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하루였다.
이지혜를 집까지 데려다주고, 다시 하동으로 향했다.
출발 전에 동료들과 서남수 선생님에게도 결과를 보고했다.
십년감수했다는 소리가 수화기 밖까지 들렸다.
“지혜 씨 글이 올라가면 공지사항 띄워주세요.”
전화를 마치고 시동을 걸었다.
설민주가 옆자리에 앉았다. 보기 좋게 미소 짓고 있었다.
그녀와 함께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산을 벗어날 때였다.
“그런데 어떻게 한 거죠?”
설민주에게 물었다.
“뭘 말씀하시는 거죠?”
“이지혜 씨의 집에 어떻게 들어갔는지 궁금해서요.”
설민주가 내 얼굴을 바라보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지혜가 문도 열어주지 않아서, 많이 걱정했거든요.”
“대표님 그런 표정은 처음이네요.”
“어떤 표정이요?”
“궁금해하는 표정이요.”
“궁금합니다.”
웃으며 말했다.
“어쩔 수 없이, 말씀드려야겠네요. 기억나세요? 부산으로 오며 제가 했던 이야기. 저에게 피부염이 심한 친구가 있었다고 했던.”
설민주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말했다.
부산으로 오는 길에, 피부염이 심했던 친구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 친구가 바로 저예요.”
“그 사람이 민주 씨라고요?”
“네, 저도 지독한 피부염을 앓은 경험이 있어요.”
“그럼 민주 씨도 알레르기가 있었나요?”
“아니요, 알레르기 때문이 아니었어요.”
고개를 돌려 그녀를 잠시 바라보았다.
“실례가 안 된다면,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지독한 스트레스가 원인이었어요.”
“스트레스요?”
그녀는 잠시 바깥 풍광을 바라보았다.
망설이던 끝에 입을 열었다.
“설가네 목장이 완전히 문을 닫던 날이었을 거예요. 갑자기 두드러기가 나기 시작했어요. 증상이 아주 심했어요. 얼굴까지 완전 끔찍하게 변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때 방에 틀어박혀 혼자 지냈어요.”
“그럼 어떻게?”
지금 그녀의 얼굴은 깨끗했다. 피부염을 앓았던 사람이라고 보이지 않았다.
“병원에 끌려갔죠.”
“병원에서 나은 거군요.”
“아니요. 병원에서는 원인을 찾아내지 못했어요. 지혜 씨처럼 알레르기 증상은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럼 어떻게?”
어떻게 나았는지가 궁금했다.
“엄마 덕에 살아났어요.”
“그 말을 하니까 더 궁금해지네요.”
“그때부터 엄마와 함께 농사를 짓기 시작했거든요. 텃밭부터 시작했던 것 같아요.”
“농사일을 하고 피부병이 나은 건가요?”
그녀와 눈을 마주치며 바라보며 물었다.
농사를 짓고 병이 나았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밭에 나가 일을 할 때면 아무 생각도 없어지더라고요. 그저 눈앞에 해야 할 일만 보였어요. 그렇게 한 달, 두 달 시간이 지나니까 붉게 피어났던 발진도 사라졌고요.”
“그랬군요.”
“마음의 병이 땀으로 빠져나간 거 같아요.”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마음의 병은 땀으로 고친다. 인상적이네요.”
목장에 도착했을 때, 해가 지고 있었다. 푸른 초원이 붉게 물들었다.
목장 식구들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다녀왔습니다.”
설민주가 차에서 내리며 큰 소리로 말했다.
목장 식구들도 소식을 전해 들은 모양이다.
모두 표정이 밝았다.
“내일 체험단에게 요거트 보내는 건 이상 없는 건가?”
설강인이 나에게 물었다.
“예, 이상 없습니다. 내일도 모레도요.”
연유 아이스크림
이지혜가 쓴 사과 글이 올라왔다.
인터넷에서 각양각색의 반응이 이어졌다.
지리산 농부들의 신속한 처리에 감탄했다는 말부터, 요거트를 안심하고 먹을 수 있어서 다행이란 의견까지 다양했다.
우린 이지혜에게 비난이 쏟아지지 않게 조치를 취했다.
그녀에게 동의를 구하고, 지리산 농부들의 공식 페이지에 전후 사정을 상세하게 게시했다.
회의를 통해 결정한 일이었다. 지리산 농부들의 배려이기도 했다.
동정과 격려의 글들이 달렸다.
그중 재미있는 의견도 나왔다.
두유 요거트도 만들면 어떻겠냐는 의견이었다. 유제품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에게 좋을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내부에서도 인터넷에 올라온 반응을 하나도 빠지지 않고 모니터링하고 있었다.
“두유 요거트, 이거 괜찮을 거 같은데?”
한기탁이 말했다.
“그럼, 콩 농사도 지어야겠네요.”
웃으며 말했다. 사무실 사람들이 내 말에 폭소를 터트렸다.
가볍게 말했지만, 언젠가 시도할 작물이기도 했다.
“디자인 작업은 마무리했나요?”
한기탁에게 물었다.
“네, 문구를 삽입했습니다.”
이번 일을 겪고, 우리도 배운 게 있었다.
알레르기를 일으킬 수 있다는 내용을 제품에 표기했다. 꿀에 대한 경고도 했다. 생후 1년 미만의 영아에게 위험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제 체험단 이벤트도 거의 끝나 가네요.”
“내일이면 체험단 이벤트가 끝납니다.”
백민석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경영지원팀장님은 출장 준비 다 하셨나요?”
“네, 내일 모레 떠나기만 하면 됩니다.”
“설강인 씨 티켓도 예매하셨죠?”
“물론이죠.”
한기탁이 비행기 티켓을 보이며 말했다.
그와 설강인은 독일 출장이 예정돼 있었다. 로봇 착유기를 구입하기 위한 출장이었다.
로봇 착유기는 국제낙농네트워크를 통해 구입할 수 있었다.
국제낙농네트워크 본부가 독일에 있었다.
리틀 한스에게 부탁해 단체 사람을 소개받았다.
로봇 착유기는 억대가 넘는 고가의 장비였다. 경영지원팀장인 한기탁이 동행하는 까닭이었다.
착유기 사용법을 숙지하기 위해 목장 전문가인 설강인도 동행하기로 했다.
장비를 구입한다고 해도 한국에 도착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그 사이 목장의 젖소를 늘릴 계획이었다.
기계가 도착하면 젖을 짜는 일은 한결 수월해질 것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