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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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번째 번호표를 뽑은 이의 곶감 작업이 끝났다.

이제 한 명만 남겨둔 상황이었다.

“내일은 현식이네 집으로 가겠네.”

예나은이 방현식을 보며 말했다.

“아니요, 내일은 지리산 농부들의 매장을 견학할 생각입니다.”

“견학이요? 그럼 현식이네 곶감 작업은 안 하나요?”

예나은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방현식 씨의 곶감은 저와 함께 둘이 하기로 했습니다.”

모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제 현식 씨가 저에게 고백했습니다.”

“무슨 고백이요?”

예나은은 놀란 얼굴로 나와 방현식을 바라보았다.

“곶감 농사를 쥐꼬리만큼 지었다는 사실을요.”

그 말에 참가들이 모두 배꼽을 잡고 웃었다.

“그래도 도와야 하는 것 아닌가요? 지금까지 다 같이 했는데.”

예나은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도 한목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서로 올해만 볼 거라면 그렇게라도 하는 게 좋을 수도 있겠죠. 그런데 우리는 올해만 볼 사이가 아니잖아요. 앞으로도 서로 도울 일이 많을 겁니다. 때가 되면 모두 합심해서 함께 할 일들이 많을 거예요. 그때 현식 씨도 도와주세요.”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저희도 어쩔 수 없네요.”

예나은이 아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내년엔 많이 좀 해. 내가 가서 도와줄게.”

예나은은 방현식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방현식은 보기 좋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난 그들에게 어떤 식으로 말해야 할지 고민했다. 방현식의 말을 그대로 전했다간 모두 도시락을 싸서라도 가겠다고 아우성을 칠 게 분명했다.

적당한 선에서 설득하는 게 좋다고 판단했다.

방현식도 만족스러운 눈빛으로 날 쳐다보았다.

모든 작업을 마치고 함께 지리산 농부들의 매장으로 이동했다.

교육의 마지막은 매장 견학이었다.

화개장터 주변에 활기가 느껴졌다. 우리 매장 앞도 사람들로 붐볐다.

노해미와 김꽃님 할머니가 정신없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오늘따라 꼬마 손님들이 유독 많았다.

“매장에 아이들로 가득 찼네요?”

노해미에게 물었다.

“오늘 견학이 잡혔어요.”

노해미는 초록색 모자를 쓴 아이들을 보며 말했다.

유치원 견학이었다.

매장에 전시된 녹차밭 농부들의 사진을 보고 다식을 만드는 프로그램이었다.

노해미와 김꽃님 할머니의 합작품이었다.

공교롭게도 유치원생 견학과 곶감 농부들의 견학이 겹쳤다.

“곶감을 배우시는 분들이시죠?”

노해미는 내 뒤에 있는 사람들을 보고 물었다.

“다 준비해 놨으니 2층으로 올라가시면 됩니다.”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2층엔 전시실 말고도 회의실 공간이 따로 있었다. 회의실로 들어가기 전에 전시된 사진을 잠시 관람했다.

“화개장터에 이런 곳이 있다니 대단하네요.”

여기저기서 감탄하는 소리가 나왔다.

회의실엔 버블티와 약과가 준비돼 있었다.

“우리가 만든 곶감도 여기서 판매하는 건가요?”

예나은이 버블티를 마시며 물었다.

“네, 이곳에서 팔 생각입니다. 물론 판매 계획이 따로 있는 사람에게 강요할 생각은 없습니다.”

“저는 다른 계획이 없습니다. 무조건 여기서 곶감을 팔고 싶습니다.”

예나은 다른 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다들 그녀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과 곶감 포장과 관련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지리산 농부들의 이름으로 판매를 시작할 계획이었다.

난 그들에게 작년에 곶감을 팔았던 상자를 보여주었다.

“디자인이 세련됐네요.”

공통된 반응이었다. 처음 곶감을 팔 때 디자인에도 신경을 썼다. 심플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는 디자인.

“올해는 디자인도 조금 바꿀 생각입니다.”

“이것도 좋은데 다시 바꿔요?”

“좀 더 눈에 띄게 바꾸고 싶어서요.”

지리산 농부들의 곶감이 인기를 끌고 나서 유사한 디자인을 내는 곳이 생겼다.

작은 변화로 우리만의 색깔을 강조하고 싶었다.

판매와 관련한 이야기를 꺼내자 사람들의 눈빛이 빛났다. 곶감 작업을 할 때와 달랐다.

올해 곶감 농사를 기대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 * *

며칠 뒤, 방현식이 나를 찾아왔다.

“곶감 작업이 끝났습니다.”

“혼자서 애썼네요.”

“이제 점검을 받을 준비가 다 됐습니다.”

그는 곶감을 몇 개나 했는지 언급하진 않았다. 경운기를 가져와 발효액을 받아갈 때 생각보다 많은 양을 가져갔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곶감의 양이 상당히 많을 것 같았다.

방현식과 함께 그의 집으로 향했다.

멀진 않았지만, 오지마을에 살고 있었다.

마을에서 한참을 더 들어갔는데도 집이 나오지 않았다.

“아직도 더 들어가야 하나요?”

“조금만 더 가면 집이 나와요.”

“통학하기도 힘들었겠어요.”

“버스 정류장으로 갈 때는 자전거를 이용해요.”

방현식이 웃으며 말했다.

드디어 감나무밭이 나왔다.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감나무가 많네요.”

“아버지 때부터 키운 게 이렇게 많아졌어요.”

그곳부터 포장이 끊겨 있었다. 그의 집은 차가 들어갈 수 없는 외진 곳에 있었다.

차에서 내려야 했다.

“곶감 작업은 어디서 한 거죠?”

감나무밭을 제외하곤 주변에 비탈진 곳이 많았다. 곶감 작업을 할 만한 곳이 보이지 않았다.

“저기 안쪽으로 들어가면 곶감 덕장이 나와요.”

방현식이 손짓한 곳으로 향했다.

산비탈을 깎아 만든 평지가 보였다. 그곳에 비닐하우스 세 동이 있었다.

비닐하우스 안에 감이 가득했다.

“이걸 혼자 다 했다고요?”

눈이 휘둥그레졌다. 혼자서 이 많은 걸 다 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3만 개가 넘을 것 같았다.

“새벽에도 나와서 작업했어요.”

방현식은 수줍은 얼굴로 말했다.

난 곶감의 상태를 점검했다. 단 하나도 허투루 한 게 없었다. 하나하나 정성을 들여 작업한 게 보였다.

“모두 이상 없어요. 잘했어요!”

비닐하우스 세 동을 전부 돌고 말했다.

그때였다.

비닐하우스 안에 문이 열리고 중년의 여성이 나타났다.

그녀는 한쪽 다리를 절었다.

“네가 말한 그 형이냐?”

방현식의 어머니 김혜숙이었다.

그녀의 물음에 방현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녕하세요, 김덕명이라고 합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방현식의 말대로 어머니 다리가 많이 안 좋아 보였다.

그녀는 나에게 감사의 표시를 전했다.

“식사하셔야죠?”

아직 밥때가 되려면 멀었다. 그녀는 식사를 대접해야 한다고 거듭 말했다.

방현식의 고집은 유전이었다.

급한 약속이 있다는 말로 그녀의 청을 간신히 거절했다.

“그냥 보낼 수는 없죠. 현식아 그놈 좀 가지고 와라.”

김혜숙의 말에 방현식은 쏜살같이 달려갔다.

그는 갈색 병이 들고 돌아왔다.

방현식은 병을 어머니에게 건넸다.

“이거 받으세요, 제가 집에서 직접 짠 참기름입니다.”

그녀가 나에게 갈색 병을 주며 말했다.

“정말 어머니가 직접 짠 거예요. 깨도 우리 집에서 농사지은 거고요.”

방현식이 말을 보탰다. 밀봉한 상태였지만 고소한 냄새가 올라왔다.

“선물 정말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어머니에게 인사를 하고 비닐하우스 안을 나왔다. 방현식이 날 배웅했다.

“어머니도 곶감에 거는 기대가 크세요. 곶감 농사가 잘되면 저 장가보내시겠다고 말씀하시고요.”

“비닐하우스에 희망이 자라고 있는 거네요.”

희망이라는 말에 방현식이 활짝 웃었다.

그때 어머니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네가 말한 형이냐며 방현식에게 물었다.

난 그에게 이유를 물었다.

방현식은 쩔쩔매며 답했다.

어머니에게 내 이야기를 할 때마다 형이라는 호칭을 붙였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처럼 선생님이라고 불러야 하는데 내가 너무 젊어서 그 말이 잘 안 나왔다고 했다.

지리산 농부들의 직원도 아니어서 대표님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상했다는 것이다.

그에겐 다른 형제가 없었다. 나 같은 형이 있기를 바랐다고 했다.

내가 방현식의 형이 된 까닭이었다. 그는 교육을 받고 집에 도착하면 어머니와 이야기를 했다.

내 이야기가 빠질 수 없었다. 그는 어머니에게 내 이야기를 할 때마다 덕명이 형이란 말을 붙었다.

“기분 나쁘셨으면 사과드릴게요.”

방현식이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어머니에게 받은 들기름을 차에 실었다.

돌아가기 전에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나도 동생이 없어요.”

“네?”

방현식은 놀란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형이라고 불러도 좋아요.”

“정말이요?”

표정만 봐도 얼마나 기쁜지 알 것 같았다.

“그럼 지금부터 형이라고 부르겠습니다.”

“곶감 포장 땐 형이랑 같이 하고.”

“네, 형!”

방현식이 큰소리로 외쳤다.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이유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다.

덕장에 걸어둔 감이 곶감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난 일주일에 한 번씩 방현식의 집을 찾았다. 발효액을 바르는 걸 돕기 위해서였다.

감을 덕장에 말려 놨다고 해서 끝이 아니었다. 주기적으로 발효액을 발라줘야 했다.

방현식은 다른 참가자에 비해 수량이 많은 편이었다. 혼자 감당하기 힘들었다.

“형, 또 왔어요?”

방현식은 발효액을 내리는 날 보며 물었다.

“발효액 바르러 왔지.”

“혼자서 충분히 할 수 있는데.”

말은 그렇게 하지만 싫지 않은 얼굴이다.

그와 함께 발효액을 덕장에 널어둔 감에 발효액을 발랐다.

일하던 중에 방현식의 어머니가 비닐하우스를 찾았다.

불편한 다리로 음식을 지고 오셨다.

방현식이 달려가 바구니를 받았다.

“내가 가져오려고 했는데.”

“이 정도는 문제없다. 힘든데 어서 먹고 하거라.”

김혜숙은 바구니에서 음식을 꺼냈다.

“형, 밥 먹고 해요.”

정성이 담긴 밥상이 등장했다. 보리밥에 나물과 그리고 된장찌개가 나왔다.

김혜숙은 음식을 차려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엄마도 같이 드세요.”

“난 할 거 있어. 너나 먹어.”

“일 좀 그만하세요.”

김혜숙은 웃을 뿐 대꾸하지 않았다.

“많이 드세요.”

“네.”

그녀는 그 말을 남기고 집으로 돌아갔다.

방현식이 젓가락을 건넸다. 들기름에 무친 나물이 입맛을 돋게 했다.

밥을 먹으며 방현식을 얼굴을 유심히 보았다. 특히 왼쪽 눈을 집중했다.

복싱을 하다 시력을 잃었다는 말이 기억났다. 그의 말을 듣고 그 뒤로 한 번도 물은 적은 없었다.

방현식도 내 시선을 의식한 것 같다.

“제 얼굴에 밥풀이라도 묻었어요?”

그가 웃으며 물었다.

“눈 때문에 힘들진 않아?”

“원래부터 부동시였어요.”

“부동시?”

“양쪽 눈의 시력 차가 큰 경우죠. 저 같은 경우는 왼쪽 눈이 극단적으로 안 좋았고요.”

“그랬구나.”

거기서 말을 마치려 했다. 더 말해봤자 상처가 될 거 같았다.

“이건 형에게만 말하는 건데요.”

방현식은 주변을 둘러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복싱할 땐 제가 짝눈이란 사실을 숨겼어요.”

“왜 숨겼어?”

“눈이 안 좋은 게 들통나면 운동을 더 할 수 없으니까요.”

“그렇게까지 복싱을 한 이유가 뭐야?”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요.”

방현식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 힘든 시기를 보냈다.

고생만 한 어머니를 위해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비록 복싱은 생각대로 안 됐지만, 농부로 성공하고 싶어요. 어머니와 한 약속이기도 하고요.”

식사를 마치고 남은 곶감을 모두 처리했다. 발효액 통도 깨끗하게 비웠다.

가져온 장비를 다 싣고 돌아갈 준비를 했다.

“형, 이제 그만 오셔도 돼요.”

방현식이 발효액 통을 넣으며 말했다.

“그래, 이제 혼자 해도 충분하겠다. 그런데 여긴 원래 뭐하던 곳이야?”

난 곶감 덕장으로 사용하는 비닐하우스를 보고 물었다.

“원래는 아버지 약초 창고였어요.”

“약초 창고?”

“겨울이면 약초를 캐러 다니셨어요. 그때 약초를 보관하던 곳인데 지금은 제가 곶감 덕장으로 쓰고 있죠.”

“약초를 많이 보관하셨나?”

“곶감 때문에 두 동 더 지은 거예요.”

“이것도 네가 직접 지은 거야?”

“아무래도 혼자서는 쉽지 않아서... 아는 분에게 도움을 좀 받았어요.”

방현식은 쑥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산비탈을 파내고 지은 비닐하우스였다.

살짝 어설픈 느낌이 들었지만, 곶감 덕장으로 쓰기에는 그럭저럭 괜찮아 보였다.

“산비탈이라... 비 오면 조심해야겠다.”

“제가 항상 손보고 있어요.”

얼기설기 그물망을 친 게 보이긴 했다. 가벼운 비는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변덕스러운 날씨엔 대응하기 힘들 수도 있었다.

“나중에 형하고 같이 보수하자.”

“아니에요, 괜찮아요.”

방현식은 혼자서도 할 수 있다며 한사코 도움을 거절했다.

작년엔 이상고온과 비로 곶감 농가의 손해가 말이 아니었다. 올해라고 해서 날씨가 변덕을 부리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그의 의사와 상관없이 조만간 보수할 생각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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