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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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장에 노해미를 내려 주고 설강인을 만났다.

“민주에게 이야기 들었네. 노해미 씨가 영광의 주인공이 됐다고.”

내심 실망한 표정이었다. 그는 설민주가 되길 바랐다는 표정이었다.

“노해미 씨는 내일부터 저와 함께 움직일 겁니다.”

“목장 일이라면 걱정하지 말게, 인원은 충분하니까.”

설강인은 문제없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민주 씨는 괜찮나요?”

“민주야 워낙 강한 아이라서, 이런 일에는 끄떡도 하지 않을 거야. 조금 전도 씩씩하게 일을 했으니까.”

“민주 씨가 여기 있었다고요? 어디에 있죠?”

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

설강인도 이상하다는 얼굴로 주변을 살폈다.

“이 녀석이 어디 갔지? 방금까지 내 옆에 있었는데...”

사무실에서 보았던 설민주의 얼굴이 떠올랐다.

무척 실망한 표정이었다.

설강인과 이야기를 마치고 나왔다.

난 목장을 돌며 설민주를 찾았다.

한참을 헤맨 끝에 그녀가 있는 곳을 발견했다.

명장면을 찍었던 촬영 장소였다.

울타리에 달린 바람개비를 바라보며 홀로 앉아 있었다.

“여기서 혼자 뭐 하세요.”

내가 다가가자 놀란 듯 날 쳐다보았다.

“그냥 생각 좀 하고 있었어요. 이제 돌아가려던 참이었어요.”

설민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이야기 나눌 수 있을까요?”

“아, 네.”

그녀는 잠시 주저하다 자리에 앉았다.

“많이 서운했나 봐요.”

“아니요. 서운할 게 뭐가 있겠어요.”

얼굴에 서운한 기색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그 이야기라면 전 더 할 말이 없어서.”

“민주 씨가 낸 아이디어는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녀는 놀란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그게 무슨 뜻이죠?”

“민주 씨 아이디어 좋다고 생각해요. 다만, 목장에 국한된 일이라 따로 말씀드리려고 했어요. 설민주 씨가 맡아 줬으면 해요. 목장 치즈와 피자 개발을.”

“그게 정말인가요?”

그녀가 치즈를 들고나왔을 때 내심 반갑기도 했다.

지금은 주력인 요거트에 전력을 다는 상황이었다.

물건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있었지만, 새로운 제품을 만들자는 말을 쉽게 꺼낼 수 없었다.

체험 목장과 병행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전 치즈와 피자가 아주 매력적인 제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체험 목장에서 조금씩 시도해 보면 어떨까 합니다. 그러다 반응이 좋으면 제품으로 출시할 수도 있고요.”

“그게 가능할까요?”

“치즈를 만들 때 천연 발효종을 쓰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영호 씨에게 부탁해 놨습니다. 민주 씨와 협업해서 치즈를 만들어 달라고.”

“진심이시군요.”

설민주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전 그런 줄도 모르고.”

울먹이는 말투였다.

“그럼, 치즈와 피자 개발 기대하겠습니다.”

“기대해 주세요.”

설민주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목장으로 달려갔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김상철과도 용건이 있었다.

그는 정길산 과수원에서 과수를 돌보는 법을 배우는 중이었다.

정길산과는 협업을 할 것을 약속한 상태였다.

김상철에 대해서도 특별히 신경 써 달라고 부탁했다.

블루베리가 가득한 하우스 안에 김상철이 있었다.

“대표님, 여긴 어쩐 일로.”

그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김상철 씨에게 할 말이 있습니다. 잠깐 시간 좀 내주십시오.”

“네, 그러죠.”

그가 모자를 벗고 하우스 밖으로 나왔다.

“김상철 씨에 블루베리를 맡길 생각입니다.”

“그게 무슨 말씀인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이었다.

“블루베리 나무와 관련한 모든 일은 김상철 씨에 맡긴다는 말입니다. 목장에 심는 블루베리에 관해서도요.”

“그걸 제가요?”

이제야 이해했다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김상철 씨의 프레젠테이션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블루베리에 대한 열정도 느껴졌고요. 목장에서 혼자 떨어져 나와 마음고생도 많았을 거 잘 압니다.”

“아닙니다. 마음고생 한 적 없습니다.”

“김상철 씨 말대로 블루베리를 더 많이 키울 생각입니다. 김상철 씨가 준비만 된다면 블루베리 전담 인력도 뽑을 생각이고요. 청년 농부로.”

“그날 소란을 피운 건 정말 죄송합니다.”

김상철까지 이야기를 마쳤다.

프레젠테이션을 듣고 노해미의 아이디어를 선택하기로 마음먹었다.

설민주와 김상철의 아이디어도 최대한 살리고 싶었다.

발표 중에 그들의 마음이 느껴졌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었다.

그에 따른 응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한기탁, 백민석과 잠깐 짬을 내어 말을 맞추었다.

새로운 아이템에 지원을 아끼지 않을 마음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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