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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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은 금이다

하동지역의 녹차 농가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임시백 선생의 주선으로 이뤄진 자리였다.

“하동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김덕명이라고 합니다.”

수십 명의 농부가 내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표정이 그리 밝지 않았다.

임시백의 요청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모였다는 표정이 얼굴에서 드러났다.

“얼마 전에 있었던 농약 파동으로 많이 상심하셨을 겁니다. 유기농으로 녹차를 재배했음에도 피해를 본 농가가 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들을 이 자리에 모신 이유는 신뢰를 회복할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서입니다.”

“떨어진 신뢰를 어떻게 회복한단 말인가?”

농부 중 한 명이 한숨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제게 방법이 있습니다.”

방법이 있다는 말에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하동의 모든 녹차밭을 유기농으로 바꾸는 방안입니다.”

“우리도 유기농이 좋은 거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닙니다. 유기농을 하면 수확이 줄어들고 인건비가 너무 많이 듭니다. 한마디로 채산성이 낮아진다는 말입니다.”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던 그 남자였다.

“저도 그 부분에 대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걸 해결할 방안이 있습니다. 산양을 이용하는 방법입니다.”

“동물을 이용해서 녹차를 재배한단 말입니까?”

“네, 맞습니다.”

“지금까지 녹차 농사를 지으면서 산양을 이용한다는 소리는 처음 들어 봅니다.”

“임시백 선생님, 앞으로 나와 주시겠습니까?”

난 맨 앞자리에 앉아 있던 임시백 선생을 불렀다.

오늘의 자리가 있기 전, 그와 이미 합의를 본 상황이었다.

전화로 일일이 말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사람들을 모두 모아 놓고 말해야 설득력이 있었다.

임시백이 연단으로 나왔다.

난 잠시 그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김덕명 씨의 말은 사실입니다. 내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했습니다. 산양을 이용해 녹차를 키우는 게 가능한 일입니다.”

그는 초생재배법에 대해서도 말했다. 녹차 재배 농가들은 그의 말을 경청했다.

“산양과 초생재배법을 이용한다고 가정해도, 저희가 갑자기 산양을 어디서 구합니까?”

내가 나설 차례였다.

“제가 산양을 공급해줄 분을 알고 있습니다.”

“딴지를 거는 건 아니지만, 갑자기 산양까지 들이는 게 부담스러운 농가도 있습니다.”

“직접 산양을 분양받기 힘든 분들을 위해 제가 나설 생각합니다. 이 자리에 모인 모든 분들이 유기농으로 농사를 짓겠다고 약속을 해주신다면, 저희가 책임지고 산양을 관리하겠습니다.”

“뭐 그렇게까지 해준다면 우리야 좋습니다. 그런데, 그걸 무상으로 한다는 말은 아니겠죠?”

“저희가 관리해 주는 대가로 녹차를 받을 생각입니다. 여러분들이 동의해주신다면요.”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임시백이 나와 눈을 마주쳤다.

할 말이 있는 얼굴이었다.

“난 나쁜 조건이라고 생각하지 않네. 이 청년은 하동의 녹차로 다양한 제품을 만들 계획이네. 잘 된다면 여기 있는 모두에게 좋은 일일세.”

임시백의 눈이 유난히 빛났다.

많은 사람이 그의 의견에 동의한다는 표정이었다.

“그건 어르신 말씀이 맞습니다. 녹차 농가가 모두가 유기농으로 바꾸는 것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건도 그 정도면 나쁘지 않고요. 하지만, 그런다고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지 의문입니다. 오랜 단골도 다 떨어져 나간 상황이라.”

“방법이 있네.”

임시백이 사람들을 향해 자신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청년이 그 부분도 해결해 줄 걸세.”

임시백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모든 시선에 나를 향했다.

난 농부들에게 신뢰를 회복할 전략에 대해서 말했다.

녹차밭에서 결혼식을 한다는 말에 다양한 반응이 쏟아졌다.

신청조차 하지 않을 거라는 부정적인 반응부터, 기발한 아이디어라는 긍정적인 반응까지 생각들이 제각각이었다.

말이 많아지자 임시백이 다시 연단으로 나섰다.

나무처럼 굳은 표정이었다.

“그럼 자네들이 아이디어를 내보게. 개선할 방법은 생각도 하지 않고 자기 입장만 따질 땐가!”

임시백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소란스러웠던 장내가 일순간 고요해졌다.

“여기 있는 이 청년도 한가한 사람이 아니네. 양봉과 목장 일까지 다양한 일을 벌이고 있는 청년 농부네. 하동 녹차의 위상이 떨어진 상황에서도 좋은 상품을 만들어 보겠다고 동분서주하고 있네.”

그의 말을 듣는 농부들의 표정이 변하고 있었다.

“이 청년과 함께 살 방법을 찾아보는 게 어떻겠나?”

임시백은 자신의 진심을 전했다. 그것이 농부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단순히 내가 좋은 방안이라고 했다면 통하지 않았을 일이었다.

그들은 임시백을 신뢰했다.

4대를 이어 차밭을 지킨 명인을 존경하는 마음이었다.

“어르신의 말씀대로 저 청년을 믿어 보겠습니다.”

“올해 농사를 망쳐서 마음이 심란했습니다. 다시 시작하는 기분으로 도전해 보겠습니다.”

여기저기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제야 임시백의 얼굴도 한결 부드러워졌다.

녹차 농가들과 합의에 이르렀다.

모인 농가 모두가 유기농으로 녹차를 재배할 것을 약속했다.

산양과 초생재배법를 이용해 농사를 짓기로 한 것이다.

녹차밭에서 진행할 이벤트는 임시백 선생님의 다원에서 하기로 했다.

모두들 선생님의 녹차밭에서 하는 것을 추천했다.

마지막으로 전할 말이 있었다.

“결혼식 이벤트가 끝난 뒤에는 녹차밭 체험도 진행할 예정입니다.”

농부들은 모두 협조를 약속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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