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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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르트문트 공항에 도착했다. 도르트문트는 꿀벌 군단으로 불리는 축구 클럽이 있는 도시였다.

공항에 피켓을 들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한국에서 오신 손님들을 환영합니다.’

독일 양봉협회에서 나온 사람들이었다.

“안녕하세요. 김덕명이라고 합니다.”

“환영합니다. 리틀 한스라고 합니다.”

독일 양봉협회에서 수퍼바이저로 일하는 한스였다. 다행히 영어에 능통해 이메일로 소통하는 데 지장이 없었다.

광고회사에 입사하려고 죽어라 영어공부를 했던 게 이렇게 도움이 되기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와 여러 차례 메일을 주고받았다. 별명이 리틀 한스라고 말해주기도 했다.

한국 나이로 환갑이 넘은 그는 꼬마라는 귀여운 별명을 가졌다. 독일인 치고는 키가 작아 생긴 별명이라고 했다.

그는 유머감각이 넘치는 남자였다.

얼굴을 대면하는 것은 처음이었지만,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이영호도 영어가 능통했다. 그는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대했다. 숫기 없는 이영호가 아니었다.

“이영호 씨, 오늘은 다른 사람 같네요. 사람을 대하는 게 어색하지 않아요.”

난 이동 중에 슬쩍 물었다. 이영호는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오히려 외국에선 긴장을 덜 하는 편이에요. 출장이기도 하고.”

그는 일을 할 때만큼은 다른 면을 보였다. 물론, 독일의 낯선 공기도 그를 각성시키는데 한몫했을 것이다.

“피곤하실 텐데, 오늘은 숙소로 이동할까요?”

난 이영호에게 의사를 물었다. 그는 컨디션이 좋다고 했다.

“괜찮습니다. 협회 사무실로 가시죠.”

“젊음이 좋긴 하네요. 그럼 사무실로 가겠습니다.”

한스는 웃으며 말했다.

우린 독일 양봉협회 사무실에 도착했다. 노란색 벽돌로 쌓아 올린 건물이었다.

독일 양봉 농가를 관리하는 곳이었다.

건물 밖에 알록달록한 벌통들이 보였다. 이동식 양봉을 할 때 쓰는 벌통들이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선물입니다.”

한스의 사무실에서 선물 보따리를 풀었다.

토종꿀, 밀랍 양초, 곶감이 나왔다.

“이건 뭔가요?”

“곶감이라고 하는 겁니다.”

“한국 전통 식품이죠. 겨울에 감을 말려서 만듭니다.”

“먹어봐도 될까요?”

“얼마든지요.”

한스는 곶감을 하나 집어먹었다.

“와우, 꿀보다 더 단맛이 느껴지네요.”

그는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곶감의 단맛에 빠진 표정이었다.

선물을 주고 잠시 한담을 나눴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갈 시간이었다.

“말씀드렸던 약품은 문제없겠죠?”

“물론입니다.”

한스는 웃는 얼굴로 말했다.

“솔직히 김덕명 씨를 보고 좀 놀랐습니다.”

“놀랍다니요?”

“김덕명 씨가 젊은 청년이라곤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글에 담긴 내용을 보고 중년의 남자를 연상했습니다.”

“그러셨군요.”

“실례가 됐다면 죄송합니다. 글에서 진심이 느껴졌습니다. 양봉 농가를 걱정하는 마음 말입니다.”

그때 커피가 나왔다. 뜨거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사무실에 한스의 사진이 보였다.

어린 시절부터 중년의 모습까지.

모두 벌통과 함께 찍은 사진들이었다.

“전 어릴 때부터 양봉을 시작했습니다. 평생 벌과 함께 살았습니다.”

그는 벽에 가운데 걸린 사진을 가리켰다.

다른 사진과 달리, 벌통만 있었다.

“벌통을 모두 태우기 전 사진입니다. 전염병 때문에 벌통을 모두 소각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저 사진을 볼 때마다 마음이 무겁습니다. 다시는 저런 일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죠.”

그는 굳은 얼굴로 말했다.

“김덕명 씨의 말처럼 미리 대비를 하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대비를 하지 않는다면, 한국에 있는 양봉 농가도 같은 일을 겪어야 한다.

한국도 전염병이 돌아 벌을 모두 소각했다.

벌통을 불태우며 눈물짓던 농부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때는 미리 대비를 하지 못했다.

약품으로 대비를 하면 농가에 닥칠 재앙을 막을 수 있었다.

“계약서를 가지고 왔습니다.”

난 한스에게 계약서를 내밀었다.

약품 구매와 관련한 내용이었다.

한스는 꼼꼼하게 서류를 살폈다.

확인 작업이 끝나고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김덕명 씨의 노력으로 한국 농가들엔 어떤 피해도 없을 겁니다.”

한스는 잠시 이영호의 눈치를 살폈다.

“연구소 견학은 내일 하면 어떨까요? 이제 곧 저녁 시간이기도 해서.”

“그러시죠.”

이영호는 태연하게 답했다.

“혹시, 식당을 예약하셨나요?”

한스가 나를 보고 물었다.

숙소 말고 예약한 곳은 없었다.

“예약한 곳이 없다면, 저희 집에서 식사를 하면 어떨까요?”

이영호와 눈을 마주쳤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녁 식사 장소가 정해졌다.

우린 리틀 한스의 집으로 향했다.

저녁 식탁은 생각보다 간소했다.

“소박한 독일식 식사입니다. 입에 맞았으면 좋겠습니다.”

으깬 감자에 소시지를 얹고, 절인 양배추와 샐러드가 놓인 요리가 메인이었다. 치즈와 빵도 먹음직스럽게 세팅되어 있었다. 또, 독일인답게 식탁에 맥주가 빠지지 않았다.

“치즈와 맥주는 홈메이드입니다.”

한스는 저녁을 먹기 전, 노란색 축구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그 옷을 입고 맥주를 마시는 모습이 꿀벌을 연상시켰다.

“한국의 토종꿀은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김덕명 씨가 독일에 왔듯이 저도 한국에 꼭 가보고 싶습니다.”

그가 맥주를 한 모금을 마시며 말했다.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한스가 나를 적극적으로 도운 이유기도 했다.

그에게 토종꿀 성분 의뢰를 했을 때, 그는 토종벌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

단순한 관심이 아니라, 연구 수준으로 하고 싶다고 말했다.

토종벌이 가진 고유한 특성이 풍부한 항산화 성분을 가진 꿀을 만들어 낸다고 여겼다.

연구를 통해 더 우수한 꿀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난 약품을 원했고, 그는 토종벌 연구를 원했다.

서로 원하는 게 맞아떨어진 것이다.

“제가 만약 양봉을 하지 않았다면, 축구 선수가 됐을 겁니다.”

맥주 한 잔에 볼이 붉어진 그가 웃으며 말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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