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다시 부산으로 향했다. 아이스크림 문제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고민 끝에서 현장에서 답을 찾기로 했다.
장사가 잘 안되는 카페를 먼저 찾았다.
강순복 사장님이 운영하는 매장이었다.
대출 문제로 폐업도 못 하고 있는 카페였다.
카페 입구에, 목장에서 직접 만든 수제 아이스크림을 판매한다는 광고판이 보였다.
처음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사장님 혼자 카페를 지키고 있었다.
손님은 보이지 않았다.
“저 왔습니다.”
“오셨어요?”
강순복은 난감한 얼굴이었다.
“아이스크림은 반응이 좀 있나요?”
“그게 생각보다 쉽지가 않네요.”
자신의 능력 부족을 탓하는 얼굴이었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저희 홍보가 부족한 탓입니다. 지금 최대한 방법을 찾고 있으니 너무 염려 마십시오.”
모든 매장에서 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유독 아이스크림만 나가지 않았다.
홍보도 홍보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
대체 제품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프리미엄 요거트는 줄을 설 지경이었다. 단일 목장에서 프리미엄 요거트를 생산하는 곳은 희소했고, 체험단 이벤트를 통해 입소문도 탔기 때문이다.
반면 아이스크림은 경쟁력이 떨어졌다. 웰빙 수제 아이스크림이라는 게 홍보가 되지 않아 한계가 있었다. 여름이라 그래도 좀 팔릴 거라 기대했던 건, 안일한 생각이었다.
밤새 고민한 지점이기도 했다.
“김덕명 씨에게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죄송하죠.”
난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프렌즈 사장님에게 이야기 들었습니다. 연유 아이스크림도 저희들을 위해 개발했다고. 정말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과장해서 말씀하신 거 같네요. 아이스크림은 목장 우유로 여러 가지 제품을 만들다 나온 겁니다.”
“이유가 어찌 됐던 고마운 마음은 잊지 못할 겁니다. 그리고 조만간 가게를 접을 생각입니다.”
그녀의 눈이 젖어 있었다. 한 가닥 희망을 걸었던 아이스크림은 해답이 되지 못했다.
결국, 카페를 접을 생각까지 한 것이다.
카페를 접게 되면 신용불량자가 되는 상황이었다.
“저에게 시간을 조금만 주시겠어요?”
“무슨...?”
“말씀드린 대로 아이스크림을 홍보할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일주일만 시간을 주십시오.”
“일주일이라면 기다릴 수 있습니다. 이번 달이 지나면 저도 방법이 없겠지만요.”
* * *
아이스크림을 공급받는 모든 매장을 돌았다.
상황이 비슷했다. 한숨 섞인 말과 어두운 표정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카페 ‘프렌즈’였다.
인산인해였다. 파리가 날리던 다른 매장과 극명하게 비교가 됐다.
“덕명아, 어서 와라.”
서남수 선생님이 웃으며 반겼다.
“지금 자리가 없네. 조금만 기다려봐. 자리 나면 바로 안내할 테니까.”
기다리는 시간 동안 카페를 찾은 손님을 바라보았다.
커피보다 목장에서 나온 요거트를 먹는 손님들이 더 많았다.
연유 아이스크림과 달리 목장 요거트는 타켓팅이 명확했다.
20, 30대 변비를 앓는 여성들, 거기에 더해 건강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주요한 고객이었다. 이벤트 체험단을 운영한 덕을 톡톡히 보고 있었다.
지금은 미용 효과가 좋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목장 요거트 마니아들이 생겨났다.
아이스크림과 상반된 모습이었다.
“오래 기다렸지. 이쪽에 앉아라.”
서남수 선생님이 날 안내했다. 그는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요거트가 그에게 생기를 불어넣은 것 같았다.
“처음으로 알았다.”
“뭘요? 선생님.”
서남수가 내 눈을 똑똑히 바라보며 말했다.
“장사도 이렇게 즐거울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넌 표정이 영 밝지 않구나. 무슨 일 있는 거냐?”
“아무 일도 없어요. 카페도 잘 되고 물건도 잘 팔리는데 무슨 문제가 있겠어요.”
“덕명아, 그거 아니?”
“뭘요?”
“마음이 얼굴에 다 드러난다는 사실.”
“얼굴에서 마음이라도 읽으셨어요?”
“그럼 다 읽었지. 네가 무슨 문제를 고민하는 지도.”
“선생님 앞에서는 숨길 수가 없네요.”
서남수는 고개를 돌려 카페를 둘러보았다.
“네 덕에 카페가 살아났어. 요거트를 받은 다른 카페들도 활력을 되찾았다는 소식도 들었고.”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냉동고를 바라보았다.
그 안에 있는 아이스크림을 보는 듯했다.
“아이스크림만 납품받은 카페들은 상황이 좋지 않다는 말도 들었다. 우리 카페도 아이스크림은 신통치 않은 편이야.”
“홍보가 부족해서 그래요. 조만간 아이스크림도 잘 나가게 될 거예요.”
“네 말대로 된다면 정말 좋겠구나.”
그때였다. 카페 입구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카페에 무슨 일이 있나 봐요?”
서남수 선생님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심각한 표정으로 카페를 살폈다.
변검을 하는 사람처럼 순식간에 표정이 변했다.
웃음이 귀까지 걸린 얼굴이었다.
“왜 그러세요?”
“우리 가게에 처음으로 연예인이 왔구나.”
“연예인이요?”
카페 안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보였다. 손님 중에 사인을 받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람들에 가려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사인 좀 받아놔야겠구나.”
서남수 선생님은 카운터로 향했다.
연예인이 올 정도로 입소문이 난 듯했다. 기분 좋은 일이었다.
잠시 후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카페에 방문한 연예인과 서남수 선생님이 내 앞으로 다가왔다.
“사진 좀 찍어 줄래?”
서남수 선생님이 쑥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에게 사진기를 받았다.
그제야 방문한 연예인의 얼굴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탤런트 금민서였다.
오랜 무명을 탈출하고, 주목받고 있는 여자 연기자.
부산 출신으로 현재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었다.
아버지가 좋아하는 일일드라마 ‘눈부시게 빛나는 날’의 여주인공이기도 했다.
드라마 광고를 했기에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드라마가 어떻게 흘러갈지도.’
생각은 그곳에서 멈췄다.
“덕명아 왜 그렇게 가만히 있어?”
서남수 선생님이 어깨를 잡고 물었다.
“아니요. 갑자기 뭔가 생각난 게 있어서요. 자, 찍겠습니다.”
금민서는 연예인답게 자연스러운 포즈를 취했다. 서남수 선생님은 어색하게 웃었다.
셔터 소리가 광고기획자의 DNA를 자극했다.
금민서가 돌아가고 서남수 선생님과 둘만이 남았다.
“혹시, 좋아하는 연예인이냐?”
서남수 선생님이 웃으며 말했다.
“왜요? 그것도 얼굴에 드러나나요?”
“좀 전과 달리 네 표정이 너무 밝아 보여서 말이다.”
“금민서 씨 때문에 그런 게 아니구요.”
“그럼 뭐가 그렇게 즐겁냐?”
“좋은 생각이 나서요.”
“좋은 생각?”
아주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목장 아이스크림을 살릴 산뜻한 아이디어였다.
로케이션 매니저와 쉐도우 작가
사진 찍기 좋은 시간은 오전 8~9시 사이다. 사선으로 비추는 빛이 피사체의 입체감을 더해주기 때문이다.
목장의 아름다운 풍광이 사진 속에 담기고 있었다.
“아침부터 뭐 하세요?”
설민주가 다가와 물었다.
“사진 찍고 있었어요.”
난 셔터에서 손을 떼고 말했다.
“갑자기 사진은 무슨 일로.”
궁금하다는 눈빛이었다.
“목장 홍보 좀 하려고요.”
“홍보요?”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이스크림 홍보 때문에 쓸 일이 있어서요.”
아이스크림이란 말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목장에서도 아이스크림 생산을 잠시 중단한 상태였다.
“그런데, 이건 뭐죠?”
설민주는 울타리에 달린 바람개비를 보며 물었다.
“바람개비요.”
“전엔 없던 건데, 대표님이 달아 놓은 건가요?”
“네, 제가 달았습니다.”
“예쁘네요.”
마음에 드는지 한참을 바라보았다.
“목장 사진이 아이스크림을 파는 데 도움이 되나요?”
“도움이 될 겁니다.”
“어떻게요?”
“그건 나중에 알려드리죠.”
설민주는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궁금해서 못 참겠다는 얼굴이었다. 입을 열려는 순간,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중에 꼭 알려주세요.”
돌아서기 전에 약속해 달라는 얼굴로 말했다.
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