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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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명의 인력이 목장 일을 했다.

아직 젖소가 많지 않아, 비교적 여유가 있었다. 축사 청소며 젖을 짜는 일은 2명이서 해도 충분했다.

나와 설민주가 소를 돌보며 젖을 짜는 일을 맡았다. 나머지 2명은 발효 사료를 만드는 일에 주력했다.

사계절 내내 푸른 목초지일 수 없었다. 젖소들이 먹을 사료는 항상 대비해 놓아야 했다.

축사와 이어진 방목 초지를 제외하고, 나머진 땅엔 사료로 먹일 목초를 재배하고 있었다.

우리가 목장 일을 할 동안 설민주의 어머니는 요거트를 만들었다.

주명희 여사는 목장에서 며칠 더 묶기로 했다.

오전 일을 마치고 모두 함께 요거트를 맛봤다.

“말씀대로 꿀을 넣어 봤어요.”

주명희 여사가 요거트를 건네며 말했다. 하얀 요거트 안에 황금빛 꿀이 섞여 있었다.

꿀의 단맛이 더해져 요거트가 훨씬 맛있어졌다.

“저도 맛을 보고 놀랐어요. 이곳에서 만든 꿀은 맛과 향이 아주 좋아요. 요거트와 아주 잘 어울리는 맛이랄까.”

주명희 여사가 웃으며 말했다.

“요거트를 만드는 솜씨가 좋아서겠죠.”

난 단숨에 유리병에 담긴 요거트를 비우며 말했다.

설민주와 동료들도 요거트를 맛깔나게 먹었다.

“요거트의 비밀은 아무래도 막걸리겠죠?”

그녀를 보고 물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요거트를 만드는 법은 비교적 간단했다.

우유와 유산균을 넣고 적당 시간 발효를 하면 요거트가 된다. 물론, 발효 시간과 온도는 노하우가 필요했다.

좋은 요거트를 만들기 위해선 당연하게도 신선한 우유를 써야 한다. 그리고 발효를 위한 유산균이 필요하다.

막걸리 요거트는 말 그대로 막걸리 유산균으로 요거트를 발효한다.

주명희 여사는 이곳으로 오면서 막걸리를 한 박스 가져왔다.

지리산 농부의 목장에서 나온 우유에 그녀의 막걸리를 넣어 요거트를 만든 것이다.

“그럼, 여사님이 막걸리도 직접 담그시는 거죠?”

“막걸리는 저희 남편이 만들었습니다.”

막걸리도 그녀가 직접 담갔을 거라 생각했다.

“막걸리는 설강인 선생님께서 직접 담근 거군요.”

“저희 남편을 알고 계시나요?”

“기사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여사님도 함께.”

“그러셨군요.”

그녀의 표정이 잠시 어두워졌다. 목장을 하던 과거를 떠올리는 것 같았다.

“목장을 운영하며 요거트를 취미로 만든 게, 벌써 10년이 넘었네요.”

“혹시, 어제 제가 말씀드린 건 생각해 보셨나요?”

주명희 여사는 옆에 있던 설민주에게 시선을 돌렸다.

난 그녀에게 이곳에서 함께 일할 것을 제안했다.

설민주에게 집안 사정을 대략 들은 상태였다. 목장이 망한 뒤에 집안 사정이 안 좋다고 했다.

난 주거 등 최대한 편의를 봐주겠다고 말했다. 설민주의 가족 전부였다.

목장의 규모가 커지면 인력이 더 필요했다. 노련한 숙련자는 지리산 목장에 필요한 인원이었다.

특히, 설강인은 최고의 전문가였다.

“남편과는 더 상의를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녀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알겠습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시겠죠. 천천히 생각해 보십시오.”

그녀와 말을 마쳤을 때, 설민주가 나를 따로 불렀다.

“무슨 일이죠?”

“어제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어요.”

설민주가 초초한 눈빛으로 말했다.

“아버지는 거절하셨어요.”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다시는 목장 일을 하고 싶지 않다고. 그런데...”

“그런데요?”

할 말이 더 있는 듯했다.

“아버지만큼 목장 일을 사랑하는 사람도 없어요. 솔직히, 이유는 하나라고 생각해요.”

“뭐죠?”

“자존심 때문일 거예요. 경력도 없는 어린 사람 밑에서 일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 거예요. 아버지 성격이 좀 남다른 면도 있어서...”

그녀가 잠시 말을 멈추고 날 바라보았다.

“이런 말씀까지 드리는 건, 서운하게 생각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에요. 인턴에서 정식으로 채용된 것도 감사한데, 가족까지 배려해 주셔서.”

“그렇게 생각했다면 감사합니다. 하지만, 단순한 배려는 아니니 오해는 말아주세요.”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배려가 아니면 뭐죠?”

“전 민주 씨의 부모님도 목장 식구가 되길 바라고 있어요. 부모님이 만든 요거트가 훌륭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비록, 설가네 목장에선 빛을 보지 못했지만, 언젠가는 인정받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요?”

“진심입니다.”

그녀의 눈망울이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 * *

그날 오후, 난 농업 지원센터 사무실을 찾았다.

한기탁과 백민석은 새로운 팀원들과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목장주께서 무슨 일로 오셨나요?”

한기탁이 웃으며 말했다.

“연구원님 만나러 왔습니다.”

“우리는 안중에도 없는 건가?”

그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사람들 반응은 어때요?”

우유병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지리산 농부들 목장에서 짠 우유였다.

“지금까지 내가 먹어본 우유 중 최고.”

옆자리의 민석도 동의한다는 표정을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시제품 요거트를 만드는 우유를 제외하고 사람들과 우유를 나눴다.

젖소 한 마리가 생산하는 우유는 많게는 40kg이었다.

다섯 마리의 젖소가 하루 생산하는 우유만도 200kg이 넘는 것이다.

양초 공장의 사람들이 우선순위였다. 그럼에도 남은 우유는 하동부인회관의 할머니들에게 나눠주었다.

시판 전에 우유를 나눌 생각이었다. 우유의 특성상 오랜 시간 보관도 불가능했다.

사무실 식구들도 매일 같이 먹고 있었다.

매일 신선한 우유를 먹어서 그런지 혈색도 좋아 보였다.

인사를 마치고 연구실로 이동했다.

“이영호 씨.”

그는 내가 들어온 것도 모르고 있었다. 몇 번을 부르자 그제야 고개를 돌렸다.

그는 티벳 버섯을 배양 중이었다. 오염을 막기 위해 안전복을 입고 있었다.

대화를 하기 위해선 자리를 옮겨야 했다.

“대표님, 여기까진 어쩐 일로.”

“진행 상황이 궁금해서요.”

“티벳 버섯 배양엔 성공했습니다.”

“아주 잘 됐네요.”

이영호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티벳 버섯 배양엔 성공했지만, 유산균을 분말로 만드는 건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티벳 버섯을 배양한 것만으로도 큰 성과였다. 그의 말처럼 분말로 제조하는 일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다.

“시간을 충분히 갖고 만드셔도 됩니다.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선 당연히 시간을 쓰셔야죠.”

“그래도 최대한 빨리 만들어보겠습니다. 늦어져서 시제품을 만드는 데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괜찮아요. 시제품을 만드는 건 문제없습니다.”

“시제품을 만들려면 유산균이 필요하지 않나요?”

“시제품의 유산균은 티벳 버섯이 아니라 막걸리를 사용할 겁니다.”

“막걸리요?”

그는 바로 알아들었다. 막걸리의 유산균도 우유를 발효하는데 충분하다고 여긴 것이다.

“그럼 티벳 버섯은?”

“요거트의 종류는 다양하죠. 막걸리로 발효한 요거트를 시작으로 다양한 요거트를 만들 계획입니다. 막걸리를 선택한 이유는 당장 요거트를 만들기 쉽기 때문이요. 그 사이에 티벳 버섯 유산균이 완성되길 기대합니다.”

“그런 뜻이었군요.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티벳 버섯을 발효한 요거트는 반드시 분말로 만들어야 했다. 부작용 때문이었다.

정제하지 않은 상태에서 요거트를 만들면 문제가 생겼다.

설사와 두드러기 등의 부작용이었다.

가정에서 티벳 버섯으로 요거트를 만들어 먹다 이상이 생긴 사례도 있었다.

분말 형태의 티벳 버섯은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았다. 제품이 만들어지면 낱개 포장을 할 계획이었다.

티벳 버섯 분말은 유산균 스타터로 판매가 가능했다.

“그때 말씀하신 프로폴리스는 추출에 성공했습니다.”

“반가운 소식이네요.”

요거트에 넣을 프로폴리스까지 확보됐다.

시제품 개발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마지막 열쇠를 맞출 순간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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