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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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곶감 농사를 짓는 동시에 조직을 개편했다. 개편안을 만드는 일은 한기탁이 맡았다.

사무실 인력은 경영지원과 쇼핑몰 팀으로 정리가 돼 있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서우영과 이영호가 있는 연구소도 무리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조직 개편이 필요한 곳은 목장이었다. 젖소를 관리하는 일부터 유제품을 생산하는 일까지 책임자를 정해야 했다.

난 목장을 좀 더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했다.

설강인을 팀장으로 하는 개편안이었다. 지금까지도 젖소 사육과 관리는 설강인을 중심으로 해오고 있었다. 다만 직책과 책임의 범위는 정하지 않았다.

그 부분을 명확하게 나눴다.

설강인 팀장을 중심으로 젖소를 사육하고 주명희와 설민주를 중심으로 유제품을 담당하게 했다.

일을 명확하게 나눈 것이다.

설민주는 버블티에 들어가는 각종 펄과 요거트만 담당하게 했다.

막걸리 요거트와 그 외의 유제품은 주명희가 담당했다.

체험 농장은 김상철이 책임지게 했다.

이벤트와 행사 등으로 일들이 들쑥날쑥했던 부분을 바로잡았다.

녹차 농가들은 협동조합을 만든 뒤 산양을 공동으로 관리하고 있었다. 그 부분도 깨끗하게 매듭을 지었다.

곶감 농사를 지으며 조직 개편에 따른 사항들을 전달했다.

개편을 하고 나니 목장 분위기가 달라졌다. 팀 단위로 움직이는 게 눈에 들어왔다.

젖소를 사육하고 관리하는 팀과 유제품을 만드는 팀이 한눈에 구분됐다.

의욕이 앞에 이일 저일 도맡아 하던 설민주도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난 오랜만에 설강인과 마주했다.

“곶감 농사를 짓고 있다고 들었네.”

“네, 다른 농부들 교육도 했고, 우리 곶감 농사도 마쳤습니다.”

“처음에 곶감 농사로 시작했다는 말을 들었네. 그 뒤로 이렇게 성장시키다니, 자네는 정말 대단한 농부야.”

“다 좋은 사람들과 인연이 닿은 덕이죠.”

그때였다.

목초지에서 풀을 뜯던 젖소들이 축사로 들어가고 있었다.

“젖소들이 알아서 축사로 들어가네요.”

“비가 올 모양이네.”

설강인은 하늘을 보고 말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었다.

“날씨가 이렇게 좋은데요?”

“사람보다 동물들이 더 예민한 법이지.”

그날 저녁 비가 무섭게 내렸다.

겨울비치고는 요란했다. 천둥과 번개까지 내리치고 있었다.

난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뒤척이다 간신히 잠자리에 들었던 것 같았다.

꿈까지 꾸었다. 거대한 흙더미가 날 덮치는 꿈이었다. 흙더미에 파묻혀 숨도 쉴 수 없었다.

자다가 벌떡 일어났다.

아직 비가 내리고 있었다.

방현식의 비닐하우스가 신경 쓰였다.

* * *

다음날 눈을 뜨자마자 방현식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직 이른 시간이었지만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난 씻지도 않고 옷부터 챙겨 입었다.

마당에 부모님이 나와 있었다.

“어디 가세요?”

“곶감 보러 간다. 간밤에 비가 많이 와서.”

아버지가 말했다.

“너도 곶감 보러 가는 거냐?”

“아니요, 가볼 데가 있어서요.”

“이 새벽에 어딜 가려고?”

어머니가 물었다.

“함께 곶감 작업을 했던 농가에 가보려고요.”

“밥 먹고 가.”

“밥은 다녀와서 먹을게요.”

“조심해서 다녀오고!”

그의 집으로 가는 길에도 전화를 몇 번이나 걸었다. 여전히 받지 않았다.

라디오에선 간밤에 내린 폭우로 피해를 본 농가가 속출했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아직 비가 내렸다.

산에서 흙더미가 쓸려 내려온 모습이 보였다.

난 그의 집 근처에서 차를 세웠다.

토사에 길이 막혀 있었다.

감나무밭을 지나 비닐하우스로 앞에 도착했다.

‘이럴 수가!’

비닐하우스가 반쯤 흙더미에 깔려 있었다. 날아온 나뭇가지나 돌 같은 것에 찢긴 곳도 보였다.

비닐하우스 안으로 비가 들이치고 있었다.

방현식은 찢어진 비닐을 필사적으로 덧대고 있었다. 사다리를 오른 모습이 위태로워 보였다.

난 사다리를 잡고 외쳤다.

“현식아, 조심해.”

“이것만 하고요, 곶감이 비에 맞았으면 전부 못쓰게 되잖아요.”

그의 말대로 비에 맞은 곶감은 폐기하는 수밖에 없다.

난 그를 도와 비닐하우스를 보수했다.

비닐하우스 한 동만 문제가 아니었다.

세 동 모두 토사에 상처를 입었다.

간신히 보수를 끝냈지만, 곶감을 살리긴 힘들 것 같았다.

“우리 곶감 어떡하죠?”

방현식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할 뿐이었다.

* * *

문제는 비닐하우스만 있는 게 아니었다.

그의 집주변도 토사에 복구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우린 수해 복구 팀을 기다렸다.

피해를 본 농가는 많았다. 복구 팀이 이곳까지 오는 데 시간이 걸린다고 들었다.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난 구할 수 있는 모든 인력을 동원했다. 지리산 농부들과 녹차 농부들이 방현식의 집으로 모여 손을 보탰다.

그들과 함께 집주변을 복구했다.

그의 집 앞에 흙더미가 쓸려 내려온 것도 말끔하게 정리했다.

비는 더 오지 않았다.

많은 인원이 함께 움직인 덕에 이틀 만에 정리가 끝났다.

동료들이 돌아갈 무렵이었다.

한기탁이 조용히 날 불렀다.

“이거 팀원들이 모은 돈이야.”

한기탁이 봉투를 건넸다.

“고마워요.”

“고맙긴. 저 친구도 우리와 한배를 탄 사람인데. 그나저나 곶감 농사를 망쳐서 어쩐다냐... 네가 잘 위로해줘. 우린 돌아갈게.”

한기탁과 동료들이 돌아가고 나와 방현식만이 남았다.

아쉽게도 곶감은 살릴 수 없었다.

방현식은 허탈한 눈으로 폐기한 곶감을 바라보았다.

“그때 형 말 들을 걸 그랬어요.”

그의 안색이 창백해 보였다.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어떻게 위로를 해야할지 몰라 시간을 두고 천천히 고민해보라는 소리밖에 할 수 없었다. 그러다 지리산 농부들에서 같이 일해보자는 말이 불쑥 나왔다.

“고맙지만 사양할게요. 어머니와 약속한 것도 있고요.”

그는 어머니를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복싱을 그만두고 한 맹세였다.

그가 실명을 한 것을 알고 어머니는 한동안 밥을 먹지 못했다고 했다.

방현식은 교육을 받을 때도 끝나자마자 집으로 향했다.

어머니가 함께 밥을 먹기 위해 기다린다고 했다.

그가 곶감 농사를 지은 이유기도 했다.

어머니와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한 일이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면 되죠. 아직 젊잖아요.”

“그래,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거야. 기운 내자!”

말은 그렇게 했지만, 마음이 무거웠다.

“다시 일어설 방법은 스스로 방법을 찾아볼게요.”

방현식은 씩씩한 얼굴로 말했다. 애써 짓는 표정이었다.

난 그에게 봉투를 건넸다.

“이건 형이랑 동료들이 모은 거야 받아.”

“아니요, 괜찮아요.”

방현식은 급구 거절했다.

“안 받으면 화낸다.”

그제야 봉투를 받았다.

“내가 너에게 곶감 기술을 가르쳤는데 그 곶감 농사가 이렇게 됐으니, 나에게도 책임도 있는 거야.”

“그게 무슨 말이에요. 형 책임은 없어요.”

“현식아, 그냥 형 마음이 그렇다는 거다.”

방현식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형도 방법을 찾아볼게.”

난 방현식의 손을 꼭 잡았다.

“함께 방법을 찾아보자. 쉽지는 않겠지만, 또 새로운 기회가 생길 수도 있으니 같이 애써보자.”

“말씀만이라도 너무 감사해요 형.”

“그래.”

“이제 뭔가를 새로 하게 된다면 어머니와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어요. 내가 혼자서 다 해결하려고 하다가 손도 발도 못 쓰는 이런 지경이 된 것 같아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방현식이 말했다.

“그래, 어머니와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 너무 무리는 하지 말고.”

방현식이 마음을 다잡은 얼굴로 웃음을 보였다.

애써 짓는 미소가 아니라 훌훌 털고 일어나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평소에 알던 씩씩한 방현식의 얼굴이었다.

“그리고 형이 준 봉투는 어머니 드릴게요.”

* * *

갑자기 내린 폭우였다.

곶감을 다시 살릴 방법은 없었지만, 다시 일어날 방법은 분명히 있었다.

난 방법을 고민 중이었다.

“밥 먹어라.”

“괜찮아요.”

“먹어!”

어머니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고민이 많아서 그런지 며칠째 저녁을 건너뛰었다.

어머니는 더 봐주지 않겠다는 눈으로 날 노려보았다.

결국 식탁 앞에 앉았다.

오랜만에 비빔밥이 나왔다.

참기름 향이 고소했다.

“그거, 지난번에 네가 가져온 참기름을 한번 넣어봤다.”

“제가 참기름을 가져왔나요?”

“얼마 전에 가져왔잖아. 곶감 농사짓는 후배에게 받았다며.”

“아, 네.”

방현식의 어머니가 준 참기름이었다. 그때 두 모자가 용돈 벌이로 기름을 짠다는 말이 떠올랐다.

“아니 저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아버지는 밥을 먹다 뉴스를 보며 말했다.

“그러게 말이에요!”

어머니도 맞장구쳤다.

중국산 참기름이 국내산으로 둔갑했다는 뉴스였다.

티브이 화면을 바라보다, 광고 기획자 시절 참기름을 팔았던 일이 떠올랐다.

어머니와 함께 할 수 있는 일이면 좋겠다고 한 방현식의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참기름이 실마리가 될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방앗간에서 기름짜는 법

중국산 참기름 국내산 참기름으로 둔갑한 사건은 사회적 큰 파장을 일으켰다.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은 것이다. 사건이 커진 이유는 소비자 단체들의 움직임 때문이었다.

소비자 단체가 하나로 뭉쳐 관련 기관에 조사를 요청했다. 조사 과정에 다른 비리도 드러났다.

충격적인 일은 명인이라고 불리는 이의 참기름이 문제가 된 사건이었다.

유명한 명인의 참기름도 중국산 깨로 만들었던 것이다.

식품회사들의 참기름도 문제가 됐다. 참기름 안에 이물질이 발견됐다.

참기름뿐만 아니라 들기름도 문제가 됐다. 기름과 관련한 비리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왔다.

논란의 중심에 국내산 참기름도 있었다. 원산지의 문제가 아니었다.

국내산 참기름에도 문제가 많았다. 국내산 참기름과 들기름에서 발암 물질이 다량으로 검출된 것이다.

참기름을 만드는 방식이 문제였다. 참깨를 볶는 과정에서 발암 성분이 발생했다.

참기름에 나온 독성 물질이 인체에 쌓이면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말까지 돌았다.

참기름 등의 기름은 명인이 만든다고 명품이 나오는 게 아니었다.

과학적 원리로 풀어야 할 일이었다.

참기름이 문제를 일으킬 뒤 그 문제를 해결한 업체가 있었다. 착유 방식을 개선해 좋은 참기름을 만들었다. 그 업체에서 만든 참기름에선 발암 물질이 발견되지 않았다.

광고기획자 시절 해당 업체의 참기름을 판 일이 있었다.

그때 마케팅 포인트는 발암 물질이 검출되지 않았다는 성분 분석표였다. 소비자들의 열광적인 반응에 물건이 딸리는 일까지 발생했다.

물론 미래의 일이다.

지금은 중국산 참기름만이 문제가 되는 상황이었다.

난 방현식과 함께 제대로 된 참기름을 만들어 시장을 공략할 생각이었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몇 가지 처리할 일들이 있었다.

* * *

눈이 내리고 있었다.

화개장터의 정기 휴일이었다. 지리산 농부들의 매장도 문을 닫았다.

한기탁이 매장 앞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휴일에 매장으로 사람을 부르고 무슨 일이야?”

한기탁이 외투를 여미며 물었다.

“조용히 상의하고 싶은 일이 있어요. 들어가서 이야기해요.”

“또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그가 눈에 힘을 주며 물었다.

난 따뜻한 밀크티를 만들었다. 영국식으로 만든 로열 밀크티였다.

“혹시 현식 씨 문제야?”

한기탁은 따뜻한 차를 손에 쥐고 물었다.

“네, 맞아요.”

“성실한 친구 같던데 정말 안 됐어. 하늘도 무심하지.”

그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맞아요, 그저 어머니랑 함께 잘 살아보려고 한 것뿐인데.”

“내가 한 번 맞춰볼까?”

“뭘요?”

“우리 대표님이 나에게 하고 싶은 말.”

“맞춰보세요.”

“현식 씨를 동료로 들이고 싶다, 이거 아닌가?”

한기탁이 내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만약 그렇다면 선배는 뭐라고 할 거예요?”

“내 의견을 묻는다면...”

그가 잠시 팔짱을 끼고 생각했다. 머릿속으로 조직도를 그리는 듯이 보였다.

“난 찬성이야. 지리산 농부들도 안정적으로 돌아가는 상황이기도 하고, 인원이 한 명 더 늘어난다고 해서 문제 될 건 없지.”

한기탁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선배 말대로 현식 씨 문제를 상의하고 싶었던 건 맞아요. 하지만 채용과 관련한 일은 아니에요.”

“아니라고? 그럼 뭐야?”

“현식 씨와 함께 협업을 할까 해요.”

“협업?”

한기탁은 예상치 못한 말에 눈을 크게 떴다. 그도 방현식의 곶감 농사가 망한 걸 잘 알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협업을 한다니 도무지 알 수 없다는 눈빛이었다.

“방현식과 함께 기름을 만들어 볼 생각이에요.”

“기름을 만든다고? 참기름 들기름을 뭐 이런 걸 말하는 거야?”

“맞아요. 참깨와 들깨로 기름을 만들까 해요.”

“참기름이라...”

한기탁은 그 말을 되뇌며 한참을 생각했다.

“우리 쇼핑몰에서 팔 계획인 거야?”

“네, 지리산 농부들의 쇼핑몰에서 팔 계획이에요. 곶감이 나올 때를 맞춰서요.”

“곶감이 나올 때 기름을 함께 판다. 설 선물 세트로 판매한다면 나쁘진 않겠네. 그런데 기름을 그렇게 쉽게 만들 수 있나? 기술이 필요한 일 아닌가?”

가방에서 참기름을 꺼냈다.

방현식의 어머니가 준 참기름이었다.

“현식 씨네 집에서 기름을 만들고 있어요.”

“이런 일도 하고 있는 줄 몰랐네.”

한기탁은 참기름 병을 보며 말했다.

“뭐, 이 정도야 문제였지.”

그가 웃으며 말했다.

방현식에게 작은 희망을 주는 일 정도로 여기는 것 같았다.

소소하게 팔릴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내가 도울 일은 없고?”

“곶감 교육 때처럼 조직 관리에 힘써주세요. 그동안 전 현식 씨와 기름에 집중하고 있을 게요.”

“뭐 그런 일이라면 문제없지.”

한기탁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답했다.

그의 관리 덕에 지리산 농부들의 모든 사업이 순조롭게 돌아가고 있었다.

새로운 사업을 하는 것도 그가 있기에 가능했다.

“참고로 기름을 많이 팔 생각이에요.”

헤어지기 전 그에게 말했다.

“많이 팔리면 우리도 좋지. 함께 잘 되는 거니까.

방현식과 잘 되는 일이 아니었다.

생각대로 일이 진행된다면 지리산 농부들도 성장할 수 있었다.

절대 작은 일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 * *

다음날 난 부산을 향했다.

목적지는 유명 방앗간이었다.

하동에도 몇 개의 방앗간이 있었지만 규모가 작았다. 최신 장비를 보유한 곳이 없었다.

부자 방앗간이란 간판이 보였다. 이곳은 부산 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큰 방앗간이었다.

참기름과 들기름뿐만 아니라 고춧가루며 떡까지 다양한 제품을 만들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중년의 여성이 나에게 물었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참깨를 가져왔습니다.”

“기름 짜시게요?”

“네.”

“시간이 좀 걸리는 데 맡겨 놓으시면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난 그녀에게 하동에서 이곳까지 온 사실을 밝혔다.

먼 길을 왔다는 말에 그녀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순번이 정해져 있어서.”

“기다리겠습니다.”

“괜찮으시겠어요?”

일부러 여기까지 온 목적이 있었다. 난 차례를 기다렸다.

“오래 기다리셨죠? 이제 곧 만들어 들이겠습니다.”

“혹시 기름을 짜는 걸 볼 수 있을까요?”

그녀는 흔쾌히 허락했다. 그녀는 요즘 나와 같은 손님이 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중국산 참기름 문제가 터지고 기름 짜는 걸 직접 확인하고 싶은 사람들이 생긴 것이다.

그녀와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가마솥에 참깨를 쏟고 볶았다. 열기가 대단했다. 그녀는 온도를 확인했다. 200도가 넘어가는 고온이었다.

참깨는 45~55%의 기름을 함유하고 있다. 열을 가하면 참깨 안의 기름 성분이 액체처럼 변한다.

그렇게 볶은 참깨를 압착기에 넣고 압착하면 참기름이 만들어진다.

이런 방식을 고온 압착 방식이라고 부른다.

그녀는 볶음 참깨를 압착기에 넣었다.

스테인리스로 이뤄진 압착기는 최신식 설비를 뽐내고 있었다.

그녀가 스위치를 누르자 압착기가 굉음을 내며 돌아갔다.

잘 볶아진 참깨에서 기름이 쏟아져 나왔다.

난 그 과정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참기름 나왔습니다.”

여주인은 나에게 참기름 병을 건넸다. 노란 참깨가 갈색의 기름으로 변해 있었다.

참기름을 싣고 하동으로 향했다. 차 안에 고소한 냄새가 진동했다.

머릿속에 참기름을 만드는 장면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명인이라고 해서 좋은 참기름을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문제는 참기름을 만드는 방식에 있었다.

명인이건 식품회사건 간에 기름을 짤 때 깨를 볶았다.

방앗간에서도 고열에 참깨를 볶았다.

향을 살리기 위해서 볶는다고 하지만 사실은 더 많은 기름을 짜기 위해서였다.

참깨가 가진 기름 성분을 유연하게 만들어 기름을 짜기 좋은 조건으로 만든다. 문제는 그 과정에 발암 성분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필연이면서 악연이기도 했다.

벌써 하동에 진입했다.

방현식의 집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 * *

방현식이 비닐하우스 안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표정이 좋아 보였다.

“이걸 언제 다 한 거야?”

그는 비닐하우스 바닥 공사를 하고 있었다. 바닥이 깨끗하게 변했다.

“머리를 비울 땐 일이 최고니까요.”

방현식이 웃으며 말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비닐하우스를 정리하며 마음이 복잡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다시 힘을 내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런데 이건 뭐야?”

하우스 안에 말려놓은 식물이 있었다.

“약초들이에요. 말려 놓은 건 우슬이고요. 관절에 특효약이에요. 약으로 만들어서 어머니 드리려고요.”

“이제 약초꾼 하려고?”

“뭘 할지는 아직 고민 중이에요.”

약초를 캐러 다니다 사고를 당하는 경우도 많았다.

한쪽 눈이 안 좋은 상태로 약초를 캐러 다는 건 위험한 일이었다.

“내가 함께 할 일을 찾았어.”

“정말이요?”

기대하는 눈빛이었다.

“그전에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어.”

“말씀하세요.”

“그때 나에게 준 참기름 집에서 직접 짠 거라고 했지?”

“네, 집에서 직접 짠 거예요.”

“착유기도 있겠네.”

“있어요.”

“볼 수 있을까?”

그와 함께 집으로 갔다. 착유기는 사랑방에 고이 모셔져 있었다.

오래된 물건이었다.

“이거 얼마나 된 거야?”

“못해도 삼십 년은 됐을 거예요. 할아버지 때부터 쓴 물건이에요.”

“볶는 건 어디서 하고?”

“전용 아궁이가 있어요. 깨를 볶는 무쇠솥도 따로 있고요.”

방으로 들어오기 전 솥을 봤던 게 기억났다.

“그런데 참기름 짜는 걸 잘 아시네요.”

“이게 너와 함께 할 일이야.”

“참기름을 짠다고요?”

“왜 싫어?”

“아니요, 그건 아닌데. 참기름은 그냥 소일로 했던 거라서...”

“난 이번 일에 거는 기대가 큰데.”

방현식은 방안에 있는 착유기를 바라보았다.

고민하는 얼굴이었다.

“형이 가볍게 말한 게 아니라는 거 알아요.”

방현식의 표정에 미세한 변화가 느껴졌다.

“솔직히 다른 아이디어가 떠오르지도 않았어요. 형 생각이 그렇다면 한번 도전해 볼게요.”

“처음에 주저한 이유는 뭐야?”

“기름 일은 저희 집에 오래전부터 해온 일이기도 해요. 그저 용돈벌이 정도로만 했어요.”

“용돈벌이로 하던 일을 본격적으로 하려니 감이 안 잡히지?”

“네, 솔직히 지금도 잘 모르겠어요.”

방현식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현식아,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이번 일은 너만을 위한 일은 아니야. 내가 속한 지리산 농부들도 함께 잘 되는 일이야. 무작정 돕는 게 아니란 뜻이야.”

“형이 그렇게 생각했다면 정말 고마워요. 만약 동정하는 마음에 도왔다면 저도 싫었을 거예요.”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많아. 공부며 실험까지 최대한 짧은 시간 안에 해야 해.”

“형이 생각하는 일은 단순히 기름만 짜는 건 아닌 거 같네요.”

“맞아, 단순하지 않아. 이번 일은 연구자의 자세로 임해야 해.”

“연구자의 자세, 뭔가 대단한 일 같네요.”

“오늘부터 나와 함께 움직일 거야.”

“당장 뭐부터 하나요?”

“우선 연구소부터 생각이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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