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터 최종 시안이 나왔다.
인터넷을 통해서도 녹차밭 결혼식을 홍보하고 있었다.
난 오랜만에 부산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서남수 선생님의 카페였다.
온·오프라인을 전부 활용하는 전략이었다. 우리 제품을 판매하는 부산, 대구, 광주의 모든 매장에 포스터를 전달했다.
서남수 선생님의 매장엔 내가 직접 가겠다고 했다.
카페로 가는 길에 전화를 걸었다.
“무슨 일이야? 이 시간에.”
양초 학교의 정가희가 전화를 받았다.
“부탁 하나 하려고.”
“부탁이라니?”
“특별한 양초를 만들어 줬으면 좋겠어.”
“특별한 양초?”
“결혼식에 쓸 물건이야.”
“결혼식? 누가 결혼해?”
“주인공이 누군지는 아직 몰라.”
그녀에게 이벤트의 내용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했다.
“아주 특별한 양초가 필요하겠네.”
“양초 학교 아이들과 함께 상의해서 만들면 좋을 거 같아.”
“결혼식 이벤트에 쓸 밀랍 양초는 특별한 걸 만들어 볼게. 네 말처럼 양초 학교 아이들과 상의해서. 그런데 작은 선물도 만들면 좋을 거 같아.”
“선물?”
“하객들에게 줄 선물.”
“역시 정가희, 센스 있네!”
“두 가지 종류를 만든다고 생각할게. 결혼식을 하는 당사자를 위한 밀랍 양초와 하객들에게 선물로 줄 양초로.”
“부탁해.”
“이번에 특별히 신경 좀 써 볼게.”
“기대할게.”
정가희가 웃으며 말했다. 여유가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그녀가 하객 선물까지 생각할 줄 몰랐다.
왠지 풍성한 결혼식이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 *
카페 ‘프렌즈’는 유명 매장이 됐다.
연예인들이 다녀간 사진들이 벽을 장식하고 있었다.
“덕명이 왔구나.”
서남수 선생님이 반가운 얼굴로 맞았다.
그에게도 녹차밭 이벤트를 미리 말했다.
모든 매장에 포스터를 붙일 계획도 덧붙였다.
“이게 그 녹차밭 포스터구나.”
그가 포스터를 펼쳤다.
“녹차밭에서 하는 결혼식이라니 정말 멋질 거 같은데.”
하동푸른다원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처럼 담겨 있는 포스터였다.
“덕명아, 포스터 몇 장 가지고 왔어?”
“넉넉하게 가져왔어요.”
“그거 잘 됐구나.
“뭐 하시게요?”
“주변에 아는 가게들이 있어서. 카페 말고도 옷가게에 멀티샵까지 다양하지. 그곳에도 부탁해보려고.”
“고맙습니다, 선생님.”
“고맙긴, 네 덕에 장사도 이렇게 잘 되는데 그 정도는 돕고 싶구나. 그나저나 녹차밭 결혼식이라니, 내 마음도 설레는구나!”
서남수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포스터 뭉치를 받았다.
“이 일도 잘됐으면 좋겠구나.”
“선생님 덕분에 잘될 거 같아요.”
서남수 선생님은 인근 가게에 부탁해 포스터를 일일이 붙였다.
결혼식 이벤트를 위해 모두가 하나가 되어 움직이고 있었다.
노력에 대한 반응이 나타났다.
결혼식을 하고 싶다는 신청자들의 사연이 쏟아지고 있었다.
녹차에 대한 이미지가 떨어진 상황이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같았다.
관심은 오로지 누가 결혼식의 주인공이 되느냐에 쏠려 있었다.
다양한 사연에 사람들은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결혼식은 생각도 못 하고 백발이 되어 버린 노부부의 사연부터 스무 살의 풋풋한 예비 신부와 신랑까지 다양했다.
지리산 농부들의 사무실은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생각보다 반응이 뜨거웠다.
결과 발표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두 번의 결혼식과 축제
녹차밭 결혼식 신청자는 500커플이 넘었다.
결혼식에 필요한 모든 비용은 지리산 농부가 부담하기로 했다.
말 그대로 무상 결혼식이었다. 처음엔 무상으로 결혼식을 할 수 있다는 말이 입소문의 원동력이 됐다.
하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점점 결혼식을 올릴 녹차밭으로 향하고 있었다.
4대째 내려온 ‘하동푸른다원’의 풍광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이다.
아름다운 풍광을 배경으로 일생의 한 번뿐인 결혼식을 할 기회였다.
피로연은 인기 드라마 ‘눈부시게 아름다운 날’의 무대가 됐던 지리산 농부 목장이었다.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킬 요소가 충분했다.
결혼식 이벤트 신청이 끝났다. 이제 커플을 선정하는 일만이 남았다.
지리산 농부들의 선정 기준은 하나였다. 바로 추천 수였다.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커플이 녹차밭 결혼식의 주인공이었다.
지리산 농부들은 커플 선정 문제로 마지막까지 논의를 벌이고 있었다.
“두 커플이 동률입니다.”
쇼핑몰운영팀의 백민석이 말했다.
“1등이 둘이네, 이걸 어쩌지.”
한기탁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다들 고민하는 얼굴이었다.
두 커플 모두 추천을 받은 이유가 명확했다.
우선 처음부터 높은 추천 수를 유지하던 노부부 커플이 있었다.
잉꼬부부로 유명한 할머니 할아버지 커플이었다. 두 분은 오랜 싱글 생활 끝에 결혼에 골인했다.
함께 살기로 마음을 먹었을 무렵 금전적으로 어려운 상황이 되어 결혼식을 미뤘다고 했다.
그 이후로도 여러 가지 문제들이 겹치며 결혼식을 올리지 못했다는 사연이었다.
사연을 쓴 장본인은 할아버지였다. 많이 늦었지만, 이제라도 할머니의 소원을 들어주고 싶다고 마음을 전했다.
노부부가 다정한 모습으로 찍은 사진과 함께 사연을 올렸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충분한 내용이었다.
동점을 받은 또 다른 커플은 노부부와 달리 이십 대의 풋풋한 청춘이었다.
이십 대의 젊은 커플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까닭이 있었다.
그들은 시각장애 커플이었다. 함께 특수학교에 다니며 교제를 한 커플이었다.
양가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이룬 경우였다.
사연을 신청한 사람은 신부였다. 동화 작가를 꿈꾸는 그녀는 녹차밭에서 특별한 결혼식을 올리고 싶다고 했다.
두 커플은 공교롭게도 공동 1등이 됐다.
고민스러운 순간이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난 동료들을 보며 물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두 커플 모두에게 기회를 주면 어떨까요?”
경영지원팀의 박태호가 말했다.
“한꺼번에 두 커플을 다 하기는 좀 그런데.”
경영지원팀장 한기탁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답했다.
“두 커플 모두 사연이 애틋해서 결정이 너무 어려워요.”
노해미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저도 해미 씨 의견에 동의합니다. 둘 중 하나를 결정하기가 너무 어렵네요.”
백민석이 말했다.
“커플을 선정하는 게 이렇게 어려울 줄은 예상하지 못했네요.”
한기탁이 날 바라보며 말했다.
모두들 두 커플 다 선발하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그럼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두 커플 모두 당선자로 뽑는 겁니다. 결혼식은 일주일 간격을 두고 하면 되지 않을까요?”
“그거 좋은 생각이네요.”
백민석이 큰소리로 외쳤다.
“그럼 아예 축제 분위기로 가면 어떨까요? 녹차밭에서 벌어지는 일주일간의 축제로. 일주일 후에 결혼식을 또 올리는 거니까요.”
한기탁의 아이디어였다.
축제로 연결 짓다니, 좋은 생각이었다.
“저도 좋다고 생각해요. 결혼식을 두 번이나 하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저희에게도 도움이 될 거 같아요. 축제 개념으로 가면 일반 사람들까지 모을 수 있으니까요.”
노해미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대로였다.
결혼식이 축제로 변한다면 여러 가지 면에서 이득을 볼 수 있었다.
녹차밭뿐만 아니라 지리산 목장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그 뒤로 신속하게 일이 처리됐다.
당사자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했다.
결혼식 이벤트를 위해 제작한 웹페이지에도 공지 사항을 띄웠다.
반응이 뜨거웠다.
-하객은 아니지만, 결혼식에 참석해도 되나요?
-목장에서 직접 만든 피자도 나온다고 하던데. 그 맛이 궁금합니다.
-그 목장 ‘눈부시게 아름다운 날’의 촬영지입니다. 아이스크림이 유명하죠.
-결혼식이 어떤 모습일지 정말 궁금하네요.
-전 피로연이 너무 궁금해요.
-목장 체험 갔던 일인임. 목장에서 요거트 또 먹고 싶음.
-주말에 갈 데도 없는데 녹차밭 놀러 가고 싶음.
-결혼식의 주인공들이 부러움.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간격을 두고 하는 결혼식이었다.
예상대로 축제와 같은 분위기가 연출됐다.
우린 결혼식 당사자들에게 의사를 물었다.
양가의 하객의 아닌 추천에 참석한 네티즌과 외부 사람들의 유입에 관해서였다.
두 커플 모두 흔쾌하게 승낙했다. 추천해준 고마운 사람들이라며 고마워했다.
선정과 발표까지 끝났다.
이번 주말이 첫 번째 결혼식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