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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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협회 회장님들과 만나 일을 매듭짓자 긴장이 풀렸다.

양봉 농가에 엄청난 재앙이 닥칠 것을 알고 있었다.

워낙 크게 보도가 됐기에 잊을 수 없는 사건이기도 했다.

꿀벌들이 집단 감염으로 죽은 것이다.

서양벌 토종벌 가리지 않고 찾아온 질병이었는데, 토종벌을 키우는 농가의 피해가 훨씬 심했다. 토종벌은 거의 전멸하다시피 했다. 서양벌보다 내성이 약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내년에 벌어질 일이었다. 아직 시간이 있었다. 양봉으로 입지를 굳히고 벌을 살릴 방법을 모색하고 싶었다.

벌들의 집단 감염으로 양봉 농가만 손해를 본 게 아니었다.

과수원 농가들도 크게 타격을 입었다.

벌이 질병으로 죽은 뒤, 많은 농가에 엄청난 피해가 있었다.

약품을 구해 미리 대비할 계획을 세웠다.

독일에 성분분석을 의뢰하면서도 약품에 대해 문의하기도 했다.

약품만 제대로 보급된다면 농가의 피해를 최소로 줄일 수 있었다.

개인적인 일이 아니라, 협회 차원에서 일을 처리하고 싶었다. 그래야 모든 양봉 농가에 약품을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 * *

독일로 떠나기 하루 전이었다.

난 오랜만에 양봉장으로 나갔다.

한여름이었다. 뜨거운 햇살이 온몸을 휘감고 있었다.

벌들이 입구에서 거대한 무리를 이루는 장관이 연출됐다.

벌통 입구에서 날갯짓을 하는 것이다.

송풍이라 불리는 데, 뜨겁게 달궈진 벌집을 날갯짓으로 시원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뭐지?’

난 벌통에 시선을 고정했다.

지장사에 가져온 벌통이었다.

벌집 입구에 꿀벌들이 공처럼 동그랗게 뭉쳐 있었다.

송풍 작업을 하는 게 아니었다.

난 가까이 다가가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말로만 듣던 장면이었다.

‘체온 공격이다.’

공처럼 동그랗게 뭉쳐 있는 벌 무리 속에 말벌이 들어 있었다.

말벌이 벌통 안으로 들어가려는 것을 막기 위해 문지기 벌들이 말벌을 에워싼 것이다.

말벌이 벌통 안으로 들어간다면 그야말로 쑥대밭이 될 것이다. 꿀벌은 말벌을 당해낼 수가 없다.

말벌을 죽이는 방법은 단 한 가지였다.

'집단 체온 공격'

말벌이 죽는 온도는 44도에서 46도 사이다. 반면에 토종벌들은 48도에서 무려 50도까지 체온을 상승시킬 수 있다.

지금 꿀벌들은 동그랗게 뭉쳐서 체온을 상승시키는 중이었다.

얼마 후면 말벌은 체온 공격에 죽고 말 것이다.

안타깝게도 꿀벌 또한 죽게 된다.

집단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일이었다.

이대로 꿀벌이 죽게 놔둘 순 없었다.

난 벌통 옆에 있던 말벌 채를 들었다. 말벌 채로 공처럼 뭉친 무리에 자극을 주었다.

꿀벌이 날아가고, 말벌이 모습을 드러냈다. 흥분한 상태였다.

말벌 채로 제압하려는 순간이었다. 놈이 날렵한 날갯짓으로 빠져나갔다.

손보다 말벌이 빨랐다.

난 두 눈을 부릅떴다.

말벌이 얼굴을 향해 날아왔다.

침을 칼처럼 뽑았다.

내 눈을 노리고 있었다.

리틀 한스

하늘은 맑았다.

독일로 가는 비행기 안이다.

옆자리에 이영호가 있었다. 피곤한지 자리에 앉자마자 잠이 들었다.

이영호는 출장 전날까지, 연구실에서 밤샘 작업을 했다.

그와 동행한 까닭은 독일 연구소 견학을 위해서였다.

약품을 사는 게 주요한 목적이었다. 하지만, 그 일만 처리하기엔 시간이 아까웠다.

이영호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는 일도 중요했다.

그에게 출장의 목적을 말하자, 그도 적극적으로 나왔다. 연구자의 욕심이 보였다.

그는 뛰어난 연구원이었다. 선진 기술을 접하는 것만으로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거라고 여겼다.

이영호에게 담요를 덮어줬다. 깊은 잠이 든 모양이었다.

“음료수 한잔 드릴까요?”

지나가는 스튜어디스가 물었다.

오렌지 주스를 달라 부탁했다.

시원한 주스를 마시다 문득 그 장면이 떠올랐다.

말벌과 대치하던 순간.

성난 말벌의 거대한 침이 내 눈을 노리고 있었다.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침을 뽑고 날아오던 말벌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친 것이다.

추락하는 비행기 같았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난 바닥에 떨어진 말벌을 손가락으로 건드려 보았다.

죽었는지 미동도 없었다.

그때 가슴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음을 느꼈다.

동굴에서 가져온 호박 보석이었다.

노란색 빛이 호박 보석을 감돌고 있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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