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신청자들을 받고 있었다. 나이와 지역에 제한을 두진 않았다.
조건은 하나였다. 올해 곶감 농사를 짓는 이들에게 한정했다.
단순히 농법에 관심이 있어 지원한 이들은 다음을 기약했다.
그들까지 전부 수용하기엔 신청자들이 너무 많았다.
서류를 받고 인터뷰까지 거쳐 지원자를 모두 선발했다.
곶감으로 성공해 보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농부들이었다.
처음부터 농부를 꿈꾸던 이들만 있는 건 아니었다.
다양한 이력이 눈에 띄었다.
전직 권투선수부터 학원 선생까지, 사연이 궁금한 사람들도 제법 있었다.
곧 있을 곶감 교육이 기대됐다.
농사 기술을 나누다
감나무 밭에 사람들로 붐볐다.
황유신은 농부들에게 곶감 기술을 전수하고 있었다.
대부분 감 농사를 짓고 있는 농부들로, 게중에는 경험이 많은 이도 있었다.
황유신의 교육 방침은 한결같았다. 경험을 떠나서 처음부터 다시 가르쳤다.
감을 따는 일부터 깎는 일까지 기초가 탄탄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농부들도 그의 가르침에 따랐다.
정가희도 황유신을 보조해 교육을 도왔다.
교육을 받으러 온 이들이 열심히 감을 깎고 있었다.
황유신과 정가희도 함께 감 껍질을 잘라냈다.
“감을 깎고 있으니 옛날 생각이 나네요.”
정가희는 황유신에게 말했다.
“전에도 느꼈지만, 감을 참 정교하게 깎는구나.”
“선생님 덕이죠. 스파르타식 교육을 받았으니까요.”
정가희는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지금은 양초 학교 선생님이 됐다고?”
“양봉을 하다 양초 학교를 맡게 됐어요.”
“그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한다고 들었다.”
“가르치는 일이 적성에 맞더라고요.”
“곶감 교육 때문에 네 일을 제대로 못 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구나.”
“걱정 마세요. 덕명이에게 이야기 듣자마자 대타 선생님부터 구했으니까요.”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무리했구나. 여긴 나 혼자서도 감당할 수준인데 말이다.”
“오늘같이 특별한 날은 제가 선생님을 보좌해야죠.”
정가희는 곶감을 다 깎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깎은 곶감을 곶감 걸이에 걸 차례였다.
* * *
난 청년 농부들 앞에 섰다. 모두 곶감 농사를 배우려는 사람들이었다.
황유신 선생님이 맡은 농부들은 10명이었다. 그가 맡은 농부들은 곶감 농사 경험자들이었다.
내가 맡은 이들은 완전 초보거나 한두 번의 경험이 있는 청년 농부들이었다.
모두 8명이었다. 그들과 마주했다.
일 년 전 나와 같았다.
“여기까지 와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잠깐이지만 서로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소개가 끝나고 교육 방침부터 밝혔다.
“교육이 끝나면 서로 돌아가며 곶감 농사를 도울 예정입니다.”
“돌아가며 돕는다니 그게 무슨 말이죠?”
곶감 교육을 신청한 사람 중에 유일한 여자였다.
학원 강사로 일했던 예나은이었다.
“배운 걸 써먹는 자리입니다. 여러분은 교육만 받으려는 게 아니잖아요. 교육을 받고 다 함께 각자의 농장으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함께 곶감을 만들 거고요.”
“그럼 교육받고 곧장 실천에 투입되는 거네요?”
“네, 그럴 예정입니다. 장비도 다 같이 사용하고요.”
“교육만 받은 게 아니라 곶감 농사까지 끝낼 수 있겠네요.”
“곶감은 관리가 더 중요합니다. 덕장에 걸어뒀다고 끝나는 일이 아니니까요.”
황유신 선생님과 교육하는 방법에 대해서 상의했다.
그는 처음 나를 가르쳤던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곶감 기술을 전수하겠다고 했다.
난 좀 다른 방식을 택했다. 기초 교육 후에 각자의 농장에서 곶감을 같이 만드는 방식이었다.
서로 곶감 농사를 돕게 되면, 노동력을 살 필요도 없고 장비도 공유할 수 있었다.
황유신 선생님은 내 방식에 적극적으로 찬성해 주었다. 초보 농부들에게 유익한 방식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황유신에게 교육을 받는 이들은 농사 경험이 많기에 인력에 대한 계산도 돼 있었다.
초보 청년 농부들에겐 쉽지 않은 계산이었다. 그들에게 사람을 재산으로 만드는 법을 알려 주고 싶었다.
나 역시 처음 농사를 지을 때 사람부터 챙겼다.
“감을 딸 때는 최대한 상처가 나지 않아야 합니다.”
감을 따는 법부터 깎는 법까지, 황유신 선생님에게 배운 대로 그대로 전수했다.
“아직도 많은 농가에서 유황 훈증을 이용해 곶감을 만듭니다.”
“유황 훈증이 뭔가요?”
교육생 중 하나가 물었다.
“황을 태우면 이산화항이 발생합니다. 그 연기로 곶감을 훈증하는 과정을 유황 훈증이라고 부릅니다. 유황 훈증을 하면 곶감 색을 보기 좋게 유지할 수 있습니다.”
“갈변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 거군요?”
“네, 맞습니다. 유황 훈증이 색이 변하는 걸 방지해주죠. 하지만 이산화황은 인체에 안 좋은 영향을 줄 수도 있습니다.”
난 발효액이 든 통을 가져왔다.
“여러분에겐 유황 훈증 없이 곶감을 만드는 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모두 기대하는 눈빛으로 날 바라보았다.
“이 발효액이 그 비법입니다. 제가 곶감의 명인 황유신 선생님에게 배운 방식이죠.”
“그 안에 뭘 넣나요?”
“솔잎, 지칭개, 매실액을 넣고 발효합니다.”
난 청년 농부들에게 발효액을 만드는 법에 대해서 알려주었다.
솔잎, 지칭개, 매실액을 일대일의 비율로 넣고 발효하면 된다.
난 이번 교육을 위해 미리 발효액을 넉넉히 준비해 두었다.
“깎은 감을 발효액에 담갔다가 곶감 걸이에 걸면 됩니다.”
발효액으로 감을 코팅하는 작업이었다. 곶감 걸이에 발효액으로 코팅된 감들이 주렁주렁 매달렸다.
세심한 손길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었다. 다들 정성스럽게 감을 걸이에 걸었다.
* * *
그 시각 하동 농업센터, 지리산 농부들의 사무실.
한기탁과 동료들이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들어오고 있었다.
“곶감 농사는 잘되고 있을까?”
한기탁이 백민석에게 물었다.
“덕명이라면 문제없을 거예요. 이번엔 곶감 양도 적당하고요.”
백민석은 일 년 전 곶감 농사를 지을 때를 떠올리며 말했다.
그때 그는 쇼핑몰을 만들며 곶감 농사를 함께 지었다. 엄청난 물량의 곶감이었다.
판매할 때는 또 새벽잠을 쪼개가며 곶감을 포장했다.
지금도 가끔 꿈에 나타날 정도였다.
“솔직히 좀 아쉽기도 해요.”
쇼핑몰운영팀의 천희석이 말했다.
“뭐가 아쉬운데?”
백민석이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곶감 교육을 하는 바람에 우리가 곶감을 만들 기회가 사라졌으니까요.”
천희석이 웃으며 말했다.
“그게 그렇게 아쉬워? 그럼 좀 남겨 달라고 말할까? 퇴근하고 곶감 만들 수 있게 해줄게.”
백민석이 전화기를 들었다.
“아니에요, 팀장님. 아쉽지만 괜찮습니다. 농담이에요 농담.”
그 모습을 보고 한기탁과 박태호가 배꼽을 잡고 웃었다.
“태호 너도 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말만 해.”
한기탁은 껄껄거리며 박태호에게 말했다.
“저도 퇴근 후라면 사양하겠습니다. 그런데, 대표님 참 대단하세요. 어렵게 배운 기술을 사람들에게 알려주다니.”
“그 사람들, 나중에 우리랑 한배를 탈 사람들이야.”
“그게 무슨 뜻이죠? 저희와 함께 일하기라도 하는 건가요?”
박태호가 천희석과 서로 눈을 마주쳤다.
곶감을 배우는 이들이 지리산 농부로 합류한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곶감 농사를 끝내면 물건도 팔아야 하니까.”
“아~ 판매요. 이제야 이해가 되네요. 지리산 농부들의 쇼핑몰이 있으니까.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일이겠네요. 매년 교육생을 늘려 가면 곶감도 어마어마해지겠어요!”
“맞아, 사람들이 더 늘어나면 곶감만으로도 큰 결실을 볼지도 모르지. 그러니까 더 열심히 하라고.”
* * *
곶감 교육이 끝났을 때였다.
“예고한 대로 각자의 농장에서 곶감을 함께 만들 생각입니다. 그 전에 순번을 정하겠습니다.”
난 번호를 꺼냈다. 1번부터 8번까지 번호가 적혀 있었다.
“제비뽑기할까요? 아니면 알아서 뽑아가는 걸로 할까요?”
“스스로 선택하는 방식이 좋을 거 같습니다. 다들 어떠세요?”
참가자 중 한 명이 말했다.
방현식이다.
그는 참가자 중에 가장 나이가 적었다.
올해 21살이었다. 막내라고 뒤로 빠지는 법이 없었다.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열혈 청년이었다.
“뭐, 현식이가 그러자고 하면 그래야지.”
예나은이 말했다. 유일한 여자 참가자이자 서른 살의 최고 연장자이기도 했다.
그녀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참가자들이 번호표를 골랐다.
방현식이 가장 먼저 번호표를 선택했다.
난 그가 1번을 뽑으리라 생각했다. 예상과 달리 그는 가장 마지막 번호표를 선택했다.
1번을 뽑은 사람은 예나은이었다.
“내일이면 모두 우리 집으로 오시겠네요. 교육 이후에 이렇게 곶감 농사도 함께 하다니 정말 좋네요. 음식도 넉넉하게 준비해 놓겠습니다.”
그녀의 집은 순천이다.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타지역에서 온 농부들이었다.
하동에서 온 이는 방현식이 유일했다.
공지를 마치고 교육을 끝냈을 때였다.
방현식이 나에게 다가왔다.
“저 내일 함께 가도 될까요? 제가 차가 없어서요.”
그가 말하지 않아도 함께 갈 생각이었다.
다음날 우린 약속한 장소에서 만났다.
둘이 함께 있는 건 처음이었다.
“이번 교육을 오래 기다렸어요. 지원서에는 쓰지 않았지만, 청년 농부 김덕명도 이미 알고 있었고요.”
“나에 대해서는 어떻게 알았죠?”
“신문에서 봤어요. 작년 곶감 농사 때부터... 그때부터 롤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방현식이 평소답지 않게 수줍은 얼굴로 말했다. 그의 말대로 지원서에는 없는 내용이었다.
그의 지원서엔 독특한 이력이 담겨 있었다.
그는 전직 권투선수였다.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도 나간 경력이 있었다.
지금까지는 묻지 않았지만, 권투선수를 그만둔 이유가 궁금하기도 했다.
“이런 걸 물어봐도 될는지는 모르겠는데... 지원서에는 올림픽 대표 선발전까지 갔다고 쓰여 있던데, 왜 권투를 그만뒀어요?”
“선발전에서 부상을 당했어요.”
“부상이요?”
부상이라니 믿기지 않았다.
그는 누구보다 건강해 보였다.
참가자 중에 가장 왕성한 활동량을 자랑하기도 했다.
“저 사실, 왼쪽 눈이 안 보여요.”
“전혀 모르겠는데요.”
“말하지 않으면 몰라요. 그냥 보면 멀쩡해 보여서요.”
“불편하진 않아요?”
“처음엔 적응하기 힘들었는데 지금은 괜찮아요.”
말은 가볍게 하고 있지만, 얼굴에선 힘들었던 과거가 느껴졌다.
“다 지난 일이네요. 부상 이후에 권투선수의 꿈은 접었어요. 대신 농부라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죠.”
방현식은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다음 이야기는 뒤로 미뤄야 했다.
순천에 도착했다는 이정표가 보였다.
예나은의 집으로 가는 길에 감나무밭이 보였다.
생각보다 제법 규모가 있었다.
예나은이 밖으로 나와 우릴 반겼다.
“어서 오세요.”
방현식과 차에서 내리면서 작업 도구들을 꺼냈다.
감 껍질을 깎는 박피기와 발효액을 담을 통이었다. 발효액 기술을 알려줬다고 해서 당장 잘 만들 수는 없었다.
우선 내가 만든 발효액을 사용해 실수하지 않도록 했다.
장비들과 발효액을 꺼내자 다른 동료들도 하나둘씩 도착했다.
예나은은 미리 감을 따 놓아서 일이 한결 수월했다. 다들 배운 대로 곶감을 만들었다.
발효액을 입힌 감이 덕장에 주렁주렁 매달렸다.
푸른 하늘과 주황색 감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떨어지는 땀방울 만큼이나 시간이 빨리도 흘렀다.
벌써 밥 먹을 시간이었다.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드세요.”
예나은이 힘차게 외쳤다.
불고기 전골에 전과 잡채 거기에 생선찜까지 있었다.
상다리가 부러질 지경이었다.
“잔칫집에 온 거 같네요.”
“제가 귀농 2년 차인데 오늘이 귀농하고 가장 기쁜 날이에요.”
기분 좋은 자리가 이어졌다.
난 그들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말했다.
곶감 판매에 관한 내용이었다.
“화개장터 매장에서 우리 곶감을 판다고요?”
예나은은 흥분했는지 목소리가 커졌다.
화개장터에 있는 매장에 곶감도 함께 팔 계획이다. 청년 농부들의 이름으로 곶감을 판매한다. 매장뿐만 아니라 쇼핑몰도 적극 활용할 생각이다.
분명 반응이 좋으리라고 예측했다.
“교육도 받고 함께 곶감도 만들고 판매까지 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가 한목소리로 말했다.
“지리산 농부들도 함께 잘 되는 일이죠.”
난 웃으며 말했다.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일도 곶감 농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방현식과 함께 하동으로 돌아갔다.
“판매까지 신경 써주실 줄은 정말 몰랐어요, 감사합니다.”
방현식은 차 안에서 고개를 꾸벅 숙이며 말했다.
“감사 인사는 이제 사양할게요. 나은 씨 집에서도 말했지만, 현식 씨 같은 청년 농부도, 저도 그리고 우리 지리산 농부들도 같이 잘 되는 길이에요.”
“네, 감사합니다. 아니요, 고맙습니다.”
방현식의 말실수에 우린 함께 웃었다.
점점 하동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창밖을 바라보던 방현식이 입을 열었다.
“이번 곶감 농사가 잘되면 저희 어머니도 정말 기뻐하실 거예요.”
어머니란 말에 감정이 북받쳤는지 눈에 이슬이 맺혀 있었다.
“죄송해요, 바보처럼. 이래서 엄마 얘기는 잘 하지 않는 편이에요. 말만하면 눈물부터 나와서요. 저 때문에 고생만 하셔서. 이제부터라도 정말 좋은 모습만 보여드리고 싶어요.”
“현식 씨는 잘할 거예요.”
그가 잘 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비닐하우스에 담긴 희망
황유신 선생님의 곶감 교육은 보름 만에 끝났다.
나는 아직도 교육을 하고 있었다. 함께 곶감을 만들었기에 시간이 더 걸렸다.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곶감을 만드는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늘었다.
다들 눈빛만 보고도 손발이 척척 맞았다.
교육에 참가한 이들은 곶감을 만들기 위한 준비도 잘 돼 있었다.
초보라고 하지만 대다수가 집에서 감 농사를 짓고 있는 이들이었다.
창고며 곶감을 말릴 덕장도 준비된 상태였다. 교육 신청을 받을 때 조사했던 항목이기도 했다.
기본적인 준비가 되어 있어야 교육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었다.
곶감 협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옆자리엔 방현식이 앉아 있었다.
방현식은 알면 알수록 매력이 넘치는 인물이었다. 일만 잘하는 게 아니라 성격도 좋았다.
동료의 실수로 발효액을 뒤집어쓰는 일도 있었지만 웃음으로 털어냈다.
어릴 때 사고를 많이 쳤다는 말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대표님, 혹시 곶감 발효액을 따로 얻을 수 있을까요?”
하동으로 가던 중 방현식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곧 있으면 현식 씨 차례 아닌가요?”
예나은을 시작으로 곶감을 함께 만들었다. 마지막은 방현식이다. 곧 그의 순번이 돌아온다.
발효액을 따로 달라니 이유가 궁금했다.
“우리 집 곶감은 제가 혼자 만들어 보려고요.”
“혼자서요?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방현식은 잠시 주저하더니 입을 열었다.
“어머니 때문입니다.”
“어머니 때문이라니, 무슨 말씀이시죠?”
“어머니가 무릎이 안 좋으세요.”
방현식은 사연을 털어놓았다.
그는 모두 함께 돌아가며 곶감 농사를 짓는 것에 대해서는 불만이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어머니였다. 사람들이 집에 찾아온다고 하면 어머니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손님이 오면 어머니가 무리를 할 것 같다며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곶감 농사를 도와주기 위해 사람들이 찾아온다고 하면 새벽부터 음식 준비를 하실 거예요.”
이것이 방현식이 마지막 순번을 고른 이유였다.
“현식 씨가 무슨 걱정을 하는지 잘 알겠어요. 그런데 곶감 작업을 혼자서 다 하겠다니 힘들지 않겠어요?”
“아니요, 힘들긴요. 곶감 만드는 기계처럼 움직일 수도 있어요.”
“정 그렇게 얘기한다면 요청을 거절하기가 힘드네요. 저만이라도 거들면 어떨까요?”
“말씀은 고맙지만 제가 혼자 해보고 싶습니다.”
“제 손도 거절하는 건가요?”
난 웃으며 물었다.
“아니요, 그건 그런 뜻이라 아니라 이번 곶감 농사는 모두 저 혼자 힘으로 해보고 싶어서요.”
“농담이에요.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현식 씨가 혼자서도 잘 해낼 거라고 생각해요. 아까 말한 발효액은 준비해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차가 없다고 했지요? 발효액은 제가 실어다 드릴게요.”
“발효액도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설마 손으로 나르겠다는 건 아니죠?”
난 방현식을 바라보며 물었다.
“차는 없지만, 아버지가 물려주신 유산이 하나 있습니다.”
“유산이요?”
“고물 경운기가 한 대 있습니다.”
“하... 그렇군요. 현식 씨가 편할 대로 하세요.”
방현식은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였다. 유순하고 성실한 성격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고집이 있었다. 그렇다고 모든 걸 혼자 하게 놔둘 순 없었다.
“알겠어요, 그럼 곶감 작업을 마치며 점검은 하겠습니다. 이것까지 거절하진 않겠죠?”
“당연하죠, 문제가 없는지 점검해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방현식은 차 안에서 꾸벅 인사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