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남수가 목장에 방문한 건, 체험단 이벤트가 시작된 지 5일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바쁘실 텐데, 이곳까지.”
그의 카페는 체험단 이벤트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었다.
요거트를 무료로 이용하는 요거트만 받아가지 않았다.
체험단들은 커피를 포함해 기타 음료들도 사 가고 있었다. 후광효과 때문인지 일반 손님도 많아졌다고 했다.
“바쁘긴 하지, 집사람까지 나올 정도니까. 요거트 덕에 죽어가던 카페가 살아나고 있어. 다 네 덕이다.”
“저도 선생님 덕을 보고 있는 걸요. 대신 물건을 나눠주고 계시잖아요. 서로에게 좋은 일이죠.”
“넌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구나.”
“예전에 어땠는데요?”
“학생 때도 협력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걸 좋아했지.”
서남수 선생님이 웃으며 말했다.
그도 변함이 없었다. 사소한 일도 기억하는 좋은 선생님이었다.
그가 잘 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오늘은 너에게 의논하고 싶은 일이 온 거야.”
“말씀하세요.”
“매일 손님들에게 문의가 들어오고 있어서...”
“문의요?”
“체험단에게 주는 요거트 말고, 매장에서 파는 물건이 없냐고.”
“아직은 체험단 기간이라.”
“나도 알고 있다. 그래서 말인데, 체험단이 끝나고 언제부터 요거트를 줄 수 있는지 궁금하구나.”
서남수의 눈이 빛났다. 처음 카페에서 만났을 때와 달라 보였다. 그때는 내가 전에 알던 서남수 선생님이었다면, 지금은 성장하는 카페의 사장님 같았다.
“체험단 이벤트가 끝나고 일주일 후에 납품을 할 생각이에요.”
“일주일이나 시간이 걸리나?”
그는 난감한 표정으로 물었다.
“체험단 이벤트를 마케팅에 이용하기 위해 준비할 것들이 있거든요. 요거트를 만들 시설을 더 확충하는 문제도 있고.”
“사람들이 기다려 줄지 모르겠네.”
“오히려 그 시간에 카페 매출은 더 오를 거예요.”
“더 오른다고?”
“기대감 때문에요.”
“정말, 그럴까? 장사가 이렇게 잘 되는 게 처음이기도 하고, 한편으로 불안하기도 해. 요거트가 없으면 손님이 다 떨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았다.
“제 말을 믿으세요. 꼭 그렇게 될 거니까요.”
“그리고, 한 가지 더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말씀하세요!”
“근처 카페 사장들이 요거트를 받을 수 있는지 물어서.”
서남수의 카페를 시작으로 매장을 늘려갈 계획이었다.
“저야 좋죠. 다른 카페에서도 우리 요거트를 받아 준다면.”
“다들 부탁하고 난리가 아니었어. 내가 무슨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은 생각마저 들었다. 제자 덕을 볼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선생님은 제자 덕 좀 보셔야 해요. 좋은 선생님이셨으니까요.”
“고맙다. 그렇게 말해줘서.”
그때였다. 목장에 낯선 남자가 찾아온 건.
“누구시죠?”
“임화수라고 합니다. 이곳에 오면 김덕명 씨를 만날 수 있다고 해서 왔습니다.”
서남수 선생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님이 온 것 같은데, 난 먼저 일어나 볼게.”
“네, 선생님.”
선생님을 배웅하고 임화수라는 농부와 마주했다.
검게 그을린 얼굴에 근심이 가득해 보였다.
“무슨 일로 찾아오셨나요?”
“지리산 농부들에게 벌통도 분양받았습니다.”
그제야 마을 회관에서 얼핏 봤던 기억이 났다.
“벌 때문에 오신 건가요?”
그는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벌은 아무 문제 없습니다. 제가 재배하는 농작물에 문제가 생겨서.”
“문제라니요?”
“제가 포도를 키우고 있는데...”
임화수는 포도 농사를 짓는 농부였다.
올해 포도 농사는 풍년이었다. 풍년이라도 다 좋은 건 아니었다.
물건은 많은 데 찾는 사람이 없으면 가격이 폭락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농가들이 헐값에 포도를 넘겼다고 했다.
그는 헐값에 포도를 넘기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결국, 창고에 물건만 쌓인 상황이었다.
“혹시, 방법이 있을까 해서 찾아왔습니다.”
그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걱정으로 속이 타들어 가는 게 느껴졌다.
“예전에 인터넷으로 흠집 난 과일을 팔았다고 들었습니다. 포도도 혹시 그렇게 인터넷으로 팔 수가 있는지...”
이미 시장 가격이 떨어진 상태였다.
인터넷에 판다고 해도 한계가 있었다.
“인터넷이라고 무조건 물건이 팔리는 건 아닙니다.”
“하긴, 그렇겠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찾아왔습니다.”
“그러셨군요.”
그때였다. 전화벨이 울렸다.
백민석이었다.
“걱정이 많으시겠습니다. 방법을 고민해 보고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전화번호 남겨 주십시오.”
전화를 받았다.
“덕명아!”
그답지 않게 흥분한 목소리였다.
“민석아, 잠깐만 기다려줘.”
임화수는 떨리는 손으로 전화번호를 적었다.
메모지를 건네며 간절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았다.
“제가 나중에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전화 기다리겠습니다.”
수화기를 들었다.
“무슨 일이야?”
“최대한 빨리 사무실로 와줘. 문제가 생겼어.”
“문제?”
“전화로 말하기는 좀 그렇고, 얼굴 보고 얘기하는 게 좋겠어.”
백민석은 어지간해서 흥분하는 일이 없었다. 정말 문제가 생겼다는 뜻이었다.
차를 몰고 사무실로 달려갔다.
사무실이 어수선했다.
한기탁의 얼굴도 창백해 보였다.
다들 놀란 표정이었다.
“무슨 일이죠?”
“이것 좀 봐.”
백민석이 나에게 손짓했다. 그는 손가락으로 모니터를 가리켰다.
체험단들이 쓴 블로그가 화면에 띄워져 있었다.
체험단들은 요거트를 먹은 후기를 작성했다.
매일 요거트를 먹고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쓰는 것이다. 일기처럼 편하게 쓸 것을 권했다.
변비가 개선이 되고 있는지 쓰는 것은 필수였다.
거짓 없이 써 달라 요청했다.
효과를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민석이 스크롤을 내렸다.
긍정적인 내용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 사람이 쓴 글을 봐.”
사무실이 뒤집어진 이유를 알 거 같았다.
[목장 요거트를 먹고 몸에 이상이 생김]
난 문제의 사람이 쓴 글을 한자도 놓치지 않고 읽었다.
내용이 심각했다.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이상 반응의 원인
이상 반응을 호소한 사람은 이지혜였다.
그녀가 작성한 체험단 신청서와 블로그에 올린 글을 꼼꼼하게 살폈다.
사회체육을 전공하는 22살의 여자 대학생. 대전 사람으로, 부산에서 홀로 지내고 있었다.
부산에 온 뒤로 변비를 앓고 있다며 체험단이 되기를 희망했다.
가희처럼 주거지를 옮기고,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인 것 같았다.
그녀가 호소하는 이상 증상은 두드러기였다. 지금까지 한 번도 피부염에 걸린 적이 없는데, 요거트를 먹고 이상 증상이 생긴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최근 나타난 증상을 사진으로 찍어 올리기도 했다.
증상이 심각해 보였다.
“어떻게 하지?”
한기탁이 불안한 눈빛으로 물었다.
“잠시만요.”
난 신청서에 있는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응답이 없었다.
“우리도 전화를 해봤는데, 도통 받지를 않네.”
백민석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빠른 판단이 요구되는 상황이었다.
“제가 그 사람을 직접 만나볼게요.”
그녀의 체험단 신청서를 챙기며 말했다.
“상황을 파악한 뒤에 후속 조치에 대해서 말씀드릴게요.”
“우선 공지사항부터 띄워 놓겠습니다.”
백민석이 숨을 고르며 말했다.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파악될 때까지 신중하게 행동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원인을 정확하게 알아야 했다. 사무실을 나와 설민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민주 씨, 저와 함께 부산 좀 가야겠어요. 곧 목장에 도착하니, 나갈 준비해 주세요.”
“네.”
그녀의 목소리도 가라앉아 있었다. 목장 식구들에게도 소식이 전해진 것 같았다.
체험단의 문제가 된 사람은 여자였다. 게다가 혼자 살고 있었다.
나 혼자 그녀를 찾았다가 낭패를 볼 수도 없었다. 지원군이 필요했다.
외출복으로 갈아입은 설민주가 대기하고 있었다.
“타세요.”
그녀는 빠르게 움직였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곧장 부산으로 가는 거죠?”
“네, 맞습니다.”
“저도 그 글 봤어요.”
“보셨군요. 그분이 전화를 받지 않아서요.”
“아마 집에 있을 거예요.”
설민주는 담담한 말투로 말했다. 난 말 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단언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저에게도 피부염을 심하게 앓던 친구가 있었어요. 병원에 가는 것도 무서워했어요. 집에서 꼼짝도 안 하고 있었죠.”
그녀의 말대로 피부병이 난 상황에선 외출을 하기 힘들 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민주 씨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요거트 때문일 수도 있어요. 우유나 꿀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어떤 상황이든 정확한 이유를 알아야 했다.
부산 시내에 진입했다. 대학가 인근, 이지혜가 사는 집 앞에 도착했다.
대학생들이 밀집한 원룸촌이었다. 설민주와 함께 이지혜가 사는 곳으로 올라갔다.
벨을 누르고, 한참을 지나서야 응답이 있었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누구시죠?”
“안녕하세요. 김덕명이라고 합니다. 목장 요거트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지금은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아요.”
떨리는 목소리였다. 예상했던 반응이지만, 난감한 상황이었다.
“제가 해 볼게요.”
설민주가 조용히 말했다.
“대표님은 잠시 자리를 피해주시겠어요?”
지금 상황에선 다른 방법이 없었다.
건물 밖으로 나왔다.
서남수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 저예요.”
“그래, 덕명아. 나도 소식 들었다. 체험단 중에 문제가 생긴 사람이 있다고.”
카페에 오는 손님에게 들었다고 했다. 좋은 소식보다 나쁜 소식은 빠르게 전파되는 경향이 있다.
“지금 그 사람 집 앞에 있어요.”
“내가 뭐 도와줄 건 없냐?”
“실은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뭐든 말해 봐라.”
“선생님, 잘 아는 피부과 있으세요?”
설민주가 이지혜를 설득한다면, 다음 목적지는 피부과였다.
“피부과라면, 우리 딸이 잘 다니던 곳이 하나 있었는데. 아토피 때문에 고생을 했거든. 잠깐만, 기다려 봐. 아마 우리 집사람이 알고 있을 거야.”
“네, 그럼 부탁드릴게요.”
전화를 끊고 응답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때 설민주에게 문자가 왔다.
[집에 들어왔어요. 이지혜 씨와 이야기 중입니다]
[전 피부과를 수소문 중입니다]
문자를 보내자, 곧장 전화가 왔다.
“정 피부과 의원이라고, 연산동에 있는 병원이야. 의사 선생님이 실력이 좋다고 평이 자자한 곳이야. 우리 딸도 덕분에 많이 나아졌고.”
병원 주소를 받아 적었다.
“그나저나 별일 없어야 할 텐데, 걱정이네.”
“걱정 마세요. 선생님.”
“나도 나지만, 네가 더 걱정이지.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에서 문제가 생긴 거니까.”
그때였다. 설민주가 한 여자와 함께 건물에서 나오고 있었다.
“선생님, 제가 나중에 전화 드릴게요.”
“그래, 해결 잘하고.”
이지혜는 모자에 스카프로 얼굴을 가렸다. 설민주가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차 문을 열고, 그들을 태웠다.
“아까 인사드린 김덕명이라고 합니다.”
이지혜는 가볍게 목례를 했다.
설민주와 눈을 마주쳤다. 그녀는 괜찮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병원으로 이동하겠습니다.”
서남수 선생님이 알려준 ‘정 피부과 의원’으로 이동했다.
운전을 하며 두 사람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들은 작은 목소리로 대화하고 있었다.
이지혜가 하는 말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걱정하지 말라는 설민주의 말은 똑똑히 들렸다.
모두 함께 피부과로 들어갔다. 다행히 병원에 사람이 많지 않았다.
접수를 마치고 잠시 대기할 때였다.
“저랑 지혜 씨가 진료실에 함께 들어갈게요. 대표님은 밖에서 기다려 주세요.”
진료를 받을 때, 의사에게 환부를 보여야 했다.
내가 함께 들어가면 불편할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간호사가 우릴 불렀다.
“이지혜 씨, 들어오세요.”
설민주와 이지혜가 함께 진료실로 들어갔다.
그들이 진료실로 들어간 사이 밖으로 나왔다.
동료들에게 소식을 공유해야 했다.
“선배, 저예요.”
“지금 어디야?”
한기탁에게 전화를 했다.
“이상 증상이 있다는 분과 함께 병원에 왔어요.”
“지금 문의가 빗발쳐서, 우리도 간신히 대응하고 있었어. 결과 나오면 소식 바로 전해주고.”
“네, 결과가 나오는 대로 전화 드릴게요.”
“그럼, 수고.”
사무실에서도 이 문제로 정신이 없었다.
전화를 마치고 병원으로 들어갔다. 대기실에 설민주와 이지혜가 앉아 있었다.
설민주가 나를 향해 다가왔다.
“진료가 빨리 끝났네요.”
“의사 선생님이 알레르기 피부염일 수 있다고 했어요. 지금은 피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고요.”
“역시, 알레르기였군요.”
“어떤 물질이 알레르기를 유발했는지는 아직 몰라요. 요거트가 아닐 수도 있어요.”
“뭐라고요?”
“집안에 고양이가 있었거든요.”
“고양이요?”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이지혜의 피부염도 고양이 알레르기일 수 있었다.
“의사 선생님이 내일 오라고 하는 걸, 제가 졸랐어요.”
설민주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동에서 부산으로 온 이유를 설명하고 부탁을 드렸다고 했다.
우린 검사 결과가 나오길 기다렸다.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설민주와 이지혜는 조용하게 대화를 나눴다.
이지혜가 설민주를 따르는 것처럼 보였다.
“이지혜 씨, 들어오세요.”
두 여자가 진료실로 다시 들어갔다.
난 초조한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문이 열리고 두 여자가 밖으로 나왔다.
설민주는 이지혜의 어깨를 토닥이고 있었다.
진료실에서 나온 이지혜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죄송합니다. 제가 성급하게 판단을 해서.”
이지혜가 고개를 숙여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설민주는 괜찮다며 그녀를 위로했다.
설민주가 예상한 대로 고양이 알레르기였다.
고양이는 청결을 유지하기 위해 혀로 온몸을 핥는 습관이 있다.
그때 특정 항원이 털에 붙는다. 그것이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이유였던 것이다.
이지혜는 한 달 전부터 두부라는 이름의 페르시안 고양이를 기르고 있었다.
요거트를 먹기 전부터 두부와 함께 살고 있었기에, 고양이 때문에 알레르기가 생겼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해봤다고 한다.
“선생님이 치료가 가능하다고 했어요.”
설민주가 웃으며 말했다.
해당 항원을 일정한 주기로 투약하는 방법이었다. 내성이 생기면 면역이 생긴다고 말했다.
“집에 가자마자 사과의 글부터 올리겠습니다.”
이지혜는 나를 보며 말했다.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미안한 얼굴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