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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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식에게 산양 10마리를 분양받았다.

그가 목장을 직접 방문해 산양을 다루는 법에 대해서 알려주었다.

설강인을 포함한 목장 사람들은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산양을 바라보았다.

강의가 끝나고 노경식이 돌아가려는 순간이었다.

“어르신, 부탁 하나만 더 드려도 될까요?”

“말씀하세요.”

임시백에게 시연을 보여야 했다. 그날 산양들을 녹차 밭에 풀 계획이었다.

잠시의 강의를 들었다고 산양을 마음대로 다룰 순 없었다.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했다.

“뭐 그런 일이라면 어렵지 않습니다. 대표님 말대로 일이 잘만 된다면 나와 전략적 제휴를 맺는 거니까요. 게다가 해미가 낸 아이디어이기도 한데, 아버지로서 돕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준비를 마치고 임시백에게 전화를 걸었다.

“벌써 해답을 찾은 건가?”

“네, 해답을 찾았습니다. 조만간 선생님을 찾아뵙고 싶습니다.”

“궁금하군, 대체 어떤 답을 내놓을지.”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며칠 뒤 우린 임시백의 녹차 밭으로 향했다.

임시백은 산양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게 대체 뭔가? 염소인가?”

“산양입니다.”

“혹시, 저 동물들을 우리 녹차 밭에 들일 생각인가?”

“네, 맞습니다.”

노경식은 산양을 녹차 밭에 풀었다.

임시백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녹차 밭이 쑥대밭이 되면 어쩌나 하는 표정이었다.

신뢰를 회복하는 마케팅

산양이 녹차밭을 누비고 다녔다.

임시백을 포함한 모든 이들이 산양의 뒤를 쫓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차나무 잎은 먹지 않네요.”

노해미가 산양을 바라보며 말했다.

다른 이들도 신기한 눈으로 산양을 바라보았다.

“허허, 정말 찻잎을 먹지 않는군.”

임시백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순한 눈을 가진 산양들이 차밭을 자유롭게 다녔다.

임시백의 녹차밭은 차나무 간격이 빽빽하지 않고 여유로웠다.

처음부터 친환경을 계획하고 녹차를 재배했기 때문이다.

산양들이 다니기도 좋은 환경이었다.

“산양이 녹차밭의 파수꾼이었군.”

임시백이 나를 보며 말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눈매는 여전히 사나웠다.

뭔가 걸리는 게 있는 얼굴이다.

“산양이 저런 역할을 할 줄은 몰랐네. 차밭에 산양만 몇 마리 풀어놔도 잡초 걱정은 하지 않을 것 같네. 하지만 문제가 있네.”

잠자코 그의 말을 들었다.

“난 지금까지 화학비료와 살충제를 쓰지 않았네. 친환경 퇴비를 주어 토양을 살려내고, 지렁이와 땅강아지가 살 수 있는 토양을 만들었네. 어느 정도의 잡초는 녹차 재배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네. 녹차 새순에 진딧물 등 해충이 집중적으로 달라붙는 걸 방지한다네.”

임시백이 녹차밭에서 잡초를 뜯어 먹고 있는 산양을 보며 말했다.

“초생재배법을 이용하면 선생님이 염려하시는 부분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초생재배법이라... ”

그가 다소 의문스럽다는 표정을 짓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초생재배법은 보통 과수원이나 계단밭 등에서 토양 침식을 방지하기 위해 목초를 키우는 것을 말한다. 일부러 풀을 가꾸어 지력을 높이고, 그 풀은 거름으로 쓰기도 한다. 환경보전형 농법에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었다.

산양을 이용해 녹차 재배를 하던 농가들이 시행착오 끝에 차밭에도 접목해 본 방법이었다.

당시는 아직 산양을 이용한 녹차 재배 기법이 도입되지 않은 상황이었던 터라 그가 생소하다는 표정을 지었던 거다.

“녹차밭에 클로버, 뚝새풀, 들목새 등의 씨앗을 일부러 뿌리는 농법입니다. 잡초 중에서 키가 작으면서 뿌리의 발달이 토양표면에 발생하는 식물이죠.”

그제야 임시백의 표정이 밝아졌다.

“키가 큰 잡초들은 산양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클로버 등의 작은 식물로 녹차의 새순과 토양을 보호하는 방법이군. 녹차 새순에 진딧물 등 해충이 집중적으로 달라붙는 걸 방지할 수 있겠구먼.”

역시 전문가다운 식견이었다. 감을 잡았다는 듯 술술 이야기했다.

“클로버가 가지고 있는 뿌리혹박테리아는 공기 중의 질소를 고정해 토양을 비옥하게 하는 부수적인 효과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이 농법이 녹차를 재배하는 농부들에게 보급된다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네.”

“저도 선생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임시백이 보기 좋게 웃었다. 웃는 얼굴을 보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소문이 사실이었군.”

“소문이요?”

“자네가 죽어가는 농가를 살린다는 소문 말일세.”

그가 유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시연이 끝나고 노경식은 산양들을 데리고 목장으로 돌아갔다.

임시백이 안으로 초대했다. 노해미와 함께였다.

따뜻한 차를 가운데 두고 임시백과 마주하고 있었다.

임시백은 처음과 달리 온화한 표정이었다.

산양을 이용해 녹차 농사를 짓는 법 등을 이야기하며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나와 노해미를 제자로 들이겠다는 말은 아끼고 있었다.

그의 마음 한구석에 뭔가 남아 있는 느낌이 들었다.

“자네가 낸 아이디어는 참으로 훌륭하네. 오랜 시간 녹차를 재배했어도 그런 발상은 해보지 못했네.”

“과찬이십니다.”

“약속대로 자네들을 제자로 받겠네. 그런데 한 가지 걸리는 게 있군.”

“뭔가요?”

“지금 녹차 농가의 상황이 말이 아니네. 자네가 고안한 농법을 녹차 농가에 보급한다고 해도, 떨어진 신뢰를 회복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게 염려되네.”

그가 어떤 부분을 걱정하는지 짐작은 하고 있었다.

나 역시 그 부분이 걸렸다.

어떤 면에서는 녹차 일을 배우는 일보다 중요하기도 했다.

“그 일을 저희가 맡아 보겠습니다.”

“자네가 맡는다고?”

임시백이 목소리를 높여 물었다.

노해미도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둘 다 놀란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저 역시 선생님과 같은 고민을 했습니다.”

“자네도 같은 생각을 했군. 그래, 대안은 있는가?”

임시백은 고개를 내밀며 물었다.

“아직 말씀드리기는 이른 단계입니다.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전에 선생님에 부탁드리고 싶은 게 하나 있습니다.”

“그게 뭔가? 말해 보게.”

“하동에서 녹차를 재배하는 농부들을 모아 주십시오.”

“그런 일이라면 어렵지 않네.”

임시백은 하동에서 4대째 녹차를 재배한 인물이었다.

지역의 녹차 농가와도 긴밀하게 연결돼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이 문제까지 해결하고 난 뒤에 선생님에게 녹차 기술을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그 일까지 해결을 한다면 나도 마음을 다해 자네들을 가르쳐 보겠네.”

“감사합니다.”

임시백은 밖으로 나와 우릴 배웅했다.

그 전이라면 상상도 못 할 장면이었다.

“어떤 방법인지 물어봐도 될까요?”

노해미가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묻었다.

“방법은 같이 찾아봐야겠죠. 사무실로 들어가자마자 회의를 할 생각입니다.”

“회의요? 전 대표님한테 계획이 있는 줄 알았어요.”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고 해도, 회의를 통해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미처 생각 못 했던 부분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하긴, 대표님 말씀이 맞아요.”

“사무실로 가는 동안에 해미 씨도 고민해보고 의견 주세요.”

“네.”

우린 사무실로 가는 동안 생각에 잠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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