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뒤, 고대하던 프레젠테이션 시간이 찾아왔다.
신사업 아이템 발표는 하문 초등학교 강당에서 했다.
지리산 농부들의 간부들도 모두 자리를 잡았다.
기대의 눈빛 속에 우려도 섞여 있었다.
자신의 팀원이 뽑혀 갈 것을 걱정했다.
발표할 순번은 제비뽑기로 정했다.
첫 번째 발표자는 설민주였다.
“설민주입니다. 저의 신사업 아이템은 치즈와 피자입니다.”
치즈와 피자란 말에 설강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목장의 딸이란 반응이었다.
그녀가 선발된다고 해도 목장에서 일할 것에 기뻐한 것이다.
“현재 지리산 목장에서 생산하고 있는 제품은 유제품들입니다. 블루베리 요거트를 포함해 연유 아이스크림이 있죠. 최근 들어 우유 판매도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뒤에 프레젠테이션 화면이 띄워져 있었다.
목장에서 생산하는 제품들의 사진이 보였다.
“저희 목장에서는 현재 체험학습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목장에서 생산하는 제품을 함께 만들고 목장 체험을 하는 프로그램입니다. 거기에 치즈와 피자를 더하고 싶습니다.”
그녀는 치즈 시장에 대해 분석한 내용을 발표했다.
특히, 수제 프리미엄 치즈 시장에 관한 내용을 중점적으로 말했다.
“저에게 지리산 목장은 꿈의 무대입니다. 가족과 함께 하는 곳이기도 하고. 목장의 제품을 다양화해서 2호, 3호 목장으로 갈 수 있는 발판을 만들고 싶습니다.”
설민주의 발표가 끝났다. 감동한 듯 박수를 치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설강인이었다.
질문은 하지 않았다. 모든 발표가 끝나고 질문을 따로 받기로 정했다.
다음으로 박태호가 등장했다.
“제가 들고나온 아이템은 콩입니다.”
박태호가 준비한 화면이 커졌다.
콩과 관련한 다양한 제품군이 이미지로 보였다.
한기탁은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박태호는 유일한 팀원이었다. 그가 절대로 뽑히면 안 된다는 얼굴이었다.
“보시다시피 콩을 이용하는 제품은 무수히 많습니다. 된장과 청국장뿐만 아니라 두부, 순두부, 콩나물, 두유, 인절미 등에 쓰는 콩고물, 콩고기까지 수를 셀 수 없을 정도입니다. 요거트를 판매할 때 소비자 중 하나가 두유 요거트에 대한 아이디어도 줬던 것도 기억합니다.”
체험단 이벤트에서 해프닝이 벌어졌을 때 나왔던 말이었다.
박태호는 그 내용을 활용하고 있었다.
“가공 제품은 지리산 농부들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우유를 그냥 파는 게 아니라 요거트와 아이스크림으로 만들어 판매합니다. 콩은 그런 면에서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농작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콩을 이용한 가공식품 시장을 조사한 내용을 화면으로 보여주었다.
웰빙 시대를 맡아 국내산 콩의 수요가 점차 많아지고 있는 때였다.
콩을 이용한 가공식품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말대로 많은 잠재력을 가진 농산물이었다.
박태호의 발표가 끝났다.
뚱한 표정의 한기탁을 제외한 모든 이가 박수를 보냈다.
박태호 다음은 쇼핑몰운영팀의 천희석이었다.
“제가 준비한 아이템은 하몬입니다.”
하몬이란 단어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화면이 켜지고 그제야 이해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돼지고기 뒷다리 사진이었다.
“돼지 다리를 이용한다는 점에서 한국의 족발과 비슷해 보이지만, 제조 방식과 맛이 완전 다릅니다.”
그의 말대로 하몬은 족발과 다르다. 스페인어로 햄을 뜻하는 단어였다. 돼지 뒷다리를 소금에 절여 수개월 동안 훈연시켜 만드는 수제 햄이었다.
“실은 제가 고기를 좋아합니다. 고기를 좋아하다 보니 다른 나라의 것들에도 관심을 두게 됐습니다. 하몬을 먹어보고, 언젠가 직접 만들어 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천희석은 하몬의 유래와 제조 공정에 담긴 피피티 화면을 보여주었다.
시장조사는 따로 없었다. 한국에서 하몬을 만드는 곳은 없기 때문이다. 다만 해외여행 경험이 많은 젊은 층에겐 이런 류의 제품이 어필될 수 있을 거라고 강조했다.
백민석은 그 모습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팀원은 절대 선발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하는 표정이었다.
“당장 잘 될 거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연구 기간도 필요하고요. 하지만, 도시 청년을 불러 모을 좋은 아이템이라고 생각합니다. 고기를 싫어하는 청년은 없으니까요.”
그가 웃으며 발표를 마쳤다.
천희석의 말대로 당장은 안 될 수 있지만, 하몬은 가능성이 충분한 아이템이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생각은 다른 듯했다.
다른 발표자와 달리 많은 격려의 박수가 쏟아졌기 때문이다.
가장 크게 박수 소리를 낸 사람은 백민석이었다.
김상철이 연단으로 올라왔다.
어찌 보면 이 자리를 있게 만든 주인공이기도 했다.
“먼저 회식 날 소동을 일을 킨 것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김상철은 나와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제가 준비한 아이템은 블루베리입니다.”
그가 피피티 화면을 켰다.
블루베리가 밭이 등장했다.
정길산의 과수원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다른 분들은 모두 지금 하는 일과 상관없는 아이템을 들고나왔네요. 하지만 전 지금 하는 일을 추천 아이템으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현재 목장에서 사용하는 블루베리는 정길산 과수원에서 산 물건들입니다. 내년엔 저희가 재배한 블루베리로 대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상철은 화면을 넘겼다.
블루베리 열매 사진이다.
“요거트에 넣은 블루베리뿐만 아니라, 생블루베리도 경쟁력이 있습니다. 청년을 더 뽑아서 블루베리밭을 확장하면 가능성이 충분하고 생각합니다. 이상입니다.”
블루베리도 시장조사 항목이 빠져 있었다.
아직 국내산 블루베리 시장이 자리매김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으로 노해미가 연단으로 나왔다.
“제가 선택한 것은 녹차입니다. 시작은 녹차 아이스크림으로 하면 좋을 거 같습니다.”
노해미는 대만에서 녹차 아이스크림과 버블티를 먹었던 경험을 말했다.
“개인적으로 커피보다 녹차를 더 좋아하기도 하고요. ‘녹차’ 하면 좀 올드한 느낌이 있는데 이걸 젊은 취향에 맞게 개량한 제품을 선보이고 싶습니다.”
녹차 아이스크림부터 녹차를 응용한 다양한 식품을 열거했다.
“이건 제가 만들어 본 제품인데, 맛이 어떨지 모르겠네요.”
그녀는 준비한 보온병을 꺼냈다.
심사위원석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조금씩 나눠주었다.
녹차라떼였다.
목장 우유에 녹차 분말을 넣어 만들었다.
맛이 생각보다 좋았다.
전체 발표가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졌다.
설민주는 치즈와 피자를 만드는 법을 요리연구가처럼 말했다. 발표 때는 미처 말하지 못했다며 준비한 내용을 쏟아 냈다.
천희석은 하몬을 어떻게 만들 거냐는 질문에 스페인에 가서 배우겠다고 답했다.
그의 답변에 모두 폭소를 터뜨렸다.
박태호는 콩과 관련한 제품을 열거만 할 뿐, 집중하고 싶은 상품에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무조건 콩 농사부터 지어야 한다는 말 밖에.
박태호를 공격한 건 한기탁이었다. 박태호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김상철은 블루베리의 비전에 대해서 우직하게 답변했다.
노해미는 녹차를 이용한 다양한 상품을 직접 개발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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