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에 들어가기 전에 연구소에 들렀다.
유기농 비료가 언제쯤 완성될지 궁금했다.
“연구는 잘 되고 있나요?”
서우영과 이영호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그들은 놀란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해서는 안 될 짓을 하다 들킨 아이 같은 표정이었다.
“왜 그렇게 놀라세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두 남자의 등 뒤에 뭔가 있었다.
“제가 알면 안 되는 건가요?”
난 웃으며 물었다.
서우영과 이영호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그리곤 감추고 있던 물건을 공개했다.
“이건 고구마 펄 아닌가요?”
두 남자가 가리고 있던 건 고구마 펄이었다. 그들이 고구마 펄로 뭘 하고 있었는지 궁금했다.
“이걸로 뭘 하고 계셨던 거죠?”
난 서우영과 이영호를 바라보며 물었다.
“설민주 씨가 매일 우리에 버블티를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간 고구마 펄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도 말해줬고요.”
이영호가 고구마 펄을 보며 말했다.
“서 박사님이 특허를 받아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습니다.”
“특허요?”
놀란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식품 특허, 연구원다운 발상이었다.
“고구마 펄로 특허를 받는 게 가능할까요?”
“실은 그걸 검토 중이었습니다.”
“결론이 나왔나요?”
“네, 가능할 거 같습니다. 내용을 작성해 보기도 했고요.”
“내용이요?”
설민주가 설명해 준 내용을 토대로 실험을 한 문서였다.
서우영이 작성한 문서를 프린트했다.
난 그가 작성한 문서를 훑어보았다.
고구마 펄을 발명하는 배경부터 기술적인 내용까지 상세하게 작성한 문서였다.
실험재료와 고구마 펄을 제조하는 방법이 자세하게 기록돼 있었다.
고구마 전분과 찹쌀가루 그리고 녹두 전분을 넣은 비율도 상세하게 기술했다.
흥미로운 내용도 눈에 띄었다.
실험에 따른 결과였다.
고구마에 찹쌀가루 그리고 녹두 전분을 넣었을 때의 형태적 특성이었다.
고구마 펄의 탄성을 실험한 내용이 사진과 함께 첨부돼 있었다.
타피오카 펄과 비교해 탄성을 실험했다.
탄성은 최저 1부터 최고 9까지를 놓고 실험을 했다.
타피오카 펄은 최대 6이었다.
고구마 펄의 탄성은 최대 7이었다.
고구마 펄이 타피오카보다 탄성이 좋았다.
“이런 걸 언제 다 하신 건가요?”
문서를 보는 내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우영과 이영호는 부끄럽다는 듯이 얼굴을 붉혔다.
“사소하게라도 보답하고 싶었습니다.”
서우영이 차분한 말투로 말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아시다시피 연구원이 하는 일은 당장 성과를 내기 힘들죠. 다른 조직에 비해서 결과가 항상 늦습니다. 대표님은 저희를 믿을 뿐만 아니라 제가 원하는 연구도 할 수 있게 배려해 주시니... 새 제품 개발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연구원이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 생각합니다만...”
“그 당연한 걸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서우영이 말했다.
“식품은 특허보다 맛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지리산 농부들에서 나온 신상품은 맛이 아주 좋습니다. 안에 들어간 내용물도 신선하고요. 특허를 받는다고 해도 큰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서우영의 말에서 겸손이 느껴졌다.
“저도 서우영 박사님의 말에 동의합니다. 특허는 그저 포장에 지나지 않죠. 작은 도움이라도 되고 싶었습니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홍보에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식품 특허로 홍보에 도움이 된 사례들이 많았다. 게다가 특허를 받는 순간 누구도 함부로 제품을 카피하는 일을 막을 수 있었다.
오늘은 유난히 연구소 동료들이 듬직하게 느껴졌다.
함께 있어도 연구소 사람은 보이지 않을 때가 있었다. 독립된 기관처럼 움직이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들의 존재를 잊지 않았다.
지리산 농부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존재였다.
유기농 비료를 만드는 것도 녹차 농사만 짓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한국의 많은 농가에 보급하고 싶었다. 물론 그 시작은 하동 지역의 녹차 농가부터였다.
“혹시, 유기농 비료 일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서우영에게 물었다.
“시제품을 만들고 있는 단계입니다.”
“벌써 시제품을요?”
“이영호 연구원이 지금까지 노력한 덕이죠.”
서우영은 이영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영호는 부끄러운 듯이 얼굴을 붉혔다.
“이영호 연구원이 지금까지 유산균 실험을 잘해준 덕입니다. 저희가 개발한 비료는 유산균을 이용했습니다.”
서우영은 연구실 안쪽으로 날 안내했다.
그곳에 여러 개의 화분이 줄지어 있었다.
“오른쪽에 있는 게 저희가 개발한 비료로 키운 차나무입니다. 가운데는 시중에 파는 유기농 비료죠. 그리고 왼쪽은 화학비료로 준 것입니다.”
난 차나무의 상태를 확인했다. 비료마다 성장의 차이를 보였다.
화학비료를 준 차나무의 발육도 좋았지만, 잎사귀가 크고 물렀다. 일반 유기농 비료는 잎사귀가 작고 발육은 보통이었다.
“우리 비료를 준 차나무 상태가 확실히 좋네요.”
발육상태가 좋고 잎에서도 윤기가 흘렀다. 잎의 크기도 적당했다.
“일반 유산균으로 만든 유기농 비료가 아닙니다. 연구소에서 특별히 고안한 유산균 비료죠. 일반 유산균은 분해성 미생물입니다. 식물에 접촉하면 뿌리에 곰팡이가 번질 수 있습니다. 저희가 개발한 유산균은 소멸균이라서 곰팡이 발생을 억제합니다. 뿌리가 썩는 것을 방지하고 생육을 촉진시키죠.”
“유산균을 이용해 만든 비료의 효과가 정말 좋네요!”
유산균 비료를 준 차나무를 보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목장 덕도 많이 봤습니다.”
이영호가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우유에서 추출한 락토바실루스균을 이용했거든요.”
“아... 그렇군요.”
“서우영 박사님 말씀처럼, 전부터 여러 가지 유산균을 실험했던 게 도움이 됐습니다.”
“그럼 얼마나 더 걸릴까요?”
“일주일 정도 더 실험을 하면 사용이 가능할 겁니다.”
좋은 소식이 두 개나 있었다.
시제품 단계의 유기농 유산균 비료와 특허까지.
당장 우리가 만든 비료를 사용할 수는 없었지만, 유기농 비료가 완성되면 홍보 효과가 꽤나 클 것 같았다.
특허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제 온·오프라인으로 제품을 판매할 때가 됐다.
* * *
연구실을 나와 사무실로 향했다. 다들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난 한기탁과 백민석에게 회의를 요청했다.
“매장과 관련한 일을 상의하고 싶어요.”
“나도 그 일로 고민하고 있었어.”
한기탁은 지금도 고민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나도 고민해 봤는데, 부산이면 어떨까? 우리 제품을 받는 매장도 가장 많고.”
백민석이 말했다.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는지 표정이 밝았다.
“하동이면 어떨까요?”
“하동?”
한기탁과 백민석이 동시에 외쳤다.
상징적인 매장이었다.
지역의 명물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하동에 버블티를 먹으러 사람들이 올까?”
백민석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도 하동을 생각해 봤다는 얼굴이었다.
“나도 하동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어. 차 농가도 전부 하동에 있고, 우리 목장도 하동에 있으니까. 부산은 우리 제품을 넣고 있어서 왠지 마음에 걸리기도 했고.”
한기탁이 나를 보며 말했다.
“하동에 생각한 장소라도 있어?”
“네, 있어요.”
“거기가 어디야?”
“화개장터요!”
화개장터는 하동의 상징적인 장소였다.
훗날 지역과 관련한 모든 축제들은 화개장터를 중심으로 벌어진다. 지자체가 심혈을 기울인 사업이기도 했다.
지리산 농부들도 함께 만들어 갈 좋은 기회였다.
화개장터에 지리산 농부들의 매장을 연다면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축제의 시작
대만 출장을 함께 했던 장지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본가가 있는 여수에서 지내고 있었다.
대만에서 말했던 에세이 건을 상의하고 싶다고 말하자 흔쾌히 승낙했다.
처음 만났던 여수의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다.
“잘 지내셨나요?”
“덕분에 잘 지냈습니다.”
“책 작업은 잘 되고 있나요?”
“아직 갈 길이 멀었어요.”
장지수는 웃으며 말했다. 표정이 밝아 보였다.
“그런데 저에게 뭘 부탁하고 싶은 거죠?”
“부탁이 아니라 장지수 씨에게 일을 맡기고 싶습니다.”
“일이요?”
“네, 녹차 농가 사람들의 에세이 작업을 의뢰하고 싶습니다.”
“녹차 농가 사람들의 에세이요?”
그녀에게 하동 녹차 농가 사람들이 협동조합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내가 속한 지리산 농부들은 그들의 상품을 인터넷으로 판매할 계획이라는 것도 밝혔다.
“녹차 농가 사람들의 이야기가 녹차 판매와 관련이 있는 건가요?”
장지수는 연관 관계를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그게 우리의 판매 전략입니다.”
“에세이가 판매 전략이 된다고요? 책을 사람들이 읽을까요?”
“책이 아닙니다.”
“책이 아니라고요?”
“일종의 웹진입니다.”
웹진은 출판하지 않고 인터넷상으로 보급하는 잡지를 말한다.
“웹진이라면 인터넷을 통해 무료로 보는 형태군요.”
“네, 인터넷을 통해 무료로 볼 수 있습니다.”
“전 아직도 이해가 안 가네요. 그게 판매와 어떻게 연결이 되는지?”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저 웹진만으로는 광고의 효과를 노릴 수 없었다.
“매주 웹진을 보낼 생각입니다. 메일을 통해서요.”
“이메일 말씀하시는 건가요?”
“네, 이메일이죠.”
“잡지를 이메일로 보낼 수 있나요?”
“보낼 수 있습니다. 지금 개발 중이고요.”
“이제 이해가 되네요. 그렇게 사람들에게 정보를 전한다면 판매에도 도움이 되겠네요.”
“정보만을 전달하려 했다면 지수 씨를 만나지 않았을 겁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죠?”
“농가에 숨은 이야기를 발견해 주시길 바랍니다. 물론 정보도 빠트릴 수 없겠죠. 사소해서 보이지 않았던 이야기들 말이죠.”
“제가 그런 이야기를 찾을 수 있을까요?”
그것이 장지수의 능력이었다. 그녀가 훗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건 우연이 아니었다.
일상의 잔잔함 속에서도 의미 있게 글을 끄집어내는 능력이 있었다.
“전 장지수 씨가 적임자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띄우시는 거 아니에요?”
“솔직하게 말씀드린 것뿐입니다. 그리고 이건 이번 일과 관련한 계약서입니다.”
난 준비한 서류를 꺼냈다.
그녀는 꼼꼼하게 서류를 살폈다.
“이런 조건이면 잘나가는 작가들도 섭외할 수 있겠어요.”
그녀는 놀란 눈치였다.
광고 기획자 시절 프리랜서들과 함께 일한 경험이 많았다. 비용을 책정하는 것도 내 몫이었다.
제대로 된 보상은 일의 능률을 올린다.
원고료를 포함해 취재하는 비용도 따로 책정했다. 한기탁과 함께 작성한 계약서였다.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장지수는 함께 일할 것을 약속했다.
“그럼 언제부터 일을 시작할까요?”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협동조합이 만들어지고 제품이 나오게 되면 판매가 시작될 테니까요.”
농가엔 완성된 찻잎들이 쌓여 있었다. 협동조합을 만들고 조합의 이름으로 포장을 하면 판매가 가능했다.
“그럼 내일부터 진행하겠습니다. 취재 전에 준비할 것도 있으니까요.”
“그러시죠.”
“마지막으로 한 가지 물을게요. 농부의 인터뷰와 차와 관련한 이야기 이외의 것도 써도 되나요?”
“어떤 내용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차와 관련한 역사적 사실이나 건강과 관련한 이야기도 좋을 거 같아서요.”
“좋습니다, 풍부한 이야기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법이니까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