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각 하동 농업 지원센터.
한기탁이 주재한 회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결혼식 이벤트 이후에 목장 제품을 받는 매장이 늘고 있습니다.”
한기탁이 동료들을 보고 말했다.
녹차밭 결혼식은 목장 제품에도 영향을 줬다.
목장에서 진행된 피로연 때문이다. 목장에서 나온 유제품들이 인기를 얻은 덕이었다.
“양초 판매도 꾸준합니다. 종교 단체뿐만 아니라 일반 사람들도 많이 찾고 있고요.”
백민석이 한기탁의 말에 덧붙였다.
현재 지리산 농부들이 주력하는 상품은 목장 유제품과 밀랍으로 만든 양초였다.
마케팅 전략을 쓸 때마다 만족스러운 성적을 보이고 있었다.
결혼식 이벤트 때는 결혼식에 쓰인 양초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매출 기준 순이익은 만족스러운 수준이었다.
한기탁은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우리 제품을 더 알릴 방법이 없을까요?”
한기탁이 고민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결혼식 이벤트를 꾸준히 해보면 어떨까요? 그때 반응이 좋았으니까요. 다른 농가들도 협력하면 좋을 거 같습니다.”
경영지원팀의 박태호가 말했다.
“저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결혼식 이벤트를 꾸준히 하면 홍보에도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때마다 양초를 선물로 주는 것도 좋은 전략이고요.”
쇼핑몰운영팀의 천희석도 말을 보탰다.
“대표님이 준비하고 있는 신제품에 주목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잘 되면 다른 제품에도 시너지가 생길 것 같습니다.”
백민석이 말했다.
그는 데이터를 참고해 말하고 있었다. 녹차와 결합한 유제품들이 생각보다 선방을 하는 상황이었다.
“밀크티 말씀하시는 거죠?”
“네, 밀크티요. 차와 유제품의 결합이죠. 프레젠테이션에 뽑힌 아이디어인 만큼 신제품이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만약의 경우도 대비해야겠죠. 그게 우리 일이니까요.”
한기탁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쇼핑몰운영팀에서도 시장조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백민석이 자료를 한기탁에게 건넸다.
“바쁠 텐데 자료조사까지 하셨네요.”
“한 팀장님이 가장 바쁘시면서.”
한기탁은 매장관리와 회계업무를 도맡아 하고 있었다. 맡은 업무 말고도 신경 써야 할 것이 많았다.
“한 팀장님은 일을 너무 많이 하세요.”
백민석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대표님에 비해서는 아무것도 아니죠. 농사에 영업에 마케팅까지, 못하는 게 없으시니까.”
한기탁은 유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모두 동의한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한기탁뿐만 아니라 지리산 농부들 모두가 열정적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우리 대표님 내일이면 돌아오겠네요.”
백민석이 웃으며 말했다.
* * *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장지수와는 공항에서 작별인사를 나눴다.
“뭐라고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난 장지수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대만에서 그녀는 열정적으로 일을 해줬다. 미안한 정도였다.
“저 때문에 괜한 일도 겪으셨는데요.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때도 말씀드렸지만, 별일 아니었습니다. 너무 마음 쓰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제 성격이 좀 예민해서 그런가 봐요. 아직도 신경이 쓰이는 걸 보면. 그때 말씀하신 책 작업도 고민해 보겠습니다.”
“네, 다음에 뵐 땐 그 일을 상의 드리겠습니다.”
장지수와 헤어지고 우린 하동으로 향했다.
“출장이 이렇게 힘들 줄 몰랐어요.”
노해미가 피곤한 얼굴로 말했다.
“설마 즐거운 여행을 기대했던 건 아니지요?”
“그건 아니지만, 약간의 휴식은 기대한 건 사실이죠.”
그녀가 유쾌한 말투로 답했다.
너무 쉴 틈을 주지 않았던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녀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 우린 하동에 도착해 있었다.
마을에 가을이 찾아왔다. 감나무에 주황빛 감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일 년 만에 다시 보는 풍경이 정겨웠다.
감나무 아래 벌통이 있는 모습도 보였다.
올해 마지막 꿀을 수확할 날도 이제 멀지 않았다.
“벌써 다 왔네요.”
노해미가 잠에서 깨어났다.
“잘 잤어요?”
“깜빡 잠이 든 거 같았는데 시간이 이렇게 됐는지 몰랐어요.”
노해미는 힘차게 기지개를 켰다.
“역시, 집이 최고네요. 나가면 고생이라더니.”
“다음에 또 출장 가자고 하면 힘들어서 못 가겠다고 하겠네요.”
“아니요, 그건 아니에요.”
노해미가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난 곧장 사무실로 이동했다.
“뭐야, 곧장 사무실로 온 거야?”
한기탁이 놀란 눈으로 우린 반겼다.
“선물도 나눠줄 겸. 겸사겸사요.”
노해미는 이미 동기들에게 대만에서 사 온 선물을 나눠주고 있었다. 대만차와 누가 쿠키까지 다양했다. 목장 사람들과 나눌 선물 보따리도 차에 가득 있었다.
나도 한기탁과 백민석에게 선물을 주겠다고 말했다.
“선물?”
백민석이 날 보고 물었다.
“회의실로 갈까요?”
“얼마나 대단한 선물이길래 회의실까지 가는 거야?”
한기탁이 회의실 문을 열며 물었다.
난 종이가방에서 꾸러미를 꺼냈다.
두 남자는 꾸러미에서 나온 물건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뭐야? 콩인가?”
한기탁이 봉투를 들고 물었다.
“타피오카 펄이에요.”
“타피오카 펄? 이게 선물이야?”
둘 다 실망한 표정이었다.
“이걸 어디다 쓰라고 가져온 거야?”
“우리 신제품을 만들 때 참고 하라고요.”
“내 그럴 줄 알았지. 이건 선물이 아니라 일거리네, 일거리!”
한기탁이 장난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백민석은 한기탁의 말에 껄껄거리며 웃었다.
“역시, 우리 대표님이 최고라니까.”
한기탁이 파티오카 펄이 든 봉투를 들고 말했다.
“그리고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뭐야? 돌아오자마자 회의?”
백민석이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대만에서 돌아오는 길에 고민했던 건데 의견을 묻고 싶어요.”
“뭔데?”
한기탁이 타피오카 봉투를 놓고 물었다.
“녹차 농가를 중심으로 협동조합을 만들면 어떨까 해요.”
“협동조합?”
둘 다 진지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네, 하동 녹차 생산자협동조합이요.”
“녹차 농가가 공식적으로 하나가 된다는 뜻이네?”
한기탁이 물었다.
“네, 맞아요. 공식적으로 하나가 되는 거죠.”
“그거 좋은 생각 같아. 우리도 회의를 했거든. 결혼식 이벤트를 다른 녹차 농가들도 참여해서 꾸준히 하면 어떻겠냐고. 녹차 농가가 하나가 되면 우리에게도 좋을 거 같아.”
“나도 한 팀장님에 동의해. 하나로 뭉치면 여러 가지로 좋을 것 같아.”
백민석이 말했다.
“그런데 협동조합이 쉽게 만들어질까?”
한기탁이 고민하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임시백 선생님과 상의해 볼까 해요.”
“그래. 선생님과 먼저 상의해 보는 게 좋겠다. 그런데 지리산 농부들의 역할은 뭐지? 우리도 조합에 참여 하는 건가?”
“지리산 농부들은 조합에서 나온 제품을 위탁 판매하면 어떨까 해요.”
“대신 팔아준다고?”
“맞아요, 지금도 녹차 농가들의 산양을 대신 관리해 주고 있죠. 판매도 저희가 위탁을 받아서 하는 거예요.”
“판매 전략은?”
한기탁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우리에겐 곶감 등의 상품을 인터넷으로 판 경험이 있어요. 차도 인터넷을 통해 직거래를 하면 좋을 거 같아요. 민석이 생각은 어때?”
“물론, 가능하지. 마케팅이 문제겠지만.”
백민석이 답했다.
“나도 백팀장 말에 동의해. 지금까지 했던 마케팅과 달라야 할 거 같아.”
그들의 말에 동의했다. 나 역시 고민했던 부분이었다.
지리산 농부들에서 온라인으로 판 농산품은 단기간에 팔 농산품이었다.
지리산 농부들이 직접 생산하거나 가공한 제품이 주를 이뤘다.
지금은 하동 지역의 모든 녹차 농가가 대상이었다.
방식이 달라야 했다.
“그 부분은 저도 동의해요. 마케팅은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중요한 건 조합이 만들어지고 난 뒤에 생기는 시너지라고 봐요.”
“무슨 시너지인데?”
“우리 신제품은 하동 녹차 생산자조합에서 나온 녹차만 쓴다고 광고를 할 테니까요.”
“그건 좋은 아이디어네.”
“만약 신제품이 좋은 성과를 내면 녹차 생산자조합과 상생할 좋은 기회가 될 거예요. 그쪽은 고정적으로 물건을 대줄 판매처가 생기는 거고, 우린 좋은 물건을 문제없이 받을 수 있으니까요.”
“무슨 뜻인지 접수했어. 만약 임시백 선생님을 포함 녹차 농가들이 조합을 결성하기로 마음먹는다면 나도 도울게.”
한기탁이 기분 좋게 말했다.
“온라인 판매에 관해서는 내가 연구해놓고 있을게.”
백민석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