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농부들의 사무실에 장지수가 도착했다.
쇼핑몰운영팀에 서버를 점검 중이었다.
장지수를 회의실로 안내했다.
“빨리 오셨네요.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난 버블티를 만들어 회의실 안으로 들어갔다.
“이건 버블티 아닌가요?”
장지수는 놀란 눈으로 물었다.
“네, 저희가 직접 개발한 버블티죠. 한번 드셔 보세요.”
장지수는 버블티의 맛을 보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안에 들어간 게 타피오카 펄이 아니네요?”
“네, 한국식으로 만든 펄입니다.”
“재료가 뭔가요?”
장지수는 버블티 안에 든 알갱이를 씹으며 물었다.
“고구마 펄입니다.”
“재미있네요, 고구마로 펄을 만들다니. 쫀득한 맛이 타피오카보다 나은데요?”
“맛이 좋다니 다행이네요. 취재는 어떠세요? 힘든 부분이 있다면 뭐든 말씀해주세요.”
“다들 너무 협조를 잘 해주셔서 편안하게 취재를 하고 있어요. 그런데 저건 뭔가요?”
장지수는 화이트보드에 적힌 내용을 보고 물었다.
하동 갤러리를 1호 매장으로 만든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매장을 여실 생각이에요? 협동조합 제품을 인터넷을 통해 판다고 하셨잖아요? 저는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그녀에겐 매장을 열 계획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화개장터 부근에 매장을 오픈할까 합니다.”
“화개장터요?”
“네, 화개장터에 우리 매장을 열 계획입니다.”
“그런데, 갤러리에 매장을 여시나 봐요. 하동 갤러리에 매장을 오픈한다고 적혀 있네요.”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갤러리여서요.”
“재미있는 발상이네요. 갤러리가 매장이 된다니.”
“하동군이 소유한 곳이라 군의 허락을 받아야 가능한 일이긴 합니다. 곧 관계자를 만날 예정입니다.”
“아, 그렇군요. 이야기가 잘 되었으면 좋겠네요. 공공건물이 잘 활용되면 군에도 도움이 되는 일일텐데...”
그녀는 화이트보드에 적힌 내용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저도 아이디어 하나 낼까요?”
“아이디어요? 얼마든지 말씀해주세요.”
“농부들의 사연을 취재하며 느낀 건데, 사진들이 인상적이었어요. 그 사진들을 매장에 전시하면 어떨까요? 농부들이 직접 생산한 차들과 함께.”
전시회를 열어보자는 내용은 회의 안건 중 하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린 상품에 더 주목하기로 했다.
농부들의 개인사가 담긴 사진을 전시해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농가를 찾아다니며 취재했기에 나올 수 있는 아이디어였다.
“농부들의 사연이 담긴 사진과 직접 생산한 제품이라, 그거 좋은 생각이네요. 거기에 지수 씨가 취재한 내용까지 담긴다면 더 좋을 거 같네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장지수가 웃으며 말했다.
그때 쇼핑몰운영팀의 천희석이 회의실로 들어왔다.
“서버 점검은 끝났습니다.”
장지수와 함께 웹진 디자인에 대해서 상의했다. 그녀는 농가들의 사진을 취합할 것을 제안했다.
쇼핑몰운영팀에서도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녀의 글과 사진이 취합되는 대로 이메일 마케팅을 할 수 있었다.
* * *
한기탁과 함께 하동 군청을 찾았다.
가방 안에 문서가 있었다.
녹차 디저트 축제와 하동 갤러리를 새롭게 리모델링하는 방안이 담긴 문서였다.
한기탁이 친한 공무원에게 부탁해 약속을 잡았다.
우리가 만날 사람은 박동규 과장이었다.
그는 하동의 문화관광을 담당하는 실무자였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박동규라고 합니다.”
백발 머리가 인상적인 남자였다.
“머리가 이래서 사람들이 나이를 오해하곤 하죠.”
그가 하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말했다.
“제안할 게 있으시다고 들었습니다. 문서를 한번 볼 수 있을까요?”
그에게 문서를 건넸다. 그는 안경을 쓰고 내용을 꼼꼼하게 살폈다.
“화개장터를 중심으로 녹차 디저트 축제를 연다. 녹차밭 트레킹도 있고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많네요.”
회의에서 나온 아이디어들이었다.
녹차와 어울리는 전통 과자뿐만 아니라 녹차밭 트레킹, 버블티를 만드는 일까지. 지자체와 함께해볼 만한 이벤트들을 다양하게 준비했다.
“그런데 버블티는 뭔가요?”
“하동의 녹차로 만든 음료입니다. 지리산 농부들이 만든 신제품이기도 하고요.”
한기탁이 가방에서 유리병을 꺼냈다. 준비한 버블티였다.
“한번 드셔 보시죠. 빨대로 드셔야 합니다.”
박동규 과장은 버블티를 맛봤다.
“맛이 좋네요. 씹히는 알갱이도 재미있고.”
그가 유쾌한 표정으로 말했다.
“녹차 농가들이 협동조합을 만들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가 버블티를 내려놓고 말했다.
“지리산 농부들이 녹차 농가의 제품을 대신 팔아주기로 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잘 진행되고 있나요?”
“그럴 계획입니다.”
“젊은 청년들이 그런 일을 하다니,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당연한 일이죠. 농사는 혼자 짓지 못하니까요.”
“실은... 저도 녹차밭 결혼식에 참석했습니다.”
군 관계자인 박동규 과장이 녹차밭 결혼식에 참석했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생각보다 일이 수월하게 풀릴 것 같았다.
“솔직히 좀 부끄러웠습니다. 지역의 문화관광을 담당하는 공무원이 할 일을 대신하고 계셨으니까요.”
그는 서류 봉투에서 뭔가를 꺼냈다. 사진들이었다.
“이게 그때 찍은 사진들이죠.”
녹차밭 결혼식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들이었다.
피로연장인 목장을 배경으로 찍은 것도 있었다.
“직접 와주신지도 몰랐네요. 감사합니다.”
“정말 인상적인 장면이었습니다. 농약 파동으로 힘들어하는 농가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었고요.”
“녹차 디저트 축제도 그런 맥락에서 해보고 싶은 일입니다.”
“저도 그 부분에 충분히 동감하고 있습니다.”
그때 잠자코 있던 한기탁이 입을 열었다.
“축제는 검토와 논의가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결정에 시간도 필요하실 테지요?”
“말씀처럼 축제와 관련한 일은 예산을 책정하는 것부터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하는 일이죠. 시간이 좀 걸릴 겁니다.”
“하동 갤러리는 축제가 진행되기 전에 열면 어떨까요?”
한기탁이 어떤 의도로 말하는지 알 것 같았다.
축제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매장만큼은 빨리 열고 싶다는 뜻이었다.
나 역시 동감했다.
“조만간 협동조합의 물건을 인터넷을 통해 판매할 계획입니다. 매장까지 있다면 판매에 도움이 될 겁니다.”
“아무래도 판매에 도움이 되겠지요. 하동 갤러리를 사용하고 싶은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박동규의 시선이 나에게 고정됐다.
“하동에 상징적인 매장을 만들고 싶어서입니다. 과장님도 아시다시피 시골에서 매장을 낸다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특히 오랜 역사를 가진 지역 상권에 매장을 내는 건 보통 일이 아니죠. 도시처럼 돈만 갖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요.”
“그건 맞습니다. 시골에서 매장을 여는 건 쉬는 일이 아니죠.”
“저희는 하동을 기반으로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만약 매장을 낸다면 화개장터가 좋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지역과 지역이 만나는 화합의 공간이자, 섬진강을 낀 관광지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말씀처럼 하동의 상징적인 공간이죠.”
“실제로 화개장터와 주변을 대상으로 조사를 해봤지만 마땅한 곳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하동 갤러리를 보게 됐습니다. 이미 잘 갖춰진 장소인데 사용을 안 하니 안타깝더군요. 그곳을 잘 활용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무슨 뜻인지 알겠네요. 말씀처럼 하동 갤러리는 잠정적으로 휴관을 한 상태입니다. 저와 관련한 부서는 아니지만 어떻게 할지 논의가 진행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저희가 그곳에 들어간다면 하동은 달라질 겁니다. 녹차 농가를 포함해 다른 농가에도 도움이 될 거니까요.”
“저도 지리산 농부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녹차밭 결혼식 때도 지리산 농부들의 후원으로 이뤄진 것이라고 알고 있으니까요.”
박동규는 우리에게 매우 호의적이었다.
한기탁과 난 기분 좋게 군청을 나올 수 있었다.
“박동규 과장, 아주 괜찮은 사람 같아.”
한기탁이 웃는 눈으로 말했다.
“녹차밭 결혼식에 참석한 줄은 몰랐어요.”
“그러게 말이야, 조만간 좋은 소식이 있을 거 같지?”
“네, 좋은 소식이 올 거 같네요.”
* * *
박동규는 목표를 정하면 거침없이 달리는 성격이었다.
우선 축제와 관련한 문서를 위에 제출했다.
제목을 양식에 맞게 수정하고 지리산 농부들에게 대한 소개 자료도 따로 정리했다.
김덕명이 준 자료에 몇 가지 자료를 더 추가했다.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축제와 관련한 서류작업을 끝내고, 하동 갤러리 임대에 관해 시설관리과에 문서를 전달했다.
하동 갤러리 임대 사업에 관련한 문서였다. 모두 그와 같은 마음일 수는 없었다.
시설관리과의 대답이 시원치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담당자를 직접 만나기도 했다.
담당자는 자신의 소관이 아니라고 답했다. 그렇게 임대를 주고 싶으면 군수에게 직접 허락을 받으란 말을 들었다.
박동규가 할 수 있는 일은 거기까지였다.
관련 부서도 아닌데 자기가 나서서 군수에게 허락을 받기는 곤란했다. 아무리 좋은 뜻으로 일을 한다고 해도 적극적으로 나서기 힘든 구석이 있었다.
특혜의혹에 휩싸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박동규는 지금까지의 상황을 우리에게 전달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