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으로 돌아왔을 때, 설민주가 날 불렀다.
“저희 어머니 오셨어요.”
다른 직원들은 모두 숙소로 돌아간 시각이었다.
설민주와 그녀의 어머니 주명희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까지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설민주의 어머니에게 인사를 드렸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녀는 고개를 숙여 정중하게 인사했다. 예의범절이 몸에 밴 사람 같았다.
주명희도 한국 목장 연구회에서 활동한 회원이었다.
“민주에게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요거트를 만들 생각이라고요.”
“맞습니다. 목장 요거트를 만들 생각입니다.”
“제가 만드는 요거트가 도움이 될지 모르겠네요.”
어머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설민주가 입을 열었다.
“그때도 말씀드렸지만, 우리집 요거트가 좀 독특해요. 각오하셔야 할 거예요.”
“각오까지 해야 하는 맛인가요? 그 말을 들으니까 더 기대가 되네요.”
웃으며 말했다.
“정말 독특하다고요.”
설민주는 난처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 목장에서 난 우유로 요거트를 만들었습니다.”
주명희가 유리통을 꺼냈다. 그 안에 요거트가 있었다. 마치 하얀 연두부같았다.
“맛이 어떨지 모르겠네요. 저희 집에서만 먹던 거라서.”
말로만 듣던 요거트였다.
그녀가 만든 요거트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설민주의 말처럼 독특한 맛으로 유명했다
독특한 맛의 원인은 유산균에 있었다.
주명희는 요거트를 만들 때, 막걸리를 사용했다. 지금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훗날 큰 반향을 일으킬 물건이었다.
특히, 변비 환자에게 인기가 대단했다.
막걸리 요거트를 먹고 변비가 해결됐다는 소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변비와 관련한 게시판에 막걸리 요거트에 대한 글이 넘쳤다.
광고기획자 시절, 관심 있게 본 기억이 있었다.
“맛이 좋네요. 시큼한 맛도 있고. 꿀을 넣으면 맛이 더 좋을 거 같아요.”
“정말 괜찮으세요?”
설민주는 신기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네, 정말 맛이 좋아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실은 요거트를 만들 때 막걸리를 사용했습니다. 맛이 독특한 이유기도 하죠.”
주명희 여사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정말, 맛있습니다. 같이 드시죠.”
“네.”
설민주도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수저를 들었다.
막걸리 요거트는 발효향이 느껴지면서도 상큼했다.
요거트를 만드는 과정에서 알코올은 사라졌다.
꿀을 넣어 감칠맛까지 더하면 완벽할 것 같았다.
순간, 요거트의 효과를 확인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릿속에 한 사람의 얼굴 떠올랐다.
변비로 고생하는 여자였다.
양초 학교의 선생이자 오래된 친구.
막걸리 요거트를 먹은 정가희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막걸리 요거트
정가희에게 전화를 했다.
“이 시간에 전화를 하다니 무슨 일이야?”
수화기 너머로 그녀의 얼굴이 그려졌다. 미간을 모으고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묻고 있을 것 같았다.
“얼굴도 못 보고 내려가서.”
“미안... 내가 몸이 너무 안 좋아서.”
변비의 원인은 환경의 변화와 스트레스 때문인 것 같았다. 그녀는 하동에서 서울로 거주지를 옮겼다.
자발적인 선택이었다.
정가희는 아이들과 함께 양초를 만드는 일에 큰 관심을 보였다.
그녀는 양초 학교의 교장이나 다름없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선생들도 신경을 써야 했다.
한 번도 말은 안 했지만,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을 것이다.
“변비란 이야기 들었어.”
“누가 그런 말을 해!”
그녀는 버럭 소리쳤다.
“왜, 아니야?”
“아닌 건 아니지만...”
말과 함께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힘들긴 힘든 모양이다.
“하동에서 그런 증상 없었지? 서울로 올라간 뒤에 생긴 증상이고?”
“맞아, 하동에선 속이 편안했어. 이곳에 온 뒤로 갑자기 변비가 생겼어. 수험생 때도 없던 변비가 다 생기고 말이다.”
푸념 섞인 말투로 말했다.
“내가 네 병을 낫게 해줄게.”
“뭐라고? 네가 날 낫게 해주겠다고?”
귀가 따가웠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약을 먹어도 해결되지 않는 변비를 네가 무슨 수로 낫게 해주겠다는 거야?”
믿기지 않는다는 소리였다.
“변비에 특효인 식품을 보낼 거야. 먹어보고 효과를 보면 바로 알려줘.”
“뭘 보낼 건데? 궁금해 미치겠네.”
“요거트야.”
“요거트라고? 어디선 난 건데?”
양초 학교에 갔을 때, 목장 이야기를 공유하려 했다.
그녀가 화장실로 사라지는 바람에 이야기할 틈이 없었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만나서 하자. 그것보다 요거트를 먹고 효과가 나타나면 알려줘.”
“기왕 보낼 거면 많이 보내주라. 쌓아놓고 먹게.”
“변질의 위험이 있어서 많이 보낼 순 없어. 일주일은 먹을 수 있을 거야. 아침, 저녁으로 챙겨 먹어.”
“아무튼, 고마워. 내 생각도 다 해주고.”
“효과가 나타나면 바로 알려줘.”
“정말 그랬으면 소원이 없겠다.”
생각보다 심각한 변비인 것 같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