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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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임화수에 연락이 왔다.

조만간 임시백에게 연락이 올 거라고 했다.

그는 최선을 다했다는 말을 덧붙였다. 남은 문제는 내 몫이란 말을 하며 말끝을 흐렸다.

임화수의 말대로 곧 임시백에게 연락이 왔다.

그가 먼저 만남을 요청했다. 이번에는 나 홀로 그의 집을 찾았다.

하동푸른다원에 도착하자 낯익은 중년 여성이 날 맞았다.

임시백의 아내 구영희였다.

말없이 나를 방으로 안내했다.

임시백은 차를 마시고 있었다.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네.”

나무처럼 단단해 보이는 남자였다.

처음에 만났을 때와 오늘은 인상이 한결 부드러웠다.

“동생에게 이야기를 들었네. 포도 문제로 힘들어할 때 큰 힘이 됐다고 하더구먼.”

잠자코 그의 말을 들었다.

“지장사 일도 알아봤네만, 대수로운 문제는 아니었더군.”

그가 어떤 나에 대해서 어떤 말을 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이 자리에서 할 말도 아니었다.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네.”

“말씀하시죠.”

“왜 하필이면 나인가? 보성 쪽에도 전문가가 있을 텐데.”

“선생님께서는 모든 차를 다 다루기 때문입니다.”

난 주저 없이 답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차의 종류는 아주 다양하다. 가공 방법에 따라 백차, 녹차, 황차, 우롱차(청차), 홍차, 흑차 등 6가지로 분류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다. 발효 정도에 따라 차의 색깔이 다르게 우러나는 게 특징이다. 하나의 찻잎으로 다양한 종류의 차를 만들 수 있었다.

임시백은 차의 고급화에 힘쓴 인물이다. 다양한 종류의 차를 만든 차의 명인이기도 했다.

“그건, 자네 말이 맞네. 한국에서 나만큼 다양한 종류의 차를 만드는 사람도 없지.”

난 차를 한 모금 마셨다. 향긋한 차향이 머리를 맑게 했다.

“미리 말해 두지만, 당장 자네를 제자로 들이겠다는 말을 하려고 부른 건 아닐세. 그러니 김칫국부터 마시진 말게.”

무슨 말을 하려는지 궁금했다.

“자네가 지역의 농부를 도왔던 이야기를 들었네. 과수원에 있는 흠집 난 과일을 대신 팔아주고, 지역 농가에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자네가 도움이 되었다는 얘기들을.”

“함께 돌파구를 찾았을 뿐입니다.”

“혹시, 차 농사를 짓고 있는 사람들이 어떤 일을 겪고 있는 줄 아나?”

“알고 있습니다.”

임시백은 농약 파동을 화두로 꺼냈다.

임화수에게도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하동푸른다원도 농약 파동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했다.

“자네는 녹차를 이용해 젊은 사람들이 좋아할 상품을 만들고 싶다고 했네. 하지만, 지금은 형편이 말이 아니네. 젊은 사람은 고사하고 차를 재배하는 농부들이 고사 직전이네.”

그의 연락을 기다리는 동안 차 농가를 살릴 방법도 고민하고 있었다.

“자네가 농약 문제로 시름에 빠진 농가를 구할 방법을 제시한다면 도울 생각이 있네.”

“그 일을 해결한다면 선생님의 제자로 받아들이겠다는 말씀이신가요?”

“맞네, 가업을 아무에게나 전수할 생각이 없다는 건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네. 하지만, 자네가 차 농가를 살릴 방법을 찾아낸다면 문제는 달라지지.”

“선생님의 말씀대로 제가 문제의 해법을 찾아보겠습니다.”

“자신 있나?”

“당장 벌어진 문제는 해결이 불가능하겠지요. 하지만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할 자신은 있습니다.”

“기대해 보겠네.”

고개를 들어 그와 눈빛을 교환했다.

임시백의 눈에서 빛이 났다.

임화수의 설득만으로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임시백의 말대로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일이었다.

크든 작든 숙제가 뒤따를 것이라고 짐작했다.

난 그것에 대비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바였다.

이제 문제를 해결하는 일만이 남았다.

녹차 밭의 파수꾼

작물을 재배하는 모든 농가는 해마다 잡초와의 전쟁을 벌인다.

좋은 비료를 줄수록 잡초도 무성하게 자라고 만다. 잡초가 비료의 기운도 빼앗아 간다.

최악의 경우 병충해를 맞기도 한다.

차를 재배하는 농가도 마찬가지다. 차나무는 키가 작고 잡초 제거 등 여러 가지 면에서 힘이 든다. 녹차 밭에 제초제를 사용한 이유다.

제초제를 사용하는 작물들은 많다. 하지만 그게 차라면 문제가 달라진다.

차는 과일처럼 씻거나 깎아 먹지 않는다. 찻잎을 그대로 우려 마신다.

건강에 좋다는 이유로 다양한 녹차 제품을 즐겼던 것인데, 잎을 그대로 먹는 차나무에 농약을 뿌렸던 거였다.

소비자들이 농약 녹차를 외면한 까닭이다. 이미 유기농으로만 차 농사를 짓는 농가에도 그 영향이 미쳤다.

광고 기획자 시절 유기농 농산물을 마케팅해 본 경험이 있었다. 그중에 녹차도 있었다.

제초제를 쓰지 않고도 녹차를 재배하는 게 얼마든지 가능했다. 단순한 친환경 농법이 아니었다.

동물을 이용해 잡초와 해충을 제거하는 방법이었다.

여러 가지 시도 끝에 성공한 사례라고 들었다.

물론 현재는 사용되지 않는 새로운 기법이다.

농약 파동을 겪고 몇 년 뒤에 고안된 아이디어였다.

동물을 이용한 친환경 농법을 하동에 적용할 순간이었다. 농약 녹차의 오명을 벗을 기회였다.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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