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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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자들의 점수를 합산하고 선발자를 발표하는 것은 내 몫이었다.

점수표가 재미있었다.

한기탁은 자신의 팀원이 박태호에게 최저 점수를 줬다. 그가 최고로 뽑은 이는 김상철이었다.

백민석도 자신의 팀원인 천희석에서 최저 점수를 줬다. 그가 최고로 뽑은 이는 노해미였다.

한기탁과 백민석은 자신의 팀원들에겐 짠 점수를 매겼다.

둘이 합의라도 한 것 같았다.

설강인은 달랐다. 그는 자신의 딸인 설민주에게 최고 점수를 줬다. 나머진 모두 평균 점수를 주었다.

심사위원들의 모든 점수를 합산했다.

설민주, 김상철, 노해미가 공동 선두였다.

사무실 인원들은 모두 점수가 낮았다.

한기탁과 백민석의 작전 같았다.

최종 점수를 합산했다.

내일 최종 합격자 발표를 할 계획이다.

새로운 시작

최종 발표 날이다.

오전 중에 사무실에서 모두 모이기로 했다.

내가 가장 먼저 사무실에 도착했다.

한기탁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뭐야, 왜 이렇게 일찍 왔어?”

“오늘이 발표 날이니까요.”

한기탁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날 구석으로 데려갔다.

“나한테만 살짝 말해줘.”

“사람들 다 모이면 말할게요.”

“그러지 말고 살짝 귀띔이라도 해줘.”

난 손가락을 입을 잠그는 시늉을 했다.

한기탁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한 가지만 알려주라.”

“뭔데요?”

“내 팀원은 안 된 거 확실하지?”

“그것도 말할 수 없습니다.”

“치사하게, 점수는 똑바로 반영한 거 맞지?”

한기탁이 목소리를 높여 물었다.

“네, 모두의 점수를 정확하게 합산했어요.”

동료들이 사무실로 하나둘씩 들어왔다. 백민석도 한기탁과 비슷한 태도를 보였다.

한기탁은 어림없다는 표정으로 백민석에서 사인을 보냈다.

목장에서 일하는 설민주, 김상철, 노해미까지 사무실에 도착했다.

“발표는 회의실에서 하겠습니다.”

다들 긴장한 얼굴이다.

누구도 나와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발표에 앞서 격려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신선한 아이디어들 덕에 많은 자극이 됐습니다.”

솔직히 놀랄 정도였다.

그들에게 아이디어를 제안해 보라고 한 건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비전과 함께 가슴을 뛰게 하는 발상도 있었다.

이제 발표의 순간이다.

“최종 발표를 하겠습니다. 지리산 농부들의 새로운 아이템은 바로 노해미 씨의 녹차입니다.”

반응들이 다양했다.

한기탁과 백민석은 싱글벙글 표정을 지었다.

천희석와 박태호는 아쉽다는 얼굴이었다.

설민주와 김상철은 크게 실망한 듯 보였다.

노해미는 상기돼 있었다. 자신의 아이디어가 뽑혔다는 게 믿기지 않는 모양이다.

“노해미 씨 앞으로 나오세요.”

그녀가 앞으로 나왔다.

“한마디 하세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다른 분들의 아이디어도 다 좋았는데.”

노해미는 쑥스러운 듯 말을 잇지 못했다.

평소 분위기 메이커를 자처하던 노해미가 아니었다. 오늘따라 말을 아꼈다.

동료들에게 미안해하는 얼굴이었다.

“그래, 이 정도만 하자. 다들 업무에 복귀할 시간이기도 하고.”

한기탁이 자리를 정리하는 말을 하며, 갑자기 서프라이즈 발표를 했다.

이번 새 아이템 발표를 준비한 직원들에게 거액(!)의 농산물상품권을 증정하기로 한 것이다.

역시 경영지원팀장님다운 배려이다.

아쉬운 마음, 실망스러운 마음들이겠지만 애써준 직원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었다.

“그럼 각자 업무로 돌아가시죠. 노해미 씨에겐 따로 할 이야기가 있으니까 남아 주시고요.”

“네.”

노해미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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