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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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한기탁과 함께 군청으로 향했다.

오늘 군수와의 면담이 있었다.

화개장터 사진전이 인기를 끌면서 하동 군수 김창대에게도 이목이 쏠렸다.

그가 지리산 농부들에게 기회를 준 것이 알려진 것이다. 기분이 좋았는지 만남까지 요청했다.

군수실에 들어가기 전, 우린 박동규 과장과 잠시 인사를 나눴다.

“화개장터 사진전을 무사히 마쳤다고 들었습니다.”

“모두 신경 써주신 덕분입니다.”

“저는 그저 안내만 했을 뿐인데요 뭘.”

박동규는 겸손한 얼굴로 답했다.

“녹차 디저트 축제도 함께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말이요?”

한기탁이 물었다.

“당장은 아니고, 내년 봄이나 여름이 될 거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하긴요, 모두 지역 농가를 살리는 일인데요.”

그는 지역을 위해 애쓰는 공무원이었다.

“군수님 기다리실 텐데 들어가 보시지요.”

한기탁과 함께 군수실로 들어갔다.

김창대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가 한기탁에게 손을 내밀었다.

“같이 오신 분이 경영지원팀장이신가 봅니다.”

“한기탁입니다.”

“앉으시죠.”

자리에 앉자 비서가 차를 내왔다. 접시에 담긴 차가 낯이 익었다.

“저희 버블티네요.”

“맛이 궁금해서 시켜봤습니다, 허허.”

김창대가 웃으며 말했다. 군청에서 지리산 농부들이 만든 버블티를 먹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지리산 농부들, 정말 대단하십니다. 화개장터 사진전이 성황리에 끝났다고 들었습니다. 덕분에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다는 이야기도요.”

“군수님의 배려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배려가 아니라 지리산 농부들이 만든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이 아니었으면 하동 갤러리는 여태 무용지물로 남았을 테니까요.”

김창대는 버블티를 한 모금 마셨다. 맛이 좋았는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김덕명 대표에게 허락했을 때에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습니다. 처음 갤러리를 열 때도 사람들이 많이 찾지는 않았으니까요.”

김창대는 내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데 기적처럼 살려내더군요. 아주 대단하십니다. 그 덕에 나까지 칭찬을 많이 들었지 뭡니까. 청년 농부들과 소통하는 군수라고요.”

그 대목에서 김창대는 크게 웃었다.

“이렇게 뵙자고 한 건 긴히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입니다.”

그가 어떤 말을 할지 궁금했다.

“내년 우리 군의 목표 중 하나가 청년 농부 육성입니다. 지리산 농부들처럼 우수한 청년 농부들을 육성하는 게 목표죠. 그래서 말인데 여러분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부탁이라니 무슨 말씀이신지?”

“우리 군에 아이디어를 좀 주었으면 합니다.”

김창대는 흥미로운 제안을 했다. 청년 농업 육성을 맡은 공무원에게 아이디어를 달라는 것이다.

그는 최대한 의견을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우리가 계획한 축제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군수님 아주 유쾌하시네.”

돌아가는 길에 한기탁이 웃으며 말했다.

“소통을 잘 하시는 분 같아요. 청년 농부들에게 관심도 많은 것 같고요.”

“덕분에 우리도 든든한 백그라운드가 생겼고.”

한기탁은 군청 건물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나저나 우리도 아이디어를 내봐야겠지?”

“그래야죠. 그전에 할 일이 하나 있어요.”

“할 일? 매장도 안정을 찾았는데, 무슨 일이 또 있다는 거야?”

한기탁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곶감 농사를 지어야죠.”

“아, 곶감. 그거 해야지. 지리산 농부들이 처음으로 시작했던 농사니까.”

“그땐 선배 없었는데.”

내 말에 그는 피식 웃었다.

“나도 선배에게 상의하고 싶은 게 있어요!”

“뭔데 말해봐.”

“이번 곶감 농사는 제가 책임지려고요. 농사를 지을 사람을 선발하는 것부터 모든 과정을요.”

“무슨 꿍꿍이야? 숨기지 말고 말해봐.”

한기탁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날 쳐다보았다. 마음마저 꿰뚫어 보겠다는 표정이었다.

“지리산 농부들도 청년 농부들을 지원할 생각이에요.”

“청년 농부를 지원한다고?”

올해 곶감 농사는 특별한 약속이 있었다. 방송을 통해 공개적으로 한 말이기도 했다.

청년 농부들과 황유신 선생님의 노하우를 나누겠다고 말했다.

한기탁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그도 내 뜻을 이해했다.

“좋은 의도인 건 알지만 무조건 퍼줄 순 없어.”

“노하우를 알려주는 조건으로 노동력을 빌릴 생각이에요. 곶감을 만드는 일은 손이 많이 가니까요.”

“뭐, 그 정도면 문제없겠네~”

그와 곶감 농사의 방향에 대해서 공유했다.

현재 지리산 농부들이 하는 일에 대해서도 의논했다.

지금은 안정적으로 사업을 운영할 때였다.

한기탁은 조직개편에 대해서도 넌지시 말했다. 일이 많은 동료의 부담을 덜어내는 방안도 있었다.

내가 곶감 농사를 짓는 동안 그에게 조직 관리를 맡겼다.

* * *

곶감 농사를 시작하기 전에 황유신 선생님을 찾았다.

그의 노하우를 다른 농부들과 공유할 것을 예전에 함께 이야기했다.

본격적인 교육에 앞서 구체적인 방안을 의논할 참이었다.

그가 창고에서 곶감 발효액을 만들고 있었다.

“덕명이 왔구나?”

“그간 잘 지내셨지요? 벌써 발효액을 많이 만드셨네요?”

“올해는 발효액이 많이 필요하니까.”

황유신이 웃으며 말했다.

발효액은 유황 훈증 없이 곶감을 만드는 비결이었다.

곶감 발효액은 매실액과 지칭개 그리고 솔잎을 넣어 만들었다.

그에게 곶감 기술을 배울 때도 매일 반복해서 만들던 방식이었다.

발효액이 방부효과를 발휘해, 좋은 품질의 곶감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줬다.

곶감의 빛깔을 유지하는데도 탁월한 효과가 있었다.

우린 창고에서 나와 감나무 밭을 거닐었다.

“곶감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구나.”

황유신이 익어가는 감을 보며 말했다. 감이 탐스러운 모습으로 나무에 달려있었다.

“시간이 참 거짓말처럼 흐르는구나.”

황유신의 시선이 감나무에서 나에게로 향했다.

“네가 처음 날 찾았을 때는 감이 아직 익지도 않을 때였지.”

황유신이 웃으며 말했다.

“네, 감이 익지도 않은 상태에서 곶감 기술을 배우겠다고 말했죠.”

“너에게 처음으로 기술을 전수했지. 그전에는 누군가에 기술을 전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너를 만나기 전까지.”

황유신은 따뜻한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저 때문에 노하우를 공개하겠다고 약속까지 하셨죠.”

“네 말을 듣고 고민을 했지. 나의 오래된 기술을 알려주는 일에 대해서.”

“지금도 고민하고 계시나요?”

“이제는 고민하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기술이라고 해도 혼자만 알고 있는 건 소용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나눌수록 빛을 발한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인 명인들은 자신의 노하우를 알려주길 꺼렸다.

황유신은 다른 명인들과 생각이 달랐다.

사람들과 기술을 나눔으로써 얻는 게 많다고 여긴 것이다.

그는 깨어있는 사람이었다. 내가 존경하는 점이기도 했다.

“교육을 어떤 식으로 진행할지 의논드리고 싶습니다.”

“나도 너와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황유신이 방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주방에서 황정아 여사님이 나왔다.

내가 인사를 하자 그녀는 웃음으로 반겼다.

황정아는 수정과를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황유신은 수정과로 목을 축이고 말했다.

“우선 인원은 너무 많지 않지 않았으면 좋겠다. 10명 이내면 문제가 없을 거 같구나.”

그가 생각하는 인원은 너무 적었다. 현재 신청자가 10명이 넘었다.

“말씀처럼 소수의 인원으로 교육을 하는 게 여러 가지 면에서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인원이 너무 적은 느낌이 듭니다.”

당장 인원을 늘려달라고 말하기는 어려웠지만, 난 조심스럽게 말했다.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 것 같다. 나도 그 부분도 충분히 생각해 봤는데 말이다...”

“방법을 찾아보셨을까요?”

“제자와 일을 나눌 생각이다.”

“제자라고 하면...?”

“김덕명이란 놈이다.”

황유신은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지원하는 사람들이 청년들만 있는 게 아니겠지?”

“네, 신청자를 청년으로 제한하지는 않았습니다. 기존에 곶감 농사를 짓고 있는 농부 중에서도 지원자를 받았습니다.”

“장년층 농부들을 내가 맡겠다. 덕명이 네가 청년 농부들을 맡아라.”

“제가 청년 농부를 맡는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황유신은 잠시 말을 멈추고 날 가만히 바라보았다.

“네가 한 말 때문이다.”

“제가 한 말이요?”

“네가 나에게 그러지 않았느냐? 청년들을 농촌으로 끌어 모으겠다고.”

황유신의 말 그대로였다. 내 입으로 그 말을 했다. 뱉은 말을 스스로 증명할 순간이었다.

“선생님 말씀이 맞네요. 제가 한 말입니다.”

“그래, 네 놈이 한 말이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황유신도 함께 껄껄 웃었다.

“선생님 말씀대로 제가 청년 농부들을 맡겠습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선생님이 맡아주십시오.”

“너랑 나랑 나눠서 교육하면 더 좋은 결과가 있을 거다.”

처음엔 그를 도와 곶감 기술을 교육할 생각이었다.

그는 나와 따로 교육할 것을 제안했다.

난 황유신의 의견에 공감했다.

“선생님의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제 부탁도 하나 들어주십시오.”

“부탁이라니?”

“선생님에게 조수를 한 명 지원하겠습니다.”

“조수라니?”

“선생님의 또 다른 제자죠.”

“가희 말이냐?”

황유신의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가희에게도 물었습니다. 가희가 선생님과 황정아 여사님도 보고 싶다며 적극 찬성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조수 한 명은 있어야죠.”

“그건 네 뜻에 따르겠다.”

황유신은 흔쾌히 허락했다.

“그럼 준비가 되는 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기다리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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