 기계가 완성됐다는 말에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떨려요.”

방현식이 가슴에 손을 대고 물었다.

“이게 떨리는 일인가?”

“그럼요, 이제 기계만 있으면 참기름을 만들 수 있잖아요.”

“이미 참기름을 다 만든 사람 같네.”

“그래 보여요?”

그가 웃으며 물었다.

현식에게 홈쇼핑 기획자와 만난 이야기를 전했다.

참기름을 확보해야 하는 문제와 호두 기름에 관련해서도 말했다.

“문제없어요. 참기름도 호두 기름도 다 만들어 놓을게요.”

방현식은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말했다.

“호두 기름은 만들어 본 적도 없잖아? 어떻게 만드는지는 알고 있어?”

“그거야 알아보면 되죠.”

“그리고 그 많은 제품을 혼자 만들겠다고?”

“이제 기계도 생기니까 할 수 있어요.”

방현식은 기계만 있으면 뭐든 다 할 수 있다는 듯이 말했다.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주변에 공구상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인천 정밀’ 간판이 보였다.

이장우와 그의 아버지 이동춘이 나에게 손짓했다.

“먼 길 오느라 수고했다.”

이장우가 나에게 말했다.

“먼 길 오느라고 수고하셨습니다.”

뒤이어 이동춘이 말했다.

이장우의 아버지는 여전했다.

우리는 건물 내부로 들었다.

방현식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작업장의 한 가운데 베일에 싸인 물건이 보였다.

이동춘은 그곳에서 멈췄다.

“인천 정밀의 자부심을 걸고 만들었습니다.”

이동춘이 베일을 벗겨냈다. 스테인리스로 만든 기계가 모습을 드러냈다.

“경질 크롬 도금처리로 녹이 슬지 않습니다. 모터에 이중으로 안전장치를 해서 안전에도 신경을 썼고요.”

버튼을 누르자 모터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나선형의 스크루가 돌아갔다.

“스크루에 열선을 넣었습니다. 버튼으로 온도 조절이 가능합니다.”

온도를 조절하는 버튼을 누르자 원하는 온도에 맞게 설정이 됐다.

“깨 통을 낮게 위치해서 투입이 편하게 하고, 청소 및 관리가 쉽도록 제작했습니다.”

이동춘은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자신이 제작했지만, 마음에 든다는 얼굴이었다.

“참깨를 넣어 봐도 될까요?”

방현식이 이동춘에게 물었다.

“네, 가능합니다.”

방현식은 가방에서 준비한 참깨를 꺼냈다.

깨 통에 참깨를 쏟기 전에 온도부터 설정했다.

온도를 48도에 맞췄다.

방현식은 참깨를 깨 통에 부었다.

시험을 위한 소량의 참깨였다.

“제가 버튼을 눌러도 될까요?”

방현식이 날 보며 물었다. 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긴장한 표정으로 버튼을 눌렀다. 모터가 돌아갔다.

깨 통 안에 있던 참깨가 기계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나선형의 스크루가 열을 발산하며 기름을 짜냈다.

노란색의 맑은 기름이 관을 통해서 나왔다.

“정말 순식간에 기름이 만들어지네요.”

방현식이 기쁜 듯 소리쳤다.

살짝 볶은 단단한 참깨였다.

고온으로 볶지 않았음에도 기름이 쉽게 짜졌다.

속도도 빨랐다.

기계의 힘은 대단했다.

호두 기름

완성된 기계를 하동으로 가져왔다.

방현식의 비닐하우스에 제작한 기계를 넣었다. 비닐하우스에는 지난번 비 피해 이후 바닥 공사를 해두었다. 기계를 설치하는 데 문제가 없도록 했다.

“원래 곶감이 나와야 할 곳인데 참기름이 나오게 생겼네요.”

방현식이 기계를 보며 말했다.

“그런데 이건 뭐야?”

나무를 깎아 만든 작은 명패가 있었다.

“기름집 간판이요.”

“엄마와 아들 방앗간 이름이 좋네.”

사업자등록증도 걸려 있었다. 기름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사업자 신고를 해야 했다.

그는 즉석판매제조가공업 사업자를 받았다.

참기름 병을 넣을 나무 선반과 각종 도구도 눈에 띄었다.

“그동안 준비 잘하고 있었네.”

“돈을 벌면 더 멋지게 꾸밀 생각이에요.”

그때 방현식의 어머니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녀는 참깨가 든 통을 들고 있었다.

“이거 깨끗하게 씻어 말린 참깨야.”

김혜숙은 방현식에게 참깨를 건넸다. 인천에서 시험 삼아 기계를 작동해 보았다.

하동에서는 처음이었다.

“그럼 참기름을 짜보겠습니다.”

방현식이 깨 통에 참깨를 넣었다. 참깨를 넣고 48도로 온도를 맞췄다.

버튼을 누르자 참깨가 기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김혜숙은 기도하듯 두 손을 모았다.

나선형의 스크루가 돌아가며 기름을 짜냈다.

노란 빛깔의 참기름이 관을 통해서 흘러나왔다.

“정말 순식간에 참기름이 나오는구나.”

김혜숙은 참기름을 바라보며 말했다.

“고온으로 볶지 않았는데 참기름이 나오다니 신기하네.”

“엄마와 아들 방앗간에서 나온 최초의 참기름입니다!”

방현식은 참기름을 투명한 병에 담아 김혜숙에게 주었다.

“오늘 점심은 이걸로 밥을 해야겠다.”

“메뉴가 뭔데요?”

김혜숙 답을 하지 않고 미소를 지었다.

“점심 꼭 먹고 가세요. 오늘 짠 참기름으로 맛있는 음식을 해드릴게요.”

“네.”

그녀가 참기름으로 어떤 요리를 할지 궁금했다. 김혜숙이 참기름 병을 들고 나갔다.

“밥할 동안 호두 기름도 만들어 볼까요?”

“그럴까?”

“호두 기름을 짜기 전에 호두를 쪄야 한다고 했죠.”

“맞아, 호두를 찐 상태에서 기름을 짜내야 해. 그래야 독성이 빠진다고 했으니까.”

“바로 시작해 볼게요.”

방현식은 준비한 찜통에 호두를 넣었다.

호두나무는 벌레가 생기지 않는다. 호두가 가지고 있는 독성 때문이다.

도토리나 밤과 달리 벌레가 꼬이지 않는 이유다.

호두를 찌는 이유는 독성분을 빼주기 위해서였다.

방송을 통해 호두 기름이 소개됐지만 만드는 곳이 거의 없었다.

호두를 찐다는 정보도 한의사를 통해 어렵게 알아낸 사실이었다.

방현식의 찜통에서 김을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찐 거 같아요.”

우린 찜통 안에서 호두를 꺼내 한 김 식혀 수분을 날렸다.

한참 뒤 기계에 넣었다.

“참깨처럼 48도에 맞춰야겠죠?”

“그게 좋을 거 같아.”

열을 가하는 게 기름을 짜기에 용이했다.

방현식은 온도를 맞추고 시작 버튼을 눌렀다.

나선형의 스크루가 돌아가며 기름을 짜냈다.

“참기름보다 속도가 빠르네요.”

생각보다 쉽게 기름이 짜졌다.

방현식은 호두 기름을 투명한 병 담았다.

“색으로는 참기름과 구별하기 힘드네요.”

참기름처럼 노란빛이 감도는 기름이었다.

호두 기름이 참기름보다 더 진해 보이기도 했다.

“호두 기름 안엔 벤조피렌이 없을까요?”

방현식이 호두 기름이 담긴 병을 보며 물었다.

“침전물이 없는걸 보면 아마도 없을 거야. 48도 이하로 볶은 참기름에서도 벤조피렌은 나오지 않았고.”

“제 생각도 같아요. 문제가 없을 거 같아요. 그래도 검사를 해보는 게 좋을 거 같아요.”

“확실한 게 좋겠지.”

나도 그와 같은 생각이었다. 호두의 독성이 완전하게 제거됐는지 확인이 필요했다.

“우선 밥부터 먹고요.”

집으로 들어가자 참기름 냄새가 진동을 했다.

김혜숙이 음식을 들고 등장했다.

“오늘 짠 참기름으로 만든 김치볶음밥이에요.”

묵은 지를 참기름에 달달 볶아 만든 김치볶음밥이었다.

음식을 보자 입에 침이 고였다.

방현식과 난 동시에 숟가락을 들었다.

고소한 향이 입과 코를 즐겁게 했다.

“제가 먹어 본 김치볶음밥 중에 최고예요.”

“다 참기름이 좋아서 그런 거죠.”

김혜숙이 웃으며 말했다.

방현식은 눈 깜짝할 사이에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밥 더 있어요?”

“벌써 다 먹은 거야? 천천히 좀 먹지. 잠깐만 기다려봐.”

점심을 맛있게 먹고 연구소로 달려갔다.

서우영과 이영호는 식사를 마치고 들어오는 길이었다.

“참기름 때문에 오신 건가요?”

서우영은 방현식이 들고 있는 병을 보고 물었다.

“아니요, 이번엔 다른 기름입니다.”

“현식 씨 손에 있는 게 참기름이 아닌가요?”

“호두 기름입니다.”

“호두도 기름을 짜는군요. 처음 들어봤습니다.”

방현식이 서우영에게 호두 기름을 건넸다.

“이것도 검사를 받을 생각이군요?”

서우영과 이영호는 호두 기름을 들고 연구실 안으로 들어갔다.

“이번엔 아무 문제 없겠죠?”

“검사 결과가 나와 봐야 알겠지만, 문제없을 거 같아.”

“참 그리고 내일이 모이는 날이죠?”

“맞아, 내일이야.”

곶감 교육을 했던 사람들과 만나는 날이었다.

중간 점검도 하고 곶감 판매와 관련해서 공유할 내용이 있었다.

“다들 곶감이 잘 됐겠죠?”

“곶감을 못하게 돼서 많이 아쉽지?”

“아쉽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그래도 그 덕에 참기름을 만들게 됐잖아요. 호두 기름까지 만들고 있고요. 다 형 덕이에요.”

“네가 노력한 덕이지.”

그때 서우영이 문을 열고 나왔다.

표정이 그리 밝지는 않았다.

“성분을 분석을 마쳤습니다. 호두 기름에선 리놀레산과 올레산과 같은 필수 지방산이 검출됐습니다. 모두 몸에 유익한 성분들이죠.”

서우영의 말에 방현식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런데 몸에 좋은 성분만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호두 기름 안에서 미량의 독성분도 발견됐습니다.”

“독이요?”

“아플라톡신이란 성분의 독성분입니다. 미량이긴 하지만 맘에 걸리네요.”

그의 표정이 밝지 않는 까닭이었다.

“독성분을 없앨 방법이 있나요?”

방현식이 서우영에게 물었다.

“글쎄요, 모르겠네요.”

서우영에게 그것까지 기대할 수는 없었다. 제조과정에 문제가 된 것 같았다.

호두를 찌는 것만으로는 독성이 제거되지 않은 것이다.

“제가 다 미안하네요. 좋은 결과를 기대했을 텐데...”

서우영이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미안하다니요, 그저 하나의 과정일 뿐이죠. 다음에 올 때 아무 이상이 없는 걸 가져오겠습니다.”

“저도 기대하겠습니다.”

“그리고 홈쇼핑 관계자와는 이야기를 마쳤습니다.”

“벌써 이야기가 됐군요.”

홈쇼핑 출연과 관련해 몇 차례에 걸쳐 그를 설득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사람들에게 지리산 농부들의 연구소를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단순히 유기농 인증을 받은 건강한 농산물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검증한다는 것을 널리 알리고 싶다고 설득한 것이다.

그는 결국 출연을 허락했다.

“일정이 잡히면 알려 주십시오.”

서우영이 웃으며 말했다.

“네, 일정 나오는 대로 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방현식과 난 연구소를 나왔다.

“표정이 안 좋네? 호두 기름에서 독성분이 검출됐다고 그러는 거야?”

“예상과 달라서 좀 실망했어요.”

“방법이 있을 거야, 함께 찾아보자.”

“네.”

방현식은 우렁찬 목소리로 답했다.

난 독성을 제거할 방법이 있을 거라고 믿었다.

방현식과 헤어지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렸다.

호두 기름의 독성을 제거하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책에 나오지 않는 정보는 인터넷을 이용해 검색했다.

호두를 찌는 게 독성을 제거하는 방법이었다.

이미 해 본 방법이었다.

“찌는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던 걸까?”

밤새도록 방법을 찾았지만 원하는 내용은 나오지 않았다.

고민만 하다 책상에 엎드려 잠이 들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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