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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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각, 하문 초등학교 야외극장.

한기탁과 백민석은 팝콘을 튀기고 있었다.

사람들이 하문 초등학교로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경영지원팀장님, 그때 극장에 관련한 일은 관여 하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랬지.”

한기탁은 콜라를 종이컵에 따르며 말했다.

“그런데, 왜 우리가 이 짓을 하고 있는 거죠?”

“직원 복지 차원이지.”

“그럼, 우리 복지는 어쩌고요?”

“우리 복지도 챙겨야지.”

“어떻게요?”

한기탁이 대답하려는 순간, 김꽃님 할머니가 나타났다.

“오늘 영화는 뭐가 됐어?”

영화는 따로 공수할 필요가 없었다.

김덕명이 구해 놓은 영화들 때문이었다.

시네마 천국을 포함한 더빙한 외화부터 한국 영화도 있었다.

한기탁은 투표를 통해 영화를 선택했다.

투표로 영화를 정하는 것도, 한기탁의 복지정책 중의 하나였다.

“오늘 영화는 춘향전이 되겠습니다.”

한기탁은 웃으며 말했다.

“난 시네마 천국을 한 번 더 보고 싶었는데...”

김꽃님 할머니는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다음에 또 보시면 되죠. 앞으로도 투표를 통해서 결정할 거니까요.”

“다음번에 볼 기회가 있겠지.”

김꽃님 할머니는 팝콘을 들고 말했다.

“그런데, 덕명이는 왜 안 보여?”

김꽃님 할머니가 민석에게 물었다.

“출장 갔어요.”

“어디로?”

“독일이요.”

“그 먼 데는 뭐 하러 간 거야?”

“중요한 일을 처리하러 갔어요.”

* * *

오늘 연구소 견학을 마치고, 바로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그전에 잠시 들릴 곳이 있었다.

난 양봉 용품점에 들렀다. 벌통 때문이었다. 다양한 형태의 벌통이 있었다.

랑스트로스 벌통을 표준으로 쓰고 있는 한국과 달랐다.

보통 서양벌은 랑스트로스 벌통을 사용하고, 토종벌은 통나무나 층층이 쌓아올린 상자형을 쓴다.

독일에는, 내부를 살피기 편리한 형태의 벌집부터 이동이 수월한 형태까지 여러 종류의 벌통이 있었다.

몇 가지를 사 가고 싶었다. 한국으로 가져가 우리 지형에 맞게 변형하면 좋을 것 같았다.

벌통을 들고 호텔로 돌아왔다.

한스와 이영호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벌통을 사셨군요.”

한스가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연구소 견학입니다.”

우린 한스의 차를 탔다.

이영호의 눈빛이 빛나고 있었다.

들떠 보였다.

“오늘은 얼굴이 좋아 보이네요.”

“그런가요?”

그는 소풍 가는 아이처럼 잔뜩 기대한 눈빛이었다.

한스의 차가 천연 물질 연구소 입구를 통과했다.

연구소 앞에 하얀색 가운을 입은 남자가 우릴 반겼다.

키가 무척 큰 남자였다.

“내 아들입니다. 루카스 인사드려.”

“안녕하세요. 루카스입니다.”

나와 이영호도 그에게 인사했다.

“저와 달리 키가 아주 큽니다.”

한스의 아들이 연구소 소장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양봉을 이어받길 바랐는데, 연구원의 길을 택했습니다. 그래도 벌에서 나오는 물질을 연구하니까 같은 길을 걷는다고 볼 수 있겠죠?”

한스가 웃으며 말했다.

연구소에 들어가기 전에 에어 샤워를 했다.

모자와 장갑, 마스크를 낀 상태로 시설을 돌았다.

루카스의 안내로 연구소 내부를 견학했다.

연구소에서는 꿀벌 품종 개량 연구부터 양봉 부산물 제품 개발까지 다양한 분야의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고 소개해줬다.

이영호는 프로폴리스를 추출하는 과정을 보고 싶다고 요청했다.

우린 제품 개발실로 가서 추출 과정을 바라보았다.

정교한 과정을 거쳐 프로폴리스가 탄생했다.

이영호는 루카스에게 이것저것 물었다.

루카스도 아버지처럼 유쾌한 남자였다. 이영호의 질문에 막힘 없이 대답을 해주었다.

예정한 견학은 거기까지였다. 이제 공항으로 떠나는 일만이 남았다.

“가시죠? 제가 공항까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한스는 우리에게 손짓했다.

공항으로 가는 길에 이영호는 말이 없었다.

“무슨 문제 있나요?”

이영호에게 물었다.

“아무 문제 없습니다.”

말과 달리 문제가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는 공항으로 가는 동안 침묵했다.

도르트문트 공항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창밖만 바라보던 이영호가 입을 열었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표정이 진지했다.

“말씀하세요.”

침묵하던 두 남자가 입을 열자, 한스도 관심을 보였다.

그는 룸미러를 통해 우리를 보고 있었다.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하셨죠?”

“물론입니다.”

“이곳에 조금 더 머물고 싶습니다.”

기대했던 바였다.

청년 농부 인턴십

이영호는 비자가 만료되기 전까지 독일에 머물기로 했다. 그의 눈에서 집념이 느껴졌다.

독일의 연구소를 견학하던 이영호는 욕심이 났다고 한다. 난 그의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한스에게 사정을 말하자, 돕겠다고 나섰다.

다만, 조건이 하나 있었다.

벌을 연구하는데 서로 협력하는 것이었다. 그는 조만간 한국에 올 거라고 다짐했다. 언제라도 환영이었다.

도르트문트 공항에 도착하기 전 이야기가 끝났다.

만족스럽게 이야기를 끝내고 난 혼자 공항으로 들어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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