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에선 연유 아이스크림을 만들고 있었다.
연유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법은 비교적 간단했다.
우선 가장 중요한 연유를 만들어야 했다.
일반적으로 연유를 만들 땐, 우유와 설탕을 넣고 조렸다.
설탕을 넣을 때는 비교적 센 불에서 조려도 상관없었다.
목장에서 만드는 연유는 꿀을 넣은 연유였다.
꿀은 설탕과 달리, 100도가 넘는 열에서 가열하면 좋은 성분이 사라진다.
연구원 이영호에게 적당한 온도를 찾아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꿀의 영양소가 파괴되지 않을 적당한 온도를 찾았다. 꿀을 80~90도 사이로 가열하면 영양소는 파괴되지 않았다.
꿀의 영양소를 간직한 연유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만든 연유에 우유를 넣고 얼리면 연유 아이스크림이 만들어졌다.
막걸리 요거트보다 제조 공정이 간단했다.
요거트를 납품할 수 없는 카페에도 연유 아이스크림을 공급할 수 있었다.
조만간 카페 사장들에게 공지를 할 예정이었다.
* * *
지리산 농부들은 목장과 농업 지원센터로 출근하는 팀으로 나뉘어 있었다.
목장 사람들의 일과는 새벽부터 시작됐다. 일이 끝나면 함께 아침을 먹었다.
설강인을 제외한 목장 사람들이 식탁에 앉았다.
“오늘 기분이 좋아 보여요.”
설민주가 웃으며 말했다.
“그런가요?”
연유 아이스크림 덕에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밥맛도 좋았다.
그 문자를 받기 전까지는.
이른 아침부터 문자가 왔다.
임화수였다.
포도 문제로 나를 찾았던 농부, 아침부터 미안하다는 말로 시작하는 장문의 문자였다.
그는 지리산 농부들의 벌을 분양받은 농부였다. 넓게 보면 함께 가는 동료이기도 했다.
“안 좋은 일이 생겼나요?”
내 표정이 변하자 설민주가 바로 반응했다.
다른 동료들도 내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포도 농장을 하는 분에게 연락이 와서요.”
“포도 농장을 하는 분이요?”
설민주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동료들에게 공유하기 마음먹었다.
임화수의 딱한 사정을 이야기했다. 애써 농사지은 포도를 헐값에 넘겨야 할 상황이었다.
동료들은 내 말을 조용히 들었다. 모두 무거운 표정이었다.
“밥 먹다 말고, 괜한 이야기를 해서 죄송합니다.”
그때였다.
“저에게 좋은 방법이 있어요.”
노해미가 웃는 얼굴로 외쳤다. 그녀는 목장 팀의 막내이자 분위기 메이커였다.
“말씀해 주세요.”
동료들의 시선이 노해미를 향했다.
“연유 아이스크림에 넣으면 좋을 거 같아요.”
나 역시, 그녀와 같은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무작정 포도를 아이스크림에 넣을 순 없었다.
“구체적으로 말해 줄 수 있을까요? 포도를 어떻게 아이스크림에 넣을지?”
노해미에게 물었다. 그녀의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포도 시럽으로 만들어서 넣으면 좋을 거 같아요.”
“포도 시럽이요?”
“네, 포도 시럽.”
좋은 아이디어였다. 즙이 아닌 시럽의 형태로 만든다면 아이스크림과 꽤나 잘 어울릴 것 같았다.
“그럼, 포도 연유 아이스크림이 되겠네요.”
설민주가 맛있겠다는 얼굴로 말했다.
“여사님, 포도 시럽을 넣은 아이스크림도 가능할까요?”
주명희 여사에게 물었다.
“연유 아이스크림에 포도 시럽을 넣어보진 않았지만, 충분히 가능할 거 같아요.”
“혹시, 오늘 만들어 볼 수 있을까요?”
“포도만 있다면요.”
주명희 여사가 웃으며 말했다.
“저도 여사님을 도와도 될까요?”
포도 시럽 아이디어를 제안한 노해미였다.
“원한다면 얼마든지요.”
노해미는 두 손을 모으고 기분 좋다는 표정을 지었다.
“대표님, 저도 건의 사항이 하나 있습니다.”
김상철이 말했다. 과묵하고 말이 없던 인물이었다.
인턴십이 끝나고 목장에서 묵묵하게 일만 하던 남자였다.
그가 어떤 말을 할지 궁금했다.
“포도를 직접 재배를 해보는 건 어떨까요? 제가 귀농 학교에 있을 때, 포도 농사를 했던 경험도 있습니다. 놀고 있는 땅을 볼 때마다 아쉽기도 했고요.”
김상철이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말했다. 그의 말대로 목장을 제외하고도 농사를 지을 땅이 많았다.
처음부터 계획한 일이기도 했다.
목장이 안정되면 작물을 심어 볼 생각이었다.
아직은 그럴 단계가 아니었지만, 작게 시도해 봐도 좋을 것 같았다.
“저도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남는 땅에 작물을 재배하는 것에 찬성합니다.”
“대표님도 같은 생각이셨군요.”
“다만, 작물을 결정하는 건 신중하게 판단했으면 좋겠어요.”
“당연히 그래야겠죠.”
김상철은 기분 좋은 얼굴로 답했다.
식사를 마치고 임화수에게 전화했다.
연결음이 울리자마자 전화를 받았다.
난 직접 가서 포도를 확인하겠다고 말했다. 주소를 확인하고 포도 농장으로 이동했다.
1차로 수확한 포도가 저온저장고 안에 쌓여 있었다.
“포도가 모두 몇 박스죠?”
“정확하게 100개입니다.”
한 상자에 3kg 하는 포도가 100여 개 있었다. 보관 상태가 양호했다.
“제가 10박스를 사겠습니다.”
“직접 사신다고요?”
임화수는 놀란 얼굴로 물었다.
“남은 물건을 더 살 수도 있습니다.”
“정말이요?”
놀란 눈이었지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정확하게 약속드리긴 힘듭니다. 포도가 더 필요할지는 아직은 알 수 없어서.”
“마음 써주신 것만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근심 걱정이 사라진 사람 같았다.
우선 시제품 만들 포도가 필요했다. 소량으로 구입해 아이스크림에 첨가해볼 생각이었다.
임화수는 트럭에 포도를 실었다. 곧장 목장으로 보내겠다고 했다.
난 주명희 여사에게 일을 맡기고 부산으로 향했다.
카페 사장들과 약속이 잡혀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