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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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두산 공원을 찾았다. 부산의 구심이었지만,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기도 했다.

번화가 중심에 크고 작은 카페들이 많았다.

그야말로 카페 열풍이었다. 프랜차이즈 카페부터 개인 카페까지 수많은 카페들이 등장할 시기였다.

난 그중 한곳으로 들어갔다.

프랜차이즈가 아닌 개인 카페였다. 규모가 제법 컸다.

“김덕명, 진짜 오랜만이다. 반가워.”

카페에 들어서자 한 남자가 반갑게 맞았다.

“선생님은 그대로 시네요.”

“그대로긴, 많이 늙었지.”

서남수, 그는 나의 고등학교 은사였다. 지금은 광복동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었다.

퇴직금을 전부 털어 문을 연 가게였다.

“지금은 목장을 하고 있다고? 김덕명이 농부가 될 줄 상상도 못 했어.”

“선생님도 카페 주인이 될지 생각도 못 했어요.”

“하긴, 그건 그렇지.”

서남수가 멋쩍은 얼굴로 웃었다.

“카페는 잘 되세요?”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손님이라곤, 나 혼자뿐이었다. 커다란 가게를 홀로 쓰는 기분이었다.

알바로 보이는 학생은 무료한 표정으로 책을 읽고 있었다.

“장사에 재주가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지. 뭐 마실래?”

“커피요.”

“잠깐 기다려. 내가 직접 내려줄게.”

서남수 선생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그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는 내가 기억하는 가장 멋진 선생님이었다.

자신이 맡은 학생들에게 애정이 많았다. 성적만으로 학생들을 대하지 않았다.

다른 선생님들과 달리 칭찬을 많이 하는 분이었다.

그저 말을 잘한다는 것만으로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공부는 못해도 말은 잘 하네, 가 아니었다.

말을 정말 잘해서 사람을 설득하는 힘이 있다고 했다.

사소한 일에도 칭찬을 아끼지 않던 그는, 해임을 당했다. 사학비리를 고발한 게 이유였다.

해직을 당해야 할 사람은 학교에 남고, 정당하게 비리를 고발한 선생님은 해임됐다.

그 뒤로, 고향인 부산에서 카페를 차렸다. 그의 말처럼 장사에 소질이 없었다. 카페는 몇 년 못가 문을 닫았다.

그 뒤로는 어떤 소식도 듣지 못했다.

모두 과거의 일이다.

“커피 나왔습니다.”

서남수가 밝은 표정으로 커피를 내왔다.

“참, 우리 매장에서 요거트를 팔고 싶다고 했지?”

서남수가 커피를 마시며 물었다.

“미안해서 어쩌나...”

그는 난감한 표정이었다.

“뭐가요?”

“내가 장사가 영 시원찮아서. 아무리 좋은 요거트를 가지고 와도 팔릴지 모르겠어.”

“무료 이벤트예요. 걱정 마세요.”

“나도 처음엔 무료 이벤트를 했거든. 무료로 준다고 해도 손님이 없었지.”

그는 허탈한 눈빛으로 말했다.

“제자의 부탁을 거절하실 건가요?”

“거절이라니, 나 때문에 제자가 피해 볼까봐 그렇지.”

“그럼 매장에 물건을 대겠습니다.”

가게가 커서 냉장 시설도 상당했다. 요거트를 보관할 공간은 충분했다.

장사에 재주는 없지만, 일을 크게 벌이는 재주가 있었다.

“잘 안 돼도 날 원망하지 말고.”

서남수 선생님은 웃으며 말했다.

* * *

체험단 모집이 끝났다. 그리고, 약속한 날이 다가왔다. 지리산 농부들은 새벽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다.

아침 시간 전에 요거트 배송을 완료해야 했다.

내가 요거트를 날랐다. 선생님이 직접 요거트를 받기로 했기 때문이다.

요거트를 냉장고 안에 전부 넣었다.

체험단에게 줄 소형 꿀병도 있었다.

배포하는 방법에 대해서 선생님에게 설명까지 마쳤다.

“잘 부탁드립니다.”

선생님께 꾸벅 인사를 했다.

카페 ‘프렌즈’는 요거트를 납품받는 최초의 매장이기도 했다.

인사를 마치고 하동으로 돌아갔다.

집에 도착해서 늦은 아침을 먹을 때였다.

서남수 선생님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덕명아.”

흥분한 목소리였다.

“무슨 문제 있으세요?”

“다 나갔다. 요거트.”

“벌써요?”

“카페를 열고 처음 있는 일이었어. 사람들이 매장 앞에 줄을 선 건.”

수화기 너머로 선생님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뜻밖의 반응

무료 체험단을 운영한 지 5일이 지났다. 카페 ‘프렌즈’는 요거트를 받으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카페의 매출도 오르고 있었다.

목장에서도 요거트 생산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점심을 먹고 잠시 숨을 돌릴 때였다.

푸른 초원에서 젖소들이 풀을 뜯고 있었다.

설강인이 나에게 다가왔다.

“옆에 앉아도 되겠나?”

“네, 그러시죠.”

그가 의자에 앉았다.

“난 어릴 때부터 목장을 동경했네. 처음 목장을 시작할 때 젖소 한 마리뿐이었지.”

그는 너른 들판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도 좋았던 시절이 있었네. 그땐 젖소가 늘어가는 재미로 살았지.”

우유만으로 목장 수입이 충분할 때가 있었다. 수요와 공급이 맞았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단일 목장으로 승부를 봐야 했다.

“그런데, 목장에 젖소 수가 너무 적지 않나? 젖소보다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네.”

그가 웃으며 말했다.

어떤 의도로 물었는지 알 수 있었다. 십만 평의 대지에 비해 젖소가 너무 적었다.

“다섯 마리로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은 대단하죠.”

젖소 한 마리가 하루에 생산하는 우유만 해도 40리터였다.

목장에는 열 마리의 젖소가 있었다. 그중 우유를 얻을 수 있는 젖소는 다섯 마리였다.

다섯 마리 젖소는 하루에 200리터의 우유를 생산하고 있었다.

무료 체험단 인원은 200명이었다. 모두에게 하루 200ml의 요거트를 2개씩 나눠줬다.

체험단에게 줄 요거트를 만들고도 하루 생산량의 반 정도가 남았다. 남는 우유도 요거트로 만들었다. 지리산 식구들의 몫이었다.

양초 공장 식구들도 요거트를 맛볼 수 있는 양이었다.

“체험단 이벤트가 끝나면 젖소를 늘릴 생각입니다.”

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젖소뿐만 아니라 시설도 확충할 생각이었다. 젖소와 함께 로봇 착유기도 들일 생각이었다.

로봇 착유기로 젖을 짜면 목장의 인력을 늘리지 않아도 됐다.

로봇 착유기는 강압적으로 우유를 짜기 위해 개발된 기계가 아니었다.

소들이 원할 때 젖을 짜는 것이다. 소들이 자발적으로 기계로 들어가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고 한다. 몇 번의 학습을 마치면 소들이 알아서 착유기 안으로 들어간다고 하니, 소도 좋고 사람 손도 덜고 여러 가지로 편리한 기구였다. 비싸서 흠이지만.

“그래도 미리미리 대비하면 좋을 거라고 생각하네. 민주 말을 들으니 체험단 반응도 좋다고 하던데.”

“네, 체험단 이벤트는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젖소는 나중에 들이더라도, 막걸리를 생산하는 시설은 미리 확보해 놓으면 어떨까 하네.”

“제가 경영지원팀에 말해 두겠습니다. 한기탁 팀장에게 말하면 필요한 장비를 구해 줄 겁니다.”

“그리 함세.”

설강인은 목수 실력을 발휘해 누룩방도 직접 만들었다.

그는 영민하고 손재주가 좋은 사람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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