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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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우영은 만나기 전부터 내려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미 마음의 결정을 한 상태였다.

이영호의 설득에 넘어간 것이다.

서우영이 하동으로 내려오는 것도 빨랐다.

그는 환영 파티는 뒤로 미루고 곧장 연구에 돌입했다.

나 역시 녹차를 배우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임시백은 내가 만든 녹차를 만족스러운 얼굴로 바라보았다. 내가 어느 정도 실력이 붙었다고 인정하는 눈빛이었다.

요즘 임시백의 얼굴이 밝았다. 황금 미네랄 녹차를 완성했다는 성취감 때문이라고 여겼다.

난 그와 대화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가을의 정취를 물씬 느껴지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따라 녹차의 향이 그윽했다.

“선생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말해 보거라.”

임시백이 차를 마시며 말했다. 기운이 넘치는 얼굴이었다.

“새로운 녹차를 개발하면 어떨까요?”

“새로운 녹차라니?”

“황금 미네랄 녹차의 단점을 보완할 녹차입니다.”

“황금 녹차의 단점을 보완한다니, 그게 무슨 뜻이냐?”

“황금 미네랄 녹차는 장인 정신의 산물이라고 생각합니다. 특별한 물건이자 명품 중의 명품이죠. 하지만 대중적으로 즐기기엔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가격의 벽이 높은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구나. 나도 인정한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말했다. 다행히 그도 가격의 벽은 인정하고 있었다.

“좋은 품질을 유지하면서 대중적인 녹차를 만들면 어떨까 합니다.”

임시백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호기심을 보일 때의 표정이었다.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느냐?”

“황금 미네랄 녹차는 선생님의 독보적인 작품입니다. 맛과 향 그리고 성분까지 잡은 걸작이죠. 하지만 일반적인 방식은 아닙니다. 금이라는 광물을 이용해 특별한 용액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 부분을 다른 방식으로 활용하면 어떨까 합니다.”

“다른 방식으로 활용한다니, 어떤 방법을 말하는 거냐?”

임시백은 눈에 힘을 주어 날 바라보았다.

“금이 아닌 다른 물질로 녹차나무의 영양분를 만드는 방법입니다.”

“금이 아닌 다른 물질로 영양분을 만든다?”

“금처럼 다른 물질로 영양제를 만들어 보는 것입니다.”

“그런 영양제들은 흔한 것이 아니더냐?”

“유산균과 미네랄이 풍부한 유기 비료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유산균과 미네랄?”

“저희 목장에서는 다양한 유산균을 만들어서 요거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지리산 농부들이 운영하는 연구소를 통해서입니다.”

그도 지리산 농부들이 연구소를 운영하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네 말은, 유산균과 미네랄이 풍부한 유기퇴비를 만들어서 녹차를 재배해 보자는 것이냐?”

“맞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황금 미네랄 녹차는 선생님의 독보적인 ‘작품’입니다. 선생님의 이름을 걸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고가의 재료를 사용하는 만큼 특정 계층만이 소비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좋은 녹차의 대중화를 위해서 새로운 방식의 녹차를 연구, 개발해보자는 뜻입니다.”

“금을 이용해 영양제를 만든 것을 응용한 것이구나.”

“맞습니다. 좋은 영양제와 선생님의 기술을 결합해 대중적이고 좋은 녹차를 개발하면 좋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임시백의 얼굴에서 의욕이 느껴졌다.

“난 선친이 이루지 못한 녹차를 만들기 위해 금을 이용해 녹차를 만들었다. 돈을 생각하고 만든 제품이 아니었다. 가격 또한 처음부터 생각하지 않았지. 네 말을 듣다 보니 욕심이 생기는구나. 저렴하면서도 황금 미네랄 녹차만큼이나 좋은 성분의 녹차를 만든 일이.”

“저도 선생님을 돕겠습니다.”

임시백의 ‘황금 미네랄 녹차’는 그만의 작품으로 남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부터 개발할 차는 대중의 입맛을 사로잡을 인기 상품이 될 것이다.

밀크티를 준비하다

임시백 선생님의 황금 미네랄 녹차가 세상에 알려졌다. 금을 이용해 녹차를 재배했다는 내용이 화제가 됐다.

방송취재 팀이 임시백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취재를 나온 스텝들로 하동푸른다원에 북적였다.

“녹차를 재배하는데 금을 이용했다는 게 사실인가요?”

“네, 금을 영양제로 썼습니다.”

“그게 가능한가요?”

“액체 상태로 만들어서 녹차 뿌리에 주었습니다.”

임시백은 콜로이드 상태의 금 용액을 보여주었다. 취재기자는 신기한 눈으로 금 영양제를 바라보았다.

“찻잎에 금의 미네랄 성분이 다량 함유됐다고 들었습니다.”

기자의 질문에 임시백은 연구소에 보내온 검출표를 보여주었다.

“‘황금 미네랄 녹차’라는 이름 그대로네요. 찻잎이 금의 성분을 함유하고 있다니, 대단하네요.”

임시백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녹차를 만들 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금의 이로운 성분으로 녹차를 만드는 것은 선친의 꿈이었습니다.”

“황금 미네랄 녹차, 가격도 상당할 것 같습니다.”

“아직 가격을 정하진 않았지만, 금을 영양제로 썼으니 가격이 높아지는 건 어쩔 수 없는 부분입니다. 금 가격도 만만치 않게 들었으니까요. 선친의 숙원을 이뤄낸 것이 무엇보다 소중한 성과입니다.”

“금으로 키운 녹차, 어떻게 가격으로만 논할 수 있겠습니까? 저도 기회가 되면 꼭 한번 그 맛을 보고 싶군요! 선생님, 이 ‘황금 미네랄 녹차’ 이후에는 혹시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십니까?”

“녹차를 평생 업으로 하는 저 같은 사람들은 꾸준히 좋은 차를 만드는 게 평생의 소원 아니겠습니까? 맛과 품질이 좋은 차를 만드는 데 더 열심히 애써보려 합니다. 그와 동시에 새로운 녹차를 만들어볼 생각입니다.”

“다른 신제품도 만드실 생각인가요?”

“네, 이번엔 제자와 함께 공동으로 개발할 생각입니다. 새로 만들 녹차는 가격과 맛을 다 잡을 계획입니다.”

“제자분이라면?”

“제자를 소개해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임시백이 나에게 손짓했다.

난 그와 나란히 섰다.

“제가 녹차 기술을 전수하고 있는 제자입니다. 녹차밭을 축제의 장으로 만든 인물이기도 하죠.”

“혹시, 녹차밭에서 결혼식을 했던 일 말씀하시는 건가요?”

“맞습니다. 정말 멋진 결혼식이었죠.”

기자는 연신 눈을 깜빡였다. 놀란 표정이었다.

“이 친구가 그 행사를 기획하고 주도했습니다.”

“제자 분이 엄청난 청년 농부였네요. 제자 분께 앞으로 계획을 물어도 될까요?”

질문과 동시에 카메라가 날 잡았다.

“선생님과 함께 새로운 녹차를 만드는데 혼신의 힘을 기울일 생각입니다. 좋은 차를 생산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제품들을 만들어 볼 생각입니다. 나아가 젊은이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계횝니다.”

“좋은 말씀입니다. 좋은 차를 쉽게 접할 수 있다면 우리 음료 문화도 다양해지고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젊은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는다는 건 무슨 뜻이죠?”

“하동 녹차와 목장에서 만든 유제품을 결합한 제품을 만들어볼 생각입니다.”

“그런 제품들이 뭐가 있을까요?”

“녹차 아이스크림과 녹차 요거트 등이 될 수 있겠죠.”

“말씀대로 젊은 층들이 좋아할 제품이네요. 혹시 그것 말고 다른 제품도 만드실 건가요?”

“녹차와 유제품을 결합한 음료도 만들 생각입니다.”

“혹시, 녹차라테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녹차라테도 좋습니다만, 다른 것이 될 겁니다.”

“뭔지 궁금하네요.”

“아직 기획 중인 단계라 자세히 말씀드리기는 어렵네요.”

기자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취재진들이 다원을 떠났을 때였다.

임시백이 날 보며 물었다.

“녹차와 유제품을 결합한 음료라니 그게 무엇이냐?”

그도 녹차 아이스크림과 요거트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맛을 보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신제품에 대한 아이디어는 말하지 않았다. 아직 기획단계였다.

차를 만드는 일이 몸에 배면 시작해 볼 참이었다.

“밀크티입니다.”

밀크티란 말에 임시백이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우롱차와 홍차에 관심을 보인 게로구나.”

산화 과정을 거치지 않은 찻잎으로는 밀크티의 독특한 맛을 낼 수 없었다.

찻잎을 산화해서 만든 우롱차나 홍차로 만들어야 제맛이 났다.

차의 명인인 임시백도 잘 알고 있었다. 다만, 즐기지 않았기에 관심이 덜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젊은 사람들이 밀크티를 좋아할지 모르겠구나.”

임시백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몇 년 뒤, 대만에서 들어온 ‘버블티’라는 이름의 음료가 젊은이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것이다.

우롱차나 홍차에 우유와 타피오카 펄을 넣은 밀크티였다.

퓨전 밀크티라고 볼 수 있다.

“젊은 사람들은 항상 새로운 것을 좋아하니까요.”

“하긴, 나도 젊을 땐 새로운 것들이 좋았으니.”

임시백이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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