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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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텁십은 빠르게 진행됐다.

지원자들은 올해 귀농학교를 졸업한 청년 농부들이었다.

생각보다 지원자가 많이 몰려 애를 먹었다. 응모한 지원자만 스무 명이 넘었다. 서류를 보고 인원을 줄여 5명을 선발하기로 했다. 지원서를 보고 자신의 팀원이 될 사람들을 나름 추렸다.

오리엔테이션은 하문 초등학교에서 진행됐다.

“김덕명이라고 합니다. 이번 인턴십이 모두에게 좋은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인턴십 참가자들에게 말했다.

인턴십 기간은 한 달로 정했다.

참가들은 모두 타지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숙박까지 해결해야 할 부분이 많았다.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식사 자리로 이어졌다.

밥을 먹기 전에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하는 사람들의 소개가 있었다.

“박태호라고 합니다. 전 농사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죠. 부모님도 도시 출신이고요. 제가 농사에 관심을 가진 계기가 있습니다. 해외여행을 하던 중 황폐화된 땅을 본 적이 있습니다. 예전엔 비옥한 농지였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죠. 농업이 완전히 망해서 농산물을 수입에만 의존한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고요. 그 모습을 보고, 농부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한국의 농업을 살리는 농부가 되기로.”

박태호는 한기탁이 가장 먼저 뽑은 사람이었다. 한기탁은 그의 진지함을 마음에 들어 했다.

“천희석이라고 합니다. 게임회사에서 프로그래머로 근무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게임회사에 들어가는 게 꿈이었는데, 꿈이 이뤄지는 순간 알게 됐습니다. 내가 꿈꾸던 것과 현실이 너무 다르다는 것을. 퇴사를 결심하고 많이 갈등하고 고민했죠. 그때 게임을 했습니다. 농사와 관련한 게임이었는데, 게임이 아니라 직접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그 말의 말에 웃었다.

천희석은 백민석이 눈여겨본 인물이었다. 지원자 중 유일한 프로그래머였다.

백민석과 비슷한 면이 많았다.

“설민주라고 합니다. 지리산 농부들이 만든 곶감의 팬이기도 하죠. 워낙 단 거를 좋아하는 편이라서요. 어릴 때부터 농사를 지은 경험이 있습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농사를 짓겠다는 꿈은 있었지만, 그게 쉽지는 않잖아요. 그래서 도시에서 직장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행복하게 사는 방법은 없는 걸까? 하는 고민을 항상 했던 것 같아요.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주말농장에 다니고 하다가 귀농학교까지 다니게 됐습니다. 결국, 이렇게 인턴십도 참여하게 됐고요. 잘 부탁드립니다.”

설민주. 그녀는 내가 주목한 사람이었다. 남다른 이력이 눈을 끌었기 때문이다. 다른 이들과 비교할 수 없는 경험을 가진 사람이었다.

나머지 인원들도 소개를 마쳤다.

일정을 끝내고, 모두 숙소로 향했다.

한기탁이 그들을 안내했다.

나와 민석은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공통 과제를 마을 어르신들에 맡기는 게 맞을까?”

민석이 물었다. 공통 과제는 농사일이었다.

우린 그들에게 두 가지 과제를 주기로 했다.

양봉과 과수원 일이었다.

양봉은 부모님이 맡아주기로 했다.

과수원 일은 지역에서 가장 큰 농원을 하는 정길산이 맡아주기로 했다.

자신의 딸인 정가희가 함께하는 지리산 농부들의 일에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기로 했다.

민석이 무슨 뜻으로 말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는, 공통 과제인 농사일을 맡기기보다 우리가 직접 해야 한다고 말했다.

“농사일은 어른들에게 배우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

그는 한참을 말없이 걸었다.

“하긴 어른들에게 배우는 게 더 나을 것 같긴 해. 우리랑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는데.”

민석이 웃으며 말했다.

* * *

다음날부터 청년 농부 인턴십이 본격적으로 가동됐다.

마을에 젊은 기운이 넘쳐났다.

양봉장의 벌들도 청년 농부들을 환영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른들은 청년 농부들에게 자신들의 노하우를 전수했다.

귀농학교에서 농사를 배우는 것과 달랐다.

농사가 생업인 사람들의 목소리였다. 비료 자루 하나도 함부로 버리지 않았다.

그들도 농부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 시각, 난 이동 중이었다. 동료들에겐 중요한 일이 있다고만 전했다.

오늘 중요한 약속이 있었다. 만나기로 한 사람은 나병수였다.

그는 하동의 땅 부자로 알려진 남자였다.

말 그대로, 엄청난 규모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그에게 전화를 했을 때, 여운이 남는 말을 남겼다.

“언제가 자네에게 연락이 올지 알았지. 나도 한번 보고 싶었다네. 기다리고 있겠네.”

나병수는 나와 어떤 접점도 없는 인물이었다. 티브이를 통해 날 봤다고 해도 이상한 말이었다.

난 인력을 확충하는 단계에서 다음 농사를 대비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 나병수의 도움이 필요했다.

나병수의 집은 저택 수준이었다. 주차장에 고급 승용차들이 전시하듯 세워져 있었다.

차에서 내리자, 집사로 보이는 남자가 나타났다.

“김덕명 씨 되십니까?”

“맞습니다.”

“절 따라오시지요.”

난 남자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갔다. 바닥에 대리석이 깔려 있었다.

소파와 벽에 걸린 장신구들은 값비싼 것들로 보였다.

화려한 장식과 달리 집안은 고요했다. 마치 나병수와 집사만 집안을 지키는 느낌이었다.

남자가 계단을 따라 이층으로 올랐다.

이층에 들어서자, 구석방에서 문이 열렸다. 그 안에서 휠체어를 탄 남자가 나왔다.

“자네가 김덕명이군.”

나병수였다. 흰머리에 붉은 가운을 걸치고 있었다.

“식사는 했나?”

“네, 먹었습니다.”

“밥이나 먹으며 이야기를 하려고 했네만.”

분명 식사 이야기는 없었다. 기분에 따라 제멋대로 결정하는 사람 같았다.

내가 답을 하지 않자,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럼 차나 한잔하지.”

“네.”

나병수는 집사로 보이는 남자에게 손짓했다.

남자는 나병수의 손짓에 기민하게 움직였다.

나병수는 전동 휠체어를 움직였다.

그를 따라 서재로 들어갔다.

그는 타인을 불편하게 하는데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

커피가 오기 전까지 우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집사가 커피를 대령하자, 그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래, 날 보자고 한 이유가 뭔가?”

“어르신이 가지고 있는 땅을 임대하고 싶습니다.”

나병수는 대답 없이 나를 쏘아봤다.

눈에서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임대의 조건

나병수는 커피잔을 들었다.

“그래, 어느 땅을 원하나?”

“서일 농장이 있던 자리를 원합니다.”

“서일 농장 자리라... 목초지를 원한다고?”

그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날 노려보았다.

“거기서 뭘 하려는 건가? 자네가 벌을 기른다는 말은 들었네. 그곳에서 양봉을 할 생각인가?”

“아닙니다.”

“그럼 그 넓은 땅에서 뭘 하려는 생각인가?”

“젖소를 기를 생각입니다.”

나병수는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내가 빌리고 싶은 땅은 서일 농장이 있던 자리였다.

서일 농장은 하동에서 가장 큰 젖소 농장이었다.

농장주 김서일은 그 터에서 대규모로 농장을 운영했다.

할아버지 때부터 대대로 이어진 가업이었다.

김서일은 낙농업의 선구자기도 했다. 동물복지를 위해 자연 방목을 선택했다.

넓은 목초지에서 젖소를 키우고, 우유를 생산했다.

하지만, 2000년도 초반에 불어닥친 우유 대란에 휘청했다. 우유 쿼터제로 인해 제한 양을 넘긴 원유는 헐값이 넘겨야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비슷한 시기에 사룟값마저 올랐다.

3대를 이어 온 목장이 망하는 순간이었다.

그때 나병수가 땅을 인수했다.

지금은 잡초만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나병수는 내 얼굴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자네에 관한 기사를 봤네. 전도유망한 청년 농부라고 들었네. 언젠가 나와 만날 거라고 생각했네. 땅을 일구던, 동물을 기르던 땅이 필요하니까 말이야.”

나병수를 만나기 전, 부동산 업자에서 문의를 했다.

부동산 중개인은 나병수가 독특한 인물이라고 말했다.

아무리 좋은 조건을 제시해도 땅을 팔거나 임대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에게 직접 전화를 한 까닭이었다.

“정말 그곳에서 목장을 할 생각인가?”

“네, 그곳에서 목장을 운영할 계획입니다.”

“자네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사람이군.”

그가 내 눈을 똑똑히 바라보며 말했다.

“하긴, 목장을 운영하기에 그만큼 좋은 입지도 없지. 김서일 목장주처럼 동물복지를 위해 자연 방목을 할 테고?”

“맞습니다.”

애써 목초지를 만들 필요가 없는 땅이었다. 무성히 자란 잡초만 제거하면 목장이 완성되는 곳이었다.

“지금까지 자네가 한 일들은 모두 성공했다고 들었네.”

“작은 성공이었습니다.”

“이번 일도 성공하리라고 장담하나?”

“누구든 백 프로 성공을 장담할 수 없겠죠. 그렇다고 실패할 일에 일부러 뛰어들진 않습니다.”

“패기가 마음에 드네. 자네에게 땅을 임대하겠네.”

그가 낮게 깔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듣고 싶던 말이었지만, 느낌이 서늘했다.

“대신 한 가지 조건이 있네.”

그는 휠체어를 움직여 나에게 다가왔다.

“목장이 자리를 잡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필요한가?”

내 눈을 뚫어지게 보며 물었다.

“한 해 농사라는 말이 있지 않는가? 일 년 안에 자리를 잡을 수 있겠는가?”

“말씀처럼 일 년이면 충분합니다.”

“일 년 안에 성공한다면, 일 년 치 임대료를 받지 않겠네.”

“임대료를 받지 않겠다고요?”

“대신 실패한다면 기존 임대료의 10배를 받겠네. 어떤가?”

나병수는 웃으며 말했다.

“농장에서 어떤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말씀처럼 임대료의 10배를 내죠. 하지만, 성공한다면 무상 임대료 대신 다른 조건을 걸고 싶습니다.”

“다른 조건?”

나병수의 눈에 호기심이 가득 들었다.

“제가 목장으로 성공하면 그 땅을 사겠습니다.”

나병수가 임대료로 장난을 칠 걸 이미 예상했다.

이 정도 조건이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이었다. 다만, 나도 원하는 바가 있었다. 그의 땅을 갖고 싶었다.

그는 내 말에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신이 난 것 같았다.

“배짱이 두둑하네. 그런 조건이라면 허들을 좀 높여도 되겠나?”

“들어보고 결정하죠.”

“난 성공의 조건으로 손익분기점을 넘는 수준을 제시하려 했네. 땅을 사겠다는 조건이라면 기준을 좀 높이고 싶네. 돈이 있어야 땅을 살 거 아닌가? 성공의 기준으로 20억 매출 어떤가? 목장 수익만으로 말일 세.”

그는 나와 게임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돈 많고 무료한 노인이 젊은 청년과 벌이는 게임이었다.

모험이 없이는 승리도 없었다.

주사위를 던져야 했다.

“좋습니다.”

“재미있군. 종종 만나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나병수는 테이블 위에 있던 벨을 눌렀다.

“당장 계약을 하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집사가 들어왔다.

그는 집사에게 계약과 관련한 내용을 설명했다.

집사는 이야기를 듣다 놀란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자네가 알아서 처리하게. 그 조건은 빠트리지 말게.”

“네.”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계약서 작성은 김실장과 하면 될 거야. 이제 그만 가보게.”

나병수에게 인사를 하고 방을 나왔다.

난 김실장을 따라 1층으로 내려갔다.

응접실 뒤에 작은방이 하나 있었다.

김실장의 사무공간이었다. 책장에 부동산과 관련한 책들이 보였다.

그는 능숙한 솜씨로 계약서를 작성했다.

“확인해 보시죠.”

10만 평 규모의 임야를 임대한다는 계약서였다.

1년 계약이었다. 조건에 따라 땅을 팔겠다는 내용을 명시했다.

실패에 따른 내용도 있었다. 임대료의 10배를 물고 떠나야 했다. 2억원이 넘는 돈이었다.

“지금이라도 포기할 수 있습니다.”

김실장은 건조한 말투로 말했다.

“낙농업에 뛰어드는 건 무모한 짓입니다. 그곳에서 목장을 운영하던 사람은 파산했습니다.”

로봇처럼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인공지능이 내게 충고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해보지 않고는 모르는 일이죠.”

계약서를 들고 저택을 빠져나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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