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정길산과 약속이 있었다.
목장에 들러 김상철을 차에 태웠다.
귀농학교에서 포도를 재배했다며 과수 재배에 욕심을 드러낸 직원이다.
블루베리밭의 책임을 맡길 인물이었다.
“혹시, 포도가 아니라서 실망했나요?”
그의 얼굴을 슬쩍 바라보며 물었다.
“전혀 아닙니다. 솔직히 말하면 기대가 큽니다.”
“저도 상철 씨에게 기대가 큽니다.”
그를 목장에서 유심히 봤다. 소 같은 남자였다. 부지런하고 긍정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
블루베리와도 아주 잘 맞을 것 같았다.
“아마 당분간은 정길산 과수원에 있어야 할지도 몰라요.”
“정길산 과수원이요?”
“당장 묘목을 가져오기보다는 어르신 일을 거들며 배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저도 그게 좋을 거 같습니다. 저도 블루베리를 재배하는 건 처음이니까요.”
정길산의 과수원에 도착했다.
“어서 오게, 이 친구가 자네가 말한 사람인가?”
“네, 저도 틈나는 대로 도울 생각이고요.”
“목장 일이며 다른 일도 바쁠 텐데, 과수원 일까지 하다간 몸이 남아나지 않을 거야.”
정길산이 웃으며 말했다.
그는 블루베리 농장으로 우릴 안내했다.
하우스 안에 거대한 블루베리밭이 있었다.
김상철은 블루베리를 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마음에 드는 얼굴이었다.
“우리나라 과일의 주종인 사과, 포도는 알칼리성 토질에서도 잘 자라네. 하지만, 블루베리는 강산성 토질에서 자란다네. 한국에선 블루베리를 키우기 힘들다고 말하는 이유지. 그것 때문에 나도 애를 먹었고.”
실패의 경험이 떠올랐는지 정길산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일반 흙이 아닌 ‘피트모스’라는 흙을 사용하고서 겨우 결실을 볼 수 있었네. 이끼가 퇴적되어 만들어진 흙이라네. 캐나다에서 들여온 흙이지. 강산성에 배수와 보습이 잘 되어 블루베리를 키우기 적당하더구먼.”
그가 재배에 성공한 블루베리는 ‘드래퍼’라 불리는 종이었다.
씹는 식감과 맛이 좋고, 단단해서 저장하기 쉬운 품종이었다.
“가지치기를 마치면 목장으로 옮겨가도 좋을 걸세.”
정길산은 나와 김상철을 바라보며 말했다.
“당분간 상철 씨는 블루베리밭에서 어르신의 일을 도울 겁니다.”
“그렇게 해준다면 나야 좋지.”
김상철을 과수원에 남기고 목장으로 돌아왔다.
정길산의 말대로 할 일이 많았다.
요거트를 출시할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