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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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로 들어가기 전 양봉장에 먼저 들렀다. 부모님과 함께 꿀을 따기로 한 날이었다.

“아들 왔네?”

어머니가 웃으며 반기셨다.

“간만에 같이 일하는구나.”

아버지가 장화를 신으며 말했다.

옷을 갈아입을 때였다. 양봉장으로 사람들이 오는 게 보였다.

한기탁을 포함한 사무실 직원들이었다.

“대표님이 먼저 오셨네.”

한기탁이 유쾌한 얼굴로 말했다.

“사무실을 어떻게 하고 나왔어요?”

동료들에게 말하지 않았다. 조용히 돕다가 돌아갈 생각이었다.

“우리라고 매일 사무실에서 있으란 법이 있나? 본업이 농사인 사람들인데, 안 그래?”

한기탁은 동료들을 보며 물었다.

“당연하죠. 매일 사무실에만 앉아 있으려니 좀이 쑤시려고 했어요. 목장팀은 목장에서 일이라도 하지만 우리는 매일 사무실에만 앉아 있으니까요.”

경영지원팀 박태호의 말에 모두 웃었다.

“백민석 팀장만 빼고 사무실 인원은 다 왔어. 사무실에 한 명은 남아 있어야 하니까.”

한 명이 남는다면 백민석이 남아야 했을 것이다. 인터넷을 통해 판매하는 일은 그가 맡고 있었다.

“백 팀장님도 나오고 싶다고 했는데.”

쇼핑몰운영팀의 천희석이 말했다.

“우선 일부터 합시다. 옷들 갈아입고요.”

한기탁이 사람들에게 말했다. 모두가 벌을 다룬 경험이 있었다.

많은 인원이 모이니 꿀을 채취하는 일이 한결 수월했다.

부모님도 즐거운 표정으로 병에 꿀을 담았다.

벌들도 오늘따라 얌전했다. 우린 벌이 먹을 것을 남기고 꿀을 채취했다.

사무실 팀 인원들은 콧노래를 부르며 일했다.

“역시, 나는 농사 체질인가 봐.”

한기탁의 말에 모두 폭소를 터트렸다.

그의 작업 속도가 가장 느렸기 때문이다.

“새참 먹고 하세요!”

어머니가 바구니를 가지고 양봉장으로 나오셨다. 바구니 안에 군고구마와 감자가 가득했다. 시원한 수정과도 함께였다.

“수정과 안에 있는 곶감은 올해 농사지은 거죠?”

한기탁이 어머니에게 물었다.

“맞아, 올 초 곶감이야.”

“숙성이 돼서 그런지 맛이 정말 좋네요.”

그의 말처럼 수정과 안의 곶감이 별미였다. 피로가 싹 가시는 맛이었다.

“올해 곶감 농사도 기다려지네요.”

경영지원팀의 박태호가 멀리 감나무를 보며 말했다.

양봉이 끝나면 곶감 농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머지는 우리가 마저 할 테니 너희들은 돌아가 봐라.”

아버지가 말했다.

“아니에요, 마저 다 하고 가야죠.”

“이 정도 도왔으면 충분하다. 너희들도 바쁠 텐데 어서 가서 일 보도록 해라.”

아버지의 말대로 각자 처리할 일들이 있었다.

우린 사무실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

한기탁은 팀원들을 먼저 돌려보냈다.

“왜요? 일 더 하다 가려고요?”

팀원들이 탄 차가 떠나는 모습을 보고 물었다.

“둘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표정만 봐도 어떤 내용인지 알 것 같았다.

“우리 매장 문제야.”

“왜요? 화개장터에 매장을 여는 게 마음에 안 드세요?”

“다시 생각해 보니 좋을 거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

“선배도 그렇게 생각한다니 다행이네요.”

“나도 한 번 알아봤지. 화개장터 인근에 매장이 들어갈 곳이 있는지.”

“좋은 곳이 있었나요?”

“알아볼수록 쉽지 않겠다는 느낌이 들어서. 너한테 한번 묻고 싶었어. 네가 막연하게 화개장터를 말했다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혹시 봐둔 곳이 있는 거야?”

한기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한 군데 봐둔 곳이 있어요.”

“거기가 어디야?”

“하동갤러리요.”

“하동갤러리? 거기 그... 미술관 말하는 거야?”

“예전에 미술관이었어요. 지금은 방치된 상태죠.”

지방단체가 소유한 건물이었다.

예전엔 미술관으로 사용했지만, 지금은 기약 없이 방치된 상태였다.

지역 출신의 예술가들에게 전시 기회를 줄 목적으로 세워진 갤러리였다.

초반에는 관에서 지원을 하니 몇몇 전시회도 진행되고 지역 명소가 되는 듯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지원이 시들해지니 작품을 전시하겠다는 사람도 없고, 관리비만 들어가는 상황이 되어 미술관은 잠정적으로 문을 닫았다.

방치되어있지만, 관리는 제법 잘 되어 있었다.

규모도 적당하고 화개장터와도 가까웠다.

매장을 운영하기에 최적의 장소라고 생각했다.

“선배 생각은 어때요?”

“하동 갤러리를 우리 매장으로 쓴다니 생각도 못 해봤네.”

“별로인 것 같아요?”

“아니, 최고의 시나리오 같아. 하지만 군에서 운영하는 곳이니 넘어야 할 산이 좀 많겠는데?”

그곳은 개인소유의 건물이 아니었다.

지자체가 소유한 건물이었다.

일반적인 접근으론 그곳에 매장을 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선배, 공무원 중에 친한 사람 있다고 했죠?”

한기탁은 지리산 농부들과 관련한 행정업무를 담당했다. 관공서에 다닐 일도 많았다.

그의 소탈한 성격 덕에 친해진 사람도 많다고 했다.

“친한 주무관이 한 명 있어.”

“하동 갤러리를 담당하는 공무원도 알 수 있을까요?”

“알아보는 거야 어렵지 않겠지.”

“우선 알아봐 주시겠어요?”

“혹시 생각해 둔 방법이라도 있어?”

“있어요.”

“말해봐봐. 방법이 뭐야?”

한기탁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말하기 전에 저와 함께 갈 곳이 있어요.”

“거기가 어딘데?”

“우리 양초 공방이요.”

“양초 공방? 그곳하고 매장하고 무슨 관련이 있는 거야?”

“할머니들에게 묻고 싶은 게 있어서요.”

하문초등학교에 지리산 농부들의 양초 공방이 있었다.

일하시는 대부분이 지역의 할머니들이었다.

그곳에선 양봉으로 얻은 밀랍으로 양초를 만들었다.

처음엔 공장으로 부르다 최근엔 공방으로 순화해 부르고 있었다.

모두 수제 작업을 했기에 공방이란 말이 더 어울렸다.

오랜만에 양초 공방을 찾았다.

할머니들이 반가운 얼굴로 반겨주었다.

“덕명이 왔네. 이게 얼마만이야. 얼굴도 잊어버릴 뻔 했어.”

“죄송해요, 자주 찾아뵙지도 못하고.”

“젊은 사람은 바쁜 게 좋은 거이지.”

“잠시 쉬었다가 하시면 어떨까요?”

“우리야 좋지.”

할머니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답했다. 밀랍 양초를 만들던 할머니들이 휴게실로 모였다.

난 과자와 간식거리를 풀었다.

“먹을 게 풍년이네.”

할머니들은 휴식이 즐거우시다며 기분 좋게 과자를 드셨다.

“많이 드세요.”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온 거야?”

과자를 먹던 김꽃님 할머니가 물었다.

“덕명이가 온 이유야 뻔하지.”

할머니 중 한 분이 내 얼굴을 보며 말했다.

“우리 일 시키려고 그러는 거지. 곧 있으면 곶감 철이잖아.”

할머니의 말에 모두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들으면 악덕 업주인 줄 알겠어요.”

내 말에 할머니들은 재미난 듯 깔깔거리며 웃었다.

“오늘 할머니들을 찾아온 이유는, 한 가지 여쭙고 싶은 게 있어서예요.”

“뭐든 물어보라고.”

“할머니들 중에 전통 과자를 만들 줄 아는 분이 계신가 해서요.”

“과자? 지금 우리가 먹는 이런 과자 말하는 건가?”

“네, 그런데 전통 과자요. 김꽃님 할머니가 만드시는 약과 같은 거요.”

난 김꽃님 할머니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 거라면 조청 유과도 되는 건가?”

할머니 중 한 분이 말했다.

“네, 조청 유과도 좋습니다.”

“그거라면 내가 자신 있지. 우리 손자는 내가 만든 조청 유과만 찾는다니까.”

곶감 농사 때 분위기 메이커였던 임순예 할머니였다.

그 뒤를 이어 여러 가지 전통 과자들이 줄줄이 사탕처럼 튀어나왔다.

팥으로 만든 양갱과 전병에 한과까지 다양한 종류의 전통 과자들이 할머니들의 입에서 나왔다.

“우째 이런 걸 다 묻는 다냐? 뭐 또 새로 만들게?”

임순예 할머니가 궁금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신나게 말하던 다른 할머니들도 같은 표정이었다.

“할머니들과 전통 과자를 만들어 보고 싶어서요.”

“그럼 밀랍 양초는 더 안 만드는 건가?”

“밀랍 양초는 계속 만들어야죠. 녹차밭에서 했던 결혼식 기억나세요?”

“기억나지, 그때 아주 재미나드라~.”

“그때도 다들 나와서 도와주셨잖아요.”

할머니들은 옛날 소풍을 추억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할머니들이 피로연 음식을 도왔다.

설민주가 만든 피자도 인기였지만, 할머니들이 만든 요리들도 반응이 좋았다.

할머니들의 요리 실력은 검증할 필요가 없을 수준이었다.

“그럼 결혼식이 또 있는 건가?”

“그것과 비슷하다고 보시면 돼요.”

“뭐 그런 일이라면 얼마든지 도울 수 있지.”

할머니들 모두 기분 좋은 얼굴로 긍정의 뜻을 밝혔다.

“잘 알겠습니다. 나중에 도움이 필요할 때 말씀드리겠습니다.”

양초 공방에서 할머니들과 이야기를 마치고 나왔다.

한기탁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전통 과자로 뭘 하려는 거야? 그게 매장을 얻는 거랑 무슨 상관이 있는 거지?”

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지자체에 녹차 디저트 축제를 제안해 보려고요.”

“녹차 디저트 축제?”

“네, 녹차와 함께 먹는 우리 과자요. 축제를 제안하는 과정에서 하동 갤러리를 사용하는 것도 함께 알아보려고요.”

축제를 제안하고 건물을 임대할 계획이었다.

전시회 기능을 상실한 하동 갤러리를 살릴 방법이기도 했다.

그곳은 차와 다과가 있는 공간으로 재탄생할 것이다.

지리산 농부들의 오프라인 매장 1호점이기도 했다.

군수와의 면담

장지수는 예정대로 녹차 농가 취재를 시작했다.

녹차 농가 사람들에겐 모두 공지를 한 상태였다.

농부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소비자들에게 전달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지수는 편안하게 취재를 진행할 수 있었다.

시작은 임시백의 다원이었다.

임시백은 대대로 녹차를 생산한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가 주목한 것은 오래된 사진들이었다. 선조 때부터 내려오던 사진들.

그녀는 사진에 얽힌 사연을 기록했다.

다른 농가를 방문할 때도 사진에 관심을 보였다. 모든 농가가 임시백처럼 대대로 농사를 짓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저마다 농사를 짓게 된 사연이 있었다.

그녀는 녹차 밭에서 아이를 안고 찍은 사진을 한참을 바라보았다.

젊은 여성이 어린아이를 안고 있었다.

“젊었을 때는 아주 미인이셨네요.”

“아니에요, 별말씀을 다 하세요.”

농부의 아내는 수줍은 얼굴로 말했다.

장지수는 농사일을 하며 겪었던 여러 가지 일들을 물었다. 농부들의 사연이 하나둘씩 기록됐다.

취재 중에 김덕명에게서 연락이 왔다.

디자인과 관련해서 상의할 내용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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