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마리가 이렇게 가까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지장사 연화 스님을 만나고 내려오는 길에 노해미에게 들었다. 아버지가 산양을 키우고 있다고.
친환경 녹차 밭에 필요한 동물이 바로 산양이었다.
몸 전체가 검은 털로 덮여 있는 염소와 달리, 산양은 흰색과 회색 털이 여러 군데 얼룩덜룩 난 게 특징이다.
산양을 이용한 친환경 농법이 가능한 이유는 산양의 독특한 특성 때문이다.
산양은 모든 초식 동물이 그러하듯 풀을 좋아한다. 특히 새로 자란 풀을 좋아한다. 특히 자귀풀, 쑥, 칡 등을 잘 먹는다고 한다.
녹차 밭에 산양을 풀어 놓으면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고도 잡초를 제거할 수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처음엔 의문이 들었다. 산양이 녹차 밭의 잎까지 전부 뜯어 먹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릴 때 염소가 밭에 있는 농작물을 전부 뜯어 먹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산양도 염소와 비슷한 습성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신기하게도 산양은 녹찻잎을 먹지 않는다. 녹차 특유의 씁쓸한 맛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조심성도 많아서 밭을 해치지 않는다고 하니 차밭에 꼭 필요한 동물이었다.
노해미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아버지와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말을 꺼내기가 처음에는 부담이 됐다. 그녀가 아버지와 연락도 하지 않는다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기우에 불과했다.
노해미는 흔쾌히 승낙했다. 요즘은 아버지와 연락도 자주 한다고 말했다.
생일 이후에 부녀 관계가 예전처럼 편안해졌다고 한다.
오랜만에 아버지를 볼 생각 때문인지 그녀는 들떠 보였다.
녹차 생잎을 준비해 함양으로 이동했다.
그곳에 노경식의 산양 목장이 있었다.
“녹차를 재배하는 농부들이 힘들다는 소식은 저도 최근에 들었어요.”
노해미는 내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농사를 한 번이라도 지어 본 사람이라면 이해했을 거예요.”
“뭘 말이죠?”
“제초제를 쓴 이유요.”
“농사는 풀과의 전쟁이잖아요.”
“산양들은 그 풀들을 모조리 먹어 치우죠.”
난 웃으며 말했다.
“대표님에게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믿기지 않았어요.”
“뭐가 믿기지 않았나요?”
“산양들이 차나무 잎을 먹지 않는다는 거요.”
노해미는 지금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산양이 염소보다는 얌전한 건 맞아요. 염소가 무법자라면 산양은 천사 정도 될 거예요. 양처럼 온순하니까요. 그런데 풀은 정말 좋아하거든요. 녹찻잎도 엄청나게 좋아하면 어쩌죠?”
“임시백 선생님이 낸 숙제를 풀지 못할까 봐 걱정인가요?”
“조금이요. 어릴 때부터 산양을 보고 자라서 그런 거 같아요. 산양들이 못 먹는 풀을 본 적이 없어서.”
“확인해 보면 알겠죠.”
그녀에게 임시백 선생님이 낸 숙제 이야기를 했다.
농약 파동으로 힘들어하는 차 농가를 살릴 방법을 찾는 일에 대해서.
그 해답이 아버지가 키우고 있는 산양에 있다고 말했다.
처음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은 걱정 반 기대 반의 얼굴이다.
가볍게 화제를 돌렸다.
“해미 씨, 얼마 전에 서울에 다녀왔죠?”
“네.”
서울 이야기가 나오자 얼굴에 혈색이 돌았다.
“자료 조사였나요? 어떻게 됐어요?”
다른 일 때문에 물을 시간이 없었다.
“사람을 만나고 왔어요.”
“아, 어떤 분을 만나고 온 거죠?”
“대학 다닐 때 알던 외래 교수님이요. 차에 조예가 깊은 분이세요. 만나서 직접 묻고 싶은 게 있었어요.”
“그랬군요”
“대만으로 유학을 다녀오셨거든요. 대만 친구 중에 차 농사를 하는 사람도 있다고 했던 말이 떠올라서요.”
“대만이요?”
대만이란 말에 귀가 솔깃했다.
“네, 대만이요. 여쭤보니 정말 있었어요. 대만에서 녹차 밭을 하는 사람이요. 유학 중에 알게 된 친구인데 지금도 연락을 하고 있다고 하셨어요.”
“그럼 가끔 대만도 가시겠네요.”
“일 년에 한 번씩 대만에 다녀오신다고 했어요. 올해도 조만간 갈 계획이시라고.”
“그렇군요.”
“제가 차 농사를 지을 계획이라고 하니까,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하라고 하셨어요. 대만 친구분도 소개해 줄 수 있다고.”
“그 교수님은 지금도 학교에서 강의하시나요?”
“지금은 가르치는 일을 그만두고 에세이 작가로 활동 중이세요.”
“그거 잘됐네요. 언젠가 기회가 되면 함께 대만에 갈 수도 있겠네요.”
“정말이요?”
노해미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대만에 갈 것은 생각도 못 했다는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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