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에 도착했다. 노경식의 산양 목장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는 플래카드가 보였다.
산 중턱에 오르자 목초지가 나타났다.
“조금만 더 가면 우리 집이에요.”
노해미는 흥분한 얼굴로 말했다.
지리산 농부가 된 이후로 아버지가 계시는 집에는 처음이었다.
목장 입구에 넓은 챙의 모자를 쓴 남자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해미야!”
노경식이었다.
고집이 있어 보이는 인상이었다. 딸을 보며 웃을 때는 고집스러운 인상이 사라졌다.
양처럼 선한 얼굴이 드러났다.
“잘 지냈어?”
“잘 지냈어요, 아빠는?”
“나야 뭐, 잘 지냈지. 그런데 이분이 네가 말한?”
“처음 뵙겠습니다. 김덕명입니다.”
“노경식이라고 합니다.”
인사를 나누고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는 길에 목장에서 일하는 몇몇 사람과 마주쳤다.
제법 규모가 있는 목장이었다.
“하동에서 농사를 짓는다고 들었습니다.”
“네, 청년들과 힘을 합쳐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해미에게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전 반대 했습니다. 농사일이 쉽지 않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죠.”
“아빠는 대표님한테 별소리를 다 하세요.”
노해미가 음료를 따르다 끼어들었다.
“아버님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농사일이 어렵다는 것을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해미에게 들었는데, 산양이 필요하시다고요?”
“네, 아버님께 산양을 분양받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하동에서 젖소 목장을 운영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규모도 상당하다고 들었는데, 산양이 필요한 이유가 궁금하군요?”
“새롭게 준비하는 일이 있습니다. 녹차를 재배해 볼 생각입니다.”
“녹차요? 산양과 녹차가 무슨 관계입니까?”
노경식은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노해미에게 자세한 이야기는 아버님을 만난 이후에 하겠다고 전했다.
난 이야기를 하나하나 풀었다.
최근에 불거진 농약 파동부터 산양을 이용한 유기농 기법까지 상세하게 말했다.
“재미있는 발상이네요. 녹차 밭의 파수꾼으로 산양을 이용한다니.”
의문이 풀린 노경식의 눈이 빛나고 있었다.
“혹시, 아버지도 알고 있어요?”
노해미가 노경식을 바라보며 물었다.
“뭐 말이냐?”
“산양이 차나무 잎을 싫어하는 사실이요?”
“글쎄다, 내가 아는 건 산양이 좋아하는 먹이뿐이니까.”
“하긴, 아빠 말이 맞네요. 녹찻잎을 먹일 기회도 없었을 테고.”
노해미의 시선이 나에게 옮겨왔다.
“아무래도 직접 확인해 보는 수밖에 없겠네요.”
그녀가 나에게 말했다.
“네, 해미 씨 말대로 직접 확인하는 수밖에 없겠네요.”
노경식 부녀와 산양의 먹이 습성을 확인하기 위해 산양 우리로 갔다. 하동에서 가져온 찻잎을 한 움큼 던져줘 보았다. 쿰쿰 냄새를 맡는가 싶더니 고개를 돌리고는 평소 먹던 건초에 입을 가져다 댔다.
거 참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노경식이 허허 웃었다.
노해미도 웃음을 터트렸다.
나도 긴장이 풀리며 안심이 됐다.
그때 노경식이 생각이 많은 얼굴로 말을 건넸다.
“전 인근 생협에 산양유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산양에게 항생제가 든 사료는 먹이지 않죠.”
“해미 씨에게 전해 들었습니다. 아버님께서 어떤 마음으로 산양을 키우고 있는지를.”
“산양을 분양하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산양을 함부로 다루지 않는다고 약속한다면 말이죠.”
“물론입니다. 그 일과 관련해서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산양이 녹차 재배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증명되면, ‘노경식 목장’과 전략적 제휴를 맺고 싶습니다.”
“저와 전략적 제휴요?”
“말씀처럼 산양을 다루는 것도 전문가의 영역이니까요. 단순히 산양만 분양받는 것이 아니라, 산양을 관리하고 보살피는 법도 더불어 알고 싶습니다. 분양과 함께 주기적으로 교육이 이뤄진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그에 따른 비용도 지불해야겠지요.”
“뭐, 그렇게 하겠다면 나도 나쁠 건 없습니다.”
고맙게도 노경식은 흔쾌히 산양을 분양하겠다고 했다. 협의가 원만하게 이뤄졌다.
무조건 산양을 분양받는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다.
산양들의 관리도 동시에 이뤄져야 했다. 잘만 하면 목장에 도움이 되는 일이기도 했다.
젖소에서 나오는 우유 말고도 산양유를 생산할 수도 있다.
노경식의 목장을 나오기 전, 그와 둘만의 시간을 가졌다.
노해미는 목장에 새로 들인 닭과 오리를 보러 갔다.
“더 하실 말씀이 있는지?”
노경식은 궁금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저희가 녹차 일을 시작하게 된 사연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 일을 시작하게 된 건 모두 해미 씨 덕입니다.”
“우리 해미 덕이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요?”
난 지리산 농부들이 새로운 사업 아이템 발표회를 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중에서 해미 씨의 아이디어가 최고 점수로 뽑혔다고 했다.
“아, 그런 일이 있었군요. 해미에겐 그런 재미난 이야기는 듣지 못했습니다그려.”
“해미 씨가 아니었다면 생각도 못 했을 겁니다.”
“우리 해미가 그런 생각을 했다니 대견하군요. 그렇게 좋아하는 일인 줄도 모르고 반대만 했다니 갑자기 부끄럽습니다, 허허.”
“해미 씨는 한국의 농업을 이끌 인물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대표님이 그리 인정을 해주시니 아버지로서 참 기분이 좋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
노경식이 웃으며 답했다.
지장사에 다녀오는 동안 노해미와 대화하면서 생각했던 일이었다.
노해미의 아버지를 만난다면, 딸의 역량과 가능성에 대해서 말해 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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