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3. (113/205)

하동에 돌아온 지 이틀이 지났을 때였다.

로케이션 매니저 이호선에게 전화가 왔다.

“그때 말씀하신 대로 장소 협조 가능하신가요?”

그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본인도 이렇게 빨리 전화를 할지 몰랐다는 말투였다.

“일일드라마 ‘눈부시게 빛나는 날’에 목장 장면이 생겨서요.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럼요. 언제 촬영을 하는 건가요?”

잠시 뜸을 들였다.

“작가가 갑자기 내용을 바꾸는 바람에 일정이 좀 꼬였습니다. 내일 바로 촬영해야 하는데 가능할까요?”

그가 애를 먹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하루 만에 목장을 찾아야 했다.

“물론 가능합니다.”

“감사합니다.”

‘눈부시게 빛나는 날’의 촬영지가 결정됐다.

돈을 들이지 않고도 광고를 할 수 있었다.

드라마 역사상 두고두고 회자될 명장면 중 하나가 우리 목장에서 촬영될 것이다.

명장면의 탄생

아침부터 회의가 있었다.

사무실 팀과 목장 팀에겐 공유할 내용이 달랐다.

우선 사무실 팀에게 내용을 전달했다.

“오늘 목장에서 드라마 촬영이 있습니다.”

모두 놀란 얼굴이다.

“드라마 촬영이 있다고요?”

한기탁의 말끝이 과도하게 올라갔다.

“무슨 드라마인데요?”

백민석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일일드라마 ‘눈부시게 빛나는 날’입니다.”

“금민서 나오는 그 드라마?”

백민석은 침을 꼴깍 삼켰다.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카페 ‘프렌즈’에서도 금민서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동료들도 설레는 눈빛이었다.

“일일드라마다 보니, 조만간 방송될 겁니다. 드라마를 마케팅에 이용할 방안을 회의하는 자리입니다.”

“혹시, 이게 아이스크림을 살릴 계획인가요?”

한기탁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금민서가 목장을 배경으로 우리 제품을 먹는 장면을 찍을 수 있겠네요?”

백민석이 아이디어가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아이스크림을 먹는 장면도 찍을 수 있고요.”

쇼핑몰운영팀의 천희석이 백민석의 말을 받아쳤다.

“배우의 얼굴을 함부로 썼다가는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동료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팀원들은 좋다 말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드라마 안에 우리 제품이 자연스럽게 녹아들면 아무 문제도 없을 것이다.

“그래도 사진을 찍어두는 것에 대해서는 찬성합니다.”

“초상권 문제는 어떡하고?”

한기탁이 물었다.

“장소 협찬을 했다는 인증사진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을 겁니다. 목장 홍보에도 도움이 될 거고요.”

다들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구석에서 조용히 손을 드는 사람이 있었다.

경영지원팀의 박태호였다.

“대학교 때 사진 동아리 활동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전문가 실력은 아니지만, 보정 작업도 어느 정도 할 수 있고요.”

“그럼 박태호 씨가 사진을 맡아주세요.”

시간이 없었다. 목장 팀과도 내용을 공유해야 했다.

회의를 마치고, 나가려는 순간 한기탁이 불렀다.

“바쁜 거 아는데, 이거 한 번만 봐주고 가.”

그가 문서를 건넸다. 새로 바뀐 아이스크림의 이름과 디자인이었다.

“네이밍 맡긴 카피라이터 확실히 감각이 있는 거 같아. 이름 하나 바꿨을 뿐인데 느낌이 확 달라진 것 같아. 이름에 맞게 디자인도 좀 손봤고.”

쉐도우 작가 성은정이 작업한 이름이었다.

아이스크림의 이름은 ‘이엘로’였다. 스페인어로 얼음을 뜻하는 단어였다.

“좋은데요. 이걸로 가죠.”

다지인 시안 중 하나를 선택했다.

“오케이, 그럼 이걸로 진행할게. 대박 날 아이스크림을 위해서.”

한기탁이 기분 좋은 얼굴로 말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