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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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환영파티가 있었다.

지리산 농부들의 전 멤버가 포장마차에 모였다.

“난 이영호 씨처럼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은 첨 봤어.”

한기탁 선배가 이영호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영호는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지리산 영화제 때는 활기차 보였는데.”

민석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조만간 인원을 보충할 계획입니다. 모든 팀에 팀원을 증원할 계획입니다.”

내 말에 한기탁과 백민석이 박수를 쳤다.

“그 말이 언제 나오나 했네.”

한기탁이 건배를 외치며 말했다. 모두 기분 좋게 소주잔을 기울였다.

“참 그런데, 상의할 게 하나 있어요.”

동료들에게 운을 뗐다.

“뭔데?”

“이번에 해외로 출장을 한번 다녀와야 할 것 같아요. 이영호 연구원님과 함께 다녀올 생각이에요.”

“해외 출장? 어디로?”

“독일이요.”

한기탁과 백민석뿐만 아니라 이영호도 놀란 표정이었다.

* * *

독일에 가기 전, 만나야 할 사람이 있었다.

토종벌과 서양벌 협회의 회장이었다.

양대호와 박문호에게 전화를 해 함께 만나자고 제안했다.

그들은 흔쾌히 허락했다. 최근 두 협회가 토종꿀 인증에 합의하고, 식품의약품안전처에 ‘토종꿀’이란 말을 쓰게 해달라 신청한 상태였다.

난 예약한 식당에 먼저 도착했다.

양대호와 박문호가 함께 들어왔다.

“먼저 도착해 있었군.”

“두 분은 함께 오셨네요?”

“이 앞에서 만났네.”

박문호가 웃으며 말했다.

“오랜만이군. 밀랍 양초가 아주 잘 팔린다는 소리는 들었네.”

양대호가 날 보며 말했다.

그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토종꿀 인증에 합의를 본 게 여간 기쁜 게 아닌 것 같았다.

식사가 나오기도 전에, 그는 박문호에 대한 칭찬을 쏟아냈다.

“박회장이 아니었으면 토종꿀 인증을 하는데 애를 먹었을 겁니다.”

“아직, 인증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좋은 결론이 나올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오늘 이런 자리를 마련한 것도 그런 뜻 아닌가?”

양대호의 시선이 박문호에서 나에게로 이어졌다.

“양회장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토종꿀 인증은 이미 결정됐다고 생각합니다.”

양대호는 껄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 자리에 토종꿀 인증을 자축하는 자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식사를 하며 우린 양초 학교 이야기를 했다. 박문호는 남아영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미래에 양봉업을 이끌 보석 같은 아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양대호도 남아영이란 아이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

즐거운 식사가 끝나고, 차를 마실 때였다.

그들을 이곳에 부른 진짜 용건을 말할 차례였다.

“조만간 독일에 다녀올 생각입니다.”

독일에 간다는 말에 두 사람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됐다.

“독일엔 무슨 일로 가려는 건가?”

박문호가 물었다. 양대호도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오늘 제가 두 분을 모신 이유기도 합니다.”

“그게 무슨 뜻인가?”

“약품을 수입하려고 합니다.”

“약품이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

양대호가 약품이란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꿀벌에 기생하는 벌레를 막는 약품을 미리 구입해놓았으면 합니다.”

그들도 해외에서 발생한 몇몇 질병 사례에 대해 알고 있었다. 아직 한국에선 집단 감염 등이 보고된 적은 없었다.

“지금 꿀벌이 위험에 처했다는 이야긴가?”

“예방을 하자는 뜻입니다. 독일은 체계적으로 꿀벌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예방하는 약품도 수준이 높은 편입니다. 그들의 선진 기술을 도입하면, 양봉 농가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그들은 내 말에 수긍하는 눈치였다.

“협회 차원에서 약품을 수입하면 어떨까 합니다. 그렇게 하면 협회 소속의 양봉농가에 일사불란하게 약품을 보급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생각이네.”

박문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런 생각은 어떻게 한 건가?”

“해외 사례를 분석하며 얻은 자료입니다. 한국도 질병에서 자유롭지 못할 거라고 여겼습니다.”

그들은 나와 뜻을 함께하기로 했다.

약품 수입에 관한 일을 나에게 위임했다.

내 일은 계약을 하는 일까지였다. 그 뒤의 일은 협회가 처리하기로 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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