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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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여자가 고구마 펄을 만드는 사이, 임시백 선생님을 찾았다.

“선생님 저 왔습니다.”

“마침 잘 왔구나. 네가 대만에서 가져온 차를 마시려던 참이었다.”

임시백은 찻잔을 하나 더 꺼냈다.

“향이 좋구나. 대만 차도 아주 훌륭해.”

“아무리 좋아도 선생님 물건을 쫓아갈 수 없겠죠.”

그는 기분 좋게 웃었다.

“새롭게 만든다는 제품은 잘 되고 있느냐?”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 염려 덕분에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허허, 빈말이라도 듣기 좋구나. 다행이다!”

“오늘은 선생님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습니다.”

“무슨 일이냐?”

“하동의 녹차 농가들의 힘을 합치는 일을 제안 드리려고 합니다.”

“힘을 합치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임시백의 눈에서 빛이 났다.

“녹차 농사를 짓는 농부들과 협동조합을 만드는 일입니다. 녹차 생산자협동조합”

“협동조합이라.”

협동조합이란 단어가 나오자 그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협동조합은 예전에도 시도한 적이 있었다.”

임시백은 협동조합에 대해서 말한 적이 없었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유쾌한 내용은 아닐 것 같았다.

“그걸 주도한 사람이 바로 나였다.”

“선생님께서... 협동조합을 주도하셨군요.”

“그때 문제가 좀 있었다.”

“어떤 문제인가요?”

“그때 군에서 판매를 맡아준다고 약속을 했다. 농가에서 생산한 물건의 판매를 책임져 주겠다고 한 것이었지.”

임시백의 표정이 굳었다.

“약속을 번복했군요.”

“네 말이 맞다. 일이 그렇게 돼버렸지. 그 일이 있고 나서 조합 결성을 약속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빠져나갔다. 판매처도 없는 조합에 가입하고 싶은 사람이 없었던 게지.”

“그런 일이 있었군요.”

“네 마음은 잘 알겠다만, 조합은 쉽지 않을 거 같구나.”

임시백은 위로하듯 말했다.

“오히려 더 쉽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쉽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선생님 말씀대로라면 다들 조합을 하는 것엔 이미 찬성을 한 거지 않습니까? 물론 판매처가 있다는 조건으로요.”

“그랬었지, 그때는 군과 약속이 돼 있었다.”

“그 약속을 제가 하면 어떨까요?”

임시백은 놀란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네가 그 약속을 한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제가 차를 팔아 드린다는 뜻이죠.”

“요거트와 아이스크림용으로 녹차를 사 가고 있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정도 양으로는...”

“하동 녹차 농가의 모든 차를 판매 대행해 볼 생각입니다.”

“그 많은 걸 대신 팔겠다는 뜻이냐?”

난 자신 있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게 가능한 일이냐? 지리산 농부들은 따로 매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인터넷을 통해 팔 생각입니다.”

“네가 농가의 물건을 인터넷을 통해 팔았다는 말은 들었다. 아무리 인터넷이라고 해도 전통차가 팔릴지는 의문이구나.”

“저에게 좋은 전략이 있습니다.”

임시백에게 인터넷 마케팅에 대해서 잠시 설명을 드렸다.

거의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어떤 마음으로 이야기하는지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

“내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 녹차 농가들이 하나로 뭉치길 바란다. 제자인 네가 그 정도 확신을 가지고 있다니, 내가 나서야겠구나.”

“감사합니다.”

* * *

이야기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고구마 펄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했다.

노해미에게 전화를 걸었다.

“해미 씨, 일은 잘 진행되고 있어요?”

“대표님 와보셔야 할 것 같아요.”

흥분한 목소리였다.

“무슨 일 있어요?”

노해미는 와서 봐야 한다는 말만을 반복했다.

난 곧장 목장으로 달려갔다.

무슨 일인지 몹시 궁금했다.

주방에 들어서자 두 여자가 고개를 돌렸다.

내 시선은 두 여자에게서 테이블 위로 향했다.

낮에 만든 고구마 펄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황금색의 윤기가 흘렀다. 탱글탱글해 보이기도 했다.

“대표님도 한번 드셔보세요.”

노해미가 고구마 펄을 가리키며 말했다.

난 접시 담긴 고구마 펄을 입안에 넣었다.

씹히는 맛이 달랐다. 쫀득한 함이 느껴졌다.

“쫀득하네요. 어떻게 한 건가요?”

난 설민주를 보며 물었다.

“녹두 전분을 조금 넣어 봤어요.”

“녹두 전분이요?”

“고구마 전분, 찹쌀가루, 그리고 녹두 전분을 넣었더니...”

입에서 아직도 탱글탱글한 식감이 느껴졌다.

“조금만 더 연구하면 파티오카보다 더 좋은 게 탄생할 거 같아요.”

설민주가 기쁜 얼굴로 말했다.

지금 상태로도 대만식 파티오카 펄보다 훨씬 좋았다.

“혹시 꿀도 넣었나요?”

묘하게 단맛이 느껴졌다.

“아니요, 꿀은 넣지 않았어요.”

“그런데 단맛이 느껴지네요.”

“우리도 그게 신기했어요. 아마도 고구마의 단맛 같아요.”

조만간 지리산 농부들만의 버블티가 나올 것 같았다.

신제품의 조합

고구마 펄을 만드는 일에 속도가 붙었다. 나도 돕겠다고 팔을 걷어붙였지만 설민주가 막았다.

“대표님, 이 일은 우리에게 맡겨 두세요.”

“제가 도움이 안될까 봐 그러세요?”

“아니요, 그게 아니라 대표님은 다른 일도 많으시잖아요. 협동조합 건으로 바쁘시다는 거 알고 있어요. 이 일까지 하면 에너지가 분산될 것 같아서 그래요.”

설민주의 배려가 느껴졌다.

“저도 있으니까 염려 마시고요.”

노해미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두 분이 애써주시는 동안 저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목장을 나오기 전 참고가 될 만한 자료를 공유했다.

최근에 찾은 자료였다.

고구마 전분과 관련한 내용이었다. 도움이 되길 바랐다.

자료를 전달하고 나가려던 순간이었다.

“고구마 펄 말고도 다른 것도 만들어 볼 생각이에요. 괜찮을까요?”

설민주가 조용히 물었다.

“생각하고 있는 거라도 있나요?”

“현미, 감자, 옥수수도 이용해 볼까 해서요.”

좋은 생각이었다. 다양한 종류의 펄을 만들면 제품의 종류 또한 늘어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거기에 녹차 가루까지 이용해 보면 어떨까요?”

“네, 그것도 한 번 해볼게요.”

고구마 펄 이외도 다양한 펄을 기대해 볼 수 있었다.

역시 설민주의 센스는 기대 이상이었다.

목장을 떠나려는 순간이었다.

설강인이 날 찾았다.

“자네를 찾았네. 나에게 부탁했던 것 기억하는가?”

“네, 어르신에게 멸균 우유를 부탁드렸습니다.”

밀크티에 넣을 멸균 우유였다.

“우선 1차로 완성한 게 있다네.”

“벌써요?”

설강인과 함께 유제품을 생산하는 곳으로 이동했다. 설강인의 아내 주명희를 포함해 여러 인력이 제품을 생산하고 있었다.

매일 신선한 유제품들이 지역 매장으로 배송되어 갔다.

“이게 내가 만든 멸균 우유네.”

설강인은 유리병에 담긴 우유를 가리켰다.

그는 컵에 우유를 따랐다.

“맛을 한번 보게나.”

생각보다 맛이 좋았다.

그도 내 얼굴을 읽은 듯 보였다.

“맛이 괜찮지 않나?”

“그러네요, 고소하고 맛있습니다.”

멸균 우유는 고온에서 살균처리를 하기에 미생물이 죽는다. 그 덕에 일반 우유보다 유통기한이 길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멸균 우유는 저온 처리한 우유보다 맛이 별로라는 게 단점이다. 좀 밍밍한 편이다.

설강인에게 그 점을 개선해 줄 수 있는지 요청했다.

“전혀 밍밍하지 않네요!”

“나도 좀 놀랐네. 맛이 제법 괜찮아서 말일세.”

“어떻게 하신 겁니까?”

“사료에 허브를 좀 넣어봤네.”

“허브요?”

“독일에 다녀온 게 도움이 됐네.”

그가 로봇 착유기 일로 독일에 다녀왔던 게 떠올랐다.

“그때 사료에 허브를 넣으면 우유 맛이 훨씬 담백해진다는 이야기를 들었지. 로봇 착유기도 한몫했네.”

젖소들은 젖을 짜고 싶을 때마다 착유기 안으로 들어갔다.

로봇 착유기를 쓴 덕에 젖소들이 스트레스를 덜 받게 됐다고 했다.

“조만간 목장 우유도 팔 수 있을 겁니다.”

“그거 반가운 소리네.”

설강인은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말했다.

그의 말대로, 허브 사료 덕인지 로봇 착유기 사용으로 스트레스를 덜 받은 덕인지, 멸균 우유임에도 맛이 좋았다.

이 정도 품질이면 승부를 걸어볼 만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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